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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50-03)


하나님의 말씀과 바벨론의 운명

예레미야 50장 21-32절


 

우리 시대에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망한다고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작게는 대제벌 ‘삼성’이나 ‘현대’가 망한다면 동일할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 지배세력은 항상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간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고 쇠하듯이 나라도 조직도 교회도 그리고 권력도 사라졌습니다.

 

  • 바벨론이 앗수르를 정복하고 근동에 패권을 장왁할 때만 해도 그 제국은 아주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70년만에 안전하게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올무(21-28)

강한 자기 충족 추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통제원리로 두지 않는 자율은 파괴적이고 압제적으로 나타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사화 된 자기중심적 신앙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세상, 공적인 영역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무관심하게 만듭니다.

 

21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다하라 22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으리라 23온 세계의 망치가 어찌 그리 꺾여 부서졌는고 바벨론이 어찌 그리 나라들 가운데에 황무지가 되었는고 24바벨론아 내가 너를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더니 네가 깨닫지 못하여 걸렸고 네가 여호와와 싸웠으므로 발각되어 잡혔도다 25여호와께서 그의 병기창을 열고 분노의 무기를 꺼냄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갈대아 사람의 땅에 행할 일이 있음이라 26먼 곳에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 그의 곳간을 열고 그것을 곡식더미처럼 쌓아 올려라 그를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 27그의 황소를 다 죽이라 그를 도살하려 내려 보내라 그들에게 화 있도다 그들의 날, 그 벌 받는 때가 이르렀음이로다 28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것,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21-28)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어 그 땅을 파괴하고 혼란에 빠뜨리신다고 선언하십니다. 바벨론의 지도자와 군대는 패배하고 권세는 무너질 것이며, 이는 그들의 악행에 대한 응징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구원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⑴ 공격 명령(21-23)

 

여호와께서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너’에게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21). 명령을 받은 자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쫓아가서 모조리 없애버려야 합니다. ‘므라다임’과 ‘브곳’은 바벨론이 지역으로, 바벨론을 대신하는 경우는 여기가 유일한데, 아마도 바벨론을 조통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것 같습니다. ‘므라다임’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합쳐지는 남부 바벨론의 늪지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바벨론은 여호와를 거슬러 갑절로 고집을 부리는 성입니다. 에스겔 23:33에 한 번 더 나오는 브곳은 동부 바벨론 지역에 사는 아람 부족 푸쿠두(Pukudu)를 히브리어로 옮긴 표현입니다. ‘브곳’은 ‘징벌하다’, ‘보복하다’를 뜻하는 (‘징벌 받은 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 여호와에 의해 징벌을 받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진멸하다’로 옮긴 단어는 원래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사람과 짐승과 물건과 성읍)을 승리한 자가 소유할 수 없도록 여호와께 속한 것으로 모조리 없애버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벨론과의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처럼 언급됩니다. 상응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두 실행할 것을 분명하게 권면합니다.

여호와께서 익명의 적을 보내셔서 바벨론을 치게 하십니다. 이 익명의 나라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페르시아로 보입니다. 치는 시기에 바벨론 땅이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로 가득 찹니다(22). 전쟁을 모르고 살던 바벨론이 전쟁의 무대가 됩니다. 침략하기만 했던 바벨론이 전쟁의 아우성을 듣습니다. 파괴하기만 했던 바벨론이 파괴를 당합니다.

23절은 형식상 죽은 자를 애도하는 노래입니다. 바벨론이 애가의 대상이 됐음은 어떤 경우에도 바벨론이 멸망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공격이기에 바벨론이 적의 침략에서 살아남을 길은 없습니다. 바벨론은 이미 죽은 존재와 다름없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우고 민족들을 짓밟은 바벨론이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는 적에 의해 멸망하고 황무지가 됩니다(참조. 50:3; 51:29,41,43). 한때 온 세계의 망치로 사방으로 원정을 다니며 원하는 대로 땅을 파괴하고 정복하던 바벨론이 파괴를 당합니다. 바벨론이 황무지가 된 것을 보고 민족들은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고대적 사고에 따르면 폐허로 변한 성읍은 신의 저주를 받은 표징입니다. 망치와 유사한 표상이 사용된 51:20-23과 비교하면 한 가지가 눈에 띕니다. 20절에 따르면 여호와께서는 누군가를 ‘나의 철퇴 곧 무기’로 부르시며 민족들을 파괴할 자로 세우십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손에 들린 망치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바벨론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냥 망치로만 표현한 것 같습니다. 51:7은 바벨론을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는’ 금잔에 비유합니다.

