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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06-02)


열두 사도를 부르신 예수님

누가복음 6장 12-26절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황금률(golden rule)’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네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해주라”는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 6:12-49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고 가르치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로 부르시고(12-19), 그들에게 평지설교(20-49)를 전하십니다. 20-26절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반응하는 자들과 반응하지 않는 자들의 상태를 네 가지 복과 화로 설명합니다.

 

산 위에서 열두 제자를 부르심(12-16)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제자로서 살아갈 때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사명과 목적을 발견하고 그 부르심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협력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17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19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12-19)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때에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6:11).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의 다른 저서인 사도행전 속에서도 반복되어 있는 특별한 주제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누가는 매우 중요한 사건, 특히 구원 계획의 전환점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6:12; 9:28; 19:28,37; 21:37; 22:39). 큰일을 앞두고는 기도하는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공생애를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1) 열두 제자들을 세움(12-16)

 

예수님께는 밤을 새워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그 밤처럼 캄캄한 현실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물으셨을 것입니다. 날이 밝아오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새 이스라엘(교회)의 근간이 될 열 두 사도를 부르시고 그중에서 열둘을 사도로 칭하시고 그들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셨으므로 열 두 사도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4-16절은 열두 사도의 목록입니다(마 10:2-4; 막 3:16-19; 행 1:13). 첫 번째 네 명은 시몬 베드로, 안드레(시몬의 동생), 야고보, 요한, 두 번째 네 명은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세 번째, 네 명은,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시몬(열심파), 유다(야고보의 아들), 가룟 유다입니다. 누가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자로 소개합니다.

 

(2) 열두 사도의 사역(17-19)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17). 이 표현은 17-19절의 내용이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신 결과임을 의미합니다. 밤새도록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세우시고 치유의 사역을 행하십니다. 평지로 내려오자 제자들 무리도 왔고 말씀을 듣고 병을 치유받기 원하는 사람들도 몰려들었습니다(17).

유대의 온 지역과 이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의 해안에서부터도 많은 백성이 몰려왔습니다. 이들 주 더러운 귀신에게 고통당하던 사람들도 치유 받았습니다(18). 예수님을 만지는 사람마다 나왔습니다(19). 누가는 능력이 예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다시 한 번 알립니다(19; 4:14; 5:17; 8:46). 희년의 복음을 전파하고 치유하는 성령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납니다. 가르침과 치유와 축귀는 나사렛 설교에서 예고한 사역입니다(4:18-19; 사 61:1). 기도로 열도 사도를 택하신 장면은 복음의 일꾼들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일임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파송한 사람의 권위와 역할을 대행하는 자이므로 열두 사도의 존재 가치는 그들을 택하고 파송한 예수님의 권위와 역할에 근거합니다.

 

네 가지 복과 화(20-26)

성도들은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신앙 생활을 이어나가기를 소망합니다.

 

20○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20-2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씀과 치유 행위(17-19)로 보여주신 다음 하나님 나라의 헌법과도 같은 평지설교를 전하십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상태와 그들에게 주어질 반전의 복을 소개하십니다. 이어서 네 가지 복과 대조되는 네 가지 화를 통해 반전의 화로 경고하십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복을 언급할 때 ‘너희’라고 칭하시는데 화를 거론하실 때도 ‘너희’라는 호칭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과 거부한 자들 모두를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1) 지금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20,24).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복됩니다(20). ‘마카리오스’(μακαριος)는 행복을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옳고 바르고 좋은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부요한 자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24).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들’(호이 프토코이 οἰ πτωχοι)은 사회에서 낮아진 자들입니다.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여건 때문에 궁핍하고 소외된 자들입니다. 만일 가난한 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가난한 자들을 복되다고 칭찬하기보다 책임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것입니다(예, 잠 6:6-8; 10:4; 13:18; 23:21).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복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예수께 더 빨리 반응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에게 전해진 기쁜 소식(=복음, 4:18-19)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사 52:7)에 들어가 있으므로 복됩니다. 현재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실을 근거로 내세와 종말에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궁핍해지고 소외되더라도(18:18-30; 행 2:44-47;4:32-35) 가난한 자들은 복됩니다. 가난 자체는 복이 아니지만 궁핍의 문제 때문에 부한 자들에 비해 하나님을 더욱 의존할 수 있고, 세상에서 소외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가난할수록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더 깊이 들어갑니다. 가난한 자들과 대조적으로 부한 자들은 가진 것이 많아 오만하고 강한 자들입니다. 욕망이 크더라도 배고프지는 않은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 특권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부한 자들은 곤궁에 처한 자들을 무관심으로 대하기 쉽고(예. 12:16-21; 16:19-31), 사회적 위치를 강화하거나 높이는 데 관심을 둡니다. 부자들은 지상에서 충분히 즐겼기 때문에 종말에 더 받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현재 부하다고 자랑하는 자들은 종말의 반전으로 인해 긴장해야 합니다.

 

(2) 지금 주린 자들과 배부른 자들(21a,25a).

 

주린 자들은 가난한 자들과 같고(예. 시 107:36,41; 사 32:6-7; 58:7,10) 배부른 자들은 부한 자들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을 넣어서 현재 주린 상태의 고통을 강조합니다. 주린 자가 채워지는 것은 마리아의 노래에서 예고된 약속입니다(1:53; 시 107:9). 지금 주리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반면 지금 배부른 자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미래에 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현재 주린 상황에 놓였다고 해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주린 자들 가운데 실현되고 있으니, 제자들은 미래를 염려하지도 말고 현실을 비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지금 우는 자들과 웃는 자들(21b,25b).

 

소외와 상실 등으로 지금 탄식하는 자들은 웃게 될 것이기 때문에 복됩니다. 지금 웃는 자들의 웃음은 오만한 자들의 비웃음이나 조소에 가깝습니다(창 17:17; 18:12-15; 막 5:40; 약 4:9). 이들은 애통하고 울게 될 것이므로 화가 있습니다. ‘울다’(클라이오)는 이스라엘이 속박 가운데서 울었던 모습을 떠올립니다(“우리가 울었도다”, 시 137:1). 예수님을 믿는데도 탄식하고 슬피 울 때가 있겠지만 비관하거나 복음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의 척박함이나 신앙의 여정에서 오는 울음을 하나님이 웃음으로 바꿔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미움을 받는 자들과 칭찬을 받는 자들(22-23,26).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미워하고 따돌리고 욕하고 버릴 때, 당하는 자들은 복됩니다. 고난의 때에 기뻐하고 뛰어야 합니다. 하늘에 준비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큰 상을 준비해두셨기에 복됩니다. 지금 성도를 공격하는 자들의 조상들도 선지자들을 미워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칭찬에 도취된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의 반전을 근거로 오늘을 견디도록 격려하십니다. 희년의 복음을 받아들였음에도 오늘 궁핍하거나 울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복된 자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로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산상 설교를 통해 축복과 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겸손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의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또한,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신앙이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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