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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7-01)


축복을 가로채려는 리브가와 야곱

창세기 26장 34절-27장 14절


박철수 목사의 [축복의 혁명]에서, 저자는 ‘왜곡된 성령론과 이원론, 축복관’을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세 가지 질병으로 진단합니다. 중증은 단연 잘못된 축복관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으로 집착함으로 변질된 신앙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언약(복)은 인간의 눈먼 욕망에 의해 가려지고 가로채지는 천박한 대상으로 전략합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처럼 40세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혼은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일부일체를 고수했습니다. 그의 일부일처는 족장 중에서도 유일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두 명의 아내를 두었는데, 그것도 이방 혈통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에서의 성격이 막무가네여서 그랬겠지만 부모의 만류가 소극적이었음을 암시됩니다. 이 에서에 대한 소개는 그가 왜 선택되지 못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에서의 잘못된 결혼(34-35)

에서는 가나안 헷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얻어 경건한 부모의 근심이 됩니다. 이 일로 영적인 유산과 가치를 가볍게 여기며 언약을 상속받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행복과 번영은 가장되고 포장된 박복(薄福)일뿐입니다.

34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34-35)

에서는 40세에 두 명의 헷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우선 그는 가나안 족속의 하나인 햇 족속 여인들과 결혼함으로써 할아버지 아브라함 가문의 전통을 깨뜨렸습니다.

또한 일부일처를 고수한 아버지 이삭과 달리 두 명의 아내를 함께 얻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는 심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에서의 결혼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나중에 에서는 이 두 명의 아내 외에 여러 명의 첩을 맞아들입니다(창세기 28:9; 36:2-3). 에서는 삼손처럼 자신의 욕심과 혈기대로 성급하게 행동하는 인물이었기에 부모가 만류해도 소용없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그의 결혼을 적극 만류하지 않고 방치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에서를 편애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왜 에서의 잘못된 결혼 이야기가 여기에 등장합니까? 서사는 에서가 선택되지 못한 계열임을 처음부터 드러냅니다. 그것은 왜 결국 야곱이 택자의 계열을 잇는지를 처음부터 암시합니다. 이렇게 해서 에서는 에서는 야곱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로서 가나안 여인들을 피해야 하고 이삭처럼 멀리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잘못된 결혼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약속의 백성이 되기에 무가치하고 부적절한 인물임을 드러냈습니다.

 

에서를 축복하려는 이삭(1-5)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이삭과 대조적으로 리브가는 귀가 밝아서 이삭과 에서의 대화까지 엿듣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탁(25:23)을 기억하지 못한 이삭의 영적 둔감함과 가장을 통한 축복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리브가를 대조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웁니다.

1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1-5)

이삭의 무능함과 영적인 쇠락은 그가 잘못된 결혼을 감행한 에서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이삭은 영적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에서의 행실은 안중에 없으며, 아브라함과 자신에게 준 약속도 잊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전적으로 마음에 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장남으로 태어난 데다 힘이 세고 용맹하며 활력이 넘치기에,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집안에만 있기 좋아하는 야곱은 배제하고, 그를 상속자로 굳힌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기질을 메워줄 후계자를 선호했을지 모릅니다.

이삭은 에서를 자신의 상속자로 여긴 뒤 그에게 장자의 축복을 베풀기로 결심합니다. 노년의 아버지가 임종 직전 자녀를 불러 장자에게 자신의 권한을 넘기고 자녀의 복을 비는 것은 일반적 관례였습니다(창세기 49장). 그러나 직전에 결혼한 에서가 40세이므로 현재 이삭의 나이는 100세가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임종과 유언을 준비한 이유는 자신의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일찍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불렀습니다(27:1). 그러나 에서만 부르고 야곱은 부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관례에 어긋납니다. 분명 야곱은 이삭의 안중에 전혀 없었으며, 자신의 축복권을 사용하여 가문이 받을 모든 미래의 축복을 에서에게만 쏟아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축복 예식은 유산 상속 절차와 별개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가족의 전통을 어기고 다른 혈통의 여자와 결혼한 아들입니다. 그는 전혀 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27:1에서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그의 육적 상태만이 아닌 어두워진 영적 상태를 암시합니다. 노쇠한 육체와 더불어 육적인 식탐은 더 강해지면서 영적 분별력을 잃은 채 이삭은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어긋난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행위가 전혀 부당하게 취급될 수 없는 이유가 내비칩니다. 이삭은 자신이 죽을 날이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하면서(그러나 무려 80년을 더 산다) 에서에게 나가서 사냥을 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합니다(2-4). 그러면 자신이 에서를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5).

이삭은 에서의 고기를 탐닉했고 에서는 야곱의 팥죽을 탐닉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탐닉했습니다. 이 장자의 특권은 당장에 환상의 맛을 주고 순간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으로 맛볼 수 있는 영원한 미래의 축복의 열쇠였습니다.