 

⑵ 올무에 걸린 바벨론(24-25)

 

온 세상의 망치가 공포를 자아낼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될 때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새 사냥꾼이 올무를 놓아 새를 잡듯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잡으려고 올무를 놓으셨는데, 민족들의 정복자 바벨론은 이를 알지 못하고 만용을 부리다가 올무에 걸려 붙잡힙니다(24). 여호와께 대들다가 피하지 못하고 올무에 걸려듭니다. 민족들을 정복한 바벨론은 자신들이 파괴한 변방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땅의 하나님이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성전을 파괴한 것 이 올무가 되어 돌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징계하시려고 무기고를 열고 ‘분노의 무기’를 꺼내십니다. 그리고 이제 갈대아 땅에서 하실 일을 하십니다. 직접 무기를 들고 바벨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십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무기고에서 꺼낸 그분의 ‘분노의 무기’는 바벨론을 침략하는 민족들입니다. 이사야는 앗수르를 여호와의 진노의 막대가로 불렀습니다(이사야 10:5).

 

⑶ 공격 명령(26-27)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침략하는 군대에게 공격을 명령하십니다. 21절에서는 청자가 2인칭 단수 남성이었는데, 26-27a절에서는 2인칭 복수의 청자에게 명령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침략군을 바벨론으로 불러들이십니다. ‘먼 곳에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는 ‘사방에서 와서 그를 치고’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바벨론을 치기 위해 온 세상에서 민족들이 소집됩니다. 다음 두 개의 명령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의 곳간을 열고 그것을 곡식더미처럼 쌓아 올려라’의 원문은 ‘그의 곳간을 열고 그를 곡식더미처럼 쌓아 올려라’입니다. 바벨론의 곡식 창고를 열고 그 안에 보관된 곡식 더미를 끌어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곡식더미처럼 바벨론을 쌓아올립니다. 아마도 곡식 더미를 쌓아 올리고 불태워 여호와께 돌리듯이 바벨론도 그렇게 돌리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바벨론을 진멸해서 그에게 남은 것이 없게 해야 합니다(21). ‘그의 황소를 다 죽이라 그를 도살하려 내려 보내라는 사실적 또는 상징적 이해가 모두 가능합니다. 앞에 나온 곡식 더미는 전자의 이해를 지지할 수 있습니다. 곡식뿐만 아니라 황소(짐승)까지도 모두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또 황소는 우두머리 나 용사들을 가리키 기도 하기에(참조, 이사야 34:7; 에스겔 39:18; 시편 22:13) 전쟁 용사들을 죽여버리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침략자의 공격으로부터 바벨론을 지켜야 할 용사들이 다 죽습니다. 26-27a절은 바벨론 침략 전쟁을 헤렘(여호와의 전쟁)으로 선포하는 것 같다. 바벨론과 그의 곡식 더미와 황소(용사)가 모두 여호와께 희생 제물로 드려집니다. 27b절은 다시금 바벨론의 열망을 탄식합니다. ‘그들의 날’은 바벨론이 벌 받아 죽게 될 날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눈앞에 다가온 현실입니다.

 

⑷ 여호와의 보복(28)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혔기에 바벨론의 운명과 시온의 운명이 서로 연동됩니다. 바벨론이 심판받을 때 도망쳐 나온 자들이 시온에 와서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행하신 놀랍고도 두려운 일을 전해줍니다(28). 이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짓밟고 종으로 부린 바벨론 제국을 심판하셨다고 경험적·고백적으로 선포합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진 패권 다툼의 정치적 결과물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성전을 위해 보복하시는(15,24), 예루살렘 성전을 잿더미로 만들고(52:13) 당신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의 만행을 징벌하시는 신학적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벌하시는 때(29-32)

성경에서 가장 경계할 죄중에 하나가 ‘교만’입니다. 성경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라는 유명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교만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교만에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뒤따라옵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경우까지 발생합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교만을 얼마나 싫어 하신지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교만이 있지 않은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29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라 30그러므로 그 날에 장정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너의 날 곧 내가 너를 벌할 때가 이르렀음이라 32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지겠고 그를 일으킬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그의 성읍들에 불을 지르리니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을 다 삼키리라(29-32)

 

교만한 자랑과 거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활보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제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권위를 잘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⑴ 포위 명령(29-30)

 

여호와께서 복수 2인칭의 청자에게 바벨론을 공격하여 모조리 불태워버릴 것을 명령하신다. 궁수들을 소집하고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성을 완전히 포위하게 하시고, 바벨론이 이전에 저지른 대로 보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29a; 15).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민족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온 세상의 망치’ 바벨론이 민족들에 의해 진멸을 당합니다. 바벨론의 젊은이들은 광장에서 쓰러지고, 군인들은 모두 죽음에 넘겨집니다(30). 바벨론의 교만이 멸망을 초래합니다.

 

⑵ 바벨론 심판(31-32)

 

‘교만하다’를 의미하는 단어를 29절에서는 동사로, 31절과 32절에서 명사로 반복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께 맞서 교만하게 굴었기 때문에(29b) 그분의 징벌로 바벨론이 멸망합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교만을 징벌하시는 날이 왔습니다(31). 그분이 직접 교만한 바벨론을 치시기에 비틀거리다 넘어져도 도의 손길을 찾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성읍들에 불질러 그 주변까지 모두 태워버리 십니다(32).


권력이 제멋대로 자행하는 잔악함의 끝은 파멸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혹독한 징벌을 불러옵니다. 하나님께 부여받은 권위를 스스로 얻은 듯 착각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독하게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은 권위를 잘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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