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예레미야애가(10)

 


시온과 에돔에 심판하신 하나님

예레미야애가 4장 11-22절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이 최고 적임자라고 선거 운동합니다. 때로는 막상 당선되고 나면,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조차 무시하고 자기만 위하며, 권력에만 집중하여 부정적인 일들을 행사해서 실망을 안기는 것을 봅니다. 어떤 지도자들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지지자들의 삶과 인생을 행복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영향력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흘러갑니다. 학생은 좋은 선생님, 직장에서 좋은 상사, 국민은 좋은 대통령 그리고 성도는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좋은 지도자는 탁월하고 좋은 영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처럼 복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과거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예루살렘의 모습과 멸망 이후의 참상을 비교하였던 선지자는 이제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 특히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시온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선지자는 갓난아이들과 아이들, 어른들, 부귀한 자들과 부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비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11-22절에서 선지자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밝히며 다시 여호와께 탄원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11-12)

지도자가 조직에 매우 중요합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들로서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직접적인 계기도 바로 지도자들의 죄악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는 무엇보다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이 지도자가 된다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1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노다 12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11-12) 

바벨론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진 예루살렘에 능력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것도 비참한데, 예루살렘에 기근까지 찾아왔습니다. 남아 있은 사람들은 생명을 유지하기까지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죽은 사람들을 보면서 불쌍하게 생각해야할 사람들이 기근으로 배고파서 전쟁에 죽은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⑴ 기초까지 태운 심판(11)

선지자는 영광스럽고 ‘평화의 도시’라고 불리던 예루살렘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예루살렘은 낙공불락의 요새와 같아서 견고함은 이미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결코 함락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고 불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돌보지 않으신 결과입니다. 예루살렘이 지은 죄의 심각성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터를 사르셨노다’(11)는 표현을 주목해 보면, 일반적으로 어떤 건물에 불이 났을 때, 지상에 있는 건물의 지붕이나 기둥 그리고 벽제들이 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바닥과 기초 그리고 토대까지 타버린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은 그 터의 기초까지 완전히 불살라 없어진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의 죄가 깊고 심각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⑵ 멸망을 믿지 못할 열방(12)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내린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실제적으로는 바벨론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파괴했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선지자는 대적과 원수들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을 세상의 모든 왕들과 백성들이 믿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왕들’, ‘모든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은 결코 함락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나 성전은 예루살렘 백성들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방패이시고 도움이시고 전사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누구도 절대 침입할 수 없습니다(시편 115:11). 이것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신앙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철저한 파괴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그들의 죄가 원인 있었던 것입니다. 흔히 세상 풍조와 다른 종교 그리고 불신자들이 공격해 옴으로 교회가 약화되고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의 사신 곳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며 말씀대로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반드시 지키십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걱정해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교회 안의 불의와 불신앙입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친 이유도 바로 이스라엘의 죄악과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예레미야 7:14; 26:6,9).

 

종교 지도자들에게 임할 재앙(13-16)

지도자는 운전사와 같습니다. 운전사에 따라서 주행이 안전하고 순조롭지만, 미숙한 운전사는 불편하게 운항합니다. 공동체도 지도자에 따라서 순조롭게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지만, 때로는 큰 어려움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미숙한 운전사와 같았습니다.

13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15바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13-16)

오늘날은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지도자들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건강하고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수종 들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13)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징계에 놓이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지도자 때문이라고 진술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이유는 종교지도자들의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성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한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함과 계교로 악을 행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장로들의 죄에 분노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재판에 관여했기 때문에 부정한 판결을 내려 의인을 악인으로 만드는 데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아닌 거짓 예언과 거짓 평안을 전하였습니다.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들이 거짓 평안을 전하고 악한 일을 하고 그리고 의로운 자들을 죽이는 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은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그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멸망당하고 그들은 백성들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를 비롯한 여러 거짓 선지자들과 싸웠고, 제사장 바스훌에게 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파수꾼인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를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은 일반 사람들의 영적인 안목을 흐리게 하였고, 하나님의 재앙을 직면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물론 종교 지도자들 외에 백성들에 죄에 대한 책임이 면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에서 지도자들의 타락이 그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 번 깊이 각성해야 합니다.

⑵ 종교지도자들에게 임할 징벌(14-15)

선지자는 피로 자신을 더럽힌 사람들, 곧 부정하게 된 사람들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피’는 13절과 연결해서 해석할 때, 의인들의 죽음으로 흘린 피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무고한 피를 흘렸고 이로 인해 제의적으로 부정해졌습니다. 제의적으로 부정해지는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제의적으로 부정하다고 규정된 것을 만졌을 경우와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여기서는 의인을 죽인 죄로 인해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해졌습니다. 종교지도자, 특히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결인데, 이 사람들이 의인을 죽이면서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더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내릴 징벌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소경 같이 방황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자신의 죄를 드러낸 채 길거리를 소경처럼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정한 상태를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고 거짓 예언하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특권만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결하게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오히려 더럽히고 망하게 한 그들은 이제 불결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헤매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징벌은 문둥병자처럼 쫓겨날 것입니다. 그들을 문둥병자 취급하며 ‘부정하다 돌아가라 돌아가라 자신을 만지지 말라’라고 멀리 내쫓고 피할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부정한 문둥병자처럼 되어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 되고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타락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자기 백성들은 물론 이방인들에게서조차 버림을 받고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⑶ 종교지도자들이 징벌 받은 결과(16)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잘못 인도하여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드린 죄악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내리신 징벌이었습니다. 그런 징벌의 결과는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은커녕 비난과 멸시를 받는 존재들이 되고 말합니다. 그 징벌은 여호와께서 내리셨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으셨다고 하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직접 흩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얼굴은 자신의 백성을 돌보기 위해 오시는 여호와의 임지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심판하기 위해 여호와가 오신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사장의 얼굴과 대비되는데, 여호와가 제사장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돌리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사장의 얼굴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의 어려움 앞에서 시대적 것과 외부적인 탓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일차적인 책임은 언제나 교회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바로 서지 못할 때 교회는 쇠퇴하게 되고, 조롱거리가 되며 배척을 당하는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 대신 세상을 의지함(17-20)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을 의지할 때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을 의지할 때, 세상으로부터 오는 힘이 다할 때까지 그대로 방치해 두십니다. 성도들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만 의지할 때, 성도들의 삶이 항상 능력이 발휘됩니다.

