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04-02)
이방인 여인을 통한 사역
사사기 4장 11-24절
격투기 경기인 ‘K1’나 ‘권투’는 상대방을 어떻게 넘어뜨리느냐에 따라 승패를 가릅니다. 시합 중에 선수가 결정적인 한방을 날림으로 경기가 끝나는 경우에 ‘결정타를 날렸다’고 합니다. 결정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자신을 서서히 몸을 풀듯이 하면서, 상대방 선수에게 운동량이 많도록 유도해서 지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지치고 나면 결정타 한 방을 날려 KO승으로 이끕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결정타는 무엇입니까?
-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바락은 가나안 군대장관 시스라와 전투하기 위해 다볼 산에 진을 치고, 가나안 시스라도 기손 강가에 진을 칩니다. 이 전쟁을 승리케 해주시는데, 남성 지도자들(바락과 시스라)을 통한 것이 아니라 드보라와 야엘와 같은 여인들을 통해 이루어가십니다. 그녀들의 용기 있는 믿음과 지혜로운 행동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담대한 승리를 거둡니다.
시스라가 기손 강으로 군사를 모음(11-13)
세상에서는 능력이 강해 보여야 합니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즉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을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믿는 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어떠한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섬리를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11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11-13)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군사들 진영인 하데롯에서 기손 강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 전투를 ‘므깃도 전투’라고 합니다. 그가 군사를 기손 강으로 옮긴 것은 그곳이 제 지리적으로 철병거를 움직이는 데 용이했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 기손 강으로 이같이… 네 손에 붙이리라”(7)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내시기 위해 준비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겐 사람 혜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것더라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11-12). 시스라에게 바락의 군사들이 다볼 산에 진쳤다고 알려준 것은 헤벨의 집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은 겐 족으로 유목생활을 했는데, 모세의 권유로 가나안에 들어와서 아랏 남쪽에 있는 유다 광야에 거했었습니다(1:16). 그런데 이들이 자기 만족의 거처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해 게데스에서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습니다. 즉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시기 위해 오래 전에 유목생활을 하는 그 가족을 이주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행하심으로써 그분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혜벨의 가족이 시스라에게 다볼 산에 바락의 군대가 진쳤다고 알려준 사실에 살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야빈의 학대를 당하는 상황에서 겐 족속이었던 헤벨의 가족은 사업상의 거래를 위해 가나안 족속과는 친분을 쌓으면서 안전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이해관계 속에서 헤벨의 가족은 당시의 전황을 시스라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롬 8:28).
바락이 다볼 산에 진쳤다는 소식을 들은 시스라는 즉시 하데롯에서 기손 강으로 병력을 이동합니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존 강으로 모은지라”(13). 철병거를 이끌고 있는 시스라가 기존 강으로 군사를 모은 것은 아마도 이 때가 건기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우기(雨期)철이라면 기존 강이 범람하여 이스르엘 평원에 진을 칠 수 없었기에 그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건기에 다볼 산을 앞에 두고 펼쳐진 기존 강가의 넓은 평원은 철병거를 앞세워 전투를 치르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다볼 산에 진친 바락의 군사들을 산 아래로 유인하면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멸하심(14-16)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까지도 사용해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목숨처럼 의지했던 것들도 한순간에 무너지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건기에 갑작스런 폭우가 내려 기손 강이 범람하게 되었을 때에 시스라의 군대가 얼마나 당황했을지를 상상이 갑니다.
14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14-16)
기손 강에 시스라의 군대가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서 이들을 바락의 손에 붙이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내어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6). 기손 강에 모인 시스라의 군대를 보자 드보라는 주저하지 않고 바락에게 공격하도록 명합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14). “일어나라”는 드보라의 말은 군사를 일으켜 싸움에 임하라는 명령으로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승리의 확신이 없다면 철병거 구백 승이 진치고 있는 넓은 평원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내려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는 군사 전략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여성의 무모함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의지해서 명령한 것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앞서 행하심으로써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시지 아니하시느냐?” 시스라의 군대가 기손강에 진친 사실만으로도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싸움의 주체는 드보라도 바라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대장이 되셔서 이스라엘 군대에 앞서 행하셨던 것입니다.
드보라의 확신에 찬 명령에 따라 바락은 일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철병거가 버티고 있는 이스르엘 평원으로 내려갑니다. 바락의 군사들 역시 드보라와 동일한 믿음으로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통해 약한 자를 들어 세상의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고전 1:27-29).
이제 바락의 군대에 앞서 행하신 여호와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15). “쳐서 패하게 하셨다"라는 말은 '멸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스라의 군대를 바락의 칼 아래 멸하시는 역사는 5장의 드보라의 승전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바락의 군대가 다볼 산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기손 강에 폭우가 쏟아져 이스르엘 평원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고 철병거는 진흙탕 속에 오히려 적군의 표적만 될 뿐이었습니다. 갑작스런 폭우로 당황하여 혼란에 빠진 시스라의 군대를 바락의 군사들은 쉽게 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투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군대장관 시스라조차 병거에서 급히 내려 도망쳤습니다.
