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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19-01)


하나님께서 임하신 성막을 거룩하게 만드는 사역

민수기 19장 1-10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거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죄인들에게는 재앙입니다. 감히 죄인인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특권을 안다면, 우리는 그분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과 같은 교회를 세속으로부터 정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 제사장을 비롯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부정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주검에 접촉하거나 가까이함으로 말미암아 제의적으로 부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부정하게 된 사람이 정결함을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제시됩니다. 정결례를 치르기 위해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잿물을 만드는 절차를 본문이 소개합니다.

 

붉은 암송아지 재 만들기(1-6)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공간으로, 항상 정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인해 정결하게 되며, 이는 짐승의 피 대신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속죄자로, 그분 없이는 속죄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그 안에서만 우리는 정결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 3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 4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5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6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1-6)

 

성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막을 섬기는 사람까지도 어떤 이유로 부정해졌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론의 대제사장 후계자인 엘르아살을 통해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일곱 차례 회막 앞을 향해 뿌리게 하는데, 이는 성막을 씻는 동작입니다. 성막을 씻어 놓은 후 나중에 백성들이 오염되었을 때, 그들에게 피를 뿌릴 필요 없이 암소를 태운 재로 만든 물만 뿌리면 되도록 한 것입니다.

 

(1) 도살과 피 뿌리기(1-4)

 

붉은 송아지를 태워서 만든 재를 단순히 ‘잿물’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재는 최종적으로 신선한 물에 타서 잿물로 만든 다음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잿물의 제조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최상의 붉은 암송아지를 고릅니다. 흠 없이 완전해야 하고 또한 멍에를 아직 메본 적이 없는, 마치 순결한 처녀와 같은 암송아지여야 합니다. 따라서 아직은 어린 암소입니다. 이것은 충분히 자란 암소이기 때문에 새끼 송아지는 아닙니다. 이 암소가 새끼를 뺀 적이 있는지 여부는 본문이 문제 삼지 않고 있습니다. ‘붉은 소’는 매우 곱고 진한 갈색의 소로 언뜻 붉게 보이는 소일 것으로 추론됩니다. 어쩌면 고대 가나안 문화권에서는 갈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 갈색이 홍색으로 표현되었거나, 갈색, 역시 홍색의 범주에 포함되어 그것을 ‘붉은 암송아지’라 표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소를 골라 모세와 아론에게 가져오면 그들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그것을 넘겨주었습니다(2). 엘르아살은 그 소를 진영 밖으로 끌고 나가 도살했습니다. 여기서 주어는 ‘그가’라고 되어 있으나 엘르아살이 직접 이 일을 진행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의 3인칭 주어는 흔히 비인칭 (impersonal) 주어로 ‘어느 누구든’이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하여 그 문장은 빈번하게 수동태로 번역됩니다. 실제로 그 암소를 태우는 사람이 8절에, 그리고 소각이 끝난 후 그 재를 수거해서 ‘정결한 장소’로 옮겨 보관하는 사람이 10절에 따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엘르아살에게 소를 넘겨준다는 진술과 더불어 이어지는 동사들의 주어가 ‘그가’라는 것은, 이 모든 절차가 엘르아살의 책임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엘르아살에게 이 일을 맡겼습니까? 밀그롬은 재 만들기 절차 이후 잿물을 사용하는 정결례에서 잿물 뿌리기는 ‘어떤 정결한 사람’이 담당하지만, 대제사장 아론이 그 모든 직무의 책임을 졌다고 말합니다. 혹자는 이어지는 20장에서 아론의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에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사망한 뒤 장남이 된 엘르아살이 실무적인 대제사장으로 일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지만(민 3:4), 설득력은 없습니다. 시간표 상으로 분명히 이 규례는 성막 건립과 더불어 성막 봉헌식과 제사장 임직식 직후에 레위인 임직을 위해 반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특수한 유형의 속죄제물로서 ‘선취적으로’ 중대한 오염으로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이 짐승을 부정결한 것을 가장 주의하며 멀리해야 하는 대제사장이 직접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밀그롬은 “아론은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 직무에서 배제되었다”라고 주장합니다. 아마 이후에도 이 원칙을 따라 붉은 암송아지 재를 만들 때마다 대제사장의 후임 내정자가 그 일을 맡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엘르아살의 흥미로운 동작 한 가지가 나타납니다. 그는 소를 ‘진영 밖에서’ 죽인 다음 자신의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회막 앞을 향해 일곱 번 뿌립니다. 이 피 뿌리기는 무슨 목적이었으며 어떠한 효과를 창출했겠습니까? 분명히 이 손가락으로 피를 일곱 번 흩뿌리는 동작은 속죄제의 가장 특징적인 의례이기도합니다(레 4장: 16장). 밀그롬은 이것이 그 암소를 거룩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고 주장합니다. 성경학자 게인(Gane)은 이것이 성막을 씻는 동작이라고 해석합니다. 게인은 이 잿물을 만들 때 미래에 백성들의 집단적 오염으로 더럽혀질 성막을 미리 씻어 놓기 위한 ’선취적‘(proleptic) 정화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후에 백성들은 시신 접촉으로 부정하게 되어도 짐승의 피를 뿌릴 필요 없이, 단지 그 암소의 재를 물에 섞은 뒤 오염된 사람들에게만 뿌리면 되었습니다.

