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예레미야애가(08)


과거를 기억하고 간구한 선지자

예레미야애가 3장 55-66절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며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 아름다운 영적 교통이 있고, 이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격적인 교통을 합니다. 기도를 통해 인격적인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영적 교통이 막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합니다. 고통 가운데 마음이 너무 답답하면 어찌 기도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성도들에게 예레미야애가는 주님과 교통할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심기우면 생명이 뿌리내리고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공동체에게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권면한 선지자가 도리어 자신은 곧 죽을 것 같다며 통곡합니다. 선지자가 자신의 영적인 상황이 죽음의 구덩이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밝힙니다. 이곳에서 과거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니 응답해 달라며 여호와께 자신의 사정을 말합니다. 대적에 대한 심판을 통해 구원을 얻게 해달라는 선지자의 기도에는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근거가 나타나 있습니다.

 

과거에 응답하셨던 여호와(55-58)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신이 어려운 지경에서도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회상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때와 같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니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원수들의 행위를 듣고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해주시길 선지자는 기도합니다.

55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6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57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55-58)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과거 응답해주셨던 상황을 회상하면서 다시 한 번 응답해주실 간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잘 지키신 신실한 분이며, 예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돌보아주셨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구원의 경험에 근거해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⑴ 구원 받은 일을 회상한 선지자(55)

선지자는 현재 상태가 구덩이에 빠져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왕궁 시위대 뜰 안에 있었던 왕자 말기야의 구덩이 사건을 떠올립니다(예레미야 38:7-13). 민족의 반역자로 누명을 쓰고 던져졌던 절망적인 상황을, 이제는 조국 유다의 절망적인 현실에 비유하여 탄식하고 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구원을 호소하기 전에 예레미야는 먼저 자신의 이 같은 경험을 아뢰며, 다시 한 번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가장 원통하고 비통한 순간, 죽음 외에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예레미야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소망의 끈을 끝까지 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끝까지 여호와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깊은 구덩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제 그는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 받은 적을 회상합니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과거에도 신실하게 도와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도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회상한 것입니다.

⑵ 기도를 들어주셨던 하나님(56)

선지자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음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과거에 자신이 여호와를 불렀을 때, 여호와께서 가까이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선지자가 믿음의 기도로 담대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간절하게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현재 자신의 외침과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에 귀를 닫지 말아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자신의 음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현재 도움의 외침도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요청입니다. 그는 41절에서 하나님을 구름에 가려진 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자신의 상황을 기도가 원활하게 상달되지 않는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구름에 가려졌다’는 것과 ‘귀가 가려졌다’는 것은 모두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귀를 여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해주시길 요청합니다.

⑶ 불렀을 때 가까이 오셨던 하나님(57)

선지자는 자신이 여호와를 불렀을 때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가까이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 선지자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표현은 예레미야애가 전체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본격적으로 돕기에 앞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선지자의 소명을 재확인시킬 때도 이 말씀이 들려졌습니다(예레미야 1:8).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선지자도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있었고 그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려고 합니다.

⑷ 변호자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58)

선지자는 법정 다툼 하는 상황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자신의 변호사가 되셔서 자신을 위해 싸워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자신의 생명의 구속자라고 말합니다. ‘속량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사람이나 물건을 대신 사주는 것을 뜻합니다. 보통 ‘구속하다’로 번역합니다. 예수가 자신의 피로 우리의 생명을 사셨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변호사로 사건을 맡아 자신을 구원해주신 구속자라고 고백합니다. 즉 선지자는 현재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하심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현재의 상황을 기도하기에 앞서서 과거에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신 것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현재적 구원을 기대합니다. 지금은 비록 상황이 매우 힘들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과거에 신실하셨고 자신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을 도와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처한 상황에서 항상 이렇게 과거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기도하면, 더욱 힘을 얻고 능력을 얻게 됩니다.

