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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8-03)


갈멜산에서 응답 받은 선지자 엘리야

열왕기상 18장 30-46절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큰 소리로 ‘왜 다른 사람만 들어 주신다’라고 오해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사정이 급하고 답답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은 하나님께서 부르짖으라 명령하셨으니깐 부르짖을 때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기도 응답은 우리의 목소리에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루종일 울부짖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피해서 엘리야는 아주 간단히 조용하게 기도함으로 불의 응답을 받습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맞선 엘리야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 주변에는 도랑을 팠으며, 제물 위에 물을 열두 통을 쏟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즉각 불을 내려 제물과 모든 것을 다 태우셨습니다. 이를 목격한 온 백성은 여호와가 신임을 고백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죽임 당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이어지며 폭우가 내립니다. 기도의 응답과 함께 비를 내리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됩니다.
 

엘리야의 기도와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30-40)

우리의 약한 데서 주의 능력이 더 드러납니다. 우리는 약함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더 오래도록 더 신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여백과 공간을 주께서 스스로 만드시고, 우리도 여지를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공간에서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일하시고, 그 역사를 볼 때 참된 경외심에서 온 예배가 가능합니다.
30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31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32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33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34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35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36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40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30-40)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가 응답 없이 끝났으므로 이제 엘리야가 여호와께 제사하고 기도할 차례입니다. 그는 모든 백성 앞에서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당시 이세벨은 백성에게 바알 숭상을 강제하면서 여호와를 믿는 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우상 제단과 산당이 헐려야 했으나 대신 여호와의 제단이 헐렸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10:14). 갈멜 산의 제단도 이런 상황에서 무너졌으리라 짐작됩니다.
엘리야는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합니다. 이들은 오늘 일어날 일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가까이 오자 엘리야는 제단을 만들 돌 열두 개를 취했습니다. 야곱의 아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통합을 상징합니다. 저자는 야곱의 이름 “이스라엘”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킵니다(31). 이는 이스라엘 조상 때부터 그들을 지키신 분이 하나님임을 부각하려는 의도입니다. 현재 그곳에 모인 자들은 북쪽 열 지파지만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을 포함한 열두 지파 전체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의 공동체임을 함축합니다.
엘리야는 이 여호와의 이름으로(“의지하여”, 32)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는 엘리야가 제사하는 대상이 ‘여호와’임을 확실히 밝히려는 목적입니다.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의 섬기는 신이 여호와임을 나타낸 것과 같습니다(창 12:8; 13:4). 그런데 오늘 제작된 제단에는 특기할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제단 주변에 곡식 두 세아(17.6리터)를 둘 수 있는 큰 도랑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레 1:5-9), 또 바알 선지자들과의 약속에 따라(23), 제단 위에 나무가 놓였고, 그 위에 송아지 제물이 조각조각 놓였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통 넷에 물을 채워 번제물과 나무 위에 쏟으라고 명합니다. 가뭄에 물을 부으라는 명령은 뜻밖이고 아이러니합니다. 더구나 명령은 세 번 반복되어, 총 열두 통의 물이 부어졌습니다. 백성과 바알 선지자들의 상상을 깬 이런 행위는 엘리야의 즉흥적인 연출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 명령을 따른 결과였습니다(36). 3년 이상 가뭄이 들었으므로 좀 전까지는 나무도, 돌도, 바닥의 흙도, 도랑도 다 마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단 위에 물이 흘러 넘쳤고, 제단 주변의 도랑까지 가득 찼습니다. 이제는 제물을 태우는 것은 고사하고, 나무에 불을 지피기도 불가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한편 엘리야가 열두 개 돌로 제단을 세운 일은 옛적에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요단을 건넌 후 강 한가운데서 돌 열두 개를 가져다가, 길갈에서 기념비로 세운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돌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 전 홍해를 마르게 하셨듯이 요단의 물을 마르게 하여, 이스라엘로 마른 땅을 건너게 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단의 기적은 홍해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후손들에게 상기시켜, 이들이 계속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수 4:19-24). 오늘 엘리야가 세운 제단도 바로 이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을 떠오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곧 베푸실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이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며 순종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심으로써 그가 이스라엘의 참 신임을 증명하십니다. 엘리야는 제단에 다가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이때가 “저녁 소제 드릴 때”(36)라는 것은 아침부터 그때까지 바알 선지자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29)을 확인시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부르며(36), 그가 이스라엘의 조상 때부터 하나님이시며, 그들과 언약을 맺은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일곱 문장의 엘리야의 기도(37)는 중간에 “내게 응답하소서”가 두 번 나와, 응답을 촉구하는 구조입니다. 이 간구를 제외하면 기도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중에 참 신임을 백성이 알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의 칭호에서도 암시되었듯, 그가 이스라엘의 전능한 통치자임을 드러내시라는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숭배하는 바알과 아세라 등은 거짓 신이며 사람이 만든 형상임을 깨닫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이미 하나님께로 돌이켰음을 깨닫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되돌이키다’(37)는 ‘변하게 하다’, ‘향하게 하다’, ‘돌아오게 하다’의 의미로, 백성이 하나님의 실체를 깨닫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임을 함축합니다. 또한 동사의 형태는 미래가 아닌 ‘완료형’으로 나와, 이미 하나님 편에서 그 일을 이루셨음을 드러냅니다. 둘째, 불로 응답하심으로써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임과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음을 증명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엘리야가 이 기도를 끝내자 여호와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불은 번제물, 나무들, 제단의 돌들, 땅바닥의 흙을 먹어 삼켰고, 도랑의 물을 다 핥아 없앴습니다. 물 열두 통을 쏟아 흥건했던 모든 곳에 물방울 하나 남기지 않은 강력한 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한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떨구어 경외심을 표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39)라며, 마침내 그가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임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엘리야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이 백성의 마음을 이미 돌이켜 놓았기에 가능했습니다(37). 또 이 고백은 엘리야 자신에 대한 기도(36)도 응답되었음을 함축합니다.
이제 바알이 거짓 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그의 선지자들은 죽임 당합니다. 엘리야는 백성에게 바알 선지자들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다 잡으라 명했습니다. 백성은 엘리야의 명에 순종하여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 산 아래 기존 시내로 데려가 그곳에서 처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닌 다른 신을 섬기도록 종용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마땅한 형벌이었습니다(신 13장). 이들의 죽음은 또한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살육한 데(4, 13)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입니다.
 

