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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5-01)

 


법궤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사무엘상 5장 1-12절


 

오늘날은 다원주의 사상으로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우상들은 하나님과 분명히 구별되십니다. 하나님과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이사야 40:19-20)고 말했습니다. 우상은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 이스라엘과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으로 가져다가 다곤 신전에 둡니다. 이후 다곤은 몸뚱이만 남은 채 엎어져 있고, 아스돗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망합니다. 하나님의 궤가 옮겨 가는 가드, 에그론에도 재앙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궤를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자고 합니다.

 

아스돗의 재앙(1-7)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느낌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없다고 무시하거나 부인하다고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뿐입니다. 시편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편 14:1)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뿐입니다.

 

1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1-7)

 

불리하고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스스로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고 내가 믿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정말 아무 쓸모없는 우상일 뿐입니다.

 

(1) 다곤 신당에 머문 법궤(1-2)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을 자기 신 다곤에게 예물로 마쳤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획득한 언약궤를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둡니다. 고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민족이 패배한 민족의 신상을 약탈하여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승리한 민족의 신이 패배한 민족의 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패배한 민족의 신앙을 무너뜨려서 그들이 쉽게 재기하지 못하도록 방비하는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수호신으로 생각하는 다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더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아스돗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53km 떨어져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당 안의 다곤 신상 곁에 두었는데, 이는 법궤가 다곤의 포로가 되었음을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다곤 신은 풍요와 다산을 관장하는 가나안의 곡식 신이며, 가나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바알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아스돗의 다곤 신전은 마카비 지도자 요나단에 의해 주전 147년에 파괴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가나안 신을 섬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암시합니다. 첫째, 그리스 지역 지중해 연안에서 이주해 온 블레셋은 해양 민족으로서이 특성을 유지하는 것보다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처럼 농업을 주산업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둘째, 블레셋에 포함된 여러 민족 중, 해양 민족출신이 지배층을 형성했다면 피지배 계층에는 토착 가나안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2) 다곤 신상의 굴복(3-5)

 

다음 날 아침에 아스돗 사람이 신당 신전에서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3). 아침에 다곤 신전에 들어간 본 결과,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을 땅에 처박고 있었습니다. 엎드려져 땅에 얼굴을 처박고 모습은 완전히 복종을 표현하는 자세입니다. 아스돗 사람이 다곤 신상을 제자리에 다시 세워 두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다곤 신이 거짓된 허상이란 것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게 합니다.

오히려 다곤 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한 아스돗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다음날에 다곤 신상이 머리와 두 손목이 잘린 채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머리와 두 손은 끊어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후 아스돗 다곤 신전에 출입하는 제사장이나 다른 모든 사람이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밟지 않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머리와 두 손이 문지방에 놓인 사실과 문지방 아래에는 여러 영과 신들이 머물고 있다는 고대인의 미신을 연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곤 신상이 자신의 영광스러운 부분인 머리와 힘을 가진 부분인 두 손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다곤은 자신의 권능을 상징할 수 있는 것들을 여호와의 법궤에서 가장 먼 문지방에 두고, 몸통만으로 여호와 앞에 엎드려 복종했습니다.

 

(3) 독한 종기의 재앙(6-7)

 

여호와의 손이 그들 위에 엄중히 더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거나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가리킵니다(출 9:3; 수 4:24; 삿 2:15).

“엄중히 더하사”라는 ‘무겁다’를 뜻하는데, 엘리의 비대한 몸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습니다(4:18). 또 ‘영광’을 의미하는 이가봇 이름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4:21,22). 그러므로 여호와의 손이 엄중하게 됨은 이스라엘의 영광인 법궤가 블레셋 땅에 이르러 스스로 영광을 쟁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손이 엄중하므로(무거워지므로),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아스돗이 망했습니다. “망하게 하니”의 원문은 폐허로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아스돗 지경의 땅을 황폐하게 하셔서 사람들을 망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독한 종기로 아스돗과 그 지경의 사람을 치셨습니다. 독한 종기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시기 위해 독한 종기를 무기로 사용하셨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임한 재앙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손이 아스돗 사람들과 그들의 신 다곤을 친다고 생각하여, 그 신의 궤를 다른 곳으로 떠나보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여기서 “친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샤’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동사는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표현으로, 소에게 무거운 멍에를 씌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카베드’의 유사어 중 하나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엄중하며, 또 아스돗 사람과 다곤에게 무거운 멍에를 씌웠습니다.

