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6-04)
회복의 약속과 영원한 언약
에스겔 16장 53-63절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징계하시는 이유가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는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징계는 파멸이 아닌 회복을 위한 과정입니다. 심판 선언 뒤에는 항상 관계 회복에 대한 약속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이러한 회복의 약속을 통해 나타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진전시키고자 하십니다.
- 예루살렘의 심판으로 여호와의 계획이 정점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마지막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심판이 성취되기 전에 벌써 이후에 있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십니다. 당신을 배반하고 온갖 정부들과 음란을 즐겼던 예루살렘을 아내로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그분의 주도로 예루살렘이 깨뜨린 언약이 영원한 언약으로 갱신됩니다.
세 자매의 구원(53-58)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용서하시지만,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은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아 결국 사마리아와 소돔처럼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징계를 생략하고 눈감아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회복은 심판을 전제로 하며, 이는 하나님 사랑의 지극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회복은 죄에 대한 인식과 회개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53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의 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풀어 주어 54네가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네가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55네 아우 소돔과 그의 딸들이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요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도 그의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 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 56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 57곧 네 악이 드러나기 전이며 아람의 딸들이 너를 능욕하기 전이며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블레셋의 딸들이 너를 멸시하기 전이니라 58네 음란과 네 가증한 일을 네가 담당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53-58)
앞 단락(44-52)에서 예루살렘을 소돔과 사마리아에 비교해서 고발했듯이 미래에 있을 예루살렘의 구원 또한 소돔과 사마리아와 함께 선포됩니다. 예루살렘이 소돔과 사마리아보다 더 타락하였기에 구원의 순위에서도 마지막에 자리합니다. 고발의 순서에 일치하여 소돔-사마리아-예루살렘의 순서로 언급됩니다.
(1) 세 자매의 회복(53-55)
여호와께서 세 자매의 운명, 곧 소돔과 그의 딸들의 운명과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의 운명과 예루살렘의 운명을 되돌리실 것입니다(53). 소돔과 그의 딸들이 예전 상태로 돌아가고,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이 예전 상태로 돌아가고, 예루살렘과 그의 딸들도 예전 상태로 돌아갑니다(55). 종말(구원 시대)이 처음(옛 지위)의 회복으로 선포됩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멸망한 소돔과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함락당한 사마리아가 다시 회복되고,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예루살렘도 그 후에 처음처럼 회복됩니다. 심판 이후의 구원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주도로 이뤄집니다. 소돔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역할은 거의 없습니다. 회개가 전제조건으로 요청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단지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초대에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돔과 사마리아와 함께 언급되지만, 회복의 초점은 예루살렘에 맞춰집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의 수치를 짊어지고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54a). 어떤 의미에서 예루살렘이 소돔과 사마리아에 위로가 되는지는 불분명합니다(54b). 예루살렘의 악함이 소돔과 사마리아를 의롭게 만들 정도였기에 소돔과 사마리아가 예루살렘에 비교해서 자신들의 악함을 변명해볼 수 있게 됐다는 말입니까? 31:16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을 스올로 내던지실 때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2) 소돔을 대신하는 예루살렘(56-58)
회복으로 과거의 악한 행적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은 음란과 가증한 일의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58). 죄악과 멸망의 전설이 된 소돔의 역할이 예루살렘에 맡겨집니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음란과 가증한 짓을 하다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멸망한 예를 들 때 소돔 대신에 예루살렘을 입에 올릴 것입니다(56-57), 한 때 ‘왕후의 지위에 올랐던’(13) 예루살렘이 주변 모든 나라의 속담거리와 놀림감이 됩니다. 예루살렘이 져야 하는 수치는 물론 죗값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수치는 일종의 반면교사입니다. 예루살렘은 수치를 지고, 살면서 다시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남편 여호와를 배반한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수치스러운 삶을 기억하면서 다시 생명의 기회를 주신 여호와를 의지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언약(59-63)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하시고 이전 언약을 기억하여 회복시키십니다. 그분은 다시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과 예루살렘 사이에 맺어진 영원하고 굳건한 언약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은 회개와 뉘우침, 새로운 결단으로 이끄는 힘이 됩니다. 결국, 이러한 사랑은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59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60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61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62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63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9-6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전 언약을 기억하여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영원한 언약을 맺어 그들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다시 그분께 돌아오게 됩니다.
(1) 안약을 배반한 예루살렘(59)
59절은 앞 단락의 마감이 아니라 다음 단락의 도입부로 읽어야 합니다.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린 예루살렘에게는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용서를 청할 권리나 자격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달리 손써주시지 않는다면, 파국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2)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60)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는 하나님께서도 언약을 위반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레위기 26:14-16을 배경으로 하는 징벌 선언입니다. 예루살렘이 언약을 파기하고 완악하게 행한 대로 여호와께서도 마찬가지로 엄중하게 보응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언약 당사자로서 여호와께 대한 의무를 저버렸기에 여호와께서도 예루살렘에 대한 의무를 더는 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분의 단호한 심판 의지가 그분의 구원 의지에 의해 꺾입니다(60; 참조. 호세아 11:8-9). 동사 ‘기억하다’ 다음에 나온 독립인칭대명사 ‘아니’는 ‘너와 달리 나는’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는 언약을 깨뜨린 예루살렘과 달리 그와 맺은 당신의 언약을 지키십니다.
