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20-02)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과 순종
역대하 20장 20절-21장 1절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외부 상황에 압도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지혜와 힘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며, 감사와 긍정적인 마음은 예상치 못한 돌파구를 열어주는 강력한 에너지가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도 뜻밖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으니, 모든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관점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과거의 큰 승리나 유산에 기대기보다 각자의 끊임없는 의지와 선택이 개인과 공동체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전환기에는 선대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치관과 리더십을 정립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우리가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고 미래를 건설해나가는 데 필요한 지침이 됩니다.
- 전쟁이 발발하였던 그 골짜기는 마침내 ‘축복’(혹은 ‘송축’, 즉 브라가)의 골짜기로 변화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군대 선봉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이방 연합군을 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명백히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승리에서 비롯된 한없는 기쁨을 품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모여 지극히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깊은 감사를 올려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전쟁과 승리(20-26)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압도적인 위기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결하려 하기보다, 더 큰 지혜와 능력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일반적인 싸움 방식이 아닌, 내면의 깊은 믿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통해 예상치 못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뢰와 태도는 외부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우리가 직접 싸우지 않아도 기적 같은 결과와 평화를 경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경험은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모든 관계 속에서 영속적인 평화와 존경을 얻는 데 중요한 가르침이 됩니다.
20○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24○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25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26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20-26)
모압과 암몬, 그리고 세일 연합군과의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이른 아침 드고아 들로 향하였고, 이때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신뢰할 것을 간곡히 권면하며 그들이 굳건하고 형통할 것이라 믿음을 고무하였습니다. 이러한 권고는 바로 전날 성령의 감동으로 레위 사람 야하시엘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구원 메시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특히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과 의논하여 레위인 찬양대를 군대 맨 앞에 세워 하나님을 찬송하며 행진하게 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인간의 시각에서는 전쟁을 포기한 듯이 비치는 행동이었으나, 실제로는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나아간 전적인 신뢰의 작전이었습니다. 이는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의논과 결정과는 대조를 이루며, 믿음에 기반한 지혜로운 리더십의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찬양하는 레위인들이 착용한 ‘거룩한 예복’은 그들이 여호와의 ‘거룩한 영화’를 찬송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며, 그들이 찬양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언약적 신실함과 은혜를 포함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찬양은 다가올 적군 앞에서 하나님의 승리와 구원을 예고하는 선포가 되었습니다.
레위인들의 찬송이 시작되자, 하나님께서는 연합군에 대항하여 ‘복병’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모압과 암몬인들은 세일 산 거주민들을 전멸시켰고, 이후 자기들끼리 서로 진멸하여 모두 패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패하다’는 동사 ‘나가’의 수동형으로 ‘강타를 당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는 과거 여로보암의 군대나 구스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심판과 동일하게 연합군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음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승리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증명하며, 그의 말씀(15-17)이 참이며 그분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드러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 왕과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의 화답이자, 적군 심판을 간구했던 왕의 기도(12)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환난 중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9; 6:28-31; 7:14)을 친히 지키셨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여호사밧 왕과 백성이 들 망대에 와보니, 그곳에는 온통 널브러진 시체들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재물과 의복, 보물을 발견하였고, 너무 많은 전리품 때문에 이를 거두는 데만 사흘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여호사밧과 백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축복(송축)했으므로(바라크)’, 전쟁이 벌어졌던 이 골짜기는 ‘축복’의 뜻을 가진 ‘브라가(베라카) 골짜기’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고, 그 은혜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때 고난의 장소가 축복의 장소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성전으로 행진하는 여호사밧과 백성(27-28)
우리가 삶의 커다란 난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때, 그 결과물 자체를 넘어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보이지 않는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감사와 기쁨은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함께 나누고 축하해야 할 소중한 순간이 되어야 합니다. 공유된 축하의 경험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키고, 다음 도전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나아가, 이 과정을 통해 얻은 평화와 안정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삶의 근원적인 가치와 지향점을 다시금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승리를 넘어, 삶의 진정한 의미와 풍요로움을 발견하게 하는 중요한 지혜가 됩니다.
