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08-01)
사랑으로 하나가 된 부부
아가서 7장 11절-8장 4절
사랑하면 사시사철을 하나의 계절입니다. 주자 생각나고 오래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아도 괜찮습니다. 사랑하니까,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내가, 누군가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오는데 더한 기다림이라도 기다릴 수 있지 않습니까?
부부가 위기를 극복한 후 계속적으로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관계를 치유하려는 의지가 돋봅니다. 특히 이 단락은 남자에 대한 여자의 사랑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전원으로 초대하여 그들만의 사랑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남편은 이에 기꺼이 응하여 서로 사랑을 확인합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습니다. 이처럼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과 열망은 꺼지지 않습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11-8:4)
순수한 사랑은 길을 잃은 사랑에 언제나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도 이와 같습니다. 아내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남편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회규범에 반하는 위태로운 사랑은 경계합니다.
11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2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13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4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15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6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17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11-17)
아내가 남편을 밖으로, 전원으로 나오라고 초청합니다. 개역개정에는 첫 문장이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라고 나오나, 이 구절의 첫 마디는 ‘가라’(또는 '오라)라는 직접 명령형입니다. 문자적으로 ‘함께 가자’라는 표현은 아니지만, 문맥상 권유를 나타냅니다. 뒤에 연달아 나오는 ‘유숙하자’, ‘일찍 일어나자’, ‘보자’라는 표현이 그 점을 확실하게 해줍니다.
아내는 함께 들로 나가 동네에서 밤을 보내자고 여기서 동네는 성벽이 없는 시골 마을을 뜻하므로 아내가 추천한 곳은 전원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여자가 남자를 빗대어 엔게디 근처 포도원에 있는 고벨화를 언급했는데(1:14) 여기 12절에서도 포도원이 언급되어 두 단어의 연결을 상기시킵니다. ‘동네 들에서’라는 어구나 ‘고벨화 송이들 속에서’라는 어구는 다 전원의 풍경을 그리고 있고, 이 단락이 전체적으로 성적인 암시를 풍기므로 여자는 의도적으로 중의적 단어를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한편 12절의 화자는 11절에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경우 여자입니다.
그런데 12절 끝의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의 화자는 남자로 나옵니다. 그 근거는 ‘네게’의 ‘너’가 여성 단수형으로서 아내를 가리키므로 주어인 나는 자연적으로 남편을 가리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12절 초반의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 석류 꽃이 피었나 보자’란 말은 실제 누가 누구에게 애기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여자가 말한 것이라면, 11절부터 ‘∼하자’가 계속 연결되어 적절합니다. 남자가 말한 것일 경우, 11절의 여자의 초청에 자기도 함께 가자는 권유로 응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이 또한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누가 누구에게 말했느냐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개역개정에는 12절에서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라고 나오나, 정작 원본에는 가사라는 단어는 없고 ‘우리가 포도원으로 (가기 위해) 일찍이 일어나자’로 나옵니다. 부부는 거기서 포도나무에 싹이 났는지, 꽃봉오리가 열렸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말에 연이어 남자가 거기에서 자기 사랑을 여자에게 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의 열정만이 아니라 이들이 한 몸이 되는 실제적인 행동도 나타납니다.
여기 11-12절에 나오는 들판, 꽃, 포도나무, 석류나무 등은 성적인 암시를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모두 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기가 지나 싹이 터서 푸르고 상쾌한 전원에 꽃들이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과실수와 곡식은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화창한 계절이 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의 시기, 지난 날 청혼을 하고 청혼에 승낙의 약속을 했던 것처럼(2:11-13), 지금이 그런 관계로 돌아가는 절호의 기회라는 암시일 수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주겠다고 말하니, 여자도 그를 위해 좋은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노라고 화답합니다. 여자가 준비한 것으로는 합환채와 최상의 새 열매와 묵은 열매를 들었습니다. 이는 여자가 따로 저장해놓은 또는 숨겨놓은 것임을 밝힘으로써 남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부부가 위기를 만나(5:2-7) 이를 극복한(6:23) 후, 계속적으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6:4-10; 7:19),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6:11-13), 서로의 사랑을 재확신하며(7:10), 지속적으로 상대와 만남으로 결합을 갈망하는 것(7:11-13)을 묘사하는 것은 관계 회복 후 서로를 향한 사랑을 더 굳게 다지려는 의지와 노력을 은연중에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어떤 관계에서든 관계에 금이 가고 상처가 났을 때는 쌍방의 의지와 적극적인 노력이 상처 난 관계를 야무지게 꿰매고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8:1-4)
사랑에는 때가 있고 기다림이 그 사랑을 더욱 가치 있게 하며, 순결이 진실한 사랑의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랑이라면, 수많은 기다림을 어찌 버텨낼지 신뢰하기 힘듭니다. 기다림은 상대를 향한 존중이요, 때에 대한 순종입니다. 여인은 때가 무르익기 전 연인의 사랑을 자극하지도 깨우지도 말라고 당부합니다.
