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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33-02)


엘리후의 가혹한 충고

욥기 33장 13-33절


 

성공한 사람들의 비참한 말로들을 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성공이 별거 아니네.”라고 반응합니다. 성공이 별거 아니라는 깨달음은 꼭 필요합니다. 많은 재벌 회장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면 성공이 별거 아님을 깨닫습니다. 또한 지상 최대로 성공했던 솔로몬의 전도서 고백도 성공이 별거 아님을 생생하게 교훈합니다. 그러나 성공이 별거 아님을 깨닫는 것은 좋지만 성공 자체를 혐오하면 안 됩니다

 

  • 엘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리신다고 인간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꿈이나 환상으로 경고하시며, 그의 교만을 꺾기 위해서 고통으로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징계 받아 고통 받고 있는 인간에게 중보자 천사를 준비해주시며, 그가 회개할 때 그를 용서하고 회복하시며, 죽음의 구덩이에서 생명의 빛으로 이끄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경고와 징계의 하나님(13-2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일반계시를 보는 사람은 어렴뜻이 그 뜻을 분별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읽지 않으면서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13○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14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19○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13-22)

 

엘리후는 이제 자신이 아무리 호소하며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는 욥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분인데, 사람이 그 말씀에 관심이 없어서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 계시로 경고하시는 하나님(13-16)

 

욥은 세 친구와의 논쟁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할 길이 없고 하나님의 대답도 없자 하나님께 재판을 열어 왜죄 없는 자신에게 고난을 주셨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자신의 무죄를 확증해주시기를 재촉하였습니다(10:2;13:2,22;23:3–7; 32:35-37). 이에 엘리후는 욥에게 다른 관점에서 그 문제를 보라고 제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하시는 알이나 말에 대하여 또는 사람이 하나님께 묻는 질문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해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주관자로서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지혜와 계획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는다 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논쟁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때로는 꿈이나환상을 통해서 경고의 말을 전하고(7:14) 한 번이 아니라 거듭거듭 말하여도 사람은 이것 또한 잘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엘리후는 이런 설명을 통해서 욥이 세밀한 하나님의 계시에 눈을 돌리기를 넌지시 조언합니다.

 

(2) 하나님이 인간에게 경고하시는 이유(17-18)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경고의 계시를 주시는 이유로 엘리후는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 사람이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며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렵게 여긴다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한 행실과 악한 말을 그치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죄악의 길로 가려 할 때 또는 죄악의 길에 속한 줄도 모르고 교만할 때 하나님께서는 지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그를 경고하여 그가 주의하고 의의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둘째, 사람을 구덩이에서 건져 그 생명을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이 점은 13-33절의 단락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강조되었습니다. 이 단락에서는 ‘구덩이’(18,22,24,28,30와 ‘생명’(18,20,22,28,30)이란 단어가 각각 5번씩 등장하였습니다. 이때 18, 29, 30절에서는 두 단어가 한 절에 함께 나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 생명으로 인도하심을 표현합니다. 24절에는 구덩이만 나오지만 역시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반복과 강조를 통해 엘리후는 구원과 생명의 하나님을 부각시킵니다.

엘리바스는 5:17-26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며 욥에게 그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엘리후는 이런 충고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욥에게 닥친 현재의 고난은 하나님이 그를 교만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종용합니다.

 

(3) 징계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19-22)

 

욥의 세 친구는 세월을 통해 내려온 전통과 경험을 통하여 고난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만 이해하였고 욥에게 이를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죄를 지어 회개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왔기 때문에 세 친구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엘리후는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세 친구의 입장과는 다른 관점을 소개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때로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 그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또 그를 단련하기도 하시므로 고난을 항상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고난과 고통을 사용하여 욥이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고 그를 단련시켜 결국은 생명을 주시려고 합니다. 또한 욥에게 침묵하신 것이 아니고 꿈이나 고통 등을 통해 말씀하셨으나 욥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음성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정작 엘리후 욥이 어떤 죄목으로 징계를 받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점에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회복과 용서의 하나님(23-30)

고난과 재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천사가 그의 중보자가 되어 그이 정당함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서야 한다는 생각은 부분적으로 옳은 이해입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아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중보자가 된다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죄인은 자신의 정당함을 하나님 앞에 보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고난 앞에서 인간은 죄의 값을 대신 치러 줄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23○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24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23-30)

 

엘리후는 징계로 인한 질병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난 사람의 반응을 언급합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목적도 이렇게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을 밝힙니다.

