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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07-01)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과 사역

에스라 7장 1-10절


 

생명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외형적인 것에 집중하며, 교회도 마찬가지로 건물과 성도의 수에 의존하게 됩니다. 큰 예배당이나 많은 성도가 교회의 위대함을 착각하게 하지만, 성령 충만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허망합니다. 예루살렘에 귀환한 이스라엘도 그러한 모습을 보였고,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 에스라서 후반부(7-10장)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귀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주전 458년)에 제사장, 레위인, 일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두 번째 귀환 사건도 첫 번째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에 익숙한 에스라를 통해 말씀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길 원하십니다.

 

에스라에 대한 소개(1-5)

새롭게 시작한 공동체라도 시간이 흐르면 무기력해지기 쉽니다. 공동체가 무기력해지면 두 가지 양상으로 나갑니다. 먼저는 새로운 능력이 제공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무기력이 지속되면 그 공동체는 자연히 소멸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해서 새 공기를 주입시키면, 다시 예전에 능력 있는 공동체로 회복되어집니다.

 

1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1-5)

 

7-10장은 에스라 회고(Ezra Memoir)로 알려진 단락으로 에스라서의 후반부를 구성합니다. 전반부(1-6장)가 성전 재건의 주제를 다룬다면, 7-10장은 공동체 재건의 주제를 다룹니다. 전반부의 중심인물이 스바벨이라면, 후반부는 학자 에스라입니다. 에스라서 후반부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귀환 사건으로 시작합니다(스 7:1-10). 성전 재건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신앙의 열정은 식어가고 그들은 패배의식과 좌절감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의 영적 침체는 신앙적인 측면을 넘어서 공동체의 분열 양상으로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성전 재건 이후 공동체는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것이 에스라의 등장 배경입니다.

 

(1) 시대적 배경(1a)

 

7장부터 시작되는 에스라서의 후반부는 에스라라는 한 인물의 계보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에스라의 등장을 알리면서 본문은 ‘이 일 후에’로 시작합니다. ‘이 일 후에’에서 ‘이 일’은 바로 앞의 사건, 즉 성전 재건이 완료되고 유월절을 지켰던 일을 가리킵니다. 스룹 바벨 성전은 다리오 왕 6년(주전 515년)에 완공되었고, 에스라가 등장할 때는 아닥사스다 왕(주전 465-424년) 때입니다(스 7:1,12,21; 8:1). 그렇다면 6장과 7장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간격(약 60년)이 존재합니다. 이때는 고레스 칙령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1차 귀환민들이 거의 다 죽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시점입니다. 따라서 1세대 귀환민들의 신앙과 열정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라가 등장하였습니다. 에스라는 그의 이름처럼 귀환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도움이었습니다.

 

(2) 에스라에 대한 소개(1b-5)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 아사랴의 손자, 사독의 5대손,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으로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학자(서기관) 겸 제사장으로 소개됩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 멸망 당시의 대제사장입니다(왕하 25:18-21). 그렇다면 스라야와 에스라 사이에 적어도 120년 정도의 차이(주전 587년과 458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3절에는 므라욧이 아사랴의 아들로 소개되지만, 역대기 족보(대상 6:7-10)는 그 사이에 여섯 명의 이름(아마랴, 아히둡, 사독, 아히마아스, 아사랴, 요하난)을 추가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에스라서의 계보가 모든 세대를 다 제시하지 않고 개괄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에스라의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론(‘아론의 16대손’)에게까지 미칩니다(5). 이를 통해 저자는 에스라가 정통 제사장 가문으로 공동체의 개혁을 주도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한 사람의 족보를 16대 조상까지 거슬러서 이렇게 자세히 보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에스라라는 한 인물에 대해 저자가 갖고 있는 특별한 관심을 반영합니다. 동시에 당시 귀환 공동체에서 에스라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2차 귀환 행렬(6-7)

종종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암울하고 소망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도 새로운 소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어려움 속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그 어두움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는 합당한 일꾼을 찾으시며, 공동체를 인도하기에 합당한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6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6-7)

 

본문에서는 에스라가 바사 왕의 명령을 받아 이스라엘에 돌아온 대제사장임을 소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귀환을 기뻐하며 함께 모입니다.

 

(1) 에스라의 귀환(6)

 

6절은 에스라의 귀환을 보도합니다(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본문은 이어서 에스라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소개합니다(7장은 반복적으로 에스라를 학자라고 부름: 스 7:6,11,12,21). 여기에서 ‘모세의 율법’은 하나의 책으로 완성된 오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소페르’는 구약성경에서 ‘기록자’, ‘서기관’, ‘비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서기관(학자)은 바벨론 포로기에 생긴 새로운 직업으로,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페르시아 시대 ‘소페르’는 제국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에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유대인 업무를 전담하는 장관’과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익숙하다는 용어 ‘마히르’는 ‘정통하다’, ‘뛰어나다’라는 의미로 에스라가 갖고 있는 율법에 대한 전문성을 나타냅니다. 이런 면에서 에스라는 포로기 이후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형성될 새로운 공동체 건설에 적합한 인물입니다.

 

(2) 에스라와 함께한 백성들(7)

 

본문은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 대해 갖고 있었던 신뢰를 강조합니다(6,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그리고 그 배경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힙니다(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이전에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주전 458년)에 제2세대 귀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7). 본문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밝힙니다. 이것은 두 번째 귀환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나타냅니다. 에스라와 함께 귀환 행렬에 동참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제사장들, 레위인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7b).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어려움에 처한 유다 공동체를 새롭게 재건하는 일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로서 2세대 귀환 공동체의 주인공들입니다.

 

예루살렘 여정과 에스라의 결심(8-10)

희망과 소망이 사라져 갈 때, 공동체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원음 그대로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말씀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에스라를 통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8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9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8-10)

 

본문에서는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수하며 가르치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율법을 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에스라는 이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1) 예루살렘 여정(8)

 

에스라와 그 일행들이 ‘아닥사스다 왕 7년’(주전 458년)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첫째 달(아빕월)은 옛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달입니다(출 12:2). 첫째달(아빕월)에 바벨론을 떠난 것은 새로운 출애굽을 상징합니다. 일행은 바벨론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셈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약 1,5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일 뿐만 아니라 매우 덥고 위험했습니다(참조. 스 8:21-22). 그렇지만 에스라 일행은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본문은 구체적인 여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단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고 밝힙니다(9).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다’는 표현은 7-8장 단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스 7:6,7, 28: 8:18, 22, 31),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단락으로 만듭니다. 본문은 이를 통해 에스라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귀환 행렬 전체에게 임했음을 보여줍니다.

 

(2) 에스라의 결심(10)

 

10절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입은 이유를 밝힙니다. 그것은 에스라가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여,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고자 했습니다. 삶으로 본을 보이는 지도자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에스라라는 인물을 주목하신 이유입니다. 이제 에스라는 율법을 통해 유다 공동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올바로 세우고자 마음을 확고히 정했습니다(‘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본문은 이를 통해 앞으로 공동체의 회복(재건)에서 율법이 차지하게 될 중요성을 암시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가 여러 가지 문제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었지만, 그 핵심은 신학적 문제에 있었습니다. 해결책은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확고히 세우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사역으로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 큰 전환점을 이루게 됩니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토라 중심의 공동체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제사에서 말씀으로 신앙의 중심축이 옮겨가게 됩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종교가 토라 종교로 정착하는 데 에스라가 결정적 공헌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통해 His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헌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영적 회복을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 각자를 부르시어 새로운 역사를 이루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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