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6-0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송축하라
시편 146편 1-10절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두며 그를 온전히 신뢰하는 자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들이 신뢰하는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왕이십니다. 그가 그의 정의와 사랑으로 백성들을 먹이고, 살피고, 보호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대대에 영원할 것이며, 이에 따라 그를 찬양하는 노래도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그의 다스리심과 하시는 일을 통해 권능과 위대하심이 드러납니다. 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왕이 되심과 그의 왕국의 영원함이 대대에 선포될 것입니다. 또한 그가 만든 만물과 그의 성도를 사랑으로 보살피시므로, 모든 육체가 하나님을 영원히 송축할 것입니다.
하나님 찬양에 초대(1-2)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의 위대하심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며,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1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1-2)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나며,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향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칩니다. 이때 시인이 하나님을 ‘내 하나님’(2)으로 부르는 데서 그와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늘 하나님을 찬양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이 선언에는 평생 하나님만이 자신의 찬양의 대상이심이 암시되었고, 하나님만 신뢰하며 섬기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의 행복(3-5)
인간의 권력자나 세상의 어떤 도움도 궁극적인 소망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방백들, 즉 세상의 권력자나 인생을 의지할 때, 그들은 한계가 있으며, 그들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구원과 능력은 일시적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인간의 능력에 두는 것은 불안과 실망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3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3-5)
하나님에 대한 신뢰 없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표현 대신 ‘사람들을 신뢰하지 말라’는 권유로 청중에게 다가섭니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면, 보통 ‘귀인들’(또는 ‘고관들’, ‘방백들’, 3), 즉 지위, 권세, 부를 가진 자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이들을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이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이는 그들이 힘과 권세가 있는 자체를 부인하거나 그들의 힘을 무시하는 뜻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구원이 자기에게 없는 인생’이란 뜻이며, 그들이 가진 돈과 권세로 남을 한두 번 도울 수는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남을 온전히 구할 능력이 없으며, 자신의 구원조차 스스로 보장하지 못하는 자들이란 의미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자나 도움을 요청받는 자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이므로, 설령 남을 도우려는 생각이 있었다 할지라도 다 헛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피난처 삼는 것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습니다(시 118:8-9). 시인은 이번에는 ‘야곱의 하나님이 자기의 도움이며 소망인 자가 얼마나 행복한가’(시 144:15)라고 외치며, 청중에게 하나님 신뢰를 부추깁니다. 5절의 '복이 있도다'는 원래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감탄이다. 이 단어는 상대에 대한 부러움과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를 표현한다(신33:29; 왕상 10:8; 욥 5:17; 잠 4:21 등).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의 방랑과 환난의 삶에서도 함께하고 인도하신 하나님(창 28:13-15; 48:15-16)을 상기시켜 청중에게 하나님 신뢰를 종용한다고 볼 수 있으며, 10절의 '네(시온) 하나님'과 연결된다.
백성을 돌보시는 창조주 하나님(6-9)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근본이자 근원입니다. 그분의 창조와 경륜을 통해 진리와 공의를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와 공의를 지키신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삶의 모든 면에서 신실하시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분의 신실함과 공의를 경험하게 됩니다.
