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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05-01)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베드로전서 5장 1-14절


세상을 보면 감히 맞설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언제라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포기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주께서 돕겟다고 하셨는데 우리를 어떻게 도우신다는 것입니까?

 

4:12에서 시작한 고난 자체에 대한 권면을 이어갑니다. 이후 일반적 편지 형식을 따라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1-5절은 공동체 구성원, 특히 교회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대한 것과 그들의 인도를 받는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입니다. 둘째, 6-11절은 결론적 권면입니다. 고난 상황에서 믿음을 곧게 지키라고 말합니다. 셋째, 12-14절은 편지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내용 정리와 문안 인사, 축복의 말이 이어집니다.

 

장로들을 향한 권면(1-5)

 지도자는 멀리서 보기면 영광스럽게 보여 부러워볼 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보면 영광스럽기보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동체가 은혜스러워지길 원한다면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1-5)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는 다양한 연령대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성도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는 독특한 제도로서 출애굽 당시에도 이지 존재했습니다. 이는 공동체 내의 일정한 자격을 갖춘 연장자들에게 주는 명예와 책임입니다.

 (1) 장로들에 대해(1-4)

베드로는 ‘내가 권한다’로 독자를 향한 권면을 지속합니다. 이 표현은 2:11에서 세상 속 신자 삶을 구체적으로 권면하기 시작할 때 사용했습니다. 둘 다 고난을 배경으로 하지만, 초점이 다릅니다. 2:11은 세상 속 사회 구성원 역할에 집중했다면, 5:1은 공동체 구성원 역할입니다. 또한 4:12-19 내용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독자 전체를 다룬 앞부분과 달리 이 부분은 특정 부류를 다룹니다. 첫 대상은 장로들입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합니다(2). 그분의 백성인 교회를 이끌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장로들에게 다스림의 권세를 위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에 집중해 권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표현을 첨가해 부연합니다.

첫째, 정체성 확증입니다(1b). 저자는 ‘장로’에 대한 세 가지 호칭을 언급합니다. ‘함께 장로 된 자’들과 ‘메시아 고난의 증인’,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입니다. ‘함께 장로 된 자’란 사도처럼 연장자란 말이지만, 같은 사역자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 교회 지도자의 사역을 사도의 사역과 동일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직접 목격자나 복음 증거 사명의 1차 수혜자는 사도입니다. 지역 교회 장로들은 사도 혹은 사도로부터 증거 받은 자들의 전도를 통해 믿게 된 자들입니다(1:12). 사도의 사역이나 권위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인 저자가 지역 교회 장로들을 자기처럼 장로로 부른 것은 그들의 사역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들 위치를 존중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한편, ‘메시아 고난의 증인’이란 장로들 사역의 내용과 관계있습니다. 예수 고난을 직접 목격한 자라는 말이 아닙니다(1:8).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의 증거와 함께 고난의 삶을 통한 증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차 있을 영광에 참여할 자’는 미래 소망에 대한 것입니다. 고난 이후 영광 얻은 예수님처럼 이 땅 사역에 대한 보상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참여하겠지만, 특별히 장로들은 사역자로서 그 영광에 기쁘게 참여할 것입니다.

둘째, 분사를 통해 ‘어떻게’ 요소를 첨언합니다(2-3). 1) 감독하되 2)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3) 더러운 이익이 아닌 열정으로 하고 4) 군림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는 방식으로 하라고 합니다. 바른 지도자의 덕목이지만, 인간적으로 좋은 지도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요소들을 가진 참 목자의 본은 하나님/예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던 유대 지도자들을 꾸짖고, 자신이 직접 백성의 목자가 되어 사랑과 정의로 돌보겠다고 하셨습니다(에스겔 34:11-16). 그분의 마음은 메시아를 목자로 보내는 약속으로 이어지고(에스겔 34:23),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 이 땅에 와서 영혼의 목자와 감독으로서 사역하셨습니다(2:25; 참조. 요한복음 10:1-18). 장로들은 그 예수님을 주로 모신 자들이며, 하나님 백성을 섬기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메시아 고난이 담긴 복음을 증언할 뿐 아니라 하나님/예수의 본을 따라 그분의 백성을 그분의 마음으로 섬기라는 뜻일 것입니다.

