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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14-01)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정과 믿음의 반응

민수기 14장 1-10절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과 늘 교제하고 교류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그 능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마음 가운데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평강과 기쁨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7:6)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기쁨이 넘치고 그 즐거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가나안 땅에 대한 열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를 무시하고 큰 소리로 통곡합니다. 백성들은 두려움을 넘어 좌절했고 급기야 모세를 죽이고 다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자고 설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란(1-4)

크든 작든, 우리의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들을 통째로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은 지금까지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까지도 헛된 일로 만드는 일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좋지 않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신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1-4)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크게 낙심한 이스라엘 백성은 한 목소리로 소리를 높여 부르짖고, 밤이 새도록 통곡합니다. 본문 1절은 온 회중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세 개의 유사한 단어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분위기를 고조시켜갑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였고, 부르짖었고, 통곡했습니다. 그들의 절망 섞인 부르짖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절망을 낳았습니다. 그 밤 통곡의 시간이 다해가는 시점에 그들을 찾아온 것은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이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원망하다’는 단순히 남의 탓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평을 쏟아내며 상대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반항적 행동을 말합니다. 그들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혼돈 상태에 빠졌습니다. 두려움이 이미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백성들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과 돌보심의 은혜를 통째로 부정하는 말입니다.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평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향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였는가!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 처자를 사로잡히게 하는가!’ 그리고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쏟아내고 맙니다. “애급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스라엘 온 회중의 마음속에 있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쩌면 애굽의 종살이가 더 나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불신앙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영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는 출애굽의 하나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은 없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춤추던, 용사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모세 대신 새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서로를 부추기는 소리들만 남았습니다. ‘차라리’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면서 서슴지 않고 여기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불신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배은망덕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가만두면 모세와 아론이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 같습니다. 부정적 보고가 촉발한 두려움과 좌절과 불신앙이 얼마나 신속하게 온 회중에게 전염되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반응(5)

믿음의 사람은 공동체를 위해 기도히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써서 섬겨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공동체를 섬기려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 섬김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실 것이고,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5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5)

 

백성들의 불신앙과 반란을 도모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믿음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립니다. 이 ‘백성들 앞에서’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로 풀어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 탄원을 드리기 위해 엎드린 것입니다(출 34:8 이하). 물론 당시는 성막 건축 직전으로 아직 회막이 없을 때지만, 모세는 회막이 지어진 뒤에도 회막 밖의 어느 곳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린 장면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그들이 백성들 앞에서 엎드렸지만, 그 대상이 백성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회막으로 가지 않고 백성들 앞에서 엎드린 모습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모세는 종종 상황이 벌어진 그 현장에서 하나님께 엎드리곤 했습니다. 그것은 용서를 구하는 탄원의 의미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16장에서 고라 자손과 르우벤 자손 등이 당을 짓고 반란을 획책했을 때도 모세는 즉시 엎드립니다(16:4). 아마도 지도자로서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 엎드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엄중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온전히 판단하시기를 기다리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이 어떤 수단으로도 백성들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판단되는 현시점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상황을 정리하는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6-9)

우리는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늘의 현실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주님을 믿고 순종하시길 바립니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6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6-9)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그 땅을 취하자고 긍정적 보고를 했었습니다. 이제 불신앙과 반란이 대세가 되고 모세와 아론조차 아무 말을 못한 채 엎드러져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다시 일어섭니다.

13장에서 갈랩이 앞장서 말할 때, 갈렙의 주장에 동의하는 차원에서 여호수아는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수종 드는 모세의 지도력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냅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출애급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군사 지도자로서, 또 모세의 수종자로서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출 17:8-16;24:13). 여호수아는 갈렙과 함께 곧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백성들 앞에 담대하게 섭니다. 그들은 다시 가나안 땅이 매우 매우 아름다운 땅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다. 두 사담은 백성들에게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주 강조된 표현입니다. 남들은 어떠할지라도 ‘오직 너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전에 갈렙이 보고했던 내용과 동일합니다. 가나안 땅 백성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다면 그 땅은 이미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백성들과 함께하셨고, 앞으로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니라.” 그렇다면 세상의 두려운 존재들이 모두 “우리의 먹이”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열두 명의 정당한 것이 함께 숙식을 하면서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것듭을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열두 정탐꾼이 땅에 대해 탐지하고 보고했던 객관적 내용은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내린 결론은 판이합니다. 똑같이 그 땅의 풍요와 아름다움을 보았지만, 그 땅에 대한 해석이 달랐다는 뜻입니다. 열 정탐꾼은 그 땅의 장대한 민족들과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그들의 성벽을 보며 두려워했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으로 백성을 이끌고 가실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가에 문제의 본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10)

믿음은 현실을 집어삼키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없이 현실과 상황만을 바라보면 영적인 위기를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현실의 두려움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10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10)

 

모세와 아론은 엎드러져 있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백성들 한가운데 서서 호기롭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땅으로 가자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정신을 놓은 이스라엘 회중의 귀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먼저 본보기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조금만 지체되었더라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실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회막에서 나타나셨으니 어쩌면 구름기둥 가운데에 하나님의 임재로 느낄 만한 특별한 현상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는 첫째, 죽음의 위기에 있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둘째, 불신앙으로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정탐꾼들의 이야기만을 선택하여 듣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삼키는 척박한 땅을 주었고, 그마저도 차지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거주민들이 있는 곳을 지난 400년 동안 줄곧 약속하신 나쁜 존재로 여깁니다. 이런 자들에게 남아있는 삶은 절망과 반란뿐입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그들이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의 거인들과 견고한 성만 보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 창조를 기억했고 이 땅도 약속대로 주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불평하는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께 꿇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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