가드의 재앙(8-9)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가장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당신이 잠시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흔들림 없이 서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허탄한 것을 의지함으로 넘어지는 백성되지 않길 바랍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보호해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최후 승리는 하나님께 주실 것입니다.

 

8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8-9)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이 손과 머리가 잘린 것처럼,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 다곤 우상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는 무능력한 것을 절감(切感)했습니다. 그래서 다곤 신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곤 신만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에게 종기 재앙이 임하도록 하셨습니다.

 

(1) 가드로 옮기신 법궤(8)

 

아스돗 사람이 블레셋의 다섯 방백을 모두 모으고, 그들에게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곤란한 입장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가드로 그 궤를 옮겨가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옮겨 가다’는 ‘돌아가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갔습니다. 가드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스돗에서 동남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골리앗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다윗이 한동안 가드 왕 아기스의 보호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여호와의 강한 손으로 언약궤가 있는 아스돗과 그 주변을 심판하십니다. 그 근처 곳곳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들어내십니다.

 

(2) 독한 종기의 재앙(9)

 

그들의 법궤를 가드로 옮긴 후에, 여호와의 손이 그 성읍에 임했는데 곧 심히 큰 환난이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손은 심판을 상징하는데, 심히 큰 환난이 이 손과 동격으로 주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조를 뜻하는 두 단어“심히”와 “큰”을 사용하여 가드에 임한 환난의 극심함을 표현합니다. “환난”은 이 단어는 ‘혼란’이나 ‘소동’을 의미합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 성읍의 사람들을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 쳐서 그들에게 독한 종기가 나게 하셨습니다.

 

에그론의 재앙(10-12)

그들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의 증거이던 언약궤가 오늘은 재앙의 근원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탄식으로 끝날 우상들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의 전능한 손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디모데전서 4:7)고 권고합니다.

 

10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10-12)

 

하나님께서 무서운 신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자신들의 우상을 버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우상의 한계를 발견했다면, 우상 신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겨야 했습니다.

 

(1) 에그론으로 옮겨진 법궤(10)

 

블레셋은 법궤를 다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겼지만, 에그론은 가드에서 동북쪽으로 약 20km,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법궤가 멈물렀던 세 도시는 아스돗과 에그론을 웟변으로 하고 가드를 꼭짓점으로 하는 역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에드론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10)고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블레셋 안에서는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빨리 항복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데도 속히 돌아서지 않고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2) 에그론의 환난과 독한 종기 재앙(11-12)

 

결국은 블레셋의 지방 방백들이 모이게 한 후에 하나님의 언약궤에 대한 대책 회의합니다. 그 결과가 어떤 결과입니까? 본래 장소로 돌려보내서 그 궤가 그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자고 요구했습니다. 그 온 성읍에 사망의 환난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환난이란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여호와의 손이 그곳에 매우 엄중하게 임하여, 죽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매우 엄중하게 임하여, 죽지 않은 사람들은 독종으로 침을 받아서 그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음”은 주로 신의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의미합니다(출 2:23; 삼하 22:7; 렘 8:19). 하늘에 올라갔다는 표현이 하나님께 도달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하늘에서도 들을 수 있음 만큼 부르짖는 소리가 크고 간절했다는 뜻입니다.

세 도시에 임한 재앙이 점점 강도를 높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스돗에서는 엄중하였고(6), 가드에서는 심히 큰 환난이 있었으며(9), 에그론에서는 사망의 환난이 있고 또 여호와의 손이 매우 엄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분인지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의지했던 다곤 신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다곤을 보호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블레셋이 언약궤를 빼앗은 후 겪는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한 주권자임을 보여줍니다. 블레셋은 언약궤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 이름을 높이신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뜻에 순종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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