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20-01)
므리바에서 일어난 비극
민수기 20장 1-13절
우리의 삶에는 항상 고난과 도전 그리고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고난이라도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 고난도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혹독한 훈련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원망과 불평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고난은 고난대로 받고, 영적으로도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에 고난이 어떻게 유익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작된 방황은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약 38년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로 돌아왔습니다. 광야 내러티브는 가데스에서 시작해서 가데스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출애굽의 옛 세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역사의 무대를 떠나야 합니다. 그 마지막이 첫 번째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아론, 미리암의 죽음입니다.
미리암의 죽음(1-5)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죄의 결과로 인해 인류는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미리암의 죽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보여 줍니다. 죽음에는 개인적인 죽음 이상의 의미, 즉 아담의 원시적 불순종의 범죄가 담겨 있습니다.
1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1)
시간이 본문에 특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옛 세대의 마지막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 세대를 대표하는 지도자인 미리암, 아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모세의 죽음이라는 주제가 등장하는데, 이는 이제 새로운 세대로의 전환이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사건으로 미리암의 죽음을 알리는데,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적 배경이 먼저 제시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신 광야에 이르러 가데스에 거합니다. ‘거한다’는 표현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거주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장소적 배경을 공유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미리암의 죽음이 민수기 13-14장 사건 바로 다음에 일어난 일이라고 가정하는데, 민수기 20장의 문맥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40년간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이스라엘이 이제 다시 그 가데스에 도착한 것입니다.
본문은 광야 방황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이스라엘이 수십 년을 방황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셈입니다. 과거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그들의 죄악된 습관은 이제 사라졌습니까? 본문은 여전히 물 문제로 불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음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비록 정월이라고만 말하지만, 아론의 죽음이 출애굽 후 40년 5월이었기에(민 33:38), 미리암의 죽음은 아마 출애굽 후 40년 정월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가데스에 거주하고 있을 때 미리암이 죽었습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으니, 미리암의 나이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주도적으로 모세의 갈대 상자를 따라가고, 또 유모를 불러오기까지 했으니 모세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광야 세대는 지나갔고, 이제 그 시대의 위대한 여성 지도자가 무대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에 있어서 그녀가 가졌던 독특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망 기사는 아주 간략하게만 소개되고, 심지어 죽음의 이유에 대해서도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므리바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2-13)
불신앙으로는 어디를 가도 불평이 나올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세상도 없고 교회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하나님도 안 계십니다. 원망하는 사람이 많은 공동체에서는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감사하는 사람이 속한 공동체는 항상 화목하고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태도는 당사자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2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2-13)
죄는 닮았습니다. 다양한 죄들이 다른 듯하지만, 원인은 하나입니다. 물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불순종과 불평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1) 물 부족으로 인한 반란(2-5)
물이 없어서 불평하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17:1-7 사건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기와 장소, 내러티브 배경 등이 상당히 다릅니다. 비슷한 사건과 동일한 지명 붙이기가 출애굽기 17장에서 출애굽 후 시내산 도착 전에 발생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애굽 출발로부터(1월 15일, 민 33:3) 3개월째에 시내산 도착까지(출 19:1) 약 한 달 반 정도의 여정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광야 40년 동안 겪을 일을 축소해서 미리 경험합니다. 이미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배고픔과 갈증으로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물을 공급하시어 장차 40년간의 공급하심을 미리 맛보기로 주셨으며,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얻은 승리로 장차 여러 대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출 17:8-16).
백성들은 물이 없음으로 불평하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불평의 주제는 지난 40년간의 불평 주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도 작고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다투다’라는 단어는 법정에서 기소하듯이 논쟁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단어에서 다툼을 뜻하는 ‘므리바’라는 지명이 나왔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광야 생활 동안 상당히 일관되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음으로 불평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를 부인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괜히 애굽에서 불러내서 광야에서 모두 죽게 만든다고 불평합니다. 애굽에서의 삶은 편안하고 모든 것이 풍족했지만, 이제 광야에서는 씨를 뿌려 수확을 기대할 수도 없고, 무화과나무도 포도나무도 없어서 과일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부족한 광야는 그들에게 ‘나쁜 곳’, 즉 악한 땅이었습니다(출 16:2-3; 민 16:13-14).
(2) 모세와 아론의 중보와 하나님의 응답(6-8)
이런 불평의 말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가장 먼저 아무 말 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회막 문에 엎드렸다는 말은 뚜렷하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회막 문 앞에 엎드림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 기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는 광야에서 그들이 처음 행한 것도 아닙니다(민 14:10; 16:42).
하나님께서는 묵묵히 당신 앞에 엎드려 응답을 기다리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성들에 대한 어떤 책망이나 징계도 말씀하지 않으신 채 담담하게 지팡이를 들고 가서 회중을 모으고, 그들 앞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취하도록 하신 지팡이는 아론의 지팡이일 수 있다. 현재 그곳이 회막 앞이기 때문이고, 모세 역시 여호와의 앞에서 그 지팡이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세의 지팡이든 아론의 지팡이든 메시지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달라진 점은 하나님께서는 예전처럼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지 않으시고, 반석에게 단순히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여 백성 앞으로 가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줄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단순히 명령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으로 쳐서 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물을 낸다고 하십니다.
(3) 모세의 불순종과 물 공급(9-11)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절차를 잘 진행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잘못을 범합니다. 모세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면서 반석을 두 번 내리칩니다. 물은 많이 솟아보고 온 회중과 짐승들은 그 물로 해결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굳이 정죄하지 않은 당신의 백성을 반역한 너희여"라고 비난하며 불렀습니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 말씀의 대행자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우리가 물을 내랴?”라고 말을 던집니다. 물은 모세와 아론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너희가 물을 마실 자격이나 있느냐?”라고 반문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명령하여 물을 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칩니다. 그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모세는 일찍이 그 온유함이 온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평가를 받았으나, 지금 그는 온유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물을 내는 것인 양 말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4) 모세와 아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12-13)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신실하시다. 모세가 불순종하고 있는데도 반석에서 물은 예정대로 솟아났고, 온 백성들과 모든 짐승이 마시기에 충분하게 공급되었습니다. 물을 주셔서 백성들을 구원한 것은 백성들의 신실함도, 모세의 순종도 아닌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근거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모세를 질책하십니다. 그 행위가 불신앙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고, 물 공급하심을 하나님의 행하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로로 돌리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모세와 아론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신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 아니라, 감사하고 복된 일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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