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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3-01)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위선을 가르치신 예수님

마태복음 23장 1-12절


‘말의 힘’은 ‘얼마나 말을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을 잘하지만,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끝까지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계해야 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를 언급하고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덕목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갖은 위선적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자세를 경계하고 낮아져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행위(1-7)

그리스도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두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는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종교적으로 아주 열정적인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정의에 불타서 사회 개혁에 앞장서는 사람이나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들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1-7)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하여 강하게 질책하시고, 제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르쳐 주시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자세는 두 가지입니다.

 

(1)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태도(1-4)

 

바리새인들에 관한 언행불일치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바른 말이지만 그대로 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씀하십니다(1). ‘모세의 자리’는 은유적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있었던 교육하고 다스리는 권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배우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3). 그들은 잘 가르치고 지시했지만, 정작 자신들을 그렇게 실천하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율법을 성취하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율법에 나타난 뜻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22:10). 물론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의 관점이 아니라 예수의 관점을 통해 율법의 원래 의미를 알고 지킵니다.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의 해석을 통해서 밝혀지며, 예수님의 해석이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목적을 드러냅니다. 불행하게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입니다. 그들이 지운 짐이 무거운 이유를 몇 가지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23:23의 평가처럼 예수님의 적대자들인 종교지도자들이 지우는 멍에는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결여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종교지도자들은 짐을 지우기만 했지 사람들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셋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만든 전통은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지고 가기 힘든 짐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우는 예는 음식 규례(9:10-13), 엄격한 안식일 규례(12:1-13), 정결 예식에 대한 규례(15:2) 등에 나타납니다. 무거운 짐을 묶고 지우는 것은 안식일의 규례처럼(12:1-14)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율법 해석을 통해서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짐은 가볍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느라 힘들어했습니다. 그들이 짐을 무겁게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무겁게 했으니 사람들은 짐이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힘든 짐을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고도 사람들을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세우신 목적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에 신체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손가락을 움직이는 행위는 가장 쉬운 동작 가운데 하나지만, 그들에게는 사람들을 도와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원래의 의도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열심히 율법의 규례를 가르쳤으나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졌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상태를 알지 못했습니다.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요구가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를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들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수고하는 자들을 위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냉정한 율법주의와 권위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은 지시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말에 누군가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순종하는 자들의 마음과 고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긍휼은 전통보다 크고 긍휼함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입니다(12:7, 참조. 9:13; 호세아 6:6). 고난받는 종으로서 긍휼을 베푸는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십니다(11:29), 고난 받는 종으로서 연약한 사람들을 회복시키십니다(12:19-20; 이사야 42:1-4).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아시면서 그들을 움직이게 했는데, 이런 힘은 예수의 긍휼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교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결과인 피폐함은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이 얻는 결과인 안식과 정반대입니다(11:28-30).

 

(2) 칭찬받으려는 위선적인 행위(5-7)

 

앞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행함 간의 불일치를, 본문에서는 그들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한 위선적인 행위를 지적하십니다. 그들의 문제는 옷(5), 모임에서의 위치(6), 인사를 받는 것(7)으로 드러납니다. 경문 띠를 넓게 하고 옷 술을 길게 하는 것은 성경을 많이, 열심히 암송하고 순종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입니다(5). 그들은 잔치의 윗자리, 즉 가장 존중받는 자리에 앉음으로써 자신이 최고로 가치 있는 위치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려고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은 것을 원했습니다. 시장에서 인사를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높은 수준의 경전을 행하지 않으면서도 모범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척했습니다. 마음과 관심의 방향이 백성이 아니라 자신들을 행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신앙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장 취약한 문제 중 하나는 경건함을 드러내 영예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해석해주고, 지킬 수 있게 가르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르치지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눈에 띄는 곳에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제자들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8-12)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은혜를 아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창조주를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자신을 만들기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과 환경을 통해 보살펴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조건과 환경을 은혜의 선물로 여기면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참다운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8-12)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지적하시고. 이어서 제자들이 지녀야 할 바른 태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8-12절에서 제자 공동체를 향한 어떻게 스스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를 가르치십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랍비(8), 아버지(9), 지도자(10)로 불리는 것을 즐기지 않도록 경고하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 지침을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모본으로 제시하시기 때문에, 8-12절은 기독론(그리스도)과 교회론(제자 공동체)에 무게를 둡니다.

 

제자들이 경계해야 할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제자들은 랍비로 불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선생은 한 명이고 그들 모두는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8). 제자 공동체가 한 분의 교사를 두었다는 말은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기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다 형제’이기 때문에 랍비로 불리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형제들 사이에 권위주의 체계나 높고 낮음의 계층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9:11; 10:24-25; 17:24; 26:18; 23;10). 한 분 그리스도를 따르는 평등한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정체성입니다. 불필요한 칭송으로 특정인이 높임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위선의 길에 가깝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9). ‘하늘에 계신 분’을 아버지로 불러야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형제와 자매의 관계입니다. 형제의 개념은 한 아버지 아래서 서로 평등과 결속력을 전달합니다. 형제와 자매로 이뤄진 공동체는 서로 윗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한 분이신 아버지 아래서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서로 동등한 가치를 존중하고 한 가족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존중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셋째, 예수는 지도자에 상응하는 단어로 그리스도를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인도자이시지만 겸손히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가르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할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지도자를 따르면 공동체는 분파주의로 흐르기 쉽고 예수님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제자 공동체는 한 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 큰 사람인지를 가르치십니다(11-12). 제자 공동체에서 큰 자는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입니다(마태복음 20:26; 누가복음 22:26). 유일한 선생인 그리스도께서 보여주고 강조하신 삶은 섬기는 것이며 낮아짐(겸손)입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달리 존경받는 칭호를 사용하기보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져야 합니다(12). 위선에 빠지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식은 칭호에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낮아져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고 그대로 따르는 삶은 공동체의 권위주의적을 배우고 그대로 따르는 삶은 공동체의 권위주의적 질서를 깨고 서로 평등하게 섬기는 공동체로 만듭니다.

스스로 높임을 받으려 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제자의 올바른 태도며 그렇게 사는 제자가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참 좋은 제자란, 얼마나 많이 좋은 이론이나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이론이나 사상을 바탕으로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군림하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아져 있던 사람은 높아질 것입니다.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낮은 자리가 제자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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