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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1-03)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전받는 예수님의 권세

마태복음 21장 23-32절


진리를 끝까지 잘 살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구도자의 태도를 유지하다가도 제자로서 각오가 희미해지고,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하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처럼 변질되지 않고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 본문은 성전 정화 사건과 관련해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되묻는 질문(23-27), 종교 지도자들의 대답에 대한 비유와 해설(28-32)로 구성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자신을 연결해서 누가 하늘나라의 참 백성인지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세(23-27)

타락한 권력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나 일꾼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바른 영적인 지도자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 말씀이 확실하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적용할 것인가 또한 문제입니다.

 

2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23-27)

 

앞 본문에서 사복음서에 기록된 한 사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물론 이 사건이 대단히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곁에는 안토니오 성이 있는데, 그 성에서 로마 군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유월절 기간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인구가 평상시보다 5배 정도 많았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다시 한번 출애굽과 같은 독립 사건이 일어나길 바랐기 때문에 로마에도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는 땅 가운데 팔레스틴에는 유대인의 저항이 더 썼기 때문에 많은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1) 예수님의 권위를 믿는 종교지도자들(23)

 

청결 사건 이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다시 들어가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권위로 ‘이런 일들’을 행했는지, 누가 이런 권위를 부여했는지 묻습니다(23). ‘이런 일들’은 성전을 정화한 행위(21:12,14)와 성전에서 가르친 일을 포함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성전의 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대단히 불경한 행동이었으며, 특히 성전의 권력자들인 자신들의 이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따져 묻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평상시에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사역과 말씀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소란만 피운 것이 아니라,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들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질물은 던지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할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반문(24-25)

 

성전 정화는 보통 사람이 행할 수 없는,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이상입니다. 하지만 선지자 세례 요한을 인정하지 않고 죽였던 자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부여했다고 말하면, 자신을 선지자적 메시아로 밝히는 것이고 곧바로 산헤드린 공회에 넘겨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잡힐 시점이 아니므로 예수님께서는 우회적으로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24-25)라고 답변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나 목자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것, 즉 모든 권위를 받았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11:27; 참조. 28:18). 예수님께서는 질문자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되물으십니다(24-25).

이들은 요한의 권위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 요한을 왜 믿지 않았는지 소명해야 하고,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했으므로 예수님의 권위 역시 하늘에서 온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요한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요한의 세례가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며 선지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헤롯 안티파스 역시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믿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백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14:5).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무리는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라고 말했고(21:11),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들 비유가 자신들을 지목하는 줄 알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백성의 눈이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21:45).

 

(3)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에 결론(26-27)

 

종교 지도자들은 요한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음에도 알고 있으면서 백성들이 두려워서 ‘우리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27). 이들이 대답하지 않기로 하자 예수 역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로 하십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직접적인 대답을 주지 않으셨지만, 암묵적으로는 자신과 요한의 사역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정하게 되며, 예수님께서 행사한 권위의 출처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하늘나라의 도래를 위해 세례를 베푼 사역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처럼, 예수님께서 사역과 말씀 선포를 통해 하늘나라를 가져오는 권위는 당연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정화 사건과 관련해서 자신의 권위에 대해 묻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요한의 권위에 대해 먼저 답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진리보다는 백성의 여론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모른다고 대답하는 장면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집을 맡았으나 자신들의 악한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덧붙여서, 이제 예수님께서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에서 말씀을 저하셨는지에 대해 유대 지도자들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성도들은 대답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성전 정화 사건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메시아의 권위로 행한 것이며, 이 사건은 이미 요한이 세례 장면에서 경고한 내용에 포함된 사건임을 알고 그 의를 숙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모음인 21:23-22:46까지를 한 문맥으로 읽으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22:41-46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는 아들(22:44)의 권위로 아버지의 집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위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에 근거하므로 누구든지 그의 권위에 순종해야만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와 해설(28-32)

천국은 직분과 신앙이력으로 가는 나라가 입니다. 참 회개와 순종으로 가는 나라입니다. 행함이 없는 말잔치는 참 순종이아닙니다. 인간을 기만과 허위에 빠트리는 위험한 일들입니다. 백성으로서 온전케 되는 길은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실천하는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28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28-32)

 

예수님께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전한 세 비유(21:28-22:14) 중 첫 번째로 마태복음에만 나오고,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1) 두 아들의 비유(28-30)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그의 큰아들에게 포도원에서 일을 하도록 시켰습니다(28).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도 실제로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9).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했다가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30). 두 아들 중에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아들은 행동으로 순종한 아들입니다(31). 아버지는 첫째 아들이 처음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둘째 아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뉘우치고 순종했습니다. 순서와 상관없이 본문이 전달하는 비유는 변함이 없습니다.

 

(2) 두 아들 비유 해설(31-32)

 

종교 지도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매춘부들이 그들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고 논평하십니다(31-32). 세리들과 매춘부들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의 강력한 행위와 말씀을 통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참여했으면, 참여한 자로서의 감격을 현재 누리고 있습니다. 31절의 의미는 32절에서 더 명확해집니다. 32절은 아래와 같은 문장 구조를 형성하며 ‘믿음’을 강조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는 요한을 믿지 않은 데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의의 방식으로 왔을 때 믿지 않았고, 세리들과 매춘부들이 요한을 믿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A′). 직접 만나고도 믿지 않았으며, 요한이 가져다준 결과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A. 요한이 너희에게 의의 길로 왔으나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다

    B. 세리들과 매춘부들은 그를 믿었습니다.

A′.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 그를 믿지 않았다

 

‘의’(마태복음 3:15; 5:6,10,20; 6:1,33; 21:32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입니까? 하나님의 선물(예, 구원 계획)입니까? 하나님의 선물로 본다면, 의의 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나 구원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 보면 의의 도는 요한이 살아낸 삶입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핵심은 세례 때 나타난 하나님의 뜻(3:15)을 성취한 요한의 역할입니다. 3:15의 의와 연결하면, 본문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나 행위에 더 가깝고, 요한은 이 계획과 행위를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요한이 보여준 ‘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행위였기에, 요한의 삶을 수용한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는 세리들과 매춘부들이 요한을 믿었다고 표현하십니다. 그들이 요한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러 온 자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요한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예수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뜻을 성취하셨기에,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두 아들의 비유(21:28-30)와 해설(31-32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임을 강조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진정성의 여부는 말이 아니라 행위의 헌신으로 증명됩니다. 종교적인 지식과 지위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메신저들의 사역과 권위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이 믿음을 말이 아니라 행위로 입증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진리 앞에 정직하고 실천의 열매를 추구하는 모습을 견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력과 돈의 유혹 앞에 흔들리고, 종교성으로 위장하는 위선의 위험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위선과 거짓의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말씀으로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당신을 지키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쁘고 신속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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