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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31-02)

 


라반을 피해 도망하는 야곱의 대작전

창세기 31장 17-35절


 살면서 웬만하면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라반과 에서가 그런 존재일 것이고, 라반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런 존재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문이 누군가에게는 은혜로운 만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날벼락 같은 만남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게 될 때 그 만남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야곱은 제2의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조부 아브라함이 했던 떠남을 재현합니다. 아브라함도 아내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종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출발했었습니다(창세기 12:5).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야반도주와 같은 탈출극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가 밧단아람에 올 때는 낙타도 없이 홀몸으로 걸어서 왔습니다. 신부 값도 없었던 빈털터리 도망자가 이제 낙타들을 거느리고 많은 가축 떼와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야곱의 도주(17-22)

야곱은 라반이 먼 길을 떠난 틈을 타 도주합니다. 사흘 후에야 라반은 친족들과 함께 떼로 추적하여 7일 만에 야곱이 머무는 길르앗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의 가나안 행을 위태롭게 할 라반을 사전 봉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17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19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21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22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17-22)

두 아내의 동의를 얻은 야곱은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아마 그는 즉시 도주를 시도하지 않고 최고의 기회를 노린 것 같습니다. 그는 디데이를 양탈 깎는 시기로 정했습니다(19). 양털 깎기는 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식구들이 오랜 기간 집을 비우고 멀리 떠나 커다란 수입이 보장되는 그 일에 집중했습니다. 라반의 가족들 모두가 양털 깎기에 동원되어 나갔을 때, 야곱은 작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17). 그는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을 모두 낙타들에 태우고 모든 가축과 소유물을 가지고 나와 가나안 땅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향했습니다. 이때 라헬은 라반의 막사에서 드라빔을 홈쳐왔습니다(19).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드라빔의 정체와 기원, 용도, 그리고 크기와 형태에 대해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상의 형상인데 그 우상이 신인지 죽은 조상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개체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복수형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에 대해 많은 견해가 제시되나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주석을 써내려가 혼동을 일으킵니다. 베스터만은 이것을 단수로 취급하지만, 월키와 웬함 그리고 해밀턴은 복수로 간주하면서 드라빔을 지칭하는 신을 일관되게 ‘신들’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복수의 신들로 번역하는 이들조차 하나의 개체가 왜 복수의 ‘신들’로 표현되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필자의 견해로, 드라빔은 여러 신들의 단일 합일체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것은 한 개체이면서 항상 복수형 ‘테라핌’으로 표기되고 대명사 또한 복수가 사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빔의 용도는 분명하지 않으나 구약에서 그것이 일단 점술로 사용되었음이 확인됩니다(에스겔21:26; 스가랴 10:2). 그 외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아마 드라빔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가족의 수호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역만리 타향으로 떠나는 라헬은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번영, 그리고 번성의 복을 위해 수호신 드라빔을 빼돌렸을 것입니다. 결국 여전히 메소포타미아 우상숭배에 심취했던 그녀였기에 자녀를 얻기 위해 합환채의 신통력에 의존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창세기 30:14; 참조. 창세기 35:2).

야곱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으로 도주했습니다(21절). 이 ‘강’은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쪽으로 오기 위해서는 남서쪽의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행진하면 갈릴리 호수 근처의 북부 길르앗에 도착합니다. 그가 도주한 지 삼 일이 지나서야 라반이 알아차렸습니다(23). 여기서 ‘삼 일’은 앞서 ‘사흘 길’의 어법이 그러하듯이 여러 날일 수 있습니다.

 

라반이 추격(23-30)

야곱과 대면한 라반은 매섭게 쏘아 붙었습니다. 그동안 야곱과 딸들에게 한 속임수를 생각하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말들입니다. 거짓말 탐지기가 있다면 들통 났을 말들을 뻔뻔하게 내뱉었습니다. ‘야곱에게 아무 소리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입니다.

23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24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25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26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29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30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23-30)

추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됩니다. 야곱이 하란에 도착했을 때 라반은 달려가서 그를 맞았습니다. 이제 야곱이 하란에서 도망가자 다시 라반은 달려가서 그를 붙잡습니다. 둘 다 물욕에 사로잡힌 달리기입니다. 라반은 형제들(아마 친족들)을 데리고 ‘칠 일 길’을 추격하여 길르앗 산에 도착하여 야곱의 대열에 바짝 붙었습니다(다바크 P7; 23). 거의 야곱을 따라잡았던 그날 밤, 하나님께서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시어 야곱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잘잘못을 따지지 말 것을 경고하셨습니다(24). 라반은 앞서 20절에서부터 ‘아람 사람’으로 불립니다. 이로써 야곱과 라반의 근본적인 민족적 간격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두 부류의 별개의 민족을 대표한다. 그것은 그들 사이의 조약을 예고다’(Waltke).