 

(2) 송아지 불사르기(5-6)

 

이어서 엘르아살은 그 암소를 소각합니다. 이때 아무것도 버리는 것이 없이 통째로 그것을 태웁니다. 여기에는 가죽과 고기는 물론 피와 똥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속죄제 의식에서(4장) 제단에 내장 주변의 기름 덩어리와 일부 내장만 태우고 나머지는 모두 진영 밖에서 소각합니다(가죽, 머리, 정강이, 내장, 모든 고기). 따라서 이런 소각이 특별할 것은 없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피’가 거기에 섞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핵심 요소입니다. 더욱이 그 소는 ‘붉은’ 암송아지입니다. 소가 붉은 색을 띈다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분명히 피와 관련된 색깔의 선택입니다. 이어지는 추가물들은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확증합니다. 이 암소 전체를 소각할 때, 엘르아살은 거기에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준비해 불 속에 던져야 합니다. 이것들은 정결례에서 흔하게 한 묶음을 이루면서 어떤 대상을 씻는 기능을 합니다(출 12:22;레 14:49-53;시 51:9;사 1:18).

보통 신선한 물이 담긴 대접에 백향목과 홍색 실을 담근 다음 우슬초로 그 물을 흠뻑 적셔서 사람이나 건물에 뿌립니다(레 14장). 백향목은 붉은 색을 띈 나무였으며 홍색 실과 더불어 핏빛이 더 진하게 나도록 물에 담갔습니다(레 14:49-50). 우슬초는 강력한 정화의 힘을 지닌 나무로 간주 되었고 백향목과 홍색 실은 피를 상징하였습니다. ‘피’와 관련된 이러한 특징들은 분명히 그 재의 씻는 기능을 강하게 암시하기 위함입니다. ‘피’와 더불어 그것을 상징적으로 더욱 진하게 만드는 붉은 백향목, ‘홍색’ 실 및 우슬초를 섞어 태운 그 ‘붉은’ 암소는 집단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들의 더러움을 궁극적으로 씻기 위함입니다.

 

재 만들기 후의 마무리 절차(7-10)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죄에서 완전하게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히 9:13 14), 암소의 피나 잿물은 그의 그림자이며 실체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입니다. 공동체가 이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격할 때 세상의 부정한 문화로부터 잘 지켜낼 수 있고, 도리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7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을 것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9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10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 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7-10)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하여 붉은 송아지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붉은 송아지를 재로 만든 과정에 참가하는 제사장은 성전에 복귀할 때, 옷을 빨고 목욕을 한 후 복귀해야 했습니다. 다음, 그 재를 진영 밖에 잘 보관해야 합니다. 이 재는 신선한 물을 섞어서 주정을 씻는 물로 사용하였습니다.

 

(1) 제사장과 불사른 자의 복귀 절차(7-8)

 

암소를 태워 재를 만드는 모든 절차를 마친 후 제사장 엘르아살은 옷을 빨고 물에 몸을 담가 목욕을 한 뒤에 진영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저녁까지 기다리면, 날이 바뀌면서 정결하게 됩니다. 이어서 그 재를 불사른 사람도 동일한 절차를 거쳐 자신의 정결함을 회복합니다. 이것은 속죄일 예전에서 수소와 숫염소를 진영 밖에서 태운 사람 및 아사셀 염소를 광야에 보낸 자가 진영에 복귀할 때의 절차와 동일합니다(레 16:26-28). 이러한 정결 절차는 그 붉은 암송아지가 더럽혀졌다는 반증입니다.

 

(2) 재 보관과 옮긴 자의 복귀 절차(9-10)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는 ‘진영 밖의 정한 곳’에 보관합니다. 이곳은 제단에서 생긴 재를 버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레 4:12). 아마 그곳의 특정 공간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보관하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이 재는 필요할 때만 꺼내서 사용했습니다. 그 용도는 이어지는 단락에서 자세히, 그리고 31:19-24에서 보충적으로 설명됩니다. 이 재는 신선한 물에 섞어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것이 속죄제니라’라는 진술은 중요합니다(이 문제는 다음 단락에서 다를 것임). 암소 소각의 임무와 재를 옮기는 임무를 각기 다른 사람이 맡은 것으로 보입니다(10). 재를 거둔 사람도 마찬가지로 옷을 빨고 목욕을 한 후 복귀합니다. 제의법에서 ‘옷을 빨라’는 지시에는 일반적으로 목욕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체류 중인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 영원한 율례입니다.


암송아지는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들도록 명령하셨고, 제사장은 흠 없는 암송아지를 진 밖으로 끌고 나가 불살라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 이 재는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거룩한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며, 그 희생은 영원한 효력을 지닙니다. 붉은 암송아지와 그리스도의 희생을 비교하며, 그분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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