이후의 이야기에서 이삭은 퇴장하고 그의 한참 이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창세기 31:28-29) 다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고의적으로 그의 삶의 족적을 공백으로 남깁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이삭을 비난합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 하는데, 이 기도를 통한 복과 장자권이 주는 유산 및 복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 장자권의 현실적 혜택인 상속 재산과 장자권이 주는 영원한 복과 집안 계보를 이권은 분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앞서 야곱이 에서에게서 부당한 거래를 통해 넘겨받은 장자의 명분은 사소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현재 이삭의 축복 의례는 그 집안의 적통을 이어갈 장자권의 확증을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둘이 절차상으로, 법적으로 구분된다 하더라도, 히브리서 기자는 신학적으로는 둘을 그림하지 않고 평가합니다(히브리서 12:16-17).

에서가 야곱에게 장자의 상속권을 팔 때 그는 이미 법적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결국 섭리 가운데 그것이 이삭의 손을 통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족장 시대에 가장의 축복은 먼 여행을 떠나보내거나(창세기 28:1) 결혼으로 가족이 이별을 할 때(창세기 24:60), 혹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선언됩니다. 그것은 변경될 수 없었기에 현재 이삭의 상속자를 위한 축복의 선언은 결코 철회될 수 없습니다.

 

이삭을 속이기 위한 리브가의 계략(27:6-10)

이삭은 하나님의 신탁(25:23)을 망각한 채 에서의 야성과 그가 만든 별미를 좋아하다가 서둘러 축복하려 했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소홀히 요긴 에서와 비슷합니다. 눈먼 아비이고 아들입니다. 둘 다 자기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복을 소홀히 여긴 것입니다.

6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6-10)

이삭은 에서를 편애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합니다. 이제 이삭-에서와 리브가-야곱이 충돌하는 가정불화가 임박한 가장의 최종적 축복을 앞두고 본격화합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의 대화를 밖에서 엿듣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하러 나가자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찾아가 모든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아마 리브가는 에서에게 아브라함 집안의 계보와 축복이 넘어가서는 안 될 상황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야곱에게 자신이 꾸민 계략을 설명하며 시키는 대로 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 음식을 만들어 시력이 약한 이삭을 속여서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하자는 계산이었습니다.

9절을 볼 때, 에서는 요리에도 능했던 갓 같습니다. 아버지의 입맛에 딱 맞는 요리를 잘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음식을 평생 책임진 리브가는 더욱 이삭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와 그의 입맛을 잘 알기에 그녀가 손수 요리를 준비합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나가서 기르던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두 마리의 새끼는 두 손과(아마도 팔뚝까지) 목을 뒤덮어 위장할(16) 충분한 털가죽을 확보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의 계략에 동조하는 야곱(27:11-14)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옳지 못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축복을 가로챈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수와 계략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가십니다. 이것이 실수와 허물투성이인 인간의 유일한 위안이고 희망입니다.

11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14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11-14)

야곱은 어머니의 계획을 듣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에서와 자신은 신체적 특징이 전혀 다르므로 아버지를 속이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애서는 털이 많고 자신은 털이 없는 사람이기에 시력이 약한 아버지도 만져서 둘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11), 속임수가 들통 나면 아버지에게서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퍼부어질 것이라고 걱정합니다(12). 이것은 죄질이 아주 나쁜 범죄입니다. 부모를 속이는 데다 부모의 약점을 이용하는 패륜적 범죄입니다. 율법은 소경과 맹인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할 것을 말합니다(레위기 19:14; 신명기 27:12). 소경과 맹인을 착취하고 속이는 것은 반인륜적 범죄였습니다. 맹인의 길을 잃게 하는 자를 향해 저주가 선언됩니다(신명기 27:18). 따라서 부모님의 그런 장애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리브가는 이 일은 자신이 책임질 일이므로 아버지의 저주를 자신이 받겠다고 안심시키며 나가서 염소를 끌고 오라고 지시합니다. 야곱은 나가서 두 마리의 새끼 염소를 끌고 왔습니다. 해밀턴(Hamilton)은 이런 야곱의 모습을 인상 깊게 묘사합니다. ‘나중에 하나님과 씨름을 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그 사람이 그의 어머니와 혹은 그의 =양심과는 별다른 씨름을 하지 않는다.’ 리브가는 두 염소를 잡아 이삭을 위한 특식을 준비했습니다.


인생은 삼인 삼색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무시했고, 이삭은 복을 소홀히 여겼고, 리브가와 야곱은 복을 탈취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편애와 편집(偏執)의 대상이 될 만큼 천박하지 않습니다. 욕망에 눈이 멀면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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