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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01-03)


모든 가나안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

사사기 1장 22-36절


오래전에 강원도 강릉 지방에 산불이 나서 큰 피해를 낸 적이 있습니다. 초기에 산불을 진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또 산불이 나고, 또 산불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불씨를 정확히 끄지 않아서 불씨가 바람을 타고 살아난 결과였습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실수는 죽음입니다.

 

  • 본문은 북쪽 지역에 위치한 지파들의 점령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요셉 지파는 베델을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외 지파들은 북쪽 지역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면서 가나안 족속들을 살려두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있어 자손들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밀려서 단 지파는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나는 모습 또한 보여줍니다.

 

요셉 자손의 벧엘 범령(22-26)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죄악에 대해 너무 관대합니다. 하지만, 죄악이 성도들에게 들어오면 영성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단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좋아합니다.

 

22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22-26)

 

요셉 가문은 정확하게 에브라임과 므나셋 지파를 말하는데, 그들은 북쪽에 위치한 지파들 가운데 가장 강한 지파였기 때문에, 이들이 북쪽 지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벧엘’은 여호수아 18장 13절, 22절에 따르면, 원래 베냐민 지파에 주어진 성읍으로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를 이룹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자신의 기업 아래에 있는 중요한 도시인 예루살렘과 벧엘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벧엘을 점령하게 됩니다.

요셉 지파가 벧엘을 성공적으로 점령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성공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아무리 강력하고 힘든 성읍도 점령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특별한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점령할 때 정탐꾼을 보낸 것처럼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리고 정탐꾼이 루스에서 나오는 한 사람을 만나서 성읍 입구를 알려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합니다(22). 부탁을 들어주면 은혜를 베풀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도 들어있습니다. 이런 위협에 그 사람은 성읍 입구를 알려줍니다. 그 정보를 이용하여 에브라임 사람들이 쳐들어가 성읍을 칼날로 쳐서 벧엘을 성공적으로 점령합니다(25).

이 장면은 여호수아서에서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정탐꾼 읍 사람들의 도움, 성읍 사람들의 구원, 성읍 정복 등에 동일한 모티브가 등장합니다.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여리고 성읍을 수월하게 얻은 것처럼, 벧엘도 이름 없는 사람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전에는 도와준 사람의 이름이 기생 라합이라고 밝혀지고, 그녀의 영웅적인 행동이 강조되었고, 그녀와 가족은 이스라엘 자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름 없는 성읍의 사람은 그가 아닌 정탐꾼이 먼저 그들과 약속하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 자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헷 사람의 지역에 가서 새로운 ‘루스’라는 성읍을 짓고 살았습니다(26). 그런데 이후에 그가 짓 루스 성읍은 가난한 문화를 보존하고 부흥시켜 이스라엘 안에 퍼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요셉 가문은 여호와를 믿는 신앙으로 벧엘을 점령하였지만, 가나안 사람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먼저, 승리를 위해 그들과 언약하므로 결국 가나안 문화를 남겨두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 이름없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나안 문화가 다시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죄악된 문화와 풍습을 여전히 이어지며, 요셉 자손이 가나안 땅 정복에 있어 완전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한 사람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적은 숫자지만, 죄악의 씨앗은 무섭습니다.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씨앗의 영향력은 무섭게 펴지는 것입니다.

 

다른 자손들의 실수(27-36)

‘순종(順從)’이란 의미는 100%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99% 순종하고 1% 불순종이라할지라도 불순종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에 99.99% 자연 유기농 식품으로 식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0.01%의 치명적인 맹독성 독약이 들어갔습니다. 이 음식을 ‘유기농 음식’이라고 하지 않고 ‘맹독성 음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완전한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간까지가 아닌, 정말 끝까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27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27-36)

 

본문은 북쪽 지파들의 가나안 점령 실패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점령에 실패한 지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언급된 지파의 순서는 므낫세를 제외하고는, 남쪽에서 북쪽 위치 순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지파들이 자신의 기업을 점령하는 것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탈락은 아주 작은 타협에서 시작됩니다.

