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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4-03)

 


신부 리브가가 가나안 땅에 도착함

창세기 24장 50-67절


김교신은 ‘닮지 못한’ 세대를 향한 안타까움을 ‘오리알 깐 암탉의 비애’에 빗댄 적이 있습니다. ‘닮은 생명’을 낳아보려고 가슴에 알을 품은 어미 닭처럼, 아브라함도 아들의 혼사에 마음 졸이며 ‘다른’ 믿음이 아니라 ‘닮은’ 믿음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언약 계승은 그 믿음의 계승입니다.

  

앞에서 아브라함의 종의 간증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대답합니다(50). 리브가도 결혼을 결심하고 믿음으로 떠납니다. 지체하지 않고 다음 날 가나안으로 출발합니다. 리브가의 결단은 아브라함의 결단을 닮았습니다. 이제 서사의 흐름은 아브라함-사라에서 이삭-리브가로 초점을 옮겨서 집중합니다.

 

리브가의 결혼을 승락(50-53)

하나님을 의지한 아브라함의 결혼 계획과 믿음으로 주인의 명령을 따른 종의 순종, 그리고 그 믿음에 순적한 만남으로 화답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듣고 하반은 자신이 결혼을 승낙하고 말 여지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여호와의 명령’이었고 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50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1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52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53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50-53)

아브라함의 종의 간증은 라반 가족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라반과 브두엘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결혼을 승락합니다. 여기서 가장 브두엘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현재 라반이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학자들은 브두엘이 사망했다고 추론하면서 이 ‘브두엘’은 후대에 잘못 첨부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브두엘이 어떤 이유로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장남 라반과 그의 어머니가 가정을 이끌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도 라반이 브두엘보다 앞서 나열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또한 라반이 이 가정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진 인물로 활약하는 장면은 추후 야곱 이야기를 준비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들은 리브가를 데려가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의 아내로 삼으라고 승락합니다(51).

리브가의 결혼이 최종적으로 허락되자 그 종은 다시 한 번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를 올립니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혼인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결혼식 전에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신부 값을 내야 합니다. 그것은 두 남녀의 약혼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여러 가지 값 비싼 은금 패물과 옷들을 리브가에게 줍니다. 이어서 그는 그녀의 오빠 라반과 어머니에게도 값진 물건들을 제공합니다(53). 이 값진 물건들은 신부 값에 해당하는 다양한 귀중품들이었을 것입니다.

 

결혼을 결심한 리브가(54-58)

라반의 결혼 승낙을 듣고 아브라함의 종은 라반이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의 역사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 구하는 일에 사람의 생각이 들어설 곳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나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는 곳에 참된 경배와 참된 감사가 있습니다.

54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5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56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7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54-58)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에야 종과 일행들은 그날 저녁 식탁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그날 밤을 거기서 보낸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어났습니다. 종은 서둘러 라반과 그의 어머니에게 가서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고 통보합니다. 한 달이 넘는 장거리 여행객들에게 불과 하룻밤의 휴식은 적절치 않았을 것입니다. 라반은 만류하면서 며칠 더 묵고 가라고 요청합니다. 방문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리브가와 충분한 작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결례가 될 수 있음에도 왜 아브라함의 종은 서둘러 떠나려 했겠습니까? 라반에게서 느껴지는 탐욕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리브가를 내놓지 않을지 몰라서 걱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종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주인의 상속자가 될 이삭의 빠른 혼인이었습니다. 연로한 아브라함을 고려할 때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여 결례를 무릅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은 라반과 그의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리브가를 불렀습니다. 아마 라반과 그 어머니는 분명히 리브가가 지금 당장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에게 지금 떠날 것인지를 묻자, 리브가는 간결하고 단호하게 대답 했습니다: ‘가겠나이다’.

여기서 메소포타미아를 떠나겠다는 리브가의 결단은 아브라함의 결단과 비교됩니다. 둘 다 각자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버리고 지시한 곳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라’고 명령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름에 응답하여 그곳을 떠났습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을 통한 ‘가라’는 하나님의 간접적인 부름에 응답하여 떠납니다.

 

가나안으로 떠나는 리브가(59-61)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하며 이삭의 신부를 찾고 있을 때 이삭 역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부를 기다립니다. 기도(24:3)에서 시작하고 진행된 혼사가 기도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순전한 신뢰와 기도에 성실하게 화답하셨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친히 이루어 가셨습니다.

59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61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59-61)

라반의 가족은 리브가를 위해 유모 한 명을 붙여줍니다(59). 이것은 아기가 태어날 것을 대비한 ‘젖먹이 유모’(wet nurse)입니다. 유모는 젖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양육도 책임졌기에 대단히 중요한 직분이었습니다. 이 익명의 유모 이름은 그녀가 죽을 때 드보라로 소개됩니다(창세기 35:8).

