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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24-02)


에스겔의 아내의 죽음과 의미

에스겔 24장 15-27절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에스겔은 슬픔을 표현할 수 없고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을 고통과 슬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심판이 임할 것임을 알리며, 이러한 고통이 그들에게 있을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에스겔의 행동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음은 예루살렘의 심판이 확정됐음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제 묵어야 합니다. 성전은 파괴되고 주민들은 유배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아내의 죽음과 관련한 상징 행위를 통해 예루살렘이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었음을 보여줍니다.

 

표적 행위(15-24)

죄를 범하는 것은 그 안에 무언가 챙길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을 챙길 수 있고, 때로 금전적인 유익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건대, 죄의 결과는 상실입니다. 죄는 무언가를 얻는 길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길입니다.

 

15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17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18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19백성이 내게 이르되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는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므로 20내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22너희가 에스겔이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23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24이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지라 이 일이 이루어지면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라 하셨느니라(15-24)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은 두 부분으로 이뤄졌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언자가 해야 할 일에 관한 것입니다.

 

(1) 표적 행위의 명령(15-17)

 

먼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처서’ 빼앗으실 것을 에스겔에게 알려주십니다(16). ‘눈에 기뻐하는 것’은 다양한 대상에게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에스겔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쳐서’는 내리치는 타격(재앙)을 의미하는 단어로,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겔의 아내를 쳐서 죽이십니다. ‘피 흘린 성읍’ 예루살렘에 분노하여 보용하시는(7-8) 하나님께서 ‘단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무 관련이 없는 에스겔의 아내를 치십니다.

에스겔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충격을 넘어 신성모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폭력성과 임의성을 완화시켜보려고 분문 비유로 간주하거나, 단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에스겔 아내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활용하셨다고 해석해보기도 하지만, 본문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쳐서 에스겔의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윤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하나님 이해에 대한 충격적 도발입니다. 여호와를 구원의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의 하나님 백성의 멸망은 하나님의 결정에 속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예루살렘 성전의 존재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선택 신학이 곧 구원의 보루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전과 신학적 전통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선물로 주신 것을 이스라엘이 남용했기에 빼앗으십니다.

21절의 ‘내 성소’가 시사해주듯이, 한 때 여호와의 눈에 기뻐하던 것이었던 성전이 이제는 이스라엘의 눈에 기뻐하는 것이 됐기에 빼앗김을 당합니다.

 

(2) 백성들의 반응(16-19)

 

에스겔에게 주는 명령은 가족의 죽음에 따른 애도 행위와 관련한 것으로, 통상적인 모든 애도 의식이 금지됩니다(16b-17). 전통적인 애도 의식에 따르면 죽은 자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곡을 하고, 머리를 풀고 신을 신지 않고 입술을 가리고, 상가의 음식을 먹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음에도 에스겔은 평상시 생활하던 그대로 지내야 합니다. 슬퍼하지도 옮겨도 눈물을 흘리지도 곡을 하지도 말고 조용히 탄식해야 합니다. 머리털을 풀어 헤치지 말고 머리에 쓰개를 써야 하고, 신발을 벗지 말고 신여야 하고, 콧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해 고대 세계에서 장례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장래 의식이 중단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애도 의식의 금지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뒷수습이 불가능한 엄청난 재양이 임할 것을 시사해줍니다.

 

하나님의 충격적 말품에 에스겔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본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마치 일상적인 일을 보고하듯이 명령의 이행과 백성의 반용을 시간별로 요정만 간략하게 전해줍니다. 아침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결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그날 저녁에 에스겔의 아내가 죽고, 다음 날 아침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실천에 옮깁니다(18). 에스겔이 백성에게 말하기 전날에 여호와의 명령이 주어졌다면, 3일에 걸친 과정입니다. 장례 전통에 어긋나는 에스겔의 기인한 행동을 본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에스겔의 행동이 자신들에게 주는 메시지임을 인지한 백성이 그 의미를 묻자(19), 에스겔이 이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줍니다(20).

18a절의 한 곳을 제외하면, 표적 행위의 두 번째 구성 요소에 속하는 예언자의 실행 보고로 내용상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의 특성상 에스겔은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분의 계획을 백성에게 미리 알려줍니다. 공개적으로 먼지 알려지지 없으면 에스겔 아내의 죽음은 단순히 불행한 죽음이 됩니다. 에스겔의 사전 고지로 그의 아내의 죽음에 ‘예언과 성취’의 신학적 틀이 주어지고, 또 이름 통해 에스겔 아내의 예고된 죽음이 마찬가지로 예고된 예루살렘 멸망의 예표가 됩니다.

