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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01-01)

 


무익했던 오네시모를 받아주길 원하는 바울

빌레몬서 1장 1-16절


인생의 여행에서, 여행을 즐겁게 하는 것은 행복한 동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외롭고 때로는 고달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동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바로 행복한 인생입니다. 이러한 행복한 동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동역자는 같은 비전을 가지고, 함께 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를 위하여 사랑으로 간청합니다. 오네시모는 도망한 노예였기 때문에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오네시모는 단지 빌레몬의 노예가 아니라 바울의 영적 아들입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가 더는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신의 인사(1-3)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도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큰 기쁨과 위로를 줍니다. 이처럼 사랑의 삶과 본은 우리를 더 깊고 풍성한 믿음의 교제로 이끌고, 공동체에 활력과 지도자에게 큰 힘을 더해주며, 주 안에서 있는 복을 함께 깨닫고 누리게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지도자와 성도의 관계, 성도와 성도의 관계는 서로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사랑하는 관계로 성장해야 합니다.

1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3)

바울은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받는 자’라고 부릅니다. 성도의 관계가 십자가의 사랑에 뿌리를 둔 사랑의 관계이며, 빌레몬이 사랑의 수혜자요, 사랑에 빚진 자임을 언급합니다.

(1)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냄(1-2)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며, 어떤 죄를 범에서 구속된 상태가 아닌 복음을 위해서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1). 그런 구속된 상태에서 빌레몬서를 써 보냅니다. 이때 바울 곁에는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습니다.

이 서신의 일차적인 수신자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입니다(1). 아마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빌레몬과 친분을 맺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골로새 출신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골 4:9) 그의 주인인 빌레몬이 골로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큰 집을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골로새의 가정 교회가 그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빌레몬과 함께 이 편지를 받은 자매 압비아와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내와 장성한 아들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교회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빌레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킵보가 바울과 함께 병사 되었다는 표현은 그가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사역자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참조. 골 4:17).

(2) 은혜와 평강의 인사(3)

바울은 동역자인 수신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인사를 전합니다(3).

이곳에서 말하는 ‘은혜와 평강’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죄인들에게 먼저, 그리고 값없이 베푸시는 구원의 사랑입니다. 또한,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구속 행위의 결과로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죄인들이 누리는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빌레몬을 위한 바울의 감사(4-7)

목회자로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그분만 생각하면 감사가 넘쳐나지만, 어떤 분은 안타까움으로 염려 속에 기도해주는 분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사랑과 믿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를 위해 누군가 중보할 때, 눈물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4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4-7)

바울은 빌레몬이 이 사랑의 호의를 공동체 안의 성도들만 아니라 그에게 손해를 끼친 오네시모에게도 베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이 든 사도로서 권위 있게 명령할 수 있지만, 사랑으로 설득하고 간청합니다.

(1)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감사(4-5)

바울은 기도할 때 빌레몬을 기억하면서,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가 감사하는 이유는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모든 성도들을 향한 것이며,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사랑합니다. 건강한 신자들에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함께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2) 빌레몬을 위한 기도(6)

본문 4절에 있는 “기도할 때에”라는 구절에 종속된 헬라어 접속사 호포스(ὅπως)로 시작합니다. 이 접속사는 기도의 내용을 진술하는 절을 소개합니다. 따라서 ‘기도한다’라는 동사가 없을지라도 이 본문을 빌레몬을 위한 바울의 기도로 간주하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네 믿음의 교제가 효력 있게 되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을 네가 알게 되기를 내가 기도하노라.”

이것은 믿음에 기초한 교제, 즉 바울과 함께 나누는 빌레몬의 교제가 더욱 효력 있게 되어서 바울 안에 있는 모든 선을 온전히 알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모든 선이란 빌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요청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오네시모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그를 받으라는 요청은 바울 자신의 모든 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빌레몬은 그 모든 선을 알고 오네시모를 기꺼이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한 자신의 요청을 빌레몬이 받아들이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빌레몬으로 인해 기쁨과 위로(7)

바울은 빌레몬이 성도들에게 베푼 사랑을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7)라고 다시 언급합니다. 그는 빌레몬의 사랑에 관한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빌레몬으로 인해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함을 얻었다고 말할 뿐입니다. 빌레몬은 성도들을 섬기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헌신한 사랑의 사람, 바울과 함께 하나님을 위한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 관한 자신의 요청을 빌레몬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마음도 평안하게 해줄 것입니다(20).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간청(8-16)

우리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가 된다면, 영적인 열매를 보면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자를 낳을 때는 많은 고생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익했던 사람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수고는 잠시 힘들겠지만, 미래의 영적 열매를 바라보면서 행복한 사명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8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8-16)

권위보다 사랑으로 가르치고 설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 본이 된 삶은 오네시모 문제를 명령과 지시로 해결해도 될 만큼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1) 오네시모를 위한 바울의 간청(8-10)

바울은 8절에서 빌레몬의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위한 중재를 시작합니다. 그는 사도의 권위를 앞세워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랑으로 간구합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를 자신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로 소개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이었습니다. 그는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만나게 하시고, 바울에게 복음을 듣게 하셨고,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9)라고 소개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헬라어 본문에서는 ‘내가 갇힌 중에서 낳은 나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사역을 통해 오네시모가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9절에서 ‘아들’이라고 번역한 ‘테크논’은 바울이 오직 디모데와 디도를 아들이라고 부를 때에만 사용한 단어입니다(딤전 1:12; 딤후 1:2; 딛 1:4). 이 단어는 ‘자식’, ‘아이’, ‘어린이’ 등을 의미합니다. 오네시모는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바울의 영적인 자녀입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아들을 위하여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오네시모를 돌려보냄(11-12)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낸다. ‘오네시모’(ὀνήσιμος, 오네시모스)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이익이 되는 유용한’, ‘유익한’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이름과는 달리 자기 주인에게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그는 바울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 심장”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자신의 심장이라고 부를 만큼 오네시모는 그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일 뿐 아니라 바울의 심장입니다.

(3)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는 이유(13-16)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 곁에 머물러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빌레몬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 오네시모를 돌려보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선한 일을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하기를 바랍니다.

14절에서 “너의 선한 일”이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처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자비로 다시 받아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을 하도록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로마로 도망한 것과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하나님의 섭리의 일부로 생각합니다(15). 오네시모는 자신의 과오 때문에 빌레몬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오네시모를 변화시키셨고, 그를 빌레몬의 사랑받는 형제로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더는 종이 아니라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야 합니다. 오네시모는 특별히 바울에게 사랑받는 형제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적으로, 그리고 주안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빌레몬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빌레몬에게도 오네시모는 사랑받는 형제인 것입니다.


바울은 짧은 서신을 통해 아낌없는 사랑과 남김 없는 용서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없는 사랑이 끝없는 용서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내게 사랑 없음을 가슴 치기 전에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보라고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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