참고로 칠 일 길의 ‘칠 일’도 분명히 어림수이거나 꽉 찬 기간을 표현하는 문학적 숫자일 수 있습니다. 밧단아람에서 북부 길르앗까지는 직선거리로 무려 450km나 됩니다. 당시 일반적인 여행 속도는 하루 약 24km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반의 추격 속도가 매우 빨랐더라도 거의 보름은 걸릴 수 있는 거리입니다. 따라서 위의 ‘삼 일’과 ‘칠 일’을 문자적으로 볼 필요 없이 상당하긴 기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라반은 야곱을 따라잡아 야곱이 막사를 설치한 맞은편 길르앗 산에 자신의 막사를 쳤습니다(25). 라반은 야곱을 만나 그를 강하게 질책하며 꾸중합니다. 그는 자신의 딸들을 전쟁 포로처럼 끌고 가고 있다고 비난합니다(26). 그러나 오히려 라반이 그들을 포로로 취급했었습니다.

라반은 그가 자신을 훔쳐갔다고 거듭 비난하면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고 이별을 통보했다면,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성대한 송별식을 마련해줬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그의 허세이자 위선이요 거짓말입니다. 그동안 그는 이런 사탕발림으로 야곱을 열 차례나 속였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손자들과 딸들에게 이별의 입맞춤도 하지 못하게 하고 빼돌린 야곱의 행위가 비열하고 어리석다며 구석으로 몰아갑니다. 그는 군사적 행동을 들먹이며 야곱에 대한 힘의 우의를 최대로 과시합니다(29). 그러나 라반은 지난밤 자신에게 현몽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무력 행위를 참는다고 말합니다. 다신숭배자인 그가 야곱의 하나님의 권능을 인지하고 그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야곱의 귀향 명분을 인정하면서 야곱을 놓아줍니다(29). 그러나 그가 결코 보낼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 가족 수호신으로 섬겼던 드라빔입니다. 그는 야곱에게 누군가가 자신의 ‘신들’(엘로힘)을 ‘훔쳐갔다고’(가나브) 항의합니다. ‘신들’은 드라빔을 말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드라빔은 하나의 형상에 결합된 여러 신들의 단일 연합체였을 것입니다. 이로써 라반은 야곱이 훔쳤다(가나브)는 말을 세번 말합니다. ‘내 마음을 훔쳤다’(26); ‘나를 훔쳤다’(27); ‘내 신들을 훔쳤다’(30).

 

라헬이 드라빔을 숨김(31-35)

야곱은 외삼촌이 내 아내들을 억지로 빼앗을까 봐 두려웠노라며 드라빔을 훔친 사람이 있다면 죽여도 좋다고 말합니다. 다행히 찾지 못하고 상황은 종료되지만, 하마터면 라헬을 잃을 뻔하였습니다. 라반이 믿는 수호신이란 스스로 자기 실체를 드러낼 수 도 없는 허망한 존재였습니다.

31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32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33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31-35)

야곱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강력히 변호합니다. 요지는 이 모든 것은 외삼촌 라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내를 라반이 강제로 빼앗아갈까(가잘) 두려워 탈출극을 벌였다고 항변합니다. 여기에는 야곱에게 20년 동안 자행된 라반의 탄압과 부당한 착취에 대한 비난이 들어가 있습니다(창세기 31:36-42). 이러한 악덕 고용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라반의 ‘신들’을 훔쳐간 자가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런 범죄에 대해 어떤 형벌이 주어졌는지 분명한 사례는 없는데, 왜 야곱이 그 범죄에 대해 죽음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여기에는 자신의 가족은 결코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가슴은 철렁입니다. 범인은 그가 가장 아끼는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그의 발언은 그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라반의 범인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야곱과 레아의 막사에 이어 두 여종의 막사까지 모두 뒤졌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라헬의 막사로 들어가서 수색을 진행했습니다(33). 그러나 라헬은 드라빔을 빼돌려 ‘그것들을’(복수 대명사) 낙타 안장 아래 넣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라반은 방 구석구석을 모두 찾았으나 허탕을 쳤습니다. 라헬은 자신이 생리 중이라 일어나 영접하여 안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아버지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후대 레위기 15장의 율법에서(19-30절) 생리하는 여자는 부정하므로 격리된 채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지됩니다. 레위기 이전이지만, 이미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유사한 정결법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라반은 라헬에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라헬은 최후의 극단적 방법을 쓴 셈입니다. 하지만 이로써 그녀는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혹은 필사적으로 드라빔을 지키기 위해 드라빔을 부정케 하는 일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신들은 더럽혀진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되었다.’(Waltke). 이것은 라반의 가족들이 드라빔을 목숨처럼 간직하려 했지만, 정작 드라빔을 대하는 태도나 종교심은 사실은 얼마나 느슨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말씀한 대로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창세기 28:15) 하십니다. 야곱은 아내들에게 고백한 대로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창세기 31:7) 하심을 보았습니다. 주님을 약속한 말씀을 지키시며 응답을 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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