리브가의 식구들은 고향을 떠나는 리브가를 위해 복을 빕니다. 리브가가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기를, 또한 후손이 적들의 성들을 차지하기를 기도합니다. 씨의 번성과 성문의 획득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반복입니다(창세기 22:17). 리브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여종들과 함께 낙타에 올랐습니다. 이 여종들은 유모와 별도로 그녀의 개인 몸종들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62-67)

이삭은 리브가를 사라의 장막으로 들입니다. 이는 사라에게 약속하신 ‘열국의 어미’의 축복이 리브가에게 이어졌음을 암시합니다. 아브라함-사라를 잇는 언약의 2세대가 시작됩니다. 당대에 머무는 신앙은 화석화되기 쉽습니다. 세대를 잇고 세월을 견디고 미래를 여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62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63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66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67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62-69)

당시 이삭은 네게브 지역의 브엘라해로이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16:14에서 이 지명의 유래와 위치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곳은 오히려 하갈과 이스마일에게 중요한 장소인데 왜 이삭이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은 이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헤브론에서 남쪽 가데스 근처에 있는 브엘라베로이까지는 약 90km의 거리입니다. 본문은 난해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브라함은 현재 사라를 매장한 헤브론에서 살고 있는데, 이삭은 왜 네게브의 브엘라해로이에서 살고 있습니까? 왜 종은 리브가를 아브라함에게 데리고 가지 않고 이삭에게 데려갔습니까? 그가 65절에서 이삭을 ‘주인님’으로 호칭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수수께끼에 대해 이 상황은 아브라함이 최근에 죽은 것을 전제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인 25장에 나옵니다. 웬함은 이것을 단순히 문학적 기법에 의한 시간 순서의 뒤바뀜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 경우 연대기적 연령의 계산이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삭이 결혼한 나이는 40세입니다(창세기 25:20).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므로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입니다. 이후 그는 35년을 더 살다가 175세에 죽은 것이 확인됩니다(창세기 25:7). 따라서 이삭이 40세에 결혼할 때 140세의 아브라함이 죽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저자의 의도를 잘 살펴야 합니다. 가나안의 거부가 된 아브라함은 현재 브엘세바와 헤브론, 브엘라해로이까지 자신의 생활권을 넓혀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아버지 아브라함의 지시를 받고 이삭은 멀리 남쪽의 브엘라해로이에 잠시 거주하는 상황이었겠지만, 사소한 집안 사정은 전혀 서사의 관심이 아닙니다. 브엘라해로이가 이삭의 임시적 거점이며 자주 거기서 헤브론을 왕래했다는 사실은 결혼 후 그가 즉시 헤브론으로 복귀하는 장면에서 확인됩니다(67절에서 리브가가 사라의 장막으로 들어감).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재 그것은 전혀 서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이제 주인공은 이삭과 리브가입니다. 따라서 서사는 불필요한 곁가지를 자르고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을 ‘나의 주인’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제 이삭이 독점적 상속자의 자리를 굳혔고(창세기 25:5), 아브라함은 노쇠하여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마 종은 일단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온 뒤 그녀의 도착 소식을 이삭에게 알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리브가를 데리고 브엘라해로이로 갔을 것입니다. 소식을 들은 이삭은 아마 때에 맞춰 그날 늦은 저녁까지 들에서 묵상하며 리브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온다. 멀리 낙타 떼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리브가도 눈을 들어(아마도 얼국을 가린 너울을 들어올려) 이삭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먼발치에서 낙타에서 내려 남종을 통해 그가 남편이 될 이삭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아마 결혼식은 헤브론으로 복귀하여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리브가를 사라의 장막에 살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리브가가 이제 이삭과 더불어 아브라함 가문의 머리가 된다는 것을 시사 합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그는 다시 브엘라해로이로 이사합니다(창세기 25:11). 이삭은 어머니 사라를 잃은 후 상실감이 컸습니다. 이제 그 자리를 리브가가 메움으로써 그가 큰 위로를 얻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라가 사망한 지 몇 년 안 되었고, 아브라함은 여전히 생존해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연령을 계산해보면 사라가 죽은 뒤 3년 후에 이삭이 결혼 했습니다: 사라 90세에 이삭 출산-사라 127세 사망 시 이삭 37세-이삭 40세에 결혼, 그는 3년 상을 치르듯이 그 기간에 큰 상실감 속에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신앙은 닮습니다. 그 주인의 그 종이고,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일상에서 신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공유하는 언어가 사라지고,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면 믿음의 세대는 단절되고 연대는 약해질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은 ‘오리 알을 낳은 암탉의 비애’를 비껴가지 못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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