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3-02)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해야 함
예레미야 13장 12-19절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믿었던 사람들로 상처를 받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기뻐하던 일들 때문에 절망적이고 슬프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 많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일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의지했던 것들이 상처를 주는 것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즐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죽부대에 포도주로 가득 찰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잔뜩 취한 사람들은 흐느적거리면서 이성을 잃은 것처럼, 유다는 이상을 상실한 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권하지만, 왕국의 멸망을 돌이킬 수 없어 보입니다. 재앙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유다 왕이 폐위되고 포로로 잡혀갈 때가 올 것입니다.
진노의 잔(12-14)
우리가 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죄가 타인에게 무자비하고 무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양심의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행동의 결국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유행하던 농담을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12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13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14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간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2-14)
하나님께서는 다른 비유를 통해 백성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가죽 부대’ 이미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재차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가볍게 받아들였습니다.
(1) 속담의 인용(12a)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상적인 문답을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포하tlqsl다. 먼저 이들에게 전할 말과 그에 대한 이들의 반응을 예언자에게 알려주tlqsl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가죽부대(항아리)가 포도주로 차리라’라고 전해야 합니다.
(2) 청자의 반응(12b)
그러면 그들이 예언자에게 ‘모든 가죽부대가 포도주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하고 반문할 것입니다(12). 그들은 황당한 반응을 보이며, 너무도 당연한 예언자의 말에 어이없어합니다. 여호와께서 인용한 속담은 아마도 술자리 농담인 것 같습니다. 포도주가 가득 차기를 기대하던 사람들의 희망을 인용한 듯합니다.
(3) 심판 선언(13-14)
술자리가 벌어지면 배부르다고 술을 마다하는 술꾼은 없습니다. 잔치를 준비하면서 항아리에 술을 가득 채우듯이, 술꾼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며 제 배를 술로 가득 채웁니다. 나단의 우화에 다윗이 너무 당연하게 반응하면서 자신을 고발하였듯이(참조, 삼하 12:1-6), 누구나 인정하는 속담에 차라리 어이없다는 듯이 답변함으로써 이들도 자신들을 여호와의 심판대 앞에 세웁니다. 술꾼들이 좋아하는 속담에 술꾼들이 사로잡힙니다. 여호와께서 청자의 의표를 찌르시며 심판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술꾼의 볼록한 배가 술로 채워지듯이 ‘이 땅의 모든 주민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의 배도 술로 채워질 것입니다(13). 진노의 술을 마시고 취하는 대상에 예외가 없습니다. 영원한 왕권의 약속을 받은 다윗 왕조, 여호와 종교를 대표하는 제사장과 예언자,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 사는 백성, 그리고 그분께서 택하신 예루살렘 주민이 모두 그분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잔을 취하도록 마셔야 합니다. 14a절은 13절의 ‘잔뜩 취함’의 모티브를 받아 심판의 모습을 술자리에서 자주 벌어지는 꼴사나운 행태에 비교합니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술에 취한 술꾼들이 서로 잔을 부딪치다가 깨뜨리거나 서로 싸웁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추태를 보이며 다툽니다.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는 유다 내부의 정치적 불화와 다툼을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어둠이 덮치기 시작했는데도 나라와 백성의 안위보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쌈질을 합니다. ‘부자 사이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는 당시의 분열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적 이해와 욕심 때문에 인륜에 속하는 부자의 관계마저 무시할 정도로 사회가 타락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갈가리 찢겨 자멸합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술잔에 잔뜩 취한 자들이 분별력을 상실하고 이기적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예전에는 선포된 심판이 되돌려지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14b),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십니다. 재앙의 때에 살려달라고 울부짖을지라도 그분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진노의 술잔을 잔뜩 마시고 취해야 합니다.
마지막 경고(15-17)
인간의 감정은 아주 민감한 균형을 요하는 접시저울 같아서,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특히나 그 사랑이 정욕에 불과할 경우에는 더더욱 쉽게 변합니다. 추악한 욕망으로 비롯된 죄악은 마침내 실체가 드러나 결국 더 심각한 죄로 번졌습니다.