‘너와 세운 언약’은 원문에 따라 ‘너와 세운 내 언약’으로 옮겨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깨뜨렸지만, 그렇다고 예루살렘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기될 수 없는 여호와의 언약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언약’이라 부르는 언약이기에 그분에 의해 다시 회복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어렸을 때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다시 ‘영원한 언약’을 세우기로 결정하십니다(60; 참조. 37:26).
(3) 자기 행위를 기억해야 할 예루살렘(61)
8절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아내로 맞아들이시면서 그에게 맹세하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내 예루살렘이 깨뜨린 처음 언약(결혼)을 기억하신 것이 영원한 언약을 세우는 동기가 됩니다. 영원한 언약이 예루살렘이 어렸을 때 맺은 언약을 기억한 데서 근거했다는 것은 전자가 후자의 갱신임을 시사해줍니다. 과거의 경우처럼 미래에 있어 서도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선택을 당신의 의무로 삼으십니다. 예루살렘을 선택할 때 예루살렘의 자질과 지위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처음 예루살렘의 선택 과 결혼이 그분의 은혜에 따른 단독 결정이었듯이 미래의 언약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여호와의 일방적 관심과 돌봄이 처음처럼 주어집니다(참조, 호 2:14-23).
영원한 언약은 뿌리에 있어서는 첫 언약의 갱신이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첫 언약을 뛰어넘습니다. 여호와는 다시 언약을 맺으실 뿐만 아니라 특별한 결혼 선물도 준비하십니다. 그분께서 언니(사마리아와 그의 딸들)와 동생(소돔과 그의 딸들)을 예루살렘에게 딸들로 주십니다. ‘딸로 주다’는 ‘예루살렘에 종속되다/의존하다’를 의미합니다. 세 어머니와 세 딸의 관계가 한 딸에 속한 두 딸의 관계로 바뀝니다. 행실의 가증함에 관하여는 사마리아와 소돔을 압도했던 예루살렘에게 언니와 동생이 맡겨집니다. 가나안 땅이 다 예루살렘에게 주어질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유다에 국한됐던 예루살렘의 통치권이 예전 북왕국과 가나안 사람들의 지역으로 확장됩니다. 아람(에돔?)과 불레셋의 놀림감이 됐던(57) 예루살렘이 다시 ‘왕후의 기위’(13)에 올라 가나안을 통치하게 됩니다. 처음 언약을 맺었을 때보다도 더 큰 여호와의 은총이 영원한 언약에 함께합니다.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는 그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내 언약’을 언급하는 60절과 62절의 문맥에 따르면, ‘네 언약 때문이 아니라, 내 언약 때문이니라’를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이 언약을 파기했음에도 여호와의 변함없는 사랑이 언약을 회복시키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십니다.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변함없이 언약에 신실하셨고, 더 나아가 가나안을 선물로 주셨음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4) 언약 체결의 목적(62)
60절과 61절은 모두 동사 ‘기억하다’로 시작합니다. 여호와는 당신의 처음 언약을 기억하시고 예루살렘에게 미래를 열어주시고, 예루살렘은 자신의 지난 행위를 기억하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억’이 갱신된 언약을 영원한 언약으로 만들어줍니다. 여호와께 서 예루살렘과 다시 언약을 세우실 때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주님이심을 인정하게 됩니다(62).
(5) 입을 열지 못하는 예루살렘(63)
마지막으로 과거의 기억이 한 번 더 강조됩니다. 여호와께서 용서하셨다 해서 예루살렘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끗이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자신의 행실을 기억하고 여호와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63). ‘지난 삶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라’는 말은 과거에 지은 죄의 굴레에 매여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망각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시 음란에 떨어지지 않게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살아 있는 교훈’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용서를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의 표현입니다. 회복의 과정은 반드시 회개와 뉘우침을 동반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영원한 사랑으로 항상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26 에스겔(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28) - 에스겔 17장 11-24절 -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 (0) | 2025.03.20 |
---|---|
에스겔(27) - 에스겔 17장 1-10절 -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0) | 2025.03.19 |
에스겔(25) - 에스겔 16장 35-52절 - 간음한 자에게 내리시는 심판 (0) | 2025.03.19 |
에스겔(24) - 에스겔 16장 15-34절 -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매춘 (0) | 2025.03.18 |
에스겔(23) - 에스겔 16장 1-14절 - 버려진 이스라엘을 돌보신 하나님 (0) | 2025.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