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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1-03)


 야곱과 라반의 언약 체결

창세기 31 36-55


우리는 축적한 재산과 명예 등이 자신의 잘남이나 노력으로 된 것인 줄 알고 자신을 높이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엄청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라반과 대등한 존재로, 아니 두려움이 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신실함의 산물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음을 고백하고, 겸손히 청지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 세월을 섬겼습니다. 7년간 레아를 위한 기간, 추가적인 7년의 라헬을 위한 기간, 그리고 이후 라반을 위한 6년의 섬김 기간의 합산입니다(41). 그러나 야곱은 이 20년 동안 라반이 품삯을 무려 열 차례나 변경했다고 비난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열 번은 실제적인 수라기보다는 꽉 채움을 의미하는 완전수의 개념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라반의 계약 위반이 수도 없이 빈번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이러한 상황이 극적으로 뒤집힙니다.

  

라반을 책망하는 야곱(36-42)

라반이 잃어버린 드라빔에 대해 야곱에게서 아무런 협의점도 발견하지 못하자, 야곱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야곱은 지난 20년간 라반을 위해 일하면서 대가는커녕 배상하기 바쁜 세월이었습니다. 마치 욥기 31장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욥의 변론 고백을 듣는 듯합니다.

36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36-42)

야곱은 드리빔을 훔쳤다는 건으로 자신을 취격해온 외삼촌 라반을 향해 지금까지 참아 온 모든 울분을 쏟아 냅니다. 지난 20년 동안 착취당한 일들을 열거하며, 밤낮없이 더위와 추위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면서 삼촌에게 항상 정직했음을 강변합니다.

(1) 야곱의 소나기 펀치(36-40)

야곱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라반에게 향해 분노하며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그가 라헬에게 크게 분노한 이후(창세기 30:2) 다시 여기서 분을 내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는 라반과 법정 소송에서 싸우는 것처럼 자신을 변론하며 라반의 죄를 나열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라고 따집니다. 내 허물의 히브리어 페샤는 반역질과 같은 항명죄이고 무슨 죄로 옮긴 하타트는 일반적인 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의 질문은 외삼촌에게 내가 무슨 반역질을 했습니까,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대든 적도 몰래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는데 무고한 나를 과연 이렇게 맹렬히 추격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항의입니다(6). 무엇보다 드라빔 분실에 대한 혐의를 야곱 일행에 뒤집어씌운 것이 오히려 라반을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 계속 몰아붙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확인시키기 위해 자신의 헌신적인 목축 원칙을 하나씩 나열합니다. 라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의 섬김은 독자들을 놀라게 하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38-39). 첫째, 나는 임신한 양과 염소를 잘 돌보아 유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나는 외삼촌의 숫양 고기를 일체 먹지 않았습니다. 셋째, 맹수에 물려 찢긴 가축은 내가 배상했습니다. 넷째, 도둑맞은 가축도 내가 배상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목축 원칙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야곱이 얼마나 놀라운 인물로 변화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것이 야곱의 허풍이 아닌 이유는 라반이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여러 국가들의 법에 의하면, 천재지변이나 짐승에 의해 가축이 죽었을 때, 그리고 가축을 도둑맞았을 때, 목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되었습니다. 맹수에 잡아먹히거나 찢긴 짐승은 그것을 증거로 제시할 때 목자의 책임은 없었으며, 도둑맞은 가축에 대해서도 관리 소홀로 인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책임이 면제되었습니다(출애굽기 22:9-13). 결국 야곱은 이 모든 손실을 자신이 메울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 그는 외삼촌에게 가축의 손실분을 일절 청구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떼어 그것을 채웠습니다. 암양은 새끼를 치고 우유를 짜는 이유로 비싸서 숫양을 흔히 식용으로 잡았습니다. 목자가 자신의 재량으로 가끔씩 잡아먹어도 되었지만, 야곱은 그 어떤 숫양도 일절 손대지 않음으로써 외삼촌에게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따라 목축을 함으로써 외삼촌의 가축을 크게 늘려 놓았으며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를 견디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했다고 항변합니다(40). 가혹한 환경 속에서 야곱은 오랜 세월 인내하며 라반의 목축업을 도맡아 최선을 다해 크게 번성시켜 놓았습니다. 그 혜택은 모두 라반에게 돌아갔습니다.

