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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01-01)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

말라기 1장 1-14절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뜨거웠던 믿음이 식어지고, 열정적인 헌신도 식어집니다. 이런 형상을 단지 봉사나 예배를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타락했습니다. 그들의 타락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에게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기기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누가 타락했으며, 어떤 식으로 타락했으며, 그 타락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의 긍극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책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되었으나, 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자기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이들을 책망하며 회개를 종용하십니다.

 

말라기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1)

하나님께서 부르심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치밀하고 섬세한 계획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시다가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우리를 부르시고 그 선하신 뜻대로 귀한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헌신으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에게 바른 관계를 맺자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1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1)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아직 선지자들이 예언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신앙의 감격이나 긴장감은 살아져 갔습니다. 그러면서 심판의 원인이었던 형식적인 예배와 외식적인 예배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하신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백성으로서 특권과 의무를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해서 그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여전히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말라기를 보내셔서 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진심어린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말라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말라기 1:1; 스가랴 9:1; 하박국 1:1)로 시작합니다. ‘경고’로 번역된 단어(마싸; 나훔 1:1; 하박국 1:1)는 특징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또는 선지자가 본 계시 등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원래 ‘집’, ‘부담’이란 뜻이나 ‘여호와의 짐’ 또는 ‘선지자의 짐’이라는 번역이 듣기에 매끄럽지 못하므로, 보통 ‘경고’, ‘계시’, ‘신탁’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 뒤에 대부분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므로, 심판을 내리실 하나님이나 전달하는 중개자의 부담과 고통이 이 단어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논쟁 :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 요청(2-5)

때로는 사랑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마음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았으니 사랑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끼리도 사랑하기 힘든지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는 자기만족을 위한 방편일 뿐이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진실한 예배일 수 없습니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2-5)

말라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질의문답을 통한 논쟁 형식으로 계시가 전개될 것입니다. 이 형식은 1:2-4:3까지 여섯 번이 반복하여 논의가 진행됩니다. 각 논쟁은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심, (2) 이스라엘의 반문, (3) 하나님의 설명과 책망의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첫 번째 논쟁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2a)

이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부담을 담은 첫 내용(1:2-5)은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이전에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택한 언약 백성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라고 하십니다. 이 진술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줄곧 사랑하고 충실하게 대하셨음을 뜻합니다(예레미야 31:3).

(2) 이스라엘의 반문(2b)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못마땅하여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반문합니다(2). 이 물음은 ‘대체 무슨 일을 우리에게 해주었다고 우리를 사랑했다고 하는 겁니까?’란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만과 의심의 표현입니다.

이 시기는 포로 귀환 및 성전 재건 이후로 추정되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깨고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주전 586년)로 보냈다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와서(주전 538년) 성전을 재건하고도(주전 515년) 오래 지났건만(약 주전 5세기 중엽) 기대만큼 정치, 경제적 부흥(학개 2:6-9, 15-23)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 바람대로 해주어야 사랑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릴 뿐 하나님을 멸시하여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는 자기 실체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2-3)

이런 이스라엘의 반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했고 에서는 미워했다’(2-3)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서와 야곱의 대조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인데, 하나님께서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창세기 25:22-23).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이 야곱에게 이어졌고(창세기 17:6; 26:3-4; 28:13-14), 야곱의 아들 열 두 명은 크게 번성하여 이스라엘 각 지파가 되었습니다(창세기 49:28). 이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며(출애굽기 19장),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여호수아 13-22장). 다윗을 통하여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았고(사무엘하 7장), 불순종으로 인해 포로로 잡혀갔으나 다시 돌아와 나라와 기업을 회복하고(역대상 9장; 에스라 1장),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에스라 6:14-15). 오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와 구원이 이스라엘과 함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사랑을 입고 있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자손의 번성(창세기 35장)과 기업(신명기 2:5; 여호수아 24:4)의 축복을 하나님께 받았지만, 에돔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언약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바벨론을 도와 유다를 침공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에돔에게 멸망을 선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미 에돔의 터전을 황폐하게 했고, 설령 그들이 폐허가 된 땅을 재건하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헐어버릴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3. 에돔이 산 곳은 악의 지역이 되며, 그들은 크게 패망하여 ‘하나님이 영원히 저주하는 백성’이라 불릴 것입니다(4).

