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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3-01)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창세기 23장 1-20절


‘강은 가뭄으로 깊어진다’고 했습니다. 가뭄일 때 강은 자신의 깊이를 비로소 드러냅니다. 연이은 시험입니다. 아니, 이번에는 시험이 아닌 시련입니다. 시험대 위에 섰던(22장)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제 큰 시련 앞에 섰습니다. 속절없이 무너지겠습니까? 아니면 이번에도 믿음을 증명해낼 수 있습니까?

 

21장에서 하갈과의 갈등 후(창세기 21:12) 자취를 감춘 사라가 죽음 기사와 더불어 다시 등장합니다. 사라가 127세에 사망합니다. 약 35년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입니다. 22장에서 사라가 등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추론이 무성합니다. 사라가 족자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과 큰 다툼을 벌려 헤브론으로 떠났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릇된 추측임이 드러납니다.

 

사라의 죽음과 장례 준비(1-6)

시련 앞의 제대로 된 믿음을 보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이 가장 큰 시련과 마주합니다. 아내를 잃은 상심에 더해, 죽은 아내를 묻을 땅 한 평조차 없었으니 낙심 또한 얼마나 컸겠습니까? 땅의 약속의 실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가 아닙니까? 이런 상황은 그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1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1-6)

사라가 22장의 무대에서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이삭 바치는 것을 반대한 사라와 아브라함의 갈등 때문이라고 추론합니다. 그러나 22장에서 사라가 안 나온 것은 당연한데, 22장의 주제는 아브라함의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려고 곁가지는 모두 쳐낸 채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현재의 23장에서도 새로운 막이 열리면서 무대가 헤브론 지역으로 바뀌고 다시 사라가 등장합니다. 이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라가 127세에 헤브론에서 죽고 아브라함이 장례를 치릅니다. 사라는 창세기의 여족장 중 유일하게 나이가 기록된 인물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이스라엘의 시조인 그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최초로 거처로 정한 마므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지역입니다(창세기 12:6; 13:18). 헤브론의 원래 이름은 기량아르바였습니다(사사기 1:10). 마므레가 곧 헤브론으로 불리기도 합니다(창세기 23:19).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울었습니다. 그는 사라를 매장할 묘지를 매입하기 위해 그 지역 토착민인 헷 족속에게 갔습니다(3).

‘그 땅 주민’이 성 사람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아마 대표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의 모임으로 보는데, 그보다는 헷 족속의 대표자인 장로들의 모임일 것입니다. 당시엔 원로들이 성문에 모여 중대한 회의를 개최하고 재판을 진행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장례가 생기면 당일에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신명기 21:23). 아브라함은 자신이 개인 사유지가 없는 나그네와 체류자일 뿐이라고 자기 형편을 밝히고 묘지로 쓸 토지를 매입할 의사를 밝힙니다(4).

아브라함이 아무리 막대한 재산을 가진 거부라고 해도, 결국 땅한 필지 없는 외지인일 뿐이었습니다.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깊은 유대 관계 속에 잘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존칭인 ‘내 주여’(아도니, ‘나으리’와 비슷함)라 부르며, 그를 ‘하나님의 귀인(지도자)’으로 칭송합니다(6). 그들은 아브라함이 마땅히 가장 좋은 땅을 묘지로 정해 사라를 묻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좋은 묏자리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것이 그 묘지의 영구적인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계속 사용권을 보장 받아야 할 불안한 묘지가 아닌, 자신의 소유지로 영구적으로 사용할 땅을 마련하려 합니다. 그러나 헷 족속은 땅을 매각할 의사가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막벨라 굴 매입을 위한 협상(7-15)

시련 앞의 기회입니다. 아내의 장지를 고향 우르가 아닌 가나안 땅에서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곳이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에서 토지를 구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얼마나 절묘합니까? 절망을 감추지 않고 절망 가운데 소망을 담은 곳이 막벨라 굴입니다.

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7-15)

아브라함은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죽었을 때 주변 에브론 사람들은 사라를 위한 묘지를 기부하겠다고 제언합니다.