27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28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27-28)
전쟁의 위기는 하나님의 놀라운 함께하심과 전적인 구원을 통하여 평안의 시대로 전환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전쟁터로 나아갔던 유다와 예루살렘의 거주민들은 여호사밧 왕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는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잃고 패하여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던 것(대하 18:34; 왕상 22:36)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이날 유다의 왕과 백성에게 넘쳐흐르던 즐거움은 오직 여호와께서 친히 이루어주신 승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선봉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레위인들은 이번에는 성전을 향해 행진하며 비파, 수금, 나팔 등의 악기를 연주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십시오,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입니다”(대하 20:21)라는 찬양 내용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언약적 은혜가 영원함을 다시금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왕과 모든 백성들은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오르셨으며, 이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깊은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승리의 영향력(29-30)
진정한 평화와 안정은 단순히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넘어, 삶의 올바른 원칙과 예측 불가능한 긍정적 결과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질 때 찾아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평판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자연스럽게 줄여주며, 불필요한 대립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공동체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안정과 평화가 구성원들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삶의 중요한 요소들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결과적으로 진정성 있는 행위와 그로 인한 성공은 개인과 집단의 평판을 높여, 주변 관계에서 존중받고 흔들림 없는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결국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진정한 발전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29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29-3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나님의 두려움이 땅의 모든 나라에 임하게 되었습니다(대하 20:29).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언약적 사랑은 이스라엘에게는 크나큰 기쁨과 하나님을 찬송할 기회가 되지만, 이방 민족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상황으로 다가옵니다. 역대하 17장 10절에서도 이미 여호와를 향한 두려움이 땅의 모든 나라에 임하였음이 언급되었듯, 이러한 두려움은 이방 민족들로 하여금 여호사밧 왕과의 싸움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두려움이 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사밧 왕과 유다 백성에게는 그의 아버지 아사 왕 시대와 마찬가지로 평안(‘샤카트’, 20:30; 14:5,6)이 찾아왔고, 사방에 안식(‘누아흐’, 20:30; 14:6; 15:15)이 임하였습니다. 아사 왕과 여호사밧 왕은 공통적으로 신앙 개혁을 추진하며, 오직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순종이 어떻게 평안과 안식으로 연결되는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당대의 독자뿐 아니라 후대의 모든 이들에게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과 삶을 살아가도록 간절히 독려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통치 종결부(31-21:1)
탁월한 성과를 이룬 존재라도 완벽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인간적인 한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시대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이며, 이전 세대의 긍정적 유산이 다음 세대에까지 자동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배경을 가졌다 해도,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과 행동이 그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긍정적 가치를 전수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올바른 선택을 통해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31○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32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33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34이 외에 여호사밧의 시종 행적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에 다 기록되었고 그 글은 이스라엘 열왕기에 올랐더라 35○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36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37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21:1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20:31-21:1)
여호사밧 왕의 통치는 유다 역사상 중요한 시기를 차지하며, 그 종결부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다른 왕들에 비해 상당히 길고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의 통치가 지닌 복합적인 면모, 즉 선한 행적(32,34)과 악한 행적(33, 35-37)이 함께 공존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35세에 왕위에 오른 여호사밧은 25년간, 곧 60세가 될 때까지 주전 872년부터 848년까지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실히의 딸 아수바였습니다. 그의 통치 양상은 아버지 아사 왕과 많은 유사점을 보였습니다. 그는 아사의 길, 즉 ‘하나님의 눈에 정직하게 행하는 삶’(32;14:2)을 따랐으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여호사밧 역시 보편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 또한 아버지 아사처럼 몇 가지 실수와 죄를 범했습니다. 첫째, 그는 통치 전반에 걸쳐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거하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대하 17:6), 아사 왕과 마찬가지로(대하 14:5;15:17) 이 산당들을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했습니다. 산당이 남아있음으로 인해 백성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굳건히 할 수 없었으며(33), 이는 르호보암이 여호와를 찾는 데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을 ‘악’으로 정의했듯이(대하 12:14), 백성들의 일상 속에 배역의 악행이 잔존했음을 시사합니다. 이 외의 여호사밧의 행적은 이스라엘 열왕기에 실린 예후 선지자의 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그의 통치 종결부에 특별히 첨부된 여호사밧과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주전 853-852년)과의 교류 기록(대하 20:35-37)은 그가 과거의 죄를 되풀이한 단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밀접한 관계는 각 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교제하다’ 또는 ‘연합하다’(하바르)라는 단어를 통해 증명되는데, 이는 과거 악한 아합 왕과의 연혼 및 동맹(대하 18:1-3)을 상기시킵니다. 더구나 아하시야가 아버지 아합처럼 ‘심히 악을 행하는 자’로 소개됨으로써, 이들의 교류에 대한 독자의 긴장은 더욱 고조됩니다. 여호사밧은 이미 악한 아합과의 연합으로 인해 하나님께 준엄한 꾸짖음을 들었으며(대하 19:1-2), 그 동맹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살려주셨던 일(대하 18:28-32)을 망각한 듯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악한 자’와 연합하고 돕는 것은 곧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대하 19:2).
여호사밧은 아하시야와 함께 솔로몬 시대처럼(대하 8:17-18) 에시온게벨에서 무역선을 건조하여 오빌에서 금을 수입하려는 상업적 동맹을 추진했습니다(36; 열왕기상 22:48). 그러나 마레사 사람 엘리에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이 악한 아하시야와 교류하였으므로 그들의 배를 부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37). 예고된 대로 이들의 배는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고 말았으며(37; 왕상 22:48), 열왕기상 22장 49절에 따르면 이후 아하시야가 다시 합동 무역을 제안했으나 여호사밧이 이를 거절하며 하나님의 책망과 배의 파선으로 인해 비로소 아하시야와의 교류를 단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하시야의 뒤를 이은 아합의 또 다른 아들 요람 왕과 재차 교류하며 그와 함께 전쟁에 나감으로써(열왕기하 3장)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연약함을 보였습니다.
결국 여호사밧은 통치를 마친 후 사망하여 다윗 성에 안치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다윗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왕이 되는 이러한 반복적인 결말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대상 17장)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켜나가시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삶과 통치 기록은 한 개인의 의지와 한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신실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동시에 조명하는 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생애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승리를 경험하고 평안을 누리는 삶의 본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아합 집안과의 연합처럼 신앙적으로 아쉬운 선택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처음뿐만 아니라 끝까지 믿음 안에 거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또한 우리의 결정 하나하나가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견고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14 역대하(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하(30) - 역대하 22장 1-12절 - 아달랴의 학살과 여호사브앗의 믿음 (3) | 2025.07.24 |
---|---|
역대하(29) - 역대하 21장 2-20절 - 왕좌에 앉은 자의 바른 책임 (2) | 2025.07.24 |
역대하(27) - 역대하 20장 20절-21장 1절 - 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과 순종 (0) | 2025.07.23 |
역대하(26) - 역대하 20장 1-19절 - 승리를 위한 여호사밧의 기도 (2) | 2025.07.23 |
역대하(25) - 역대하 19장 4-11절 - 공동체를 위한 겸허한 성찰 (1) | 2025.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