 

(1) 중보자 천사와 하나님의 용서(23-24)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단련시킬 때 고통을 주는 것만으로 그의 역할을 끝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일천 천사(또는 ‘사자’(messengers]) 가운데 한 명을 보내어 고통 받는 자의 중보자가 되게 하여 그가 다시 의롭다 칭함을 받도록 도우십니다. 욥은 높은 하늘에 자기의 증인과 중보자가 계심을 바라고 믿으며 그 중보자가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해주기를 원했습니다(16:19,21) 욥이 언급한 그 중보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백성을 위하여 그를 대변할 자를 준비하시고, 그 대변자의 중보의 기도를 통해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죄인의 죗값을 치를 희생제물을 얻은 것으로 간주하여, 그의 생명을 죽음에서 건지시려고 합니다.

 

(2) 인간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25-28)

 

하나님께서 천사의 중보를 통해 고난 받은 자를 다시 의롭다 여기셨으므로 그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말끔히 없애주시고 전보다 더 낫게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고난 받은 자의 깨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그의 입술에 찬송과 기쁨을 주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며 그가 다시 의로워졌음을 알리실 것이다. 용서받은 이 죄인은 이제 고통과 두려움에서 나와 당당히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익함을 시인하고, 자신을 무덤에서 건져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신 하나님만을 노래하며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후는 이런 설명을 통하여 욥이 현재의 고난에 초점을 두지 말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눈을 돌려 소망을 품고 다시 의롭다 칭함을 받아 육체적 질병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조언합니다.

 

(3) 하나님이 인간을 회복시키시는 이유(29-30)

 

죄 지은 인간을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은 위에서 이미 언급되었듯이(17-18절의 설명을 보라) 생명과 구원의 제공자이십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꿈이나 환상으로 경고하고, 육체의 고통 을 주어 징계하며, 천사를 보내어 중보하게 하고, 죄 지은 인간을 용서하고 회복케 하십니다. 더구나, 인간을 구원하며 생명을 주려는 하나님의 시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그의 고통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깊은 뜻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내 말을 듣고 대답하라(31-33)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는 권면이나 위로나 교훈이 그에게 적절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지만(잠 25:11) 그렇지 않은 말은 독 사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해서 말씀하시니 잘 분별하고 깨달아 유익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31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33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31-33)

 

욥은 전에 친구들에게 “내 허물이 무엇인지 알게 하면 내가 잠잠하겠다”(6:24)고 말했고, 엘리후는 이 말에 대꾸하듯이 이제 자기가 깨달은 지혜로 욥을 가르칠 테니 새겨들으라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과 논쟁을 벌였으나 욥을 정죄할 뿐 깨달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욥을 잠잠케 하기는커녕 말을 더 많이 하게 만들었다. 엘리후는 이제 친구들과는 다른 견지에서 욥에게 의견을 내놓으며 깨달음이 있거든 잠잠히 자기 말을 경청하라고 지시합니다. 혹시라도 욥이 자신의 의견에 반박할 것이 있다면 말하라고 종용하면서 자신 또한 욥의 의로움을 인정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후 욥이 자기의 말에 대답하지 못할 것을 확신하므로 다시 한 번 욥에게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지 말고 잠잠하여(13:2,19) 자신의 지혜의 가르침에 계속 귀 기울이기를 청합니다(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때로는 초자연적 방법으로, 때로는 말씀과 상황을 통해 우리가 당신의 뜻 안에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갈망한다면 그분의 뜻에 기꺼이 순종할 것을 마음으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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