(1) 묘지의 기부를 제안한 에브론(7-11)

아브라함은 소유권이 없는 묘지 사용이 얼마나 불안한지, 결국 토지 주인으로부터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결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도지 매매를 허락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최고의 존칭을 듣는 그가 최저로 몸을 낮춥니다. 그들 말대로 아주 좋은 뒷자리를 구체적으로 지정한 뒤 구매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 토지는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소유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 있는 막벨라 굴에 사라를 묻고 싶다면서 충분한 땅값을 내겠다고 말합니다(9). 아마 평소에 사라의 죽음을 생각하며 심중에 정해놓았던 땅일 것입니다. 그는 대표단들이 중재해서 에브론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런 중재의 부탁은 다시 한 번 토지 소유권자가 땅 매매를 꺼린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막벨라는 ‘두 개의 굴’ 혹은 ‘갈라진 굴’을 뜻할 수 있는 굴의 명칭입니다. 이 굴이 2층 굴인지 나란히 뚫린 굴인지 알 수 없으며, 그 위치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협상단의 일원으로 앉아 있던 에브론이 중재의 필요 없이 직접 협상 테이블로 나와 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공언하기를 자신이 그 땅과 거기 있는 굴을 거저 주겠으니 사라를 매장하라고 말합니다(10-11).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거래는 주로 성문에서 이루어졌습니다(룻기 4:1-11). 협상이나 거래가 진행될 때 사람들 앞에서 공적인 약속을 하는 이유는 그들을 증인으로 삼아 그 발언의 법적 효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2) 정당한 값을 지불하겠다는 아브라함(12-15)

에브론의 제안은 실제로 토지를 기부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에서 쓰는 관례적인 협상 예법입니다. 에브론은 굴과 주변의 토지를 좋은 값에 팔려고 상대방을 높이고 마치 자기는 욕심이 없는 듯 정중한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때로 사람들은 거래를 할 때 덤으로 주는 상품을 제시해 선심을 쓰는 척하면서 결국은 넉넉한 값을 방아내곤 합니다(참조. 사무엘하 24:22-23).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대표단 앞에서 몸을 낮춰 예의를 표하고 에브론에게 공식적인 법적 효력이 있는(‘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협상안을 내놓습니다. 그는 재차 에브론에게 정당한 묘지 값을 주고 그 땅과 막벨라 굴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에브론에게 금액을 제시하라는 격식 있는 요구입니다. 에브론은 다시 그의 말을 받아 구체적인 값을 제시합니다. 그는 땅값이 은 400세겔이긴 하지만, 우리 사이에 그런 돈이 무슨 의미가 있고 돈이 뭐가 중요하겠냐면서, 마치 토지를 무상 기부할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협상 예법의 하나일 뿐입니다. 결국 그는 은근슬쩍 땅값을 제시하는데 아마 상당히 비싼 값을 제시하였을 것입니다. 흥정에서는 원래 동의하기 어려운 값을 먼저 제시하면서 점점 협상하여 낮춰가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은 400세겔(약 4.5kg)의 ‘세겔’은 당시 시장에서 상인들이 사용하는 화폐 단위였습니다. 은 400세겔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 크기의 땅을 살 수 있는 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후대에 다윗이 50세겔을 지불하고 성소를 위한 땅을 매입한 것을 보면, 은 400세겔은 대단히 비싼 토지 값인 것이 분명합니다.

 

막벨라 굴 매입한 아브라함(16-21)

시련 앞에서 최선의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는 순간에, 거저 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한 채 상당한 값을 치러 막벨라 굴을 삽니다. 그가 산 것은 약속이었고 소망이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가장 큰 시련의 순간을 가장 큰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16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16-20)

에브론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바가지 대금을 불렀습니다. 홍정을 계속 했으면 값이 더 내려갔을 것이고,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그가 제시한 값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은 400세겔 무게의 토지 값을 저울로 달아 에브론에게 지불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물질과 재산에 초연한 아브라함의 태도와 믿음이 엿보입니다. 그는 롯와 소돔 왕에게 크게 양보한 바 있으며, 멜기세덱의 백성에게 비싼 재산인 우물을 빼앗기고도 침묵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업이요 재산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열국과 모든 사람이 복을 누리게 하는 복의 통로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합니다.

헤브론의 막벨라 굴과 그 주변 땅, 거기에 심긴 나무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습니다(17). 아브라함은 사라를 막벨라 굴에 매장했습니다. 이 묘지는 사라의 위상에 걸맞은 비싼 땅입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최대의 예를 갖춰 그녀의 명예를 높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최초로 가나안 땅에서 자신의 땅을 확보한 중대 사건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땅에 대한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그의 후손은 장차 가나안 땅 전체를 점유하게 될 것입니다. 막벨라 굴과 헤브론 지역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미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들이 주어졌습니다(창세기 13:14-18:15).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비롯하여 그들의 가족이 묻힌 종교적 중심지가 됩니다(창세기 25:7-10; 50:12-13). 또한 이 성읍의 중요성과 군사적 능력은 민수기 13장에서 확인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파견했을 때, 그들은 헤브론 지역을 집중적으로 엄탐했습니다. 그곳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확인해 주는 포도나무를 비롯한 풍성한 과실수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시련을 거친 믿음이 더 단단하고 더 온전한 믿음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악속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가 준비하고 대가를 지불해야할 우리의 막벨라 굴은 어디(무엇)입니까? 약속에 투자하는 수지맞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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