반대로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끝장난 것 같았던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관계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이스라엘도 목격한 바이기에,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밖에서도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마땅합니다.

 

두 번째 논쟁 : 바른 제사 드리기를 원하신 요청(6-14)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알수록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린 것들이 빈약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잖게 여기지 않고서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경외하지 않으면서도 아쉬울 때는 긍휼과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성전 문을 닫는 것이 낫겠다고 분노하실 만큼 형식적이고 불손한 제사를 드리진 않습니까?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많으면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에는 무관심한 사람은 아닙니까?

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6-14)

말라기를 통한 하나님의 첫 번째 계시가 이스라엘 지체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확증했다면, 두 번째 계시인 1:6-2:9은 본격적인 책망의 시작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6a)

여기서는 제사장을 이스라엘의 대표로 지목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제사를 업신여겼다고 꾸짖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의 비유를 들어서 아들과 종이 각각 아버지와 종을 공경함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신 후, 제사장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주인이신 하나님을 왜 공경하지 않느냐고 책망하십니다(6; 이사야 1:2-3). 이 비유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암시하며, 특히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일원이 되어야 함을 함축합니다(출애굽기 19:6), 제사장과 레위인은 언약 백성 중에서도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를 드리는 일을 담당하는 자들입니다(민수기 3:1-13). 이런 자들조차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지 않는다면, 남은 백성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에게 들어야 할 호칭은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지만, 현실은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었으니 굴욕적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반문(6b)

그런데 제사장들은 ‘어떻게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6) 하며 어리둥절해합니다. 적반하장입니다. 이 반응은 1:2의 이스라엘의 반응과 다름없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눈감하고 악하고 무지한지를 보여줍니다.

(3) 하나님의 응답(7-8)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럽고 부정한 떡이나 병들고 눈먼 희생제물처럼 적합하지 않은 제물을 백성에게서 받아 하나님께 드린 행위가 하나님과 그의 이름을 멸시하는 일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7-8). 흠 없는 제물을 바쳐야 마땅한데(레위기 1:3,10; 3:1) 이 규례에는 신경 쓰지 않은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했나이까?’(7)라고 반박하며 하나님의 식탁(제단)을 거룩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그런 곡물과 짐승을 총독에게 드려보라고 비꼬십니다(8). 한 나라의 총독도 그런 물건을 받으면 언짢아하고 받지 않을 터인데, 온 세상의 왕 하나님께 그런 쓸모없는 제물을 드리며 은혜와 용서를 구한다면 어떻겠습니까!

(4) 불만족스러운 하나님(10-14)

➀ 거짓된 예배(10-12)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봉사와 예배에 대해서는 제단 불을 꺼 예배를 없애고 성전문을 닫는 게 낫다고 하십니다(10). 진정한 제사는 예배자가 하나님께 속죄하고 순종과 헌신을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화목을 누리는 ‘향기로운 제사’(레위기 1:9,13)입니다. 제사나 예배의 진정한 의미가 누락되고 가식적인 행사로 남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시고,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제사장과 백성에게 소홀히 취급되고 있지만, 그 이름은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열방 중에 크게 될 것입니다(11; 이사야 45:6). 그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예배하며, 그가 명령하고 기뻐하시는 정결한 제물을 드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있고 농작물의 피해도 있어(3:11) 형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아까워합니다. 그들이 가진 모든 소유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시편 50:8-14).

➁ 거짓된 마음(13-14)

또 하나님의 제단과 제물을 멸시하고, 제사를 번거롭게 여기며, 훔친 것이나 병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12,13). 제물에 합당한 수컷 짐승이 있어도 흠 있는 것을 가져와 하나님을 속이고 서원하며 복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공경심도 감사도 순종도 없는 제물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아버지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온 땅의 큰 임금이며, 열방으로부터 그 이름이 경외 받을 것이라는 점입니다(14). 제사장과 이스라엘에게 있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책망을 겸허히 받고 하나님 경외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어떻게 받으시는지 잘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그 이름을 멸시하고, 제사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제사장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욕보이는 일에는 한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분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참 제사가 아닌 형식적인 제사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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