 

(3) 표적 행위의 설명(20-24)

 

21-24절은 표적 행위의 해석입니다. 에스겔의 눈에 기뻐하는 그의 아내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회 마음의 아낌’인 예루살렘 성전을, 따라서 그의 아내의 죽음은 예루살렘 성전의 몰락을 상징합니다(21a). 여호와께서 이스라얼 족속이 구원의 보루로 자하고 의지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성소’라 부르는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을 자기네 힘의 자랑으로 추장하며 기뻐하고 연모하는 자들로 인해 더러워졌기에. 당신 집을 바벨론 침략군에게 남겨주십니다. 바벨론 유배민들의 절망은 이중적입니다. 자랑과 기쁨의 근원인 성전만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천 597년에 유배당할 때 고향에 남겨들 가족이나 친척도 죽음에 넘겨집니다(21b). 유배민들은 신앙적 뿌리뿐만 아니라 혈통적 뿌리까지도 모두 상실합니다. 에스겔에게 아내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정상적으로 애도할 수 없었던 것처럼(16b-17), 유배민들도 예루살렘 성전의 몰락과 자녀의 죽음이라는 너무도 끔찍한 소식에 정신이 나가 차라리 슬퍼하지도 못합니다(22-23)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재앙이기에 그 절망적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망연자실하여 서로를 바라보며 한탄할 뿐입니다. ‘죄악 중에 패망하여’(참조 4:17; 33:10)는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이 역사에 한 번도 없었던 파국적 재암을 불러왔음을 보여줍니다. 성전과 자식을 빼앗기고 절망에 빠졌을 때 유배민들은 에스겔이 자신들에게 표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24). 에스겔의 심판 선포가 성취될 때 그를 예언자로 인정하게 되고, 그룹 통해 여호와를 알게 됩니다.

 

자녀를 데려가는 날(25-27)

죄의 열매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 올 수 없듯이, 엎질러진 심판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아내를 잃은 남편의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돌이킬 수 없는 탄식이 임할 것입니다.

 

25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이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이 간절하게 생각하는 자녀를 데려가는 날 26곧 그 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려 주지 아니하겠느냐 27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25-27)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알리며, 그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백성은 그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십니다.

 

(1) 예루살렘 멸망의 날(25)

 

에스겔의 예언자적 활동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에스겔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선포하는 심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1:1-3:15), ‘칠 일’ 후에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파수꾼 예언자로도 부름을 받았습니다(3:16-21). 이제 심판 예언자로서 그 격렬했던 여정을 마감하고, 다시 파수꾼 예언자로 활동하기 전에 잠시 휴식에 풀어갑니다.

 

(2) 멸망의 소식을 듣는 날(26)

 

하나님께서는 ‘피 흘린 성읍, 녹슨 가마’가 된 예루살렘 성과 성전과 자녀들을 빼앗아가는 날에 한 도피자가 소식을 전해주려고 에스겔에게로 오면, 그날에 에스겔의 입이 열려 도피자에게 말하게 됩니다. 26-27절은 33:21-22에 연결됩니다. 후자에 따르면 12년 10월 5일, 곧 주전 583년 1월 19일에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온 자가 에스겔에게로 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께서 에스겔의 입을 열어 다시 말할 수 있게 하십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한 때부터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듣게 되는 날까지 대략 3년 동안 말 못하는 자가 됩니다.

 

(3) 입이 열리게 될 에스겔(27)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답변이 주어졌기에(24:1-24), 에스겔은 한동안 유다와 관련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침묵했던 것 같습니다. 에스겔서의 연대기적 정보에 의하면 이 침묵의 기간에 에스겔은 민족들에 관해서 예언합니다(참조 26:1; 29:17; 30:20; 31:1; 32:1,17). 예루살렘이 망하기 전에는 심판과 저주의 표정이었던(24) 에스겔이 앞으로는 구원과 온총의 표정이 됩니다(27). 에스겔은 심판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마감하고 잠시 휴지기를 가진 다음 33장부터는 회개와 구원을 선포하는 파수꾼 예인자로 활동을 다시 시작합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과 에스겔의 행동은 그들의 죄로 인한 심판과 고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십니다. 에스겔은 백성을 깨우치는 도구로 사용되며,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계획을 신뢰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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