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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07-03)


화목제물 중에서 제사장의 몫

레위기 7장 28-38절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경건함과 존중을 나타내며,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제사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합니다. 매일의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신앙의 기본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경건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하고, 주변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 화목제 규정 중에서 이제 고기의 구체적인 할당에 대한 지침이 마련됩니다. 화목제 짐승 중에 일부는 제사장 몫이고 남은 대부분의 부위는 화목제를 바친 제사자에게 돌아갑니다.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가 집례하는 제사장의 수고비로 주어집니다. 제단 앞에서 제사장 몫인 가슴이 요제로 뒷다리가 거제로 우선 바쳐지는데, 요제와 거제는 흔히 알려져 온 바대로 흔들고 들어 올리는 방식의 동작이 아닙니다.

 

화목제 짐승의 고기 할당(28-33)

성도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감사와 축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자신의 손으로 준비한 제물을 가져와야 합니다. 제물의 기름 부분은 제단 위에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제물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인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공동체의 지도자와 그 가족을 위해 남겨둬야 합니다. 이처럼 헌신의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과 함께, 공동체와 나누는 사랑의 행위로 여겨야 합니다.

 

2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9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물 중에서 그의 예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되 30여호와의 화목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32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33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28-33)

 

화목제에 대한 추가적 지침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화목제의 짐승 중에 예물로 여호와께 바칠 부분은 제사자가 직접 손에 들고 가져가야 합니다. 그것은 짐승의 기름과 가슴, 그리고 오른쪽 뒷다리의 허벅지입니다. 모두 여호와께 바쳐지는 부위인데 그중에 제단에서 태우는 것은 기름입니다. 단지 희생 짐승의 기름만 언급되나 여기서 기름은 내장의 기름과 두 콩팥, 그리고 간엽에 대한 대표적 표현입니다. 아마 가슴은 아론과 모든 제사장이 함께 분배하지만(31), 오른쪽 뒷다리는 화목제를 집례한 제사장 몫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33).

 

이 법안은 제사장 몫인 화목제 짐승의 가슴은 ‘요제’로 뒷다리는 ‘거제’로 바칠 것을 명령합니다. 요제와 거제, 관제(전제)는 번제나 화목제와 같은 제사의 종류가 아닌 제물을 바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제는 보통 포도주를 제물 위에 붓는 행위를 말하며, 흔히 요제는 흔드는 제사, 거제는 들어 올리는 제사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요제와 거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두 제사 방법에 대해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 거제 : 히브리어로 ‘테루마’입니다. 이것은 흔히 들어 올리는 제사의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여호와를 위해 성전에 바쳐진 제물(contribution)을 의미합니다: “자원하여 가져온 것”(출 25:2). 이러한 이유로 밀그롬을 비롯한 최근 다수의 학자들과 많은 영어 성경들이 현재 본문의 거제를 단순히 ‘contribution’(현물)으로 번역합니다(ESV; NIV; NASB). 이것은 말라기 3:8의 ‘십일조와 봉헌물(테루마)’이라는 표현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b) 요제 : 히브리어 ‘테누파’에 해당합니다. 흔히 이것은 흔들어 바치는 제사의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흔들기보다는 단순히 제단에 올리는 동작이 수반된 제물을 말합니다. 요제를 흔드는 제사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예컨대, 제사장 위임식을 보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출 29장: 레 8장). 제사장들이 제단 앞에서 그들의 두 손 가득 많은 제물들을 올려놓는데, 이때 제물의 양을 고려해볼 때 흔들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단순히 제단 앞에서 들어 올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이 이것을 오히려 ‘거제’(heave offering)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전통적 번역 그대로 ‘요제’를 따를 것입니다.

 

화목제 고기 할당의 추가적 지침(34-36)

