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02-01)
하나님의 응답(2)
하박국 2장 2-11절
힘들고 깜깜할수록 하나님께 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정작 하나님의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습니다. 기도하여 답답한 것을 시원하게 풀어내는 것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느낌으로 기도를 생각한다면, 상담사를 찾아가서 넋두리를 늘어놓으시고, 넋두리이나 하소연을 들으시고 정작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만든다면, 이런 태도는 정말로 기도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하박국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바빌론을 향한 심판을 정당성을 주장하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심판이 끝이 아니며, 최종적인 심판의 때가 곧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묵시에 대해서 설명하시고(2-3), 의인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으로 살게 됨을 알려주십니다(4). 또한 악인의 특징을 묘사하신 후(5-6a), 다섯 가지 재앙(6b-20)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2-5)
환경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묵시를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달려가도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복잡한 환경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말씀에 집중할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의인으로서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2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5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2-5)
하나님께서 심판의 때를 정하시고, 그때가 되면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심판을 시행하실 것입니다. 거짓되거나 실망시키는 일 없이 계시하신 대로 성취하실 것입니다.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고 확실한지 보이시기 위해 계시를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선명하게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기에 더디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확실한 실현만은 굳게 믿고 인내를 가지고 말끔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⑴ 묵시에 대한 소개(2-3)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묵시’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시(ןוזח하쫀)’란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내려주시는 ‘환상’을 뜻합니다. 말씀을 통해 현실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현실을 이기는 방법은 말씀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바벨론의 공격이라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을 이기는 길은 오직 말씀뿐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을 통해 현실을 보는 것을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3). 바로 심판이 임하거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묵시를 판에 선명하게 기록해서 달려가면서 읽어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환상의 내용은 악한 자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내용인데, 바벨론을 향한 선포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정한 때가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바로 심판이 응답이 되지 않게 보일지라도 언젠간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환상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에 거짓된 것이 결코 아닌데, 다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바벨론을 데려와 유다를 심판하시는 일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라야 바벨론을 심판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2) 악인과 의인의 비교(4)
악인과 의인을 대비합니다. 즉 악인은 교만하며 정직하지 못합니다. 즉 교만하며 속과 겉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1장에서 말하고 있는 공의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에 비하여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신실함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신실함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벨론을 심판하는 그 방법과 그 시기를 선택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신실함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의인입니다.
다섯 가지 ‘화 있을진저’: 첫째와 둘째(6-11)
성도는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가 들끓어도 믿음으로 살아가야합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는 항상 눈에 보이는 악한 권력자가 아니라 눈에 뵈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악인에게 집중하면 불만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믿음은 우리를 견고하게 서게 합니다.
6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7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8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9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0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6-11)
2:6-20에는 ‘화 있을진저’가 다섯 차례 나와 단락을 형성하며, 단락마다 바벨론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이 단락은 하나님의 둘째 대답(2:2-5)에 대한 부가적인 계시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고발된 바벨론의 죄악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는 근거가 됩니다.
(1) 첫째 ‘화 있을진저’(6-8)
교만하고 거짓된 바벨론을 향한 첫째 ‘화’는 그가 여러 나라를 노략했음을 지적하면서 똑같이 앙갚음당할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모습을 ‘자신을 넓혀가며 족한 줄 모르고 열방들을 모으는 자’(5)로 표현합니다. 바벨론은 욕심과 교만으로 인해 스스로는 넓어지고 성장하는 줄 알지만 결국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앙갚음은 열방이 바벨론의 패망을 속담과 수수께끼로 만들어 조롱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열방과 민족들을 쓸어 모으던 자(5,6)는 그 열방을 비웃었지만, 때가 이르면 패망하여 열방의 웃음거리(오바댜 12-13; 나훔 3:18-19; 예레미야애가 1:7)가 될 것입니다.
6절의 ‘언제까지 이르겠느냐?’는 ‘이제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열방이 장차 바벨론을 충자하며 조롱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6절 하반절부터 첫 번째 화를 선포합니다.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모으는 자를 향한 저주입니다. 다른 나라를 멸망시켜서 자기 것으로 삼았는데 그것은 사실상 빚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입니다. 바벨론은 자기 소유가 아닌 열방의 땅과 백성과 재산을 모아 늘려가는 자이며, 담보(‘볼모’로 번역됨)를 늘려 빚을 많이 진 자와 같습니다(6). 채무자들이 갑자기 일어날 것이고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 바벨론을 괴롭힐 것이며 결국 바벨론이 노략을 당하게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7). 그리하여 그동안 바벨론에게 침략 당했던 민족들로부터 남은 자가 나와서 바벨론을 침략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벨론이 그들의 피를 흘리면서 강포를 행했기 때문입니다. 즉 첫 번째 화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공의를 행하셔서 그들의 행한 대로 갚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8).
이런 사람에게 갑자기 채무자들(‘억누를 자들’)과 압제자들이 들이닥치듯, 바벨론은 약탈당할 것입니다. 바벨론이 위세를 높여가며 열방을 공격할 때, 백성을 죽이고 땅, 성읍, 주민에게 강포(폭력)를 행했으므로, 이제 반대로 열방의 남은 백성이 바벨론을 노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대와 바사 연합국을 일으켜 바벨론을 약탈할 계획을 이미 갖고 계셨습니다(예레미야 25:12,14; 50:10).
(2) 둘째 ‘화 있을진저’(9-11)
둘째 ‘화’는 ‘자기 집을 위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에 대한 경고입니다. 바벨론 특히, 왕의 이기심과 탐심을 책망합니다. 하지만 악인은 자신의 악으로 인해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은 제 나라와 왕조만 귀하게 생각해, 재앙이 닥칠 때 피할 있도록 높은 데 둥지를 틉니다. 마치 에돔이 높은 산 바위틈에 자리 잡고 적군이 쳐들어올 수 없다고 자만한 것처럼(오바냐 3), 바벨론 왕 또한 적군이 틈탈 수 없는 곳을 마련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 재산을 증식합니다. 그러나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는 수치와 범죄일 뿐입니다. 그가 백성들을 가지 치듯 잘라낸 것이 도리어 그의 왕조에 수치를 가져오고, 자신에게 죄를 짓게 만듭니다. 즉, 바벨론에게 심판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입니다. 바벨론이 많은 열방을 멸망시킨 것이 사실은 자신에게 수치를 불러오게 만드는 충고였음을 조롱하는 뉘앙스로 알려줍니다. 열방을 취한 것이 잘한 행동인 줄 알았기에 충고가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국은 자신을 멸망시키는 수치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10).
11절에서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나무('집’으로 번역됨)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라는 문장은 담의 돌과 나무로 만든 집의 들보가 빠져 무너지는 모습으로, 바벨론 왕조의 몰락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바벨론의 집이 무너지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담에서 돌이 부르짖는다는 것은 성벽의 돌들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목재 구조물에서 들보가 응답한다는 것은 목재로 지은 집들로부터 들보가 무너져 내린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화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악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 곧 바벨론에게 있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부당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부정적하고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정직한 자들은 손해를 보는 일이 흔합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믿음이 요청되는 상황입니다.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악의 최후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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