(2) 야곱의 인고의 20(41-42)

야곱은 20년을 인내하며 라반을 섬겼습니다. 그의 희생적이고 성실한 목축으로, 또한 그와 함께하며 그가 가는 곳마다 큰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라반의 가축 떼는 해마다 크게 번성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소나기 펀치 끝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려 라반을 무릎 꿇게 했습니다. 이런 당신은 결국 빈손으로 밧단아람에 온 나를 다시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수고와 고통을 아시고 어젯밤에 직접 외삼촌에게 나타나 꾸짖었지 않했습니까?(42) 야곱은 그에게 현몽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야곱과 라반의 조약(43-55)

라반은 야곱과 언약을 채결하여 비로소 야곱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합니다. 또한 자신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으로 딸들에 대한 보호와 안정적인 결혼행활, 상호 불가침의 조항을 달아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제는 종이 아닌 가장의 지위를 얻게 됐습니다.

45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47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48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49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50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43-55)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하시고 야곱의 수고를 감찰하셔서 일시불로 품삯을 얻도록 복 주셨습니다. 당하고만 산 것 같은 20년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날도 허사가 아니었으며, 더욱이 눈에 보이는 부()보다 야곱이 자기 한계와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더 큰 보상이었습니다.

(1) 화해의 조약식(43-50)

라반은 야곱에게 굴복합니다. 분명히 그는 야곱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조약 협정을 제의합니다(43). 하지만 그의 허세는 여전합니다. 그는 여전히 야곱의 아내과 손주들, 그리고 야곱의 모든 소유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의미 없고 공허한 주장입니까! 소돔 왕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마치 강자인 자신이 큰 아량을 베풀고 있는 것처럼 뻐깁니다. 그러나 이미 그가 조약을 제안한 순간 그는 자신의 패배와 열세를 인정한 셈입니다. 따라서 야곱과 라반의 관계는 더 이상 주종 관계도 상하관계도 아닙니다.

엄중한 조약을 맺은 후 그들은 기념석으로 세운 돌무더기에 각자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증거석(證據石)과 더불어 그것은 그들의 조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또한 이것 역시 증거석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이 기념석을 중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로운 동맹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각각은 자신의 언어로 그 돌무더기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반은 아람어로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가나안어(히브리어)로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습니다. 둘 다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라반은 그 돌무더기가 오늘 자신과 야곱 사이에 증거가 될 것이라고 공포합니다.  오늘은 오늘부터 이 조약이 영속적으로 유효하다는 선언입니다. 라반은 아마도 돌무더기와 함께 세운 별도의 기둥에 미스바라는 이름을 추가합니다(49). 미스바(미츠파)는 망을 보는 탑인 망대라는 뜻입니다. 라반은 그 기둥의 이름에 여호와께서 서로 멀리 떠나는 자신과 야곱을 그 망대에서 살피시고 지켜달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49).

라반은 이 조약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하게 준수해야 할 것을 마지막으로 성기시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두 딸입니다. 그는 야곱이 자신의 딸들을 학대하거나 다른 아내들을 맞아 그들의 위치를 위협한다면, 하나님께서 둘 사이에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50). 그가 다른 아내들을 경계하는 이유는 아내들의 증가로 인해 자신의 딸들의 상속권이 위협받고 손주들의 유산의 몫이 축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딸들을 터인 취급하고 딸들을 팔아 큰 이듯을 얻었던 비정한 아버지였습니다.

(2) 야곱과 라반의 송별식(51-55

라반은 조약 예식의 마지막 절차로 상호간의 철저한 조약 준수를 맹세합니다. 조약의 기념물로 세운 돌무더기와 기둥이 또한 조약의 증거물이 될 것입니다(52). 동시에 그 기념물인 돌무더기와 기둥은 양측의 경계선 역할을 합니다. 말ᄒᆞ자면, 이 조약은 일조의 상호불가침 조약이었습니다. 만일 그 돌무더기 경계선을 넘어와 계약 위반을 한다면, 이제 아브라함의 신들과 나홀의 신들’(개역개정의 하나님보다는 신들’), 그들의 조상의 신들이 둘 사이를 판단해달라고 기원합니다. 복수의 신들을 부른 라반과 달리 야곱은 하나님을 유일신 하나님이신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분으로 호칭하며 맹세하고 있습니다. 조약식은 마지막 제사와 더불어 (주로 화목제였다) 풍성한 식사를 하면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출애굽기 24:5-8,11; 신명기 27:7). 야곱은 그 산에서 화목제를 드린 후 라반 측의 사람들(‘형제들’)을 모두 불러 함께 풍성한 식탁을 나누었습니다(54). 그들은 그 밤을 거기서 지낸 뒤,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라반은 자신의 딸들과 손주들과 더불어 송별 인사를 나누며 축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야곱은 과거 자신이 무너뜨린 질서와 속임수에서 대가를 치르고 자신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속이는 자에서 속는 자로 살아가면서, 과오를 씻고 경계를 복구하는 시간은 길고 고달픈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묵은 시간과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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