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9-02)
천국에 합당한 사람
마태복음 19장 13-30절
에리히 프롬은 ‘소유나 존재냐’란 책에서 소유의 양식의 삶을 벗고 존재의 양식의 삶을 취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변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재산, 지식, 사회적 지위, 권력 등을 얻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기 능력을 능동적으로 발휘하며 삶의 희열을 경험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와 부자 청년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제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어린아이들보다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자가 오는 것이 더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랐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자들의 천국(13-15)
천국은 권력이나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순전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신을 맡기는 자들의 것입니다. 세상은 어린아이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며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아무거도 갖춘 것이 없지만, 주님을 두 손 벌려 반기십니다.
13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13-15)
예수님께서 결혼, 이혼, 독신에 대해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안수하여 축복을 빌어주시기를 바라면서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습니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꾸짖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어린이들로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던 어린이들에게까지 예수님께서 관심을 두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십니다(14).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은 후에 거기를 떠나셨다(15).
13-15절은 결혼에 대한 예수의 교훈과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중요한 구성원인 어린이를 실제로(또는 문자적으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환영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과거에 비하면 우리 사회는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폭력과 빈곤 등으로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상대적으로 힘이 없고,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 쉽고, 약하고 작은 존재입니다. 돌봄 없이는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특히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을 볼보는 일은 예수의 마음을 나타내야 할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린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뒤로 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의 움직임이나 소리가 어른들 중심의 예배를 방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린이들의 어린이다운 모습은 예수님께서 환영하시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규격화된 선입견이 아니라, 예수의 눈으로 어린이들을 실제로 환영하고 안수하는 모습이 오늘 교회에도 요구됩니다. 이런 점에서 어린이는 존재 자체로 살아 있는 교훈입니다. 어린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의존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하늘나라에서 복된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부자 청년(16-22)
하나님보다 소유를 더 사랑한 사람의 계명 준수는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외식일 뿐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재물을 나눠주지를 거절하는 사람의 계명 준수는 ‘네 형제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저버린 껍데기 순종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을 살펴보겠습니다.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16-22)
앞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 등장했다면, 여기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탁월한 위치에 있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부자 청년’(20, 22)은 ‘무슨 선한 것’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선한 것’에 대한 청년의 이해를 바로 잡으려는 것입니다. 선한 것을 묻고 선한 것에 대한 답을 얻는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만이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참조, 역대상 16:34; 역대하 5:13; 시편 25:8; 34:8; 106:1; 118:1,29, 136:1; 나훔 1:7). 예수님께서는 ‘선한 분은 한 분이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본 단락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읽으면 예수를 따르는 것(21절)이 ‘영생을 얻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길입니다. 영생의 길은 무슨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늘나라에 들어가지만,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려는 사람은 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고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생의 삶과 영생에 합당한 행위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계명들을 지키라는 말을 들은 부자 청년은 어떤 계명인지 묻습니다. 18-19절의 계명들에는 십계명의 두번째 묶음에 들어 있는 다섯 계명들이 주로 포함됩니다. 첫째부터 넷째 계명과 열째 계명(‘탐내지 말라’)이 빠졌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 자신은 이 모든 것을 지켰는데 아직 무엇이 부족한지 묻습니다(20).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재물을 처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21). 하늘나라는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사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지만(13:44), 청년은 가진 부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으므로 예수를 따르기보다 떠나고 맙니다. 많은 소유가 그를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버린 것입니다.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는 돈을 선택하고 영생의 길을 외면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지 못했으므로,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십계명의 첫 계명을 사실상 어긴 것입니다. 이처럼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부를 다스리는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 전락합니다. 예수님은 6:24에서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면서, 돈이라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21절에서 수는 재물과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과 자신을 대조하십니다. 청년이 영생을 얻지 못한 것은 신적 존재인 예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의 위험(23-26)
천국은 지상에서 부자인 사람들이 그 상태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잠시 맡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3-26)
제자들은 부자가 떠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부자 청년이야말로 하늘나라에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부는 하나님의 복을 증명하는 표시였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에는 부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예. 신명기 28:1-14; 잠언 10:22). 제자들은 이런 부자가 제외된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6절에서 구원은 인간이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언급하십니다. 부는 구원을 받는 조건도 아니며 구원을 입증하는 열매도 아닙니다. 부에 의존하는 것은 안전을 보장하는 대상을 하나님에서 부로 바꾸는 것으로서 전형적인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돈은 하나님께 맞설 수 있는 매력을 지녔고, 예수를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뿐 아니라 교회 역시 돈에 삼켜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자들을 위한 약속(27-30)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 먼저 된 자는 아무 자랑할 것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헌신이나 희생 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헌신된 사람들에게 비할 수 없는 영광과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27-30)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한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은 인자가 오실 때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입니다(28; 다니엘 7:13-14,26-27). 여기서 심판하는 것은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을 위해’ 잃은 자들에게 주어질 상을 말쯤하십니다(29).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나 충성심을 의미하는데, 29절의 이름은 후자를 가리키며, 예수 이름으로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충성심 때문에 받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유업이 기다립니다. ‘여러 배’를 받는다는 표현은 제자가 버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복을 받게 될 것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13:8,23). 이런 보상은 제자들이 하늘에서 얻는 것인 동시에 역사의 끝,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의인들이 상속받게 될 것도 포함합니다. 특히 예수는 영생을 언급하심으로써 제자들은 땅에서 가장 낮고 가난하지만, 부자가 얻지 못한 영생을 확실히 받게 될 것을 확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미래의 보상을 약속하신 것은 우선 현재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처럼 사람들은 ‘번영=복’이라는 방정식에 익숙합니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녀는 그것을 믿기에 다른 대상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청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영=하나님의 복’이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미래에 완성될 하늘나라의 관점에서 이들의 현재 어려움은 불행이 아니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증거도 아닙니다. 도리어 예수는 젓반대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면서 꼴찌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회의를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수고에 대해 보상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역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너무 비대하여 천국 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참으로 비극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다 정작 생명을 놓쳐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인 일이 도처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천국은 소유지향적인 자가 잃고 존재지향적인 자가 얻는, 역설의 나라인비다. 어린 아이처럼 천국을 겸허하게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보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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