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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15-02)

 


예레미야의 한탄과 하나님의 응답

예레미야 15장 10-2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한숨, 우리의 고통, 우리의 눈물의 의미를 아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사정과 마음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처럼 우시기도 하시고 탄식도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탄식에 응답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진노를 선포하는 예레미야에게 늘어나는 것은 대적뿐입니다. 점점 악화되어 가는 주변 상황에 예레미야는 지치고 좌절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가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이 자신을 속였으며, 여호와 때문에 수치를 당한다고 호소합니다.

 

예언자의 탄식(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속사정도 알고 계십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모든 것을 하시는 하나님께 털어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는 자신이 억울하게 고난당하고 따돌림 받는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입니다.

10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10)

사람들과 싸우며 살 수밖에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예레미야가 자신에게 화를 선포합니다. ‘나의 어머니’를 부르며 탄식하지만, 예레미야의 탄식은 실제로는 여호와를 향합니다. 여호와께서 모태에 짓기 전에 예레미야를 아셨고 자궁에서 나오기 전에 그를 성별하셨기에(1:5), 그의 출생은 직접 여호와께로 소급됩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태어나게 하셨기에 그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싸움을 걸지도 않았고 동기를 제공하지도 않았는데 예레미야는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가 됐습니다. 시비꾼이나 쌈꾼으로 낙인찍힌 예레미야는 마치 빌린 돈을 떼어먹은 파렴치한 채무자나 빚을 독촉하는 악한 채권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심판의 메시지가 그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예레미아는 유다가 심판받기를 바라는 자였습니다.

 

여호와의 응답(11-14)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해 낙심에 빠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역과 봉사의 일이 급해도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펼치는 알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맡기신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넉넉한 힘을 주실 것입니다.

1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11-14)

하나님께서는 탄식하는 예레미야를 그냥 배버려 두지 않고 말씀을 주십니다. 원수가 재앙과 환난의 때에 예레미야에게 빌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난의 때에 사람을 보고 문제를 보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1) 예레미야의 위로(11)

탄식하는 예레미야에게 위로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강하게 하시고 복되게 해주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종국에는 원수에 의해서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11).

(2) 대적의 심판(12-14)

선포한 재앙과 환난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원수가 그에게 도움을 간청할 것입니다. 그를 저주하던 자들이 찾아와서 여호와께 기도해주기를 애원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시기에 누구도 그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맨손으로 '철곧 북방의 철과 놋'을 부술 수는 없습니다(12). 예레미야가 선포한 북방에서 내려오는 적의 공격은 유다의 능력과 군사력으로는 결코 막아내지 못합니다. ‘북방의 질’은 후에 바벨론 군대로 나타납니다(참조, 20:4-6). 여호와께서 죄로 뒤덮인 유다를 ‘진노의 맹렬한 불’로 징벌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13-14). 침략자들이 유다를 짓밟으며 ‘모든 재산과 보물’을 마음 약탈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아갈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이방 땅으로 끌려간 자들은 거기서 자신들을 멸망시킨 원수를 섬겨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그를 박해한 자들의 죄가 유다의 멸망을 초래합니다.

 

예언자의 탄식(15-18)

우리는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종종 어려움을 당하곤 합니다. 낙심하기도 하고, 죄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당장은 오해와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의 말씀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습니다. 영적 고독이 찾아올 때, 낙심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곧게 붙드는 것입니다.

15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15-18)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자기를 기억하고 돌봐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원수에게 보복하시고 자신을 지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님을 위해 부끄러움 당하는 것을 알아 달라고 간천합니다.

(1) 여호와께 대한 순종(15-17)

