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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12-02)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예레미야 12장 7-13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꼐서 사랑하신 모습으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품어주시기도 하시고 또 격려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또 기쁨을 주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판을 통해서 시련을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이되시길 바랍니다.

 

남 유다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산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함으로 대적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여호와의 칼인 훼멸하는 자들로 인해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어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신 소유를 포기하시는 하나님(7-13)

하나님께서 자백하기만 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는다는 생각으로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받을 모든 심판을 홀로 받으신 주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이 피 흘리신 큰 은혜를 기억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7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나니 8내 소유가 숲속의 사자 같이 되어서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였음이로라 9내 소유가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 매들이 그것을 에워싸지 아니하느냐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 10많은 목자가 내 포도원을 헐며 내 몫을 짓밟아서 내가 기뻐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도다 11그들이 이를 황폐하게 하였으므로 그 황무지가 나를 향하여 슬퍼하는도다 온 땅이 황폐함은 이를 마음에 두는 자가 없음이로다 12파괴하는 자들이 광야의 모든 벗은 산 위에 이르렀고 여호와의 칼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삼키니 모든 육체가 평안하지 못하도다 13무리가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며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은즉 그 소산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음이니라(7-1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해 또다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이방 민족에게 둘러싸여 짓밟히고 황폐해질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고집대로 행하는 죄인들을 향한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은 확고부동했습니다.

(1) 포기와 그 이유(7-8)

언약의 파기를 고발하는(11:1-13) 예레미야를 죽이려 한(11:18-23) 것은 단순히 예레미야 개인에 대한 위해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예언자로 보내신 여호와께 대한 노골적인 반역이었습니다. 숲속의 사자가 포효하며 주변 짐승들을 위협하듯이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8). 여호와의 소유인 이스라엘이 마치 원수를 대하듯 하나님께 소리를 지르고 덤볐습니다. 소유주의 권한과 능력을 무시하며 미움을 자초했습니다. 싫어하는 물건이 버려지듯이 미운 짓만 골라 하는 이스라엘도 버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이 미워져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소유권을 전혀 무시했기에, 또 그분께 속하기를 완강하게 거절했기에 여호와는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소유를 내던져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겼다”(7). 그분의 집, 그분의 소유, 그분의 사랑하는 것이지만 그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어쩌실 수 없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사용된 여호와의 일인칭 소유격은 여호와의 실망과 안타까움과 단호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남의 것’도 아닌 ‘내 것’이, ‘내가 애지중지하던 것’이 반역했습니다. 언제나 귀한 존재로 남아있길 기대했는데(참조, 3:19)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세 개의 동사 ‘버리다’, ‘내던지다’, ‘넘기다’는 실망하신 여호와의 심판 의지가 얼마나 단호한지를 보여줍니다. ‘내 집’과 ‘내 소유’와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여호와의 집’은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성전이나 가나안 땅을, ‘여호와의 소유’는 주로 가나안 땅을 가리키지만, 8-9절에 묘사된 소유주 여호와께 대드는 소유물의 모습은 셋 다 ‘여호와의 백성’으로 이해할 때 더 잘 어울린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문맥에서는 11:15 의 ‘나의 사랑하는 자’에 연결됩니다.

(2) 황무지가 된 땅(9-11a)

소유권의 부정은 보호의 박탈로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먹이를 채가려는 맹금을 다른 맹금들이 둘러싸고 공격하는 것처럼, 여호와를 배반한 이스라엘이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던 사나운 적들의 희생물이 됐습니다(9). 여호와께서 들짐승을 불러 당신 소유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많은 목자가 ‘그분의 포도원’을 파괴하고, ‘그분의 몫’을 짓밟아 폐허로 만들었다(10). 여호와의 포도원에 비유되는 이스라엘은 이방 왕들에게 유린당해 황무지가 됐습니다. 폐허로 변한 예전의 경작지는 하나님을 향해 통곡할 뿐입니다(11a).

(3) 깨달음의 부재(11b)

상황이 더 절망적인 것은 땅의 황폐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온 땅이 폐허가 됐는데도 이 일에 마음을 두는 자가 아무도 없다. 적들에 짓밟혀 황폐해진 경작지는 하나님을 우러러 탄식하는데, 포도원과 밭을 경작했던 자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포도원이 어떻게 이처럼 황무지가 됐는지 관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분노’에 관해 질문하는 자가 없습니다.