6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적늘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6-9)
사람들의 찬양(1-2)과 신뢰의 대상(3-5)이 되는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분입니까? 그의 통찰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양한 모습으로 백성과 만물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온 세상의 왕이심이 드러납니다. 시인은 이를 총망라하여 열 가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십니다(6). 하늘과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오직 그의 말씀으로, 능력으로, 지혜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맘에 들고 기쁨이 되었습니다(창 1:10,12,31). 하나님께서는 만물에 질서를 세우시고, 그의 권능으로 모두를 다스리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6). 그가 ‘진실함을 영원히 지키신다’는 말은 그의 신실함과 변함없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고 약속한 것을 그의 인애로 지키고 성취하십니다(왕상 8:23-24). 그의 시간과 그의 방법에 따라 이루어 가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성의의 재판관이십니다(7a). 인간 사회에서는 정의가 ‘가진 자’들을 위해 실행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뇌물과 술수와 불의를 행사하는 재판관도 적지 않습니다. 왕도 왕으로서 백성의 송사를 듣고 선악을 분별하고(왕상 3:9-12), 의와 공의로 판결하며, 억울한 자를 신원하고 압박한 자를 심판하는 재판관의 본분을 가졌습니다(시 72:1-4, 12-14). 그러나 실제로는 이 본분대로 나라를 통치하는 자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백성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재판관이 되어주십니다. 억울하게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신원하고, 구원하십니다(신 32:36;욥 19:25;시 135:14). 넷째, 하나님께서는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7). 여기서 ‘주린 자’란 돈, 건강, 자녀, 지위, 관계 등 어떤 부분에서든지 결핍된 것이 있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뜻합니다(시 113:7-9). 그들에게 공급하시되, 그들이 기도한 것 이상으로 채워주시는 관대한 분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꼐서는 해방자와 구원자이십니다(7). 그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긍홀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셨습니다(출 20:2). 사사 시대에는 열왕들의 침략과 박해와 지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여 평안을 주셨습니다(삿 3:7-11). 앗수르와 바벨론에 잡혀간 왕들을 옥에서 꺼내주셨습니다(왕하 25:27-30; 대하 33:11-13),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스 1장). 하나님께서는 또한 육체적 해방만이 아니라 영적 해방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의 대속으로 모든 인간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마 1:21; 요일 2:2).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치료자이십니다(8a; 출 15:26). 그의 긍휼과 능력으로, 눈먼 자보게 하시고(요 9:6-7), 병든 자를 고치시고(왕하 5:14; 20:1,7),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왕하 4:32-35;8 11:43-44). 그는 육체적 질병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시고(시 147:3),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십니다(눅 4:41). 또한 개인만이 아니라 도성이나 나라가 겪는 어려움을 돌아보아 낫게 하고, 풍성한 평안과 진실함으로 채워주십니다(렘 33:6). 종말에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고통과 아픔이 사라지고, 사망도 다시 있지 않을 것입니다(계 21:4). 일곱째, 하나님께서는 낮아진 자를 붙드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8b). 8절의 ‘비굴한 자’는 원래 ‘숙이는 자’의 뜻으로 겸손하여 낮아진 자를 가리킵니다(잠 16:19). 이 단어는 145편에도 나오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둘 다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덟째,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8c).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말 3:18).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인생 여정을 다 아시며, 이들을 돌보십니다(시 1:6). 그를 찾는 자들을 붙드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시 9:10; 37:17). 아홉째, 하나님께서는 사회의 소외된 자의 보호자이십니다(9ab).나그네, 고아, 과부, 이 세 부류는 사회에서 따뜻한 관심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자들의 대표로 소개됩니다. 나그네, 고아, 과부는 그들의 잘못이 없을 때에도, 그들이 단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억압받으며, 합법적인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들을 학대하지 말고 사랑으로 돌보라고 특별히 명하셨습니다(신 24:17). 하나님 스스로도 이들을 보호하며 붙들어주십니다(9ab; 신 10:18). 열째,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심판자이십니다(9c).하나님께서는 의인만 살피고, 의인만 상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8c).높은 하늘에서 의인의 길도 아시며 악인의 길도 다 살피십니다(시 11:4; 138:6). 그는 정직하고 의로운 자들을 사랑하며(8c),환난 속에서라도 소생하고 구원하십니다(시 138:7; 145:20). 그러나 강포한 악인들은 미워하고,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몫이 되게 하십니다(시 11:6). 그의 심판에는 정의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10)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고, 시온에서 대대로 자기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믿는 우리는 그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신실하심을 찬양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획에 순종하며, 우리의 삶을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0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10)
온 우주의 창조주와 왕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왕이십니다. 그가 시온을 그의 거주지로 삼고,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과 함께 거주하며 다스리실 것입니다. 시온 백성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영원히 찬양함으로써 화답할 것입니다. 종말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임하여(시 145:11-13),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수 많은 무리가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세세토록 찬양할 것입니다(계 7:9-12).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삶을 돌보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공의를 이루시는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경험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축복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계속해서 개입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며, 공의와 정의를 이루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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