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01-02)
하박국의 질문(2)
하박국 1장 12절-2장 1절
우리는 부모님에게서 안정감을 누립니다. 그것은 우리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직위가 어떤 위치든지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부모님에게서 안정감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안정감을 누리는 것은 부모님께서 힘이 강하거나 재물이나 능력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다만 부모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믿음과 신뢰가 안정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안정감을 누리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토록 변함없으실 사랑으로 안정감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 하나님과 하박국의 두 번째 대화로 하박국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을 요청하면서 유다 왕국을 돌보아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정결하심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계획이 공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박국의 질문(2)(1:12-2:1)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범죄한 사실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징계하시려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민족을 세우신 것은 더 이해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징계의 도구를 넘어 바벨론은 다른 여러 나라들까지 정복하며 승승장구합니다. 하박국은 화가 날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입니다. 악을 싫어하시고 패역을 참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상황에서도 잠잠 하시는지, 마치 보지 못하는 것처럼 가만히 계시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모든 것의 대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12○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13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14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15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17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2:1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1:12-2:1)
하박국은 하나님의 결정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신뢰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자기 힘을 신으로 삼았지만, 오직 한 분 여호와만이 만세 전부터 역사의 주인으로 계셨으며,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1) 하나님의 영원성에 기초한 질문(12)
하박국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영원성에 기초하여 질문합니다. “주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라는 하박국의 질문은 수사학적 질문을 사용하는데, 수사학적 질문이란 긍정과 부정을 뒤바꾸고, 의문문과 평서문을 뒤바꾸어,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는 기법입니다. 즉 “주는 만세 전부터 계시나이다”의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하박국은 왜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려는 것입니까? 12절 중반부에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라는 구절을 함께 생각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서기관의 정정”으로 불리는 본문으로, 원래는 “주여 당신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십니다”라는 본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죽음에 이르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한 표현이 아닙니다. 문장 그대로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며, 그분의 존재하심은 끝나지 않습니다. 즉 시간이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존재를 정의를 내리거나 제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2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심판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고,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여기서 ‘그들’은 5-11절에서 언급된 ‘바벨론 제국’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을 세우신 이유를 ‘심판’과 ‘경계’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판’으로 번역된 원어가 바로 ‘미쉬파트’인 것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구현된 상태 혹은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한 도구 및 기준을 뜻합니다. 4절에서 ‘정의’로 번역되었고 7절에서 ‘당당함’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미쉬파트’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잘못된 ‘미쉬파트’의 기준을 가진 바벨론이 유다 땅에 오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12절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시는 기준은 바로 이 ‘미쉬파트’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기준에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범주 안에서만 바벨론을 사용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하반절에 나오는 ‘경계하다’의 원어인 ‘야카흐’는 ‘꾸짖다’, ‘책망하다’라는 의미인데, ‘미쉬파트’와 비슷하게, 바벨론을 사용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의 범주를 제한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을 꾸짖고 책망하시는 범주, 즉 하나님께서 바른 기준으로 세상을 지도하시는 그러한 범주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기에, 그래서 변치 않으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의 ‘미쉬파트’는 올바르게 실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7절에 의하면, 그들의 마쉬파트는 자신 스스로가 기준이 되는 미쉬파트이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데려와 이스라엘에 ‘미쉬파트’를 세우신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정결하심에 기초한 질문(13)
하박국은 이어서 하나님의 ‘정결하심’에 기초하여 하나님께 계속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눈이 ‘정결하시기 때문에’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셔서는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먼저 하박국은 하나님의 ‘눈’에 대해서 말합니다. 상반절을 직역해보면, ‘하나님의 눈은 악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나도 정결하시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눈은 악과는 접촉하실 수도, 악을 바라보실 수도 없다는 개념입니다.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라고 번역된 부분에서 ‘차마 못하신다’라는 부분의 원어는 ‘야칼’의부정어법인데 ‘~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패역함을 볼 능력이 없으시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패역과 함께하실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시적 표현인비다. 하박국은 이런 두 가지 표현들을 통해 하나님과 악/패역은 공존할 수조차 없음을 강력하게 부각시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연이어, 하나님께서 그러한 약하고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고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특별히 악인이 의인을 집어삼켜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다’라고 말합니다.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다는 것으로, 정결하신 눈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3) 낚시에 비유한 질문(14-17)
이제 하박국은 14-17절을 통해서 바벨론의 행위가 얼마나 악한지를 묘사합니다. 기본적인 이미지는 바벨론을 낚시하는 악한 어부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14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바다의 고기처럼,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처럼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논법입니다. 사람이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다스리는 자 없는 기어 다니는 것’이 되었다는 것은 창세기 1장의 문화명령을 뒤집어놓는 개념입니다. 창세기 1:26-28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다의 물고기와 땅의 기는 것을 다스리게 하셨는데, 하박국은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을 바다의 물고기와 땅의 기는 것처럼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고기나 기는 것과 같은 인생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15-17절은 바벨론 제국이 그런 물고기와 기는 것들을 낚시한다고 설명합니다. 15절은 여러 종류의 낚시 도구를 언급합니다. 낚시, 그물, 투망으로 모으면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16절은 바벨론이 이러한 자기의 소득을 기뻐하면서 그물과 투망에게 제사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이런 결과를 주신 분은 분명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데, 바벨론은 투망과 그물이 자신들에게 물고기를 주었다고 여겨 그것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물과 투망으로 인해 살찌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5-16절은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의 통렬한 비판입니다. 바벨론에 유다 왕국을 넘겨주면, 바벨론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모든 영광을 돌릴 것이기에,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은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비통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17절은 바벨론이 그렇게 한 나라를 살육한 후에 다른 나라를 계속 살육해나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세는 없어지고, 온 땅들이 모두 바벨론의 손에 넘어갈 수 있으니, 그런 일은 결코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14-17절은바벨론을 악한 낚시꾼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지식 없는 나라임을 드러낸다. 이런 바벨론에게 유다를 넘겨준다면, 그것은 온 땅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열방을 회복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구속의 뜻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것임을 주장합니다. 하박국의 주장은 매우 논리적이며, 듣기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겠다는 선언(2:1)
하박국은 이런 주장들을 모두 펼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파수하는 곳과 성루에 서서, 과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불러오실지 지켜보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실지를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 자신 역시 다시금 대답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계속해서 논쟁하겠다는 하박국의 의지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하박국의 불평과 분노가 가득 담긴 표현입니다. 하박국 자신의 판단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불러오겠다 하신 1:5-11의 말씀은, 하나님의 공의인 '미쉬파트'에 결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시기 전까지, 하박국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언젠가 우리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고, 우리는 주를 찬미함으로 구의 구원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애통하며 기다리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힘써 일하며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탄식의 기도에 응답하실 날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35 하박국(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박국(완) - 하박국 3장 1-19절 - 하나님의 심판 (4) | 2023.12.05 |
---|---|
하박국(05) - 하박국 2장 12-20절 - 하나님의 응답(3) (2) | 2023.12.05 |
하박국(04) - 하박국 2장 2-11절 - 하나님의 응답(2) (2) | 2023.12.05 |
하박국(02) - 하박국 1장 1-11절 - 모순과 정의를 공감하는 선지자 (0) | 2023.10.23 |
하박국(01) - 하박국 서론 (0) | 2023.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