 

(1) 므낫세의 점령 실패(27-28)

 

므낫세는 요단 동편과 서편에 모두 기업이 있는데, 여기서는 요단 서편의 정복 이야기만 다루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벧스안’과 ‘다아낙’과 ‘돌’과 ‘이블르암’과 ‘므깃도’의 주민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27). 여기서 ‘벧스안’과 ‘다아낙’과 ‘므깃도’는 매우 유명한 도시들입니다. ‘벧스안’는 애굽 시대부터 가나안을 다스리는 중요한 거점이며 무역의 중심지였고, 다아낙과 므깃도는 중요 전투지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매우 강성한 성읍이었고 가나안 사람들도 매우 완강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에 므낫세의 힘으로는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28절에 보면 이스라엘 전체가 강성해진 후에도 다 쫓아내지 않고 그들에게 일을 시켰더라고 보고합니다. 여기서 므낫세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국가적 힘을 가진 왕정 시대에 비로소 완전히 정복했다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만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2) 에브라임과 스볼론의 점령 실패(29-30)

 

계속해서 에브라임과 스블론의 실패를 기록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점령을 하였지만, 완전히 진멸하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이 이들 가운데 살게 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이들은 군사 수가 많고 전쟁을 열심히 수행한 지파이며, 후에 드보라의 전쟁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끝까지 싸우진 않았으며, 가나안 족속과 동맹을 맺고 자기 기업 안에서 가나안 사람들이 살도록 허락하고 맙니다. 이것 역시 진멸을 명령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스블론의 경우는 가나안 사람들이 스블론의 노예로 노역을 담당하였다고 보고하는데, 아마도 사사 시대의 일이 아니라, 28절처럼 후대 일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아셀과 납달리 지역의 점령 실패(32-33)

 

아셀과 납달리는 스블론 북쪽 지역에 위치한 지파들입니다. 아셀은 해변가에 매우 비옥한 곳에 위치하였고, 납달리는 아셀 동편 지파에 위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기업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 가운데 소수로서 끼어 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 소수로 끼어 사는 에브라임과 스블론과 반대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을 얻은 후 그것에 만족하고 더는 가나안과 싸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주시겠다는 말씀과 전쟁할 때 함께 하셨다는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고 결국 그들은 자기 힘으로 얻을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얻어 가나안 족속 사이에 끼어서 그들의 문화에 동화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점령 보고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4) 단 지파의 점령 실패(34-37)

 

마지막으로 단 지파의 점령 실패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단락은 단 지파의 형편을 보여줍니다. 단 지파는 아직 북쪽으로 이주하지 않는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후에 단 지파가 북쪽 끝 라이스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사사기 저자는 단을 맨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지파는 원래 유다 지파와 인접한 해양 지역의 비옥한 평지를 분배 받았지만, 이 지역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납니다. 33절에 보면 주어가 아예 아모리 족속으로 나옵니다. 아모리 족속은 단 지파를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로 내려오지도 못하게 만드는 등 매우 강한 의지로 자신들의 지역을 지킬 뿐 아니라 오히려 단 지파를 핍박하였습니다. 결국, 단 지파는 이런 아모리 족속을 이기지 못하고 북쪽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후에 요셉 지파가 이들을 정복하고 이들에게 일을 시키게 됩니다. 요셉 지파가 여기서 다시 등장하여 북쪽 점령 이야기를 감싸며 결론을 이끕니다. 요셉 지파가 이들에게 노역을 시켰다라는 것은 힘이 생겨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데도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고 이들을 살려둠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실수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쟁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느슨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대충 남겨두므로 후에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 은밀히 들어와 자리 잡으려는 죄악과 세속의 요소들을 분별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불순종이 당신과 가정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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