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05-01)
칭의에 동반된 축복
로마서 5장 1-11절
미국의 헨리 위드 비쳐 목사는 “고난은 믿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옵니다. 이는 사람을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하며, 불쌍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씨를 천 배로 늘리기 위해 쟁기질로 땅을 비옥하게 하듯, 고난은 우리에게 기쁨과 영적인 결실을 더하여 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고난을 통해 유익을 얻은 경험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하기 쉽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유익을 찾기보다는 또 다시 좌절과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고난은 고통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영원한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소망을 품게 합니다. 바울은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내어주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하나님과의 화해가 결국 그들을 최종적인 구원의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평화와 소망(1-4)
성도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해결해야할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죄(罪)’라고 말합니다. 로마서를 통해 죄의 문제를 잘 해결이 될 수 있는지,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있는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1-4)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본문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에 대한 결론입니다.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할 것 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경험하는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그 의로움에 근거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⑴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얻은 첫 번째 축복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곳에서 ‘화평’은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2:14). 이는 인간 내면의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라 관계적 개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화평을 받자!’가 아니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입니다. 화평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와 화평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과의 화평이란 거짓입니다.
⑵ 즐거움을 누리는 삶(2)
바울은 4장까지에서 다른 또 하나의 주요 주제를 언급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상기시키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이 아니라 잠시 동안 주어질 뿐이고, 세상의 즐거움을 얻을수록 만족되지 않고,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기쁨은 충만한 기쁨입니다. 우리 내면에 주신 기쁨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그 즐거움은 대제사장이 지성소를 들어간 것처럼, 은혜의 장막 안으로 들어간 능력과 권리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1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11)
⑶ 소망을 누리는 삶(3-4)
믿음으로 의롭게 될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환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환란은 인내를, 그리고 그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우리를 훈련시킨 후에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가지 어려운 문제점들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평온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모든 것이 순탄해야 되지 않는가? 만사형통(萬事亨通)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도의 만사형통(萬事亨通)만을 말씀하진 않으셨습니다. 성도들은 만사형통하기 보다는 이 세상에서 고난을 더 많이 당합니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이나 죄악에 정당히 타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환난을 받습니다. 왜, 성도들은 세상의 악한 방법과 타협하지 않습니까? 고난받을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은 왕의 품위(品位)가 있어야 합니다. 왕이 내시(內侍)같으면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 사람들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죄악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귀를 자녀와 같은 행동을 해서 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세상의 악한 것들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더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마태복음 10:22,23). 우리 성도들이 고난을 받아도 인내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소망을 이루는 줄 알이로다”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소망(所望)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망입니까? 하늘 나라의 소망입니다. 하늘 나라의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소망의 근거로서의 하나님 사랑(5-8)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환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을 받는다면, 성도들이 환난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 환난을 이겨낼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더 나가서 환난 중에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소망이 없는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소망에 대한 것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영적인 천국을 보지 못하지만, 우리들이 천국을 소망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핍박합니다.
⑴ 성령을 통해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5)
로마서 1:16절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울은 5절에서 그 복음의 약속인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즐거워 할 수 있는 비결을 보여 주십니다. 5절에서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비결을 바울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이다’(5)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5:5에 이르기 전까지 ‘성령’이라는 단어를 3회만 사용할 정도로 아껴왔습니다. 5-7장에서 이 세대의 죄와 사망의 다스림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음 세대의 새로운 생명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역설하게 될 바울은, 8장에 이르러서야 그 생명의 결정적인 운반자로 성령을 소개합니다. 스데반 집사님께서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면서 돌에 맞아서 기쁘게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7:55-56). 영적인 눈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도 ‘성령이 충만하여’(7:55)라고 소개합니다. 본문의 말씀에도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라고 원인을 말씀합니다.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소망을 확신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순간순간 필요에 따라 조금씩 배급받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성령에 의하여 성도들의 마음에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른땅에 물을 부어서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해 주시듯이,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우리의 심령에 풍성하고도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날마다 담대하게 나가시길 축원합니다. 세상의 죄악에 패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부끄럽게 아니한다”는 말씀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적국(敵國)에게 패배해서 승리한 적군의 장군 앞에서 패배했다고 머리를 숙이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분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승리해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⑵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6-8)
하나님의 사랑이 말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사실에서 나타납니다. 5-8절에서 바울은 ‘죽다’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것은 하나님 사랑의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한 대상에 대한 바울의 묘사는 그 사랑이 주는 충격을 더 해줍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동료 인간들 중 의인이나 선인을 위하여 죽는 것도 쉽지 않음을 바울은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라서 1:18-32에서 바울이 말한 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 사망(1:32)의 다스림에서 헤어 나올 힘이 없는 연약한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충격적입니다. 10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라는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원수와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큽니다. 그리스도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순종을 감당하셨습니다.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순종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확증’ 되었습니다. 이 단락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모든 구속행위의 동기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불뱀의 심판을 하셨을 때,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게 하셔서 구리 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살아나셨듯이 말입니다(민수기 21:9).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화해에 근거한 구원의 확신(9-11)
마귀는 거짓 것들인, 육신 쾌락, 세상적인 물질, 욕심을 채우는 만족 등과 같은 것으로 만족하려고 유혹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잠시 순간적인 만족은 줄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만족들 뒤에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의 고통이 따릅니다. 성도들은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능력이 임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9-11)
이 구절들은 우리의 신분과 하나님과의 화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목하게 된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⑴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얻은 의로움과 구원(9)
마지막 소단락에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미래적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줍니다. 우리는 희생제물 되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 즉 ‘죄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9a) 죄인인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하셨다면, 이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으로 들어간 우리를 그 그리스도 때문에 최후의 심판에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실 것은 더더욱 자명한 일입니다(9b).
⑵ 그리스도의 죽음과 생명을 통한 화해와 구원(10)
10절은 이를 재차 확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케 하셨습니다. 그러한 희생적 사랑을 감수하신 하나님이, 이제 하나님과 화해한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부활 생명에 동참케 하실 것은 더욱 자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화해하다’라는 단어는 외교적인 용어입니다. 한때 적대국이었던 나라가 동맹국이 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당시에는 ‘화목’이 가능하려면, 항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묘사하는 화목은 상식을 뒤집습니다. 바울서신에서 이 단어는 4회 더 등장하는데, 고린도후서 5:18-20에 3회나 사용됩니다. ‘화해’라는 말은 5:1에서 바울이 사용한 표현 그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들이 하나님과 평화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과 고린도후서 5:18-20 모두에 나타난 화해의 가르침에서 눈여겨볼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화해의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고린도후서 5:18)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화해 사역을 위해 순종하신 분으로 등장합니다. 둘째로, 두 본문 모두 화해의 개념을 하나님/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성도가 얻는 의로움의 혜택과 연관시켜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린도후서 5:14)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21) 9-10절 모두에서 바울은 성도가 얻게 될 미래적 구원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키신 과거의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한 현재적 의로움과 화해의 관계와 연결시킵니다.
⑶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을 자랑함(11)
바울이 재차 확인하듯이, 하나님과의 화해와 미래적 구원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해 있으므로 그리스도 이 외에 자랑할 자가 없습니다. 잠시, 성도들은 뜻하지 않는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란 사실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어떤 것들에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성도들은 자유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도록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이미 세상을 이기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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