15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 16그가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17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15-17)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은 어느새 생활 습관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런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1) 예언자의 경고(15-16)
여호와의 심판 의지가 너무나도 확고해 바뀔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멸망을 피할 길은 없어졌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잔을 마시도록 하는 일만 남겨졌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끝나버린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유다와 예루살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견하고 있지만, 그래도 예레미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멸망 앞에 놓인 자기 민족의 운명에 눈을 감지 않고, 이들에게 절박하게 경고하면서 호소합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 들어야 할 말은 (문맥에 따르면)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결정입니다. 여호와의 확고한 심판 의지를 알게 된 예레미야는 이를 단순하게 전달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교만을 버리도록 호소합니다. 교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9-10절에 따르면 불순종의 완악함과 우상숭배를, 17절과 18-23절에 따르면 예루살렘성의 안전을 자신하는 행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교만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교만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교만을 버려야만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바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이미 시작됐기에 머뭇거릴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16).
(2) 예언자의 탄식(17)
산에서 밤을 맞은 여행자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때로는 목숨도 잃어버리는 것처럼, ‘여호와의 양 떼’의 처지가 그러합니다. 새벽빛이 곧 동 오리라는 기대는 착각에 불과합니다.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시기는 하지만, 언제나 ‘너희’의 구원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지금 가져오시는 것은 어둠입니다. 그분은 지금 빛을 어둠으로 바꾸시고, 암흑으로 만들고 계시입니다. 교만한 자들에게는 여호와의 구원이 아니라 그분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를 뿐입니다(참조,호 6:5). 현재의 문맥에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는 교만을 벗어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심판을 선포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낮은 자세로 그분께 돌아오는 것이 곧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확고한 심판 의지는 다른 한편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이 범한 죄의 심각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이들이 죄에서 돌이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기대였습니다(23). 예레미야도 이들이 듣지 아니할 것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그분의 양 떼를 적에게 포로로 넘겨주시는 심판이 악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예레미야는 절박한 심령으로 ‘여호와의 양 떼’를 덮치는 짙은 어둠을 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교만 때문에 마지막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눈물과 통곡만 남겨질 뿐입니다(17). 아무도 없는 ‘은밀한 곳에서’ 홀로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뿐입니다. 예레미야는 아마도 의도적으로사로잡혀 가는 자들을 ‘여호와의 양 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심판이 완고한 불순종의 결과로 주어졌음을 알기에 직접 증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혀 가는 것이 아니냐고 호소하는 예레미야의 애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려진 영광의 면류관(18-19)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만의 죄에서 그들을 돌이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거절하고 더욱더 깊은 죄악으로 ᄈᆞ져들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후통첩과도 같은 심판의 경고를 내리십니다. 하나님꼐서 경고하신 심판은 두렵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임할 것입니다.
18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19네겝의 성읍들이 봉쇄되어 열 자가 없고 유다가 다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18-19)
여호와께서 일으키시는 어둠(16)이 눈앞의 현실이 됩니다. 구원의 빛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심판의 어둠이 임합니다. 예루살렘부터 네겝까지 전 지역을 흑암이 덮칩니다.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이기에 누구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왕과 태후는 ‘영광의 면류관’을 벗고 보좌에서 내려오고(18), 네겝의 성읍들은 포위되고, 주민들은 유배를 당합니다(19). 왕과 태후가 적들에 의해 폐위되고, 유다 남부 지역이 침략자들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마지막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은 예루살렘과 유다는 교만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합니다. 여기서 ‘왕후’는 ‘태후’로 옮겨야 합니다. 유다 왕실은 태후에게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열왕기상2:19에 의하면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를 위해 오른쪽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15:13에 의하면 아사는 아세라 상을 만든 어머니 마아가를 ‘태후의 위’에서 폐합니다.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모든 수치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발정기의 짐승처럼 우상숭배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유다가 다시 정결케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렸습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을 수치 가운데 또는 일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대신에 거짓 바알을 더 신뢰한 유다에게는 심판만이 합당한 몫이 분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떠난 삶은 우상숭배의 삶이요 하나님을 망각한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망을 그 몫으로 받은 것입니다. 유다의 분깃이었던 하나님을 유다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비하신 그 분깃이 무엇일지는 그분에 대한 자신의 삶이 결정할 것입니다. 유다의 수치 앞에서 우리 또한 그 수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죄에서 돌이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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