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07-01)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공의의 기준
아모스 7장 1-9절
어두운 밤에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진정한 삶의 방향을 알기 어렵습니다. 밤바다에서 자신의 길을 잃었다면, 가장 현명한 방법은 항해를 멈추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려다 보면 오히려 더 깊고 멀리, 돌아오지 못할 위험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풀을 다 먹어 버리는 메뚜기를 보이시고, 큰 바다와 육지를 삼기는 물을 보이십니다. 그때마다 아모스가 야곱을 위해 청하니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또한 다림줄을 보이시며, 이스라엘 가운데 다림줄을 두시고 산당들 및 성소들과 여로보암의 집을 치겠다고 하십니다.
첫 번째 환상:메뚜기(1-3)
종교적 형식주의나 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메뚜기 환상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1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2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3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1-3)
7:1부터 9:4까지는 세 환상이 등장합니다. 첫째 환상(7:1-9). 둘째 환상(8:1-3), 셋째 환상(9:1-4)이 등장하고, 이 사이에 아모스의 자전적인 이야기(7:10-17)와 아모스의 설교가 등장합니다(8:4-14). 7:1-9은 다시 이스라엘의 파멸에 관한 세 환상을 보여줍니다. 이 환상의 출처는 여호와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1). 말씀이 아니라 환상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전체적인 문맥에서 아모스는 중보자로 나타납니다. 재앙을 들은 후에 아모스는 백성을 위하여 재앙을 돌이켜 달라고 중보합니다.
첫 번째 환상은 한해 농사를 망가뜨리는 메뚜기의 재앙에 관한 것입니다. 재앙의 원인인 메뚜기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메뚜기가 등장하는 것은 언제입니까?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 돋기 시작할 때’(1)입니다. 여기서 풀은 단지 들에 나는 풀이라기보다는 모든 곡식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첫 번째 수확한 것은 왕의 몫입니다. 일반 백성은 두 번째 수확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다시 움 돋은풀은 첫 번째 수확후에 다시 자라는 풀을 뜻하는데, 3월 말이나 4월 초에 있는 늦은 비를 맞고 자라는 풀입니다. 이때는 왕이나 부자의 수확이 끝난 후 이기에 재앙이 온다 해도 왕이나 부자들에게는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가난한 백성에게만 위협이 됩니다. 아모스가 본 환상은 첫 번째 건초 수확 이후 두 번째 수확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메뚜기 떼 환상을 본 아모스는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여기서 ‘사하소서’는 재앙의 원인이 되는 죄를 용서하셔서 임박한 재앙을 피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야곱이 미약해서 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설 수 없다는 것은 재앙을 견딜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미약하다는 것은 아이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아이를 불쌍히 여겨 용서한다는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용서가 의무 때문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측은 함에서 몸에 근거해, 곧 야곱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모세의 뒤를 잇는 중보기도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켜 메뚜기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중보기도에 성공한 것입니다(창 18:22-33; 출 34:6-7; 렘 18:1-10;욘 3:10). 하나님의 돌이키심은 인간의 심성이 변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거한 것입니다.
두 번째 환상:불(4-6)
우리는 개인적인 회개와 삶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환경 보호에 기여하며, 중재자로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마음 깊이 새기고,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서 실천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5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6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5-6)
두 번째 환상은 큰 바다와 육지를 먹어 버리는 불로 인한 심판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창 19:23-28;민 11:1;신 9:3). 불은 땅을 마르게 하고 말을 갉아 먹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심판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아모스가 본 환상은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 재앙’입니다. 큰 바다는 아마도 농토의 샘물들과 지하수를 공급하는 땅 밑 바다를 뜻할 것입니다(창 1:2; 7:11; 8:2). 육지는 이스라엘 땅만이 아니라. 땅 위에 사는 백성까지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재앙을 본 아모스의 반응은 첫 번째 환상의 경우와 같습니다. 재앙을 내릴 것을 예고하신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은 재앙을 돌이키십니다.
세 번째 환상:다림줄(7-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공의와 정의를 요구하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사회적 및 공공 정책에 반영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회개하고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를 제공받습니다.
7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8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9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7-9)
세 번째 환상은, 첫째 환상과 둘째 환상과 형식이 다릅니다. 처음 두 환상에서는 환상을 보이시면 예언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환상은 여호와께서 주도권을 자기고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환상 중에 여호와께서 다림줄을 손에 쥐고 담 곁에서 계십니다. 담은 성읍이나 집을 둘러싼 담벼락으로, 전체적인 방어 시스템입니다. ‘다림줄’이란 무게가 가는 돌이나 금속을 매단 줄로, 벽을 쌓거나 벽의 수직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본문에서 다림줄의 역할은 성이 제대로 지어졌는지를 측정하여 결과가 불량이면 파괴를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환상을 본 아모스에게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십니다. 아모스는 환상을 보고 다림줄이라고 확인합니다. 여호와께서 담벼락에 다림줄을 잡으시고 성을 평가하신 후에 그 행동을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가운데 두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백성에 대한 평가를 다림줄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부술 건물을 측정할 때 다림줄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다림줄로 평가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헐어야 할 건물과 같이 멸망 받아야 할 백성으로 봅니다. 그 측량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다시는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이미 여러 번 용서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임계점에 온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1~6절에서 멸망을 선포 받고 아모스의 중보기도에 따라 용서받고도, 여전히 죄를 짓는 백성을 향하여 언약이 담긴 내 백성이라고까지 부르면서 멸망을 통보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멸망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9절에서 두 종류의 종교 지역을 언급합니다. ‘산당’이란 성전이 아니라 제사를 위한 야외 제단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세운 높은 곳에 있는 제단이지만, 우상을 위한 제단으로 변했습니다. 아모스 서에서 ‘이삭’은 북왕국 족속을 의미할 때 등장합니다(16). 성소는 성전인데, 이스라엘에는 단과 벧엘이라는 성소가 있습니다. 그들의 안전에 대한 기대가 담긴 예배의 중심지인 성소가 완전히 멸망된다는 것입니다. 앞의 두 개의 환상과는 달리 이 환상에 대해서는 아모스의 중보기도도 없고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돌이킴도 없습니다. 결국 여호와께서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침으로 이스라엘에 멸망이 임할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집이란 여로보암의 왕조를 말하는데, 여로보암의 아들과 그의 계승자인 스가랴가 암살 되었을 때에 종언을 고합니다(왕하 15:8-10).
하나님께서 공의의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측정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메뚜기와 불의 환상은 심판의 경고를 담고 있으며, 다림줄은 하나님의 기준이 우리의 도덕적 삶에 적용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회개하고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과 행동이 사회와 공공 정책에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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