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0-02)
십자가를 통해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20장 17-34절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무작정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신, 삶, 모습 그리고 자세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많은 제자들을 두지 않으시고 12명을 구별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결국 그 12명을 통해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길 원하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길을 가는 사람인지 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명예와 권세를 갖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수님은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통해, 자신이 직접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제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아직까지 높은 지위에 대한 관심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대속 사역을 들어 낮아짐의 도리를 교훈하십니다.
고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17-19)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자가 되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지만, 결국 가장 큰 자가 되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 가장 큰 영광과 경배를 받으십니다. 이것이 그 나라 백성들인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7-19)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함께 데려가면서 예루살렘에서 겪을 자신의 운명을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릴 것이지만, 사흘째 날에 일으켜질 것입니다(18-19). 첫 번째와 두 번째 수난 예고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 수난 예고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십자가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듯 사흘 만에 부활하는 것도 구체적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부활의 약속이 없기에 땅에서의 생존이 지상과제입니다.
인자가 온 목적(20-28)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는 군림하는 자들이 아닌 섬기는 자가 천국에 합당하다고 하십니다. 세상 나라는 더 높은 권력을 갈망하지만, 천국 백성들은 기꺼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좌우편 영광의 자리에 자녀들을 앉혀 달라고 요청합니다.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예수님께서는 고난받는 인자의 길을 언급하실 때 요한과 야고보의 모친은 두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20). 어머니는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21). 이러한 요청은 왕으로 와서 영광중에 나라를 회복할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며, 제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을 것이라는 예수의 약속이 직접 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19:28).
예수는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열두 제자가 열두 보좌에 앉는다고 하셨으나, 서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예수께서 자신의 운명을 선명하게 밝히셨는데도 제자들이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예루살렘을 향하면서 제자들의 시선이 영광에 가 있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예수의 수난 예고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는 제자들이 매우 근심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세 번째 예고에는 그런 내용은 없고, 제자들의 욕망이 뒤따른다는 점이 이 견해를 지지합니다.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제자들의 기대가 영적 시야를 가립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는지 물으십니다. 구약에서 잔은 복을 상징하기도 하지만(시편 16:5; 23:5; 116:13),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은유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시편 11:6;75:7-9; 이사야 51:17,22; 예레미야 25:15-17,27-28; 49:12; 예레미야애가 4:21; 에스겔 23:31-32; 하박국 2:16).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형벌의 잔을 언급하실 것입니다(26:39,42). 예수는 두 제자가 잔을 마실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을 마십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처에 사람들이 예수를 체포하러 오자 제자들은 예수의 잔을 공유하지 않고 도망할 것입니다(26: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영광스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 아버지(5:16,45,48; 7:21; 10:32-33; 11:25-27; 16:17; 18:35; 23:9)의 주권으로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리라고 하십니다(23b).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십자가 형장에 있었고(27:56), ‘유대인의 왕 예수’(27:36)의 좌우편에 있는 자들은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강도들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27:38).
나머지 제자들이 세베대의 두 아들이 요청한 내용을 듣고는 화를 냅니다. 왜냐하면 좌우편에 앉으려는 마음은 그들 모두에게 있었는데, 두 제자가 모친의 힘으로 청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모든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제자들을 불러 당시 사회의 지향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이 원하는 행위는 주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고 위에서 아래를 향해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힘있는 자가 큰 자이고, 큰 자는 강한 힘을 사용합니다. 제자들은 이들과 달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26-27). 예수는 제자들의 모본으로 인자의 길을 말씀하십니다(28), 인자가 이 땅에 온 목적은 섬기기 위함이며, 섬기는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는 대속물로 주는 것입니다. 다니엘 7:13-14의 ‘인자 같은 이’는 원래 천상의 지위를 가진 존재로 ‘옛적부터 계신 이’(=하나님) 앞에 나와 온 세상을 다스릴 왕의 권세를 부여 받습니다. 인자는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피조물의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자이신 예수는 섬김을 받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천상의 존재인 인자는 이사야 53장에 등장하는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합니다. 여호와의 종이 섬긴다는 표현은 53장에 나오지 않지만, ‘종’의 주요 역할은 섬기는 것입니다. 섬김의 극치는 죽음입니다(참조 12:40; 17:9,12,22; 20:18,28; 26:2,24-45). 무엇보다도 예수는 대속물(=몸값)의 개념을 이사야 53장에서 여호와의 종이 겪는 대속적 희생과 연결합니다. 주의 종의 고난과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는 목적이므로 대속적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희생당하는 종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위에서 통치하기를 좋아하는 세상의 흐름을 되돌리고 많은 사람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된다는 말씀을 해석할 때, 예수께서 크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운명에 대한 내용을 듣고도 수난을 은유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희생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져오신 하늘나라에는 작은 자들을 섬기는 종들이 필요하지, 얼마 동안 섬기고 나서 피라미드의 위에 오르는 주인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크게 되려는 욕망 자체를 합리화하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생각 자체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만, 이 땅의 논리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속성을 따르는 곳입니다. 잃어버린 양인 작은 자를 살리기 위해 낮아져 희생하는 목자처럼(18:1-14),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회복하기 위한 몸값으로 주기 위해 오신 인자처럼, 교회는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종의 모습이 하늘 나라의 제자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입니다. 섬기기 위해 낮아진 제자가 진정으로 큰 자로 인정받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두 맹인의 치유(29-34)
세상은 타인의 곤란에 대해 무관심하고 비정하지만, 천국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통감하고 긍휼히 여기는 나라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눈을 감지 말아야 합니다. 맹인의 절한 외침에 무리는 조용하라고 꾸짖지만,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겨 고쳐주십니다.
29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29-34)
예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향해 가실 때 길가에서 두 맹인이 예수틀 다윗의 아들로 부릅니다(29-30). 무리는 이들에게 침묵을 요구합니다(31). 무리는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멈춰 서고 두 맹인을 불러 무엇을 훤하는지 물으십니다(32-33a).
그들은 눈을 뜨기를 바란다고 대답한다(33b절). 예수는 두 맹인을 불쌍히 여기고(참조. 14:14; 15:32) 들의 눈을 만져 고치십니다(34; 8:3, 15: 9:20,21,29; 14:36). 맹인의 치유 사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는 형벌의 잔을 마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도 긍휼이 필요한 이들의 소리에 응답하십니다. 둘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긍휼을 구한 두 맹인은 욕망으로 영적 시야가 가려져 높은 자리를 구한 두 제자와 대조됩니다. 두 맹인은 궁흄을 베푸는 예수의 정체를 정확히 알았지만, 제자들은 고난 받는 메시아의 길을 보지 못했습니다(20:26-28). 셋째, 맹인의 치유는 종교지도자들의 영적 무지를 암시합니다. 맹인들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를 보았으나, 백성을 빛으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은 예수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영적 맹인에 머물러 있습니다(15:14; 23:16-26).
천국 백성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 나라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주님이 가르치신 원리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설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걷는 방향이 다르고, 가려는 곳이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기꺼이 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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