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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2-02)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

창세기 32장 13-32절


우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야곱은 평생 머리를 굴리며 소유하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장자권도, 아버지의 축복도, 삼촌 집에서의 새로운 가정생활도 모두 전투 같았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다투고 도망치는 삶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남은 삶을 이 세상과 사람들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을 상대하여 살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에 쌓여 있었습니다. 역시 모사꾼답게 자신의 재산을 여러 떼로 나누어 형을 위해 먼저 보내고, 가족들까지도 자신보다 먼저 얍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혼자 남은 야곱은 얍복 강에서 갑자기 나타난 어떤 씨름꾼과 밤새 씨름을 합니다. 이 씨름꾼은 나중에 ‘하나님’(엘로힘)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호세아 12:4은 야곱이 씨름한 상대가 천사였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의 모호심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에서의 공격에 대비하는 야곱(13-20)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늘어뜨리고 있습니까! 말로 돈으로 힘으로 살 수 있는 게 사람의 환심이라면 너무 값싼 마음 압니까! 야곱은 에서와의 대면을 앞두고 그의 마음을 녹일 물량공세를 준비합니다. 다섯 떼에 이르는 긴 행렬은 야곱의 두려움의 길이를 보여줍니다.

13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13-20)

에서는 150km 떨어진 세일 산에서 오는 중이므로 그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날 야곱은 거기서 밤을 보냈습니다(13). 아마 이튿날 아침 그는 자신의 가축 떼 중에서 에서를 달랠 예물(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야곱은 일단 최소한의 생존 전략으로 대열을 두 진영으로 나누어 분리한 뒤, 마지막 카드로 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보내려 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야곱이 거느린 가축 떼의 규모가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그가 준비한 선물은 규모만으로도 엄청났습니다(14-15).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어미 낙타 30마리와 새끼들,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새끼 나귀 10마리. 이 중에서 낙타와 황소는 가장 비싼 가축들인데 80마리의 규모입니다. 총 550마리이며 새끼를 낳고 젖을 짜는 암컷들이 더 비쌌는데 압도적으로 암컷들로 구성된 선물 보따리입니다.

야곱은 역시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그는 심리전에도 유능합니다. 그는 선물을 세 떼로 나누어서 차례로 보내는 전략을 구사합니다(16). 야곱은 각 떼를 맡은 책임자들을 보내면서 각 떼의 거리를 충분히 두게 했습니다. 이는 에서가 예상치 못한 선물을 연달아 받으면서 마음의 응어리가 차례로 풀리도록 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야곱은 각각의 떼를 맡은 종들이 에서에게 해야 할 말까지 미리 일러두었습니다. 대화술까지 사전에 준비하는 철저함을 보입니다. 첫째 떼를 이끈 종이 에서를 만났을 때 에서가 그 종의 신분과 출신, 그리고 가축에 대해 묻는다면, 그 종은 그것이 에서를 위한 선물 꾸러미라고 말해야 합니다. 덧붙여 그는 자신의 주인 야곱이 그 선물 뒤에서 에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에서로 하여금 야곱이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할 것입니다. 야곱은 둘째와 셋째 떼도 간격을 두고 차례로 에서를 향해 갈 것을 지시하면서, 역시 약속된 대화를 일러둡니다. 거의 200마리에 이르는 한 떼의 선물 규모도 압도적인데, 그것이 세 차례 반복해서 주어지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세 종에게 매번 ‘주인님의 종이신 야곱이 우리 뒤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을 강조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야곱은 에서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은 그의 종으로 전락합니다. 월키는 이에 대해 야곱이 지금 하나님께 장자 신분의 처분을 다시 맡기고 그것을 에서에게 되돌려줄 의향까지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야곱은 이런 정중한 선물이 형의 감정을 풀어주기를 희망합니다. ‘감정을 풀다’로 번역된 동사 ‘키페르’는 피해자에게 배상물을 지불하여 그의 마음을 누그러트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야곱은 이 선물로 만일 그의 마음이 진정되면, 형이 자신을 용서할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21-29)

모든 행렬을 앞세워 보낸 후 얍복강을 사이에 두고 혼자 밤을 새는 야곱, 그 밤에 정적을 깨고 나타난 한 사람의 난데없는 공격에 밤새도록 씨름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그가 천사인 걸 알아챈 순간 축복을 요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 이름으로 정체성을 찾게 해주십니다.

21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21-29)

야곱은 이 막대한 선물을 준비하는 데 하루를 모두 보냈습니다. 세 떼로 나뉜 예물 사절단을 차례로 보낸 뒤, 밤이 되자 그는 진영 가운데서 수면을 취했습니다(21).