우리 성도에게 헌신과 봉사는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의무와 권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우리의 신앙 생활과 공동체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또한, 공정한 분배의 원칙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34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가져다가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35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36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34-36)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와 관련하여, 그것이 뒷다리인지는 논란이 됩니다. 히브리어 ‘쇼크’는 흔히 족발이라 불리는 정강이가 아닌 다리의 위 부위, 즉 허벅지(thigh)를 말합니다. ‘쇼크’라 불리는 이 부위는 짐승의 뒷다리 허벅지가 두툼하기 때문에 아마도 뒷다리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70인경(LXX)는 그것을 오른쪽 어깨(브라키온, shoulder)로 번역했으며 킹제임스 성경이 이를 따릅니다. 문제는 이 규정이 신명기 18:3과 충돌되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우선 신명기의 법에서 ‘앞다리’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제로아’입니다. 쇼크가 다리 ‘윗부분’을 지시하는 반면, 이 단어는 ‘어깨’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70인경은 '제로아' 역시 ‘브라키온’, 즉 어깨로 옮깁니다. 70인경은 ‘쇼크’와 ‘제로아’를 같은 부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오른쪽 다리로 지시될 뿐 뒷다리인지 앞다리인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신명기의 이 부위를 앞다리 윗부분으로 해석하며 한글개역(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레위기와 신명기는 서로 어긋난 규정을 법제화합니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필로(Philo)는 레위기 법의 ‘쇼크’가 신명기를 따라 뒷다리가 아닌 앞다리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웬함(Wenham)도 조심스럽게 그것이 앞다리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라기스에 있는 가나안 신전에 여러 짐승들의 오른쪽 앞다리가 제단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그 근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대다수의 현대 학자들은 레위기는 오른쪽 뒷다리, 신명기는 오른쪽 앞다리를 제사장 몫으로 할당한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법에서 또 다른 차이는 제사장에게 가슴 부위가 아닌 두 볼과 위를 주라고 한 규정입니다. 오른쪽 대퇴부가 뒷다리인지 앞다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신명기 법의 두 볼(러하야임)과 위(케바)는 분명 레위기 법의 가슴과는 차이가 납니다. 아마 가장 무리가 없는 해석은 레위기는 가슴과 뒷다리 허벅지, 신명기는 두 볼과 위, 그리고 앞다리 허벅지를 제사장 몫으로 할당한다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법에 대해 비평주의 학자들은 제사장과 신명기의 상이한 전통으로 인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학자들은 광야의 성막법에서 가나안 땅의 중앙 성전 법으로의 변화로 보려합니다. 아마 성막과 관련되어 주어진 몇 가지 시내산의 법들이 중앙성전과 관련된 넓은 가나안 땅의 배경과 사회적 정황에 맞춰 변경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가장 합당한 해석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사장에게 가슴이 아닌 두 볼과 위, 뒷다리 허벅지가 아닌 앞다리 허벅지가 할당된 것은 전체적으로 제사장 몫이 축소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장차 화목제물을 나눌 가족과 친지의 규모가 커지고 인구가 늘어날 가나안 땅의 사회적 정황에 맞춰 평민에게 더 많은 몫을 돌리기 위한 변경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제사장 몫은 제사장들이 위임되던 날(레 8장) 이후 그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35). 신명기 법에서 사회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약간 변경되지만, 모든 화목제 짐승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제사장들의 몫으로 할당됩니다.

 

화목제가 주는 교훈은 이웃과의 나눔과 평화로운 사권에 있습니다. 제사자는 자신의 기쁨과 감격을 나누기 위해 화목제를 바친 뒤 고기를 이웃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감사제의 경우 고기를 당일에 다 먹어야 하는 이유의 배후에는 감격스런 감사의 마음이 뜨거울 때 가진 것을 즉각 나누라는 권면이 암시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이때 반목 관계에 있던 이웃도 한 자리의 식탁에서 초청됨으로써 화목제가 사람 간의 관계를 복원하는 기능을 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목제가 속죄의 효과가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 특히 보수적 학자들은 모든 짐승의 제사는 피를 내기에 속죄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따라서 화목제도 마찬가지로 죄를 사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그런 주장의 유일한 근거는 에스젤 45:15,17입니다. 여기에서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를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를 위해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아마도 이어지는 18-25절에 비추어 볼 때, 에스겔의 유월절 의식에 따라 속죄를 위한 목적으로 속죄제가 주 제사로 드려지는 가운데 나머지 제사들이 보조적으로 함께 드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밀그롬이 정확히 지적한 대로 그 제사들 목록에서 화목제가 가장 나중에 나타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즉, 화목제)을 갖출지니라”(겔 45:17). 화목제는 모든 제사에서 항상 잔치의 제사로 나중에 드려졌기 때문에 마지막에 끼어 있습니다. 이 에스겔 본문은 그 모든 제사를 편의상 한 묶음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에스겔 45:15-17 화목제의 대속 기능의 증거로 삼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화목제는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가 아님을 상기해야 합니다. 즉, 인간은 죄를 지을 때 화목제를 바치지 않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기뻐하기 위해 드리는 감사의 제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대 제사의 결언(37-38)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결국, 우리 삶의 방향성과 목적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본문에 제사와 관련된 규례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이 구절은 신앙의 기초가 되는 의식과 규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필요함을 일깨워줍니다.

 

37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38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령하신 날에 시내 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더라(37-38)

 

법안 이전에 이미 번제와 화목제, 그리고 소제는 족장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레위기에서 비로소 이 제사들이 공식적으로 법제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속죄제와 속건제는 레위기에서 신설되는 제사입니다. 참고로, 번제의 고대성은 성경 신학적으로는 아담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님께서 최초로 마련하신 제사법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진정한 신앙의 표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헌신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통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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