(4) 파괴자들의 침략(12)

12절은 10절의 구체적 기술입니다. ‘파괴하는 자들’은 ‘광야의 모든 벗은 산’을 넘어 쳐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요단 동편과 유다 남쪽의 광야로부터 공격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칼’은 침략자들이 여호와의 손에 들린 심판의 도구임을, 가나안의 황폐함이 여호와의 심판임을 다시금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5) 소출이 없는 농사(13)

여호와께서 보내신 적들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휩쓸고 지나가기에 누구도 칼을 피해 안전하게 숨지 못합니다. 경작지가 완전히 황폐해졌기에 밀을 심어도 자라지 못하고 가시나무만 무성할 뿐입니다(13). 땀을 흘리며 수고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지혜문학의 전통에 따르면, 농부의 능력은 소출로 결정되기에 소출이 없는 농부는 능력이 없는 농부이고, 능력이 없기에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셨기에 땅은 저주를 받아 수확이 없고, 사람들은 수치를 면치 못합니다.

 

민족들의 심판과 구원(14-17)

누구든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길 기대하십니다.

14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대는 나의 모든 악한 이웃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 버리겠고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리라 15내가 그들을 뽑아 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 16그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자기들이 내 백성을 가리켜 바알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으려니와 17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17)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은 유다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사용된 이방 민족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징계의 도구였던 이방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이방들을 약속의 땅에서 몰아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심판과 구원(14-15)

여호와의 시선이 이스라엘에서 그 주변 나라들로 옮겨집니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도구로 사용해 당신의 소유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민족들도 심판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이 민족들에게 면죄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소유 관계(언약)를 부정해 징계를 받지만,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에 손을 댔기에 자기 땅에서 뽑힘을 당합니다(14). ‘나의 모든 악한 이웃’은 10절에서 여호와의 포도원을 헐고 그분의 몫을 짓밟는 ‘많은 목자’와 12절에서 광야의 헐벗은 모든 산을 넘어오는 ‘파괴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나의’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민족들도 여호와의 통치 아래 있음을 시사합니다. 9-12절에서는 ‘여호와의 칼’로 사용되었던 민족들이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소유’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징벌을 받습니다. 민족들이 여호와의 심판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의로운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여호와는 민족들의 야욕을 잠시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제 욕심에 따라 유다 땅을 침략해 들어와 여호와의 포도원을 마음대로 유린했습니다. 유다 백성을 탄압하고 ‘파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를 침해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징벌을 받습니다. 당신의 소유권을 거절한 이스라엘을 폐허로 만드신 분께서 소유권을 침해한 악한 이웃을 그들의 땅에서 뽑아내십니다.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민족들의 경우도 멸망이 여호와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이들에게도 심판 이후에 구원이 주어집니다.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각 사람을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니”(15). 여호와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각자 제 기업으로 돌아가게 해주십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여호와의 모성적 사랑이 제 땅에서 뽑혀 남의 땅으로 유배당한 민족들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일찍부터 경험한 여호와의 긍휼을 민족들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기업’은 여호와께서 민족들에게도 땅을 상속재산으로 나눠주셨음을 시사해줍니다(참조, 신 32:8).

(2) 양자택일의 갈림길(16-17)

민족들의 귀향은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구원 약속의 일부일 뿐입니다. 제 고향으로 돌아온 민족들에게 여호와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도 열립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로부터 바알 숭배를 받아들여 멸망의 길로 나아갔지만, 민족들에게는 거꾸로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 종교를 배워 여호와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민족들이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살아 있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으로 맹세하면’ 그들 역시 여호와의 백성으로 세움을 받습니다(16). ‘내 백성의도’는 여호와께서 알려주셨지만 이스라엘이 따르지 않은 그분의 계명과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계시해주신 계명과 가르침을 배우면 민족들도 여호와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16), 곧 이스라엘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얻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내 백성 가운데에’는 14절의 ‘그들 가운데서’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족들의 길을 배워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들 가운데서’ 뽑혀 유배를 갔습니다. 반대로 민족들은 이스라엘과 접촉하면서 이들로부터 여호와 종교를 배워 ‘내 백성 가운데에’ 세움을 입습니다. 여호와 종교의 문호가 민족들에게 개방되면서 이들의 결단이 중요해졌습니다. 개종의 기회를 잡아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면 그분의 보호와 축복 아래 살고, 주어진 기회를 거절하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으면 뿌리째 뽑혀 멸망합니다(17). 여호와 백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이 전통과 혈통에서 고백과 순종으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심판받는 영혼들을 보시면서 고통으로 탄식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러한 고통을 이해한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악의 어떠한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목적 은 결코 파멸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죄에서 돌이켜 구원의 길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죄인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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