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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13-02)

 


마지막 때 일어날 사건들

마가복음 13장 14-37절


 

흔히 사람들은 원하는 정보는 ‘구독’이나 ‘좋아요’를 누르지만, 원치 않는 정보는 차단이나 음소거를 통해 스스로 정보를 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경고도 수많은 경고 중 어떤 하나의 경고쯤으로 치부할 뿐입니다. 어떤 경고와 정보에 잠금을 설정하고 잠금을 해제하고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는 성전 파괴 직전에 일어날 일들을 좀 더 직접적인 상황들을 서술해 줍니다. ‘열방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때는 신속하게 대피해야 할 상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이 매우 긴박한 것임을 몇 가지 예로 설명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성전 파괴 및 인자의 통치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십니다. 성전파괴에 대한 말씀을 마치시고는 재림에 대한 주제를 언급하십니다.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14-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홀연히 임하실 것입니다. 그 날을 대비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피난처 삼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주 잠깐만이라도 다른 일을 해도 된다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준비하고 나서 그 후에 주님이 원하신 삶을 살겠다고 미루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14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14-20)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예고하면서도 택한 백성을 위한 시나리오를 잊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지으신 때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다시 없을 그날을 대비한 행동요령을 조목조목 말씀해 주십니다.

 

(1) 매우 긴박한 상황(14-18)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 파괴 이전에 유대 땅에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성전이 이방 세력들에 의해 먼저 유린 될 것입니다. 이것을 ‘14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4)라고 하십니다. 성전이 유린 되는 일이 멸망의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선 것을 보거든’ 이라는 표현은 다니엘 9:27에 등장합니다. 이 표현 또한 문맥상 성전 파괴와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성전)에 선 것을 볼 때에 이것은 신속하게 대피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이 얼마나 긴급한 것인지를 부각하십니다. 이는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이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가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을 만큼 긴급한 상황이라고 하십니다. 농부는 일할 때 보통 겉옷을 벗어놓는데, 이 상황은 그 옷을 찾기 위해서 뒤로 돌아서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부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긴박한 상황을 샬롬이 빼앗긴 상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 가십니다. 예수님은 이 시기가 젖먹이와 임신한 여인들에게 재앙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요세푸스는 주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해주었는데, 예수님의 말씀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실제로 발생했다. 사실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그림은 샬롬의 상징인데, 그샬롬이 더는 제공되지 않는 시기가 될 것이다.

 

(2) 예루살렘 파괴 때 참상(19-20)

 

예수님께서는 그 참상이 매우 극심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19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9)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역사상 유래 없는 파괴와 살상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임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부심이요 자존심이던 예루살렘이 하루 아침에 황무지로 변할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에 이러한 표현들이 종종 등장합니다(참조. 출애굽기 10:14; 11:6). 그러나 그들이 메시아에게 행한 일을 보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끔찍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사람들을 살리시려고 그 심판의 날을 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이 파괴되는 것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향한 관심을 놓지 않으시고 자비와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세상 역사에서는 주후 70년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 사건을 로마 장군 디도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사건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십니다. 과거 앗수르와 바벨론처럼 로마도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환란을 집행하는 수단과 그 기한을 정하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주관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과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 역사의 진행을 통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고 계십니다. 이 주권을 믿어야 성도들이 세상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의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만용이나 착각이 아니라, 그것을 아는 것이 참 지혜이며 영적인 안목입니다. 세상의 역사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21-23)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임박할 때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일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적과 기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환상을 심어줍니다. 우리는 미혹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21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1-23)

 

성전 파괴와 관련된 여러 어려움들은 외부적인 상황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때에 내부적으로도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출현할 것이라는 경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 가운데 있을 때가 그들을 미혹하기에 좋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말이 다 거짓인 이유가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동시에 알아볼 것입니다. 다시는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시듯이 조용히 오시진 않을 것입니다. 다 주목하여 보도록 영광중에 오실 것입니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는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주후 1세기경에만 대략적으로 60여 명 정도의 거짓 메시아가 출현했습니다. 그들도 이적과 기사를 통해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이적과 기사만을 보고 현혹되는 일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직전에 이러한 일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성전 파괴와 인자의 오심(24-27)

성전 자체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고, 믿음의 확신과 경고를 받은 곳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임재한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시는 집을 파괴시키며 희생하면서 까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24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4-27)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성전 파괴와 관련해서 진행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그 환난 후’라는 표현은 성전 파괴와 연관해서 예루살렘에 임한 환난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합니다(14-23). 구체적으로 더 묘사합니다.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는 묵시적인 표현입니다. 문맥 속에서 이러한 구약 인용은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데, 심판의 이유는 하나님의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그들이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를 배척한 유대교와 유대 종교 시스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적절해 보입니다. 마가의 문맥에서 이 표현은 문자적 의미라기보다는 심판의 대한 상징적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귀 등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라는 표현은 다니엘 7:13-14을 반향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니엘에서 이 표현은 인자가 땅으로 오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인자가 종말론적 왕으로 등극하여 권위와 영광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성전은 파괴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워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십니다. 그 새로운 왕권과 통치는 이스라엘의 종교 시스템의 핵심인 성전이 종결을 고하는 시점에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불러 모으는 선교 활동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을 이방으로부터 모으는 일은 성전 파괴 이전에도 일어났지만, 이제 성전 파괴는 새로운 성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새롭게 구성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비유(28-31)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오셔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며 구원의 백성이라 생각했지만, 열매 없는 과실나무처럼 영적으로 아무런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8-31)

 

앞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하나는 ‘성전 파괴 전에 있을 증조’였고, 다른 하나는 ‘인자의 재림’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이 세대에 일어나겠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것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란 13-24절에 기록된 현상을 말합니다. 또한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르렀다는 것은 인자의 통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파괴 및 인자의 통치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계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언급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이 비유가 예루살렘 성전을 암시하고 있다는 매우 구체적인 힌트가 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서 무화과나무가 마가의 내러티브 안에서 성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이 모든 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맥에서 ‘이 모든 일’은 성전 파괴 및 이와 연관된 징조들을 가리킵니다. 이 모든 일이 ‘이 세대’, 즉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발생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예수님의 새로운 성전이 세워져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일이 이 세대 안에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말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32-37)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모두 말세에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처럼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소망합니다. 삶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천국의 소망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32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32-37)

 

마가는 이 시점에서 재림에 대한 주제를 처음으로 언급합니다. 여기서 ‘그 날과 그 때’라는 표현은 명시적으로 마가복음에서 처음 재림에 대한 주제가 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앞 단락 17, 19, 20, 24절에는 ‘그 날들’이라는 복수 형태를 사용해서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조들이 나타나는 날들을 복수형으로 나타냈는데, 여기서는 단수 형태의 ‘그 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32절의 ‘그 날’이 이전에 언급되었던 성전 파괴와 관련된 징조의 날들과 명시적으로 구분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재림의 시기는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이나 시각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깨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깨어 있음을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십니다. 주인은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맡깁니다. 따라서 종들은 주인이 맡기신 사무를 감당해야 하며 문지기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나타난 강조점은 파루시아의 때가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과 가장 예기치 않던 때에 임하리라는 점입니다. 성전 파괴의 때에 관해서는 분명한 징조가 주어지고 이 세대 안에 발생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파루시아에 관해서는 어떠한 징조도 없을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시에 심판의 때를 맞이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가올 미래도 준비가 안 된 마당에 무슨 재림의 때냐며 사람들은 인자의 날에 대해 시큰둥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어느덧 재림은 우주여형보다 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미래를 향해서 빠르게 돌진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망과 신앙에는 여전히 버퍼링만 반복하진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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