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04-01)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교훈 받는 에스겔
에스겔 4장 1-17절
신앙의 토대인 마음이 중요합니다. 감동을 받고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따라 살기로 의지적으로 결단할지라도 그렇게 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가변적이어서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어떤 훌륭한 가르침도 ‘마음 지킴’위에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종 우리는 자신이 행한 것을 알아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대로 행하지 않음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토판을 가져다 놓고 예루살렘 함락과 관련된 상징적 행동을 하게 하십니다. 또 에스겔에게 왼쪽으로 390일, 오른쪽으로 40일 동안 누워 죄악을 담당함으로 남복 왕국의 멸망과 포로 기간을 보이시고, 예루살렘 포위시 나타날 대가근을 예고하십니다.
첫째 장면 : 예루살렘의 포위(1-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단지 자신의 견해를 전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생명이 달린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조금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때에도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에게 유린될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1너 인자야 토판을 가져다가 그것을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2그 성읍을 에워싸되 그것을 향하여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것을 향하여 진을 치고 그것을 향하여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3또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 4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5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6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 7너는 또 네 얼굴을 에워싸인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 8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끝나기까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1-8)
예루살렘의 평안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평안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는 사라집니다. 처음 두 절의 묘사는 성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 과정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1) 성의 포위에 관한 표적 행위(1-3)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토판을 가져다가 무엇인가를 작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토판에 예루살렘 성읍을 상징하는 한 성읍을 새기고, 그 위에 성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와 장비를 사실대로 그려 또는 모형물을 만들게 하십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이 공격당해 함락을 의미합니다.
포위망을 치고 보루와 축대를 쌓고 진지를 구축하고 성벽을 부술 장비도 성 둘레에 세워놓습니다. ‘사다리’로 옮긴 ‘다예크’는 성을 포위 공격하는 데 이용하는 보루를, ‘흙 언덕’으로 옮긴 ‘솔러라’는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성을 공격할 수 있도록 그 주변에 성과 대등한 높이로 흙이나 돌을 쌓아 만든 높은 둔덕을, ‘공성퇴’는 성벽이나 성의 다른 방어 시실을 깨는 데 사용하는 장비를 가리킵니다.
‘진을 치고’는 침략군들이 조직적으로 구역을 나눠 성을 공격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3절의 명령은 공격 장면을 사실적으로 언급하는 1-2절의 사건적 연속은 아닙니다. 보루와 축대와 진과 공성퇴는 성을 포위 공격할 때 실제로 사용하는 시설물과 장비이지만, ‘철판’은 에스겔과 성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철로 된 벽’의 상징물로 사용됩니다. ‘철판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벽으로 삼고 네 얼굴을 그쪽을 향해 고정해라’는 예루살렘에 대한 여호와의 단호한 적대감을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적이 되셔서 당신께서 택한 예루살렘을 공격하십니다.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이 침략군 배후에서 활동하시는 여호와의 결정임을 보여줍니다.
(2) 죄와 징벌에 관한 표적 행위(4-8)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왼쪽으로 누워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짊어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이 누워있는 날수가 이스라엘과 유다가 담당해야 할 죄와 벌의 햇수가 됩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의 죄를 짊어져야 할 기간으로 각각 390일과 40일이 할당됩니다. 그는 왼쪽으로 390일 동안 누워 390년 동안 저질러진 이스라엘의 죄를(4-5), 오른쪽으로 40일 동안 누워 유다의 죗값 40년을 담당해야 합니다(6).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390년이 역사적 기간인지 또는 신학적 언급인지 모호합니다. 전자의 경우를 따를 때도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390년을 계산해야 할지 불분명합니다. 남북왕조의 분열(926년)을 기점으로 주전 587년 유다가 멸망하기까지는 대략 340년이 되는데, 열왕기에 나오는 왕의 통치 기간을 그대로 합산하면 대략 393년 또는 390년이 나옵니다. 이 경우에 남북 분열의 역사가 죄와 그 죄로 인한 징계의 기간이 됩니다. 다른 가능성은 390년을 솔로몬 성전이 존속했던 기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주전 962-955년에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주전 587년 바벨론 점령군에 의해 불타서 파괴되기에, 368년이라는 엇비슷한 기간이 나옵니다. 에스겔은 남북 분열과 성전 건축을 넘어 이스라엘의 앞 역사를 우상숭배와 배반의 역사로(16장; 20장; 23장) 보기에 어떤 주석자는 390년을 신학적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12:40-41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 만에 애굽 땅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390년과 유다의 40년을 합하면 430년이 됩니다. 이 경우 유다의 40년은 민수기 14:33-34에서 온 햇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광야에서 징계를 당하는 기간이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다가 멸망했다가 회복하기까지의 기간이 됩니다.