엘리야의 기도와 큰 비(41-46)

성도는 믿음으로 거짓된 생각들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면서 기도하고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며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그 잘못된 생각들을 깨뜨릴 수 있습니까? 당시 백성들은 바알이 비를 주관하여 자신들을 풍요롭게 해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41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41-46)
바알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백성들의 고백을 들은 하나님께서는 큰 비를 내려 다시금 그가 건능한 여호와임을 세상에 알리십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가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에게 올라가 먹고 마시라고 권합니다. 갈멜 산 사건 이후인지라 아합은 그의 말에 순순히 따릅니다(41-42). 엘리야의 ‘먹고 마시라’는 제안은 그가 3년 전 아합에게 경고했던 가뭄(17:1)이 종료되므로 이제 즐거워하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올라가라’는 말은 이스르엘에 있는 여름 별궁(21:1-2)으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한편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는 땅에 꿇어 엎드려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이 자세는 겸손과 굴복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약속하셨으므로(1) 비가 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엘리야는 사환에게 지중해 쪽을 바라보고 비의 조짐이 있는지 확인시킵니다. 이는 일곱 차례 반복되었고,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 사람 손만 한 구름이 바다에서 일어났습니다. 엘리야는 사환을 아합에게 보내어, 비가 길을 막기 전에 마차를 타고 떠나라고 전합니다. 얼마 안 있어 하늘이 구름과 바람으로 인해 캄캄해지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3년 6개월 만에 내리는 비는 여호와의 말씀(1)의 성취로서 그의 전능함과 신실함을 입증합니다. 또한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 갈멜 산 대결과 마찬가지로 바알이 거짓 신임을 증명합니다. 아합은 엘리야의 말대로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아합보다 앞서 이스르엘 입구까지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엘리야의 순종 이후, 엘리야의 말에 백성(40), 왕(42), 사환(43), 왕(45)의 순서로 순종하는 모습이 계속 그려집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실체를 깨달은 데(39)에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종이며 모든 일에 순종했음을 알게 된 것(36-37)도 포함됐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36-37)에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관계는 아름다운 사역을 기억할 때 보존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기억하고, 자격 없는 우리에게 어떠한 구원을 베푸셨는지 기억하고,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돌이키면 용서하시는 품을 기억하고, 끊을 수 없는 그 사람을 기억할 때 신앙은 아름답게 보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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