그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밤에 가족들을 데리고 얍복 강을 건너기 위해서였습니다. 어쩌면 에서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가족들이 그를 맞을 준비를 미리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릅니다. 야곱은 두 아내와 그녀들의 두 몸종, 그리고 열한 명의 아들을 데리고 그 밤에 얍복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유물도 함께 보냈습니다(23). 아직 완성되지 않은(한 아들이 더 태어난다) 미래의 열두 지파가 그 땅을 향해 강을 건넜습니다. 야곱은 다시 강 건너로 돌아와 홀로 남았습니다(24).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고독의 순간과 맞닥뜨립니다. 그러나 정적이 흐를 것 같은 장면이 갑자기 씨름판으로 바뀝니다(24). 저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어떤 씨름꾼한 명을 무대에 등장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많은 경우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의 경계선이 모호합니다. 여기서 이 씨름꾼은 하나님으로 소개되며(28) 그 경험을 기념한 장소의 이름인 브니엘의 이름 뜻도 ‘하나님의 얼굴’입니다(30). 그러나 호세아 12:4은 이 씨름꾼을 하나님의 대행자인 ‘천사’였다고 설명합니다.

야곱은 낯선 씨름꾼과 밤새 씨름을 했습니다. 왜 그가 지칠 때까지 낯선 이와 씨름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에서가 접근해오는 긴박한 순간에 아마 이 수상한 사람을 무력으로 제지하려 했습니까? 그러나 26절을 볼 때, 야곱은 이미 그가 인간 존재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의 하나님과의 씨름은 축복과 안전을 얻어내려는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는 승리해야만 그것들이 보장될 것이라는 절박감으로 날이 새도록 씨름을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혹은 하나님의 사자)은 끈질긴 야곱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내리쳤고 그것이 어긋나면서 씨름이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의 원동력인 골반 뼈를 내리치셔서 그를 굴복시키셨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씨름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씨름이 아닌 육체적 타격도 가능했던 몸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날이 밝아왔습니다. 낯선 씨름꾼은 그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를 보내지 않았습니다(26). 아직 씨름이 끝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몸 싸움이 끝났지만 이제 말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말싸움은 기싸움으로 바뀝니다.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결코 보내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26). 야곱은 몸싸움은 졌지만 기싸움에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축복을 받아낼 때까지 보낼 수 없다는 야곱의 끈질김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씨름꾼은 두 손을 들었습니다. 벧엘에서의 임재의 체험이후 다시 한 번 이 순간 그의 인생이 결정적으로 변합니다. 그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 물은 뒤,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습니다(27-28). 그는 여기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그 이름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이는 네가 하나님(엘로힘) 및 사람들과 겨루었기 때문이다.’ 개역개정은 ‘겨루어 이겼다’고 의역하지만, 원문을 따라 단순히 ‘겨루었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속임수’, ‘발목을 잡는 자’라는 뜻의 야곱과 더불어 그의 과거가 청산되고 이제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뜻의 새로운 이름과 더불어 그의 미래가 열립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재주로 사람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영적 싸움으로 하나님을 이기고 또한 사람을 이깁니다. 야곱은 그분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야곱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면한 것임을 확증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하나님과 조우한 경건한 인물들은 그분의 이름과 정체를 물어 확인하곤 했습니다(사사기 13:17-18). 그는 대답 대신 야곱을 축복합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의 주장대로 관례적인 작별 인사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야곱이 간청한 축복을 베푸는 순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더불어 이 축복의 행위 자체가 그가 복을 주관하는 최종적 권위자임을 야곱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명 브니엘의 기원(30-32)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도 죽지 않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에서와의 만남을 앞에 두고 칠흑 같이 어둡고 불안하던 야곱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동터 오는 태양처럼 환하고 밝아져, 이제는 담대하게 형 에서를 만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절뚝거리는 야곱은 영광스런 패배자였습니다.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30-32)

축복을 받은 뒤 그가 떠나고 나서 야곱은 진정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브니엘’이란 지명을 붙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이 만들어진 사연이 부가적으로 설명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가 브니엘로 명명된 그곳을 지날 때 비로소 해가 돋았습니다. 그는 골반이 부러졌기에 다리를 절면서 강 건너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부상병이었으나 위대한 전투에서 승리한 후 기쁨으로 돌아오는 영웅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유래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후대의 유대교 문헌에서도 발견된 대로 허벅지 관절 부의 힘줄을 먹지 않는 관행이 생겼습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 이를 때만 해도 한 번이었는데, 브니엘을 지날 때에 아침을 보게 됩니다. 눈부신 해가 비출 때에 그토록 두려웠던 아침이 더는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맞은 브니엘의 아침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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