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04-01)
하나님의 임재와 우리의 순종
사무엘상 4장 1-11절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소유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이 없이는 언약궤의 존재가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다음으로 여호와의 언약궤를 진영으로 가져옵니다. 다시 전투해 보지만, 또 패배하고 엘리의 두 아들은 죽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빼앗기고 맙니다. 그 이유는 언약궤를 우상화한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결과였습니다. 그들의 실패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블레셋과 전투에 패함(1-2)
패배와도 같은 상실 가운데 있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펴 원인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크고 치명적인 패배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이용한 이스라엘을 언약의 외인처럼 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대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1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1-2)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 전투를 합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4천명의 군사들을 잃었습니다. 블레셋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위해 내용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을 통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전쟁이었던 것을 가르쳐줍니다.
(1) 사무엘의 선지자 사역(1a)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이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나타났다는 3:21의 기록과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집에 말하였다고 기록하는 7:3의 기록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b-7:2이 4:la와 7:3 사이에 삽입되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전파된 사무엘의 말(1a)이 블레셋과의 1차 전쟁(1b-2)을 초래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전쟁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승리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2) 블레셋과의 1차 전쟁(1b-2)
1차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불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자기들 영토의 경계선에 위치한 에벤에셀(도움의 돌)에 진을 치자, 블레셋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아벡에 진 쳤습니다. 에벤에셀의 정확한 위치는 불확실합니다. 아벡은 현대의 텔 라스 엘 아인인데, 텔아비브 동쪽에 있으며 야르콘 강의 수원지 근처에 있습니다.
“그 둘이 싸우다가.”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전쟁이 벌어졌을 때’가 됩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면서 블레셋 군대에 의해 사천 명가량 죽임을 당했습니다. 큰 피해를 보았으나, 이 피해 규모가 전쟁을 포기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원래 진영으로 돌아와 다음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2차 전쟁을 위한 준비(3-5)
우리의 생활 속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신앙의 성장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합니다.
3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3-5)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던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보다는 자신들의 힘을 믿고 전쟁에 나가서 실패했던 것입니다. 이런 패배의 모습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가나안 땅을 정보하려고 들어올 때, 여리고와 아이 성 전투를 기억합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해서 정복되었지만, 아이 성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전투했다가 패배를 한 적이 있습니다.
(1) 대책 회의(3)
백성이 후퇴하여 진영으로 돌아왔을 때, 장로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패하게 하셨는고” 이 문장의 원문은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치셨는가’로 번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친 주체가 여호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잔영 안에 있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지 않고 같은 편이 되어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원수들의 수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법궤가 언약궤로 불립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에 체결된 시내산 언약을 상징하는 십계명의 두 돌판이 법궤 가운데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언약궤를 가져온 홉니와 비느하스(4)
“그룹 사이에 계신(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 언약궤의 뚜껑에는 그룹이라 불리는 두 천사의 형상이 서로 한쪽 날개를 맞대고 다른 쪽 날개는 반대 방향으로 펼친 모양으로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고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만군의 여호와(많은 군대의 여호와)라 부르는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생각하면서 전쟁의 승리를 가져오시는 여호와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한편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수행하면서 전쟁터에 나아왔습니다. 언약궤를 메는 자는 반드시 제사장이어야 합니다. 이 두 사람이 직접 언약궤를 메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연로한 엘리를 대신하여 그들이 언약궤의 책임자로서 따라왔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여호와의 섭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사기충천한 이스라엘(5)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오자 온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니, 땅이 진동할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진영으로 들어오는 언약궤를 보면서 전쟁의 승리를 예감하고 사기충천했습니다. 여리고 이 언약궤를 앞세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한글 성경에서 “소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루’는 흔히 전쟁 함성을 가리킵니다(겔 21:22).
블레셋의 전쟁 준비(6-9)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두려워할 때, 모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세상을 두려워할 때, 세상은 우리를 심판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과거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해서 인도하신 전능하신 신이요,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능력의 신이라고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서로 어리석은 독려(督勵)합니다.
6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6-9)
만군의 여호와를 언약궤 안에 가두다니 어이없스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경배와 순종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부리고 사용할 수 있는 우상일 뿐이었습니다.
(1) 지켜보는 블레셋(6)
이스라열 진영에서 큰 함성이 있었으므로, 아벡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놀랐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히브리 진영”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인이라는 칭호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를 때 흔히 사용됩니다(출 2:6; 3:18).
(2) 블례셋의 두려움(7-8)
두려움에 사로잡힌 블레셋 사람들이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인의 하나님께서 진정에 참여했다고 생각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우리에게 화로다.” ‘화’는 ‘오이’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흔히 신의 심판과 형벌로 임하는 재앙을 가리킵니다(사 3:11; 렘 4:13). 이 단어를 7절과 8절에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그들의 두려움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이들의 두려움은 여호와께서 출애굽의 과정 중에 바로와 애굽 군대를 재앙으로 치셨다는 기억에서 나옵니다. 블레셋은 그 재앙들이 광야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에 애굽조차 사막과 광야에 둘러싸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3) 블레셋의 각오(9)
“강하게 되며” 여기서 히브리어 동사 ‘하자크’(강하다)가 사용되었는데, 이때 ‘용기를 내다’(스스로를 강하게 하다)를 의미하게 됩니다. “대장부가 되라”는 문자적으로 남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두 번 사용됨은 전쟁에 패배할 것만 같다는 블레셋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애초에 블레셋을 종처럼 섬기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은 여호와의 법궤를 보는 순간 이제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이 블레셋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장부로 만들어 더욱 힘껏 전쟁에 임하게 하였습니다.
2차 전쟁(10-11)
종종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일까지도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는 커다란 승리가 아니라 완전한 패배를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언약궤가 전쟁터 앞에 나갔으니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10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10-11)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전투가 벌어지며,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며, 언약궤의 상실이 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전투에서의 패배는 이스라엘의 신앙적 위기를 나타냅니다.
(1) 이스라엘의 패배(10)
블레셋이 큰 두려움 속에서 결사 각오를 다지며 자신들과 달리 사기충천해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는데, 법궤를 모시고 크게 함성을 지르던 이스라엘이 힘을 쓰지도 못하고 패배하였습니다. 이 두 번째 패배는 이스라엘에게 첫 번째 패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줬으니, 죽은 자만 삼만 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더 전쟁터에 남아 있지 못하고 목숨을 건지기 위해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기 집에까지 달려 도망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이렇게 쉽게 무너진 것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뿌리 깊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 언약궤와 엘리의 두 아들(11)
11절에는 두 번째 전쟁의 참혹한 결과가 담담한 어조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사로잡혔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내버렸습니다. 이 법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상징이며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또 하나의 비참한 결과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제물을 모욕했던 두 제사장의 죽음은 당연한 결과이면서, 이스라엘 역사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도 하지만, 패배를 주기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출세나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실패하게 하신 것입니다. 내 유익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 뜻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09 사무엘상(5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상(11) - 사무엘상 5장 1-12절 - 법궤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0) | 2024.11.05 |
---|---|
사무엘상(10) - 사무엘상 4장 12-22절 - 제사장 엘리에 닥친 죽음들 (0) | 2024.11.05 |
사무엘상(08) - 사무엘상 3장 11-21절 - 사적인 감정을 버리면 살아나는 사명 (0) | 2024.11.04 |
사무엘상(07) - 사무엘상 3장 1-10절 - 성전에서 성장해 가는 사무엘 (1) | 2024.11.04 |
사무엘상(06) - 사무엘상 2장 22-36절 -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0) | 2024.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