17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 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17-20)

예루살렘이 비참하게 몰락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의 헛된 것을 의한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이 사실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⑴ 헛된 도움을 기다렸던 이스라엘(17)

이제 선지자는 ‘우리’라는 표현으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를 동일시하여, 어려움에 대해 깊이 탄식합니다. 이스라엘이 헛된 도움을 계속해서 바라보느라 눈이 상했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은 망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주변 나라들과 동맹을 맺으며 그들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들로부터 구원에 대한 희망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득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주변 나라를 의지하지 말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특히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바벨론 군대에게 항복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씀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귀담아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변 나라들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고 이스라엘의 기대는 헛되이 끝나버린 것입니다.

⑵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18)

이스라엘 상황은 애굽 군대가 퇴각하고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 성읍을 포위하게 되자 예루살렘 백성들은 성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었던 애굽도 자신들을 돕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예루살렘 백성들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공포와 기근 속에 마지막 날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적들이 자신의 걸음을 엿보기 때문에 길을 다닐 수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사냥꾼이 짐승을 잡기 위해 추적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엿보다’는 ‘사냥하다’라는 뜻입니다. 적들로부터 언제 공격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길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위협적인 상황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끝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8절 하반절에서 ‘끝’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선지자는 망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⑶ 멸망당하며 쫓기는 이스라엘(19-20)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능력이 전혀 없는 왕을 의지했습니다. 선지자는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의 문제도 함께 거론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20)라는 말씀은 당시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는 ‘한 사람의 호흡이 곧 생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한 국가의 왕은 나라와 민족에게 호흡, 생명과 같은 중요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물론 예레미야의 이 말은 시드기야를 선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유다가 참 왕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애굽을 포함한 주변국 왕들을 의지하며 살아온 결과에 대해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수사적 진술입니다. 시드기야도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생명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자 백성들은 독수리와 같은 맹수 바벨론에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어디로 도망해도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런 적들의 추적에 우리의 콧김, 즉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도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20). 우리의 콧김은 우리의 생명의 숨결이란 의미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자라는 뜻입니다. 적들이 여호와의 왕국을 완전히 무너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대신 왕과 외세를 의지하던 이스라엘은 철저히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왕권을 충분히 대리할 때만 백성과 나라에 생명과 같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에돔에 대한 심판으로 멸망(21-22)

하나님 대신 세상을 의지하게 되면 세상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상황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또 누구를 의지합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당신이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습니까?

21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 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21-22)

타락하여 악을 행하며 어려움을 당해 하나님 대신 헛된 것을 의지한 유다는 그 어리석은 대가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언약에 실실하신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에서 소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⑴ 예루살렘 멸망을 기뻐하던 주변 나라(21-22)

유다의 소망은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던 대적들이 멸망당함으로써 시작될 것입니다. 에돔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즐거워하고 기뻐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고 배척했고, 이들의 이런 태도는 멸망당한 유다에게 큰 슬픔과 절망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다음으로 에돔도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선지자는 에돔에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에돔에 대한 비꼬는 말이었습니다. 곧 너희에게도 멸망이 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취하여 벌거벗으리라’는 에돔이 무력하게 수치를 겪게 될 젓이라는 뜻입니다. 시온에 내린 징벌이 끝날 때 에돔이 징벌을 받게 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에돔은 선지자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에돔은 그들을 돕지 않고 오히려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⑵ 예루살렘이 회복(22)

유다의 멸망을 기뻐하던 대적들의 멸망은 예루살렘에 대한 회복의 시작될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맏은 후에 예루살렘은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할 때부터 다시 회복할 날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로 인해 탄식의 애가를 부르면서 동시에 회복에 대한 소망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선포한 심판이 이루어졌듯이 형벌의 기간이 끝나면 다시 구속하실 것이라는 말씀 역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네 죄악의 형벌이 다 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비록 유다가 죄로 인해 형벌을 당했고 포로로 끌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바라보면, 교회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막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무관심하게 남의 일보듯 하면 안 됩니다. 항상 큰 관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른 지도자들이 되도록 지켜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민족에게 좋은 지도자 세워주시길 기도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통해 하실 일들이 기대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종교지도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오늘날 나라와 교회에도 좋은 지도자가 그리운 시절입니다. 훌륭한 인격과 실력 있는 지도자 간절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귀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주의 은혜로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귀한 사람이 되길 소망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와 나라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독과 공감 ♡ 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