8:1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4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1-4)
부부의 사랑과 그들의 여행이 그려진 7:12-13 다음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밖에서도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아내의 마음이 묘사되었습니다. 여자는 남편이 자신의 오빠와 같은 피붙이였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가 오빠라면 거리에서 그를 발견할 때 맘대로 입을 맞추며 흥분된 마음과 반가움을 표현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몹시 아쉽습니다(1). 여자가 남자를 만나 애정 표현을 해버린다면, 그녀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특히 여자의 경우 오빠나 남동생에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애정 표현이 과하면 다른 이들에게 창녀로 오인을 받아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타인의 시선 속에 절제된 표현만 가능했을 것입니다.
아가서 전체를 보면 사랑하는 두 남녀는 자유롭게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2:8-9, 14, 17), 남의 이목을 의식해야 했으며(1:7-8), 외부, 특히 도시에서 사랑을 표현하기 쉽지 않아 종종 어머니의 방과 같은 사적인 공간(3:4 8:2)이나 전원(1:7-8; 7:11-13; 8:5)으로의 밀회를 제안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여자는 연애와 결혼 생활을 지속해왔으므로, 남자에게 원할 때 다 표현하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펼치고 싶은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이 자기 친오빠였다면, 남의 이목을 생각지 않고 이렇게 애정 표현을 하면서 그를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둘만의 은밀하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2). 이는 결혼 전에 여자가 꿈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잃었다가 찾은 후 그를 그녀의 어머니 방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과 흡사한 장면입니다(3:4). 이와 같이 주도적으로 남자를 이끄는 여자의 모습(3:4; 8:2)은 여자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남자의 모습(2:4)도 기억나게 합니다.
3장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어머니의 방으로 데려간 데서 이야기가 멈췄으나, 여기 8장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어머니 집으로 데려간 후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원문으로 보면 이 번역 외에도 ‘그녀(어머니)가 나를 가르쳤다’는 번역이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여자가 남자를 어머니 방에 데려가 어떤 (성적) 가르침을 받았다기보다는 여자가 결혼 전에 그 방에서 어머니로부터 결혼과 관련된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보편이 적절합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여자가 향료를 썩은 포도주와 석류 주스를 남자에게 대접하는 것도 어머니에게 받은 가르침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향 음료는 모두 여자의 몸과 거기서 주는 쾌락과 만족감을 표현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좋은 것을 기꺼이 남자에게 주고자 합니다. 연이어 나오는 ‘남자의 왼손이 여자의 머리 아래에 있고, 그의 오른손은 여자를 안았으리라’라는 표현은 2:6에서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상사병에 걸린 여자가 실제로 남자와 애정 행위(성관계가 아닌)를 했든지, 아니면 그런 순간을 상상하며 묘사했던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육체의 열정이 솟아오르자, 여자는 예루살렘 딸들을 향해 그가 해왔던 사랑의 절정의 시기가 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조언을 마지막으로 반복합니다(2:7; 3:5; 8:4). 이번에는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라는 어구는 빠졌습니다. 3:5에서 같은 조언을 할 때도 그 직전에 나왔던 내용은 상사병으로 인해 꿈에서 남자를 잃고 찾다가 결국에 만나 서로 친밀한 시간을 누리게 될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여자는 자신의 정욕이 불타오를 때 적절하게 이 조언을 예루살렘 딸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계속 언급해왔듯,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의 자랑하는 자는 오역이며 추상명사 ‘사랑’이 올바른 번역입니다. 그 의미는 ‘그것(사랑)이 원할 때까지는 사랑을 자극하거나 깨우지 말라’이며, 사랑 자체에 대한 현명한 충고입니다. 여자는 자기의 조언을 자기에게 적용하여, 순결을 지켰고, 사랑의 완전체가 되는 결혼식을 치르고 이때까지 부부로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여자의 이러한 과정과 실천은 예루살렘 딸들에게도 성적 열정을 자극하지 말고 기다려,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결혼의 날부터 사랑에 대한 열망을 마음껏 채울 수 있을 때를 기대하게 합니다.
아내는 사랑이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도, 사랑이 절정을 향하는 단계에서도 처음 사랑을 잃지 않습니다. 해가 지나도 햇것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수많은 부도덕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함께하기로 서약했다면 배우자와 주님과 함께할 시간을 계획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