바락과 알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들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16). 이날의 완전한 승리가 두 가지로 나타나 있는데, 첫째는 시스라의 군대는 공격 한번 못해 보고 주둔지까지 쫓겨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시스라의 군대에는 살아 남은 자가 한 명도 없이 오직 군대장관 시스라만 도망쳤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시스라가 여인의 손에 죽임당함(17-24)
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들어 쓸만한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숨어있는 일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을 세상의 법칙으로, 가령 강력한 군사력이나 많은 경제력과 같은 것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무능력해 보인 장애인이나 여성같이 미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17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22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23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17-24)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어려운 때에도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자기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해서, 그들을 구원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많은 경우에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1) 도망쳐 겐 족속 헤벨의 집에 도착(17)
가나안의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바락이 바볼 산에 오른 것을 알고, 시손 강으로 달려들어 갔습니다(13). 시손 강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 말라서 일반 도로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손 강에 자랑스럽게 철병기 900승을 몰고 전투에 참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갑작스럽게 장대비를 내려서 시손 강에 홍수가 나게 하심으로 강력했던 철병거가 아무런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스라는 모든 것을 잃고 걸어서 혼란함과 피곤함 가운데 도망쳐서, 평소에 평화조약을 맺고 있던 겐 사람 헤벨의 집으로 도착하였습니다(17). ‘겐 족속’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 또는 호밥의 자손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에 유다 지파와 함께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에 거주하다가, 유다의 남쪽 끝 황무지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 족속은 목축업을 하고 있어서 한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겐 족속 중에 ‘헤벨’이란 사람은 무리를 떠나서 납달리 지파의 땅에 있는 도피성 게데스 근방에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가나안 왕 하솔의 보호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11).
이처럼 두 종족은 서로 왕래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겐 족속 중 작은 가족이지만, 헤벨이 어디에 장막을 치고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스라는 이스라엘의 장군 바락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있는 헤벨의 집으로 걸어서 도망한 것입니다(17).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계획이나 우연조차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스라가 도망하여 도착한 곳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바로 겐 사람 헤벨의 장막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2) 시스라를 맞이하는 헤벨의 아내 야엘(18-19)
겐 족속의 헤벨에 장막에 도착한 시스라를 맞이한 사람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습니다(18). 시스라는 가나안 왕 하솔과 겐 족속 헤벨의 사이에는 화평의 조약이 있었습니다. 야엘의 극진한 환대는 시스라가 최적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하며 만족했습니다.
시스라는 안심하고, 당시 관습으로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여인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야엘은 시스라를 이불로 덮어줍니다. 시스라를 자신의 장막으로 들인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고, 그만큼 시스라에게는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스라를 맞는 야엘의 극진한 영접으로 완전히 안도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야엘의 환대로 그녀를 믿게 된 시스라는 물을 달라고 합니다(19). 그러자 야엘을 시스라에게 물보다 영양가가 있고 더 좋은 우유를 대접합니다. 우유를 대접하는 것은 더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시스라에 대한 호의입니다. 피곤하고 배고픈 시스라에게 좀 더 영양가 있는 제공하여, 야엘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호의를 품고 있음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암시에는 당시 우유에는 마음을 평안케 하는 성품이 있어서 시스라를 깊이 잠들게 하는 여할을 한 것입니다.
우유를 마시고 이불을 덮은 시스라는 잠들기 전에 자신의 안전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부탁합니다. 바락이 이곳까지 추적할 것을 예상한 시스라는 야엘이 자신을 숨겨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막 문 앞에 서 있다가 누가 도망자를 찾게든 “너는 없다 하라”라고 부탁합니다(20), 그러나 이 순간부터 시스라의 생명은 한 여인의 손에 달려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3) 시스라를 죽인 야엘(21-22)
시스라는 생명을 여인의 손에 맡긴 채 극도의 피로감으로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21). 시스라가 깊이 잠이 들었을 때, 헤벨의 아내 야엘은 시스라의 살쩍에 장막 말뚝을 박아 죽였습니다. 여기서 “살쩍”은 머리의 관자놀이를 가리킵니다. 그 당시 유목민에게 있어서 장막을 세우고 거두는 것은 여인들의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야엘이 말뚝으로 시스라를 박아 죽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스라는 전쟁에서 홀로 도망치다가 결국 여인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야엘은 속임수로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야엘이 애초부터 시스라를 죽이려고 했는지, 아니면 시스라를 죽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이 되어서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스라가 쫓기고 있음을 눈치채고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지혜롭게 처신한 것을 보면, 그녀의 행동이 상당히 의도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야엘은 자신을 믿고 잠이 든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이러한 야엘의 행위에 대해 성경은 5장에 나타난 드보라의 승전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축복하고 있습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야엘의 행동은 라합의 경우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수 2:1-21).
시스라를 쫓아온 바락은 그곳에 도착하자, 야엘은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미 말뚝에 관자놀이가 밝혀 죽어 있는 시스라를 보여줍니다(22). 수많은 군대를 호령하던 장군이, 힘없는 여인의 장막에서 장막 말뚝에 처절하게 죽어갔던 것입니다. 여인의 손에 죽은 시스라를 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한 성취됨을 확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 왕 시스라를 연약한 여인의 손에 죽게 하셨습니다. 바락은 단지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확인하는 증인에 불과했습니다.
(4) 이스라엘의 구원(23-24)
하나님께서 야엘이라는 여인을 통해, 당대 강력한 가나안 왕의 야일 군대장관 시스라를 제거시켰습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것을 23-24절에서 이렇게 기록하여 역사에 남깁니다.
시스라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은 마침내 야빈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야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죽게 하심으로써 아무도 그분의 영광을 빼앗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로 인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는 ‘가나안 왕 야빈’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이후로 성경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100여 년 전 여호수아가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했을 때, 이들을 가나안 땅에서 완벽히 제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가나안 왕 야빈으로 인한 불행의 역사가 되풀이되었던 것입니다.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시고 또한 여인을 통해 시스라를 죽게 하신 사실은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여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연약한 자를 통해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연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했듯이 믿는 자는 자신의 연약한 실체를 깊이 인식함으로써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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