에스겔이 유다의 죄를 위해 누워 있는 40일은 유다가 범죄한 기간이 아니라 죄의 대가를 치르는 기간입니다(참조. 29:30). 에스겔에 따르면 예루살렘과 유다의 죄는 잠시 동안의 이탈(離脫)이 아니라 근원적인 것으로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광야 시대의 기간에 일치하는 40년이 한 세대를 상징하는 수로 사용되었다면, 유다의 멸망을 초래한 자들이 다 죽은 후에 심판이 끝나게 됩니다. 유다의 심판이 주전 587년의 파국과 직접 관련된 자들에게 한정되기에 멸망 이후 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가 되기도 합니다.
4-6절의 에스겔은 방 안에 누워 있는데, 7절은 에스겔이 제한 없이 활동할 수 있음을 전제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포위된 예루살렘을 향해 얼굴을 고정하고 벗은 팔로 예언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벗은 팔’(‘팔을 걷어 올리고’)은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맞서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8절의 에스겔은 몸을 뒤척일 수도 없습니다. 옆구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리지 못하게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밧줄로 묶으십니다. 앞에서 표적 행위를 실행했던 에스겔이 그 대상이 되고 여호와께서 실행자가 되십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묶어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묶으셨음은 예루살렘의 사로잡힘이 여호와의 뜻으로, 예루살렘이 적의 포위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밧줄에 묶여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에스겔이 바로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예루살렘의 운명입니다.
둘째 장면: 포위당한 성의 기근(9-17)
신앙인으로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 자기 자랑을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신앙인이 되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랑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아직 신앙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멸시하며 교만하게 행동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9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너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네가 옆으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 동안 먹되 10너는 음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씩 때를 따라 먹고 11물도 육분의 일 힌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12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13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14내가 말하되 아하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15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락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지니라 16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근심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두려워 떨며 물을 되어 마시다가 17떡과 물이 부족하여 피차에 두려워 하여 떨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9-17)
이방인들보다 더 극심한 악을 저지르면서도 이스라엘은 정결하게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징계가 일하게 되면 큰 어려움이 닥칠 것입니다. 이제 에스겔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의 대가는 영적인 고통만 아니라 생존에도 위협을 주워서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부족합니다.
(1) 표적 행위의 명령(9-11)
예루살렘의 운명과 관련된 두 번째 표적 행위(9-11+16-17절)는 포위당한 성 안에 먹을 것이 떨어져 최소한의 양식만 배급해야 하는 궁핍한 상황을 극적으로 기술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곡식(밀,보리,통, 팥, 조와 귀리)을 섞어 떡을 만들어 옆구리를 방바닥에 대고 누워 있는 390일 동안 먹을 것을 명령하십니다(9; 5). 하루의 양식과 물로 각기 20세겔과 1/6힌이 정해집니다. 곡물을 섞는 것을 부정하게 보는 레위기 규정(레위기 19:19)에 비취 볼 때, 여호와의 명령은 양식이 다 떨어져서 종자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둔 것마저 긁어모아 먹어야 하는, 그러나 그것도 절대 부족해서 곡식은 하루에 230g, 물은 630mm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는 성안의 절망적 형편을 보여줍니다. 표적 행위의 해석은 16-17절에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서 양식을 끊어버려 사람들이 굶주려 죽게 하실 것입니다. 전통적·교리적 여호와 신앙이 일방적으로 구원자로 선포해왔던 여호와께서 당신께 죄를 범한 예루살렘에게 심판자로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2) 유배지에서의 제의적 정결(12-17)
12-15절에서는 주제가 ‘제의적 정결’에 관한 가르침으로 바뀝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떡을 인분에 구워 먹으라고 명령하시고(12), 뒤이어 그 의미를 해석해주십니다. ‘내가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13). 에스겔이 자신은 지금까지 정결 규정에 따라 제의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주장하면서 여호와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자(14), 여호와께서 그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인분 대신 쇠똥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십니다(15). 이 단락은 유배민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주제로 다룹니다. 제의적으로 더러운 바벨론에서 제의적으로 깨끗하게 산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제의적으로 부정한 유배지에서도 거룩하신 여호와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성전 중심적 제의 종교에서 제의적 정결은 여호와 예배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이방 땅은 제의적으로 부정한 곳이기에 그곳에 사는 자들은 부정한 자들로 거룩하신 여호와를 찾거나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제의적 부정 때문에 원칙상 당신께 나올 수 없는 유배민들에게 여호와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부정한 곳에 살더라도 여호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처럼 이방 땅에서도 음식 규정과 정결 규정을 준수한다면 제의적으로 깨끗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이의 제기를 계기로 이방 땅 바벨론에서도 여호와께 나아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여호와에 의해 열립니다(11:16).
복음을 전한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말로만 할 수 업는 일이 아닙니다. 온 삶을 다하여 몸에 말씀을 짊어지는 과정이 있고서야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는 사람이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말씀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길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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