 

원통함을 보신 여호와(59-63)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다양한 일들을 만납니다. 그 중에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자녀가 사람들에게 비방과 조롱을 당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든지 속상해서 자녀 편을 들어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과 조롱을 들고 있을 때,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59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 주옵소서 60그들이 내게 보복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보셨나이다 61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비방하며 나를 모해하는 모든 것 62곧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들과 종일 나를 모해하는 것들을 들으셨나이다 63그들이 앉으나 서나 나를 조롱하여 노래하는 것을 주목하여 보옵소서(59-63)

공의로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심각한 환란이 도래해서도 절망의 낙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현재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이란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징계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⑴ 본격적으로 요청한 선지자(59)

본격적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자신이 당한 고난이나 모함을 보셨다고 하면서, 여호와께 이것을 심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회개할 줄 모르는 패역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억울한 오해와 핍박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여호와를 세상에 정의로운 재판장과 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에게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⑵ 요청한 이유를 설명한 선지자(60)

선지자가 왜 하나님께 이런 요청을 하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여호와는 모든 것을 살피신다는 사싱을 신횔 수 있었습니다. 원수들의 행동들과 악한 생각들을 모두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일어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위하여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약해서 패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께서 없고, 자신들이 왕이며 재판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대로 남을 판단하고 재판하고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악을 몰래 저지르는 사람은 아무도 자신의 악한 생각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스라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회개할 필요도, 하나님께 돌아올 필요도 그리고 기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강대국 왕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모든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며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겪는 불의한 상황과 억울한 고난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며 기다립니다.

⑶ 듣고 계신 걸 확신한 선지자(61-62)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들으셨다고 호소합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신 것은 선지자를 향한 원수들의 비방과 모든 나쁜 생각과 대항자의 입술과 반복되는 노래입니다. 여기서 대항자의 입술은 선지자를 공격하는 자의 말이란 의미입니다. 즉, 말로 선지자를 공격하고 욕하고 모함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울려 퍼지는 노래’는 본래 ‘힉가욘’으로, 이것은 음악 용어로 ‘널리 퍼지는 음악’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비방의 말을 계속해서 널리 퍼뜨린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선지자에 대한 비방을 하루 종일 끊임없이 했습니다. 이 모든 말을 여호와께서 들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의 입술의 열매대로 심판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⑷ 원수들을 확실히 지켜봐달라고 요청(63)

선지자는 다시 원수들의 앉고 서는 것을 자세히 봐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자신은 그들의 따돌림을 당한 노래한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원수들의 말에 대해 두 절을 더 할애합니다. 몸이 당하는 고난도 힘들지만, 원수들의 말에 의한 공격이 선지자에게는 더 힘들고 참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돌림 노래’라는 말 속에 선지자의 참담한 심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날 따돌림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 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인격 모독적인 말과 욕설로 인해 인정은 메마르고 사회는 날로 각박해집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인터넷상에 댓글로도 부정적인 인격을 모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마음 죄로 여기시기 때문에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대적에게 보응하신 여호와(64-66)

성도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 일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여호와께 고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의 기도를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64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그들에게 보응하사 65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주시고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66주께서 진노로 그들을 뒤쫓으사 여호와의 하늘 아래에서 멸하소서(64-66)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과 원수들이 자신에게 행한 일을 모두 듣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응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⑴ 적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요청(64)

선지자는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보응해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하는데 도구였던 대적 바벨론은 자신들의 본분을 넘어섰습니다. 즉 유다에 대해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 이상의 가혹한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자신들이 행한 대로 갚아주길 원하는 마음으로 신명기의 기록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해보복법 사상이 나타납니다. 동해보복법의 원칙은 과도한 보복이나 형벌을 막기 위한 처벌의 원칙입니다. 선지자는 간구한 대적들에 대한 보응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말로 범죄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행동으로 범죄하였으면 또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적 보복과는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입증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⑵ 회개하지 못할 마음을 달라고 요청(65)

선지자는 그들에게 강퍅하게 하며 저주를 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만한 마음’을 가지므로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과 ‘둔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함으로 파멸을 구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그 자체가 이미 저주이고 심판인 것입니다. 죄에서 회개하지 못하면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⑶ 끝까지 추격해 진멸할 걸 요청(66)

선지자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진멸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로 그들을 쫓아가서 심판하셨습니다(43).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쫓으신 상황과 반대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유다를 쫓고 죽이신 것처럼, 유다의 원수들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결국 대적들은 철저히 명절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있다면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혹독한 사랑을 베푸셨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당하시는 순간은 아프고 쓰리고 원망스럽기까지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모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알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시면서 놀라운 일을 발견할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시면 반드시 응답 받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황폐한 상태는 그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맨붕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예레미야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해주신 기도의 언어들입니다. 마음을 담아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할 때, 주께서는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모든 원수와 대적들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구독과 공감 ♡ 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