셋째, 사역에 대한 보상입니다(4).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썩지 않는 영광의 관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1절에서 언급한 미래의 소망을 부연합니다. 저자는 예수를 목자장으로 부릅니다. 장로들은 목자이지만 최고 권위자는 아닙니다. 장차 목자장 예수가 오실 때 긍정 평가를 받으려면 오늘 바르고 정성스럽게 섬겨야 합니다.

(2) 젊은 자들과 모두에 대해(5)

청년을 포함해 장로들보다 어리고 지도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향해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앞서 사회 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한 것과 같습니다(2:13,18;3:1). 이어 저자는 ‘판테스(πάντες/모든)’라는 표현으로 장로와 젊은이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에게 서로에 대해 겸손한 생각으로 옷 입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처럼 삶을 평가하시는 분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참조, 1:17).

 

마지막 권면들: 겸손하고 깨어 있어 믿음을 잃지 말라(6-11)

마귀에게 승리하기 위해 항상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믿음에 굳게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고난은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며, 고난 후에 반드시 될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영원합니다.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6-11)

베드로는 독자를 향해 마지막 권면들을 합니다. 모두 세상 속 신자의 고난을 배경으로 합니다.

첫째, 겸손하라고 합니다(6-7). 5절과 연결된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6절과 7절이 서로 다른 명령인 듯 번역했지만, 7절 원문은 분사이며 6절에 나온 명령을 이행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그러면 때가 되면 독자를 높일 것입니다(6). 그 한 방법은 모든 염려를 주께 던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돌보시기 때문입니다(7). 이 명령은 몇 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1)고난 속에서 고민하고 염려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단순히 교만/겸손에 대한 윤리 권면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신자에게 고난이 특별한 것이 아니듯, 그로 인한 염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뜻을 따르는 삶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2) 겸손의 의미를 말해줍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염려를 던지는 것을 겸손의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마치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듯 전전긍긍하는 것은 교만이고 불신입니다. 그분의 능력이나 돌보심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겸손의 핵심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신자를 높인다는 것은 세상 속 바른 신자의 삶을 인정해주신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신뢰하고 염려를 맡기고 고난에 직면하는 겸손함은 세상에 지지 않고 바른 신자의 삶을 지속해가는 첫 단계입니다.

둘째,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8-11). 신자는 하나님께 속해있지만, 마귀가 거짓말로 다스리는 반역 세상에 발붙이고 살고 있습니다. 1:1-2에서 말한 이중 정체성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백성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저자는 몇 가지를 당부합니다. 1)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 주의해야 합니다(8). 세상 소리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바른 생각과 판단을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대적자 마귀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편지 앞부분에서 당부했던 내용입니다(1:13; 4:7). 2) 믿음으로 맞서야 합니다(9). 특별한 무엇을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를 따르는 세상의 거짓 소리와 겁박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진짜로 중요하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지를 보는 믿음의 눈을 놓치지 않는 것이고, 일상의 삶에서 신자의 바른 모습을 계속 견지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복음에 담겨 있는 구원의 큰 그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1:13). 실제로 그분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도 필요합니다(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두 가지를 첨언합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견디는 동료 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후배들이 하나님을 향한 삶을 굳세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힘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분은 고난당하는 자신의 백성을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신자들이 잘 버틸 수 있도록 강하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신자는 계속해서 시야를 넓게 열어야 합니다. 상황을 넘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분을 함께 섬기고 버티는 믿음의 식구들을 보고 세상 속 제사장의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편지 마무리(12-14)

고난 가운데 있는 양무리를 칠 때, 억지로 지배하려거나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자원하는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합니다. 양들을 자기 소유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편지를 마감합니다.

12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2-14)

베드로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와 마가의 문안 인사를 전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강을 바는 인사말로 편지를 끝맺습니다. 베드로는 편지를 통해 소아시아의 성도들이 위로와 격려를 받길 원하며, 이 편지를 실라를 통해 보냈습니다.

대필자 실루아노를 통해 편지를 썼는데,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참 은혜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독자가 딛고 서 있는 진리의 토대를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복음과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과정입니다. 둘째, 하나님 은혜 위에 굳게 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자 삶에 대한 권면입니다. 결국, 이 편지의 핵심 내용은 복음과 그에 근거한 삶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는 소아시아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후 모든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위로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며 그 분에게 모든 걱정과 근심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통해 성숙한 성도들은 베드로처럼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더 나가서 베드로처럼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다른 성도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연약한 성도들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함으로 다른 성도들이 세우는 것은 정말 복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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