첫 번째 탄식에 여호와의 응답이 주어졌음에도 예레미야는 다시 여호와께 탄식합니다. 사람들의 저주와 박해가 갈수록 심해져 가자, 예레미야는 자신이 여호와의 기억과 돌봄에서 제외되지는 않았는지 불안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다시 여호와께서 기억하시고 찾아 주실 것을, 박해자들에게 보복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15). 그는 박해를 당하는 자신이 하나님 편에 속함을, 곧 자신이 선포한 심판 메시지가 그분께로부터 온 말씀임을 확증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은 박해당하는 자의 편에서 보면 고난의 연장을 의미하기에 멸망하기 전에 빨리 개입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여기서 ‘주를 위하여’는 ‘주 때문에’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와의 일을 하다가 박해와 수치를 당하는 것이기에 그분은 책임지고 구해주셔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자신이 겪는 수치를 여호와의 책임으로 돌렸을 때는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먼저 그는 여호와와의 특별한 사적 관계를 주장합니다(16a).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은 소유관계를 보여주는 법적 용어로, 주로 성전이나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고 여기에서만 개인과 관련해 사용됩니다. 예레미야의 박해는 여호와의 소유권을 무시하는 폭력과 다르지 않으므로 그분께서 책임을 지셔야 한다. 다음으로 예레미야는 자신의 철저한 순종을 주장합니다(16b). 여호와로부터 말씀이 게시되면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먹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는 신실함과 복종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정중이 싫어하는 심판의 말씀이 주어졌지만, 이를 받아 그대로 전달했고, 그 결과 수모를 당하게 된 것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주 때문에 겪는 고난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심판의 말씀을 선포했기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야 했습니다(17). ‘기뻐하는 자의 모임’은 아마도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진료를 나누는 일상적인 모임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예레미야는 사회적 기쁨과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다. 그를 가득 채운 여호와의 분노 때문에 그분의 손에 사로잡혀 혼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분노를 담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먹었기에 예레미야는 그분의 분노로 가득 채워졌고, 분노의 메시지를 선포했기에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박해와 수치를 당했습니다.

(2) 여호와를 향한 비난(18)

예레미야의 고통은 계속되고 상처는 깊어만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예레미야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며 여호와께 강한 불만을 터뜨립니다(18). 신뢰가 깊었기에 실망도 컸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는 약속을(1:8) 잊어버리신 것인가?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에 비교하며 아주 신탈하게 비난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여호와께 사기를 당했다고 격렬하게 항의합니다. ‘속이는 시내’는 우기에 만들이 흐르는 시내를, ‘물이 말라서’(신뢰할 수 없는 물)는 고여서 변질된 물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생수의 근원'(2:13)이 아니라, 물이 흐른 흔적만 있는 시내와 도무지 마실 수 없는 오염된 물처럼 느낍니다.

 

여호와의 응답(19-2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붙들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도의 특권을 잊지 말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향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향하십니다. 영적 고독을 이기는 자는 눈에 보이는 환경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눈을 들어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것입니다.

19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19-21)

주님은 예레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들에게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보며 낙심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1) 책망의 말씀(19)

예레미야의 신성모독에 가까운 비난에 여호와께서 단호한 음성으로 회개를 촉구하신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내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19). 예레미야의 불만이 불신앙의 경계를 넘었습니다. 여호와의 공의에 회의하는 자는 그분의 예언자가 될 수 없다. 예언자는 그분의 공의를 신뢰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어진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예언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신다. 여호와의 입이 되기 위해서는 쓸모없는 말을 버리고 소중한 말을 해야 합니다. ‘헛된 것’은 여호와의 공의에 관한 예레미야의 피상적 이해와 불평불만(18)을, ‘귀한 것’은 예레미야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먹은 ‘주의 말씀’(16)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19b)는 박해하는 자들과 타협하지 말라는 일반적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2) 보호의 약속(20-21)

예언자를 단호하게 책망하시던 여호와께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탄식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십니다(20-21; 참조, 1:18-19). ‘견고한 성벽’으로 만들어 백성이 싸움을 걸어도 이기지 못하게 해주시고, 그와 함께하시어 ‘악한 자의 손’과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해주십니다. ‘악한 자’는 공동체에 재앙을 초래하는 자를 ‘무서운 자는 폭력을 주저하지 않는 강포한 자를 가리’킵니다. ‘놋 성벽’은 일차적으로는 난공불락을 상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레미야의 앞길이 지금보다 더 험난할 것을 시사해주기도 합니다. 금속으로 성벽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대적의 공격은 매섭고 치열하며 집요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넘어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세력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공격하겠지만,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이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끝까지 그를 보호해주십니다.


우리가 맡은 사역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대부분 두려워하며 위축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이러한 연약함을 위로하시고, 그에게 담대함을 주시고,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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