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창세기(22-01)


모리아 산에선 순종한 아브라함

창세기 22장 1-24절


 시험을 통해 진위(眞僞)가 가려지고 깊이가 가늠됩니다. 그것이 지식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믿음이든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시험대 위에 오릅니다. ‘후손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그가 얼마나 신뢰하는지 시험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장은 ‘후손’에 대해, 23장은 ‘땅’에 대해 시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다양한 시련과 어려움을 주시면서 시험하셨습니다(출애굽기 15:25; 16:4; 20:20; 신명기 8:2,16). 시험의 목적은 글이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검증하고 낮추기 위해서이며, 시험을 통과한 백성에게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십니다. 이삭을 주신 하나님이 이삭을 요구하십니다. 오랜 불임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에 얻은 독자가 아닙니까. 대를 잇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후손’의 약속(15:5)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두말없이 순종합니다. 시간과 시련으로 형성된 믿음입니다. 오랜 관계와 신뢰가 쌓인 결과입니다.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1-2)

‘그 일 후에’는 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암시합니다. ‘그 일’은 앞서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은 일을 말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오래도록 거주하는 중이었습니다(창세기 21:34).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시험은 검증하고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여기서도 이 시험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이제 전개되는 사건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함임을 알림으로써 독자를 희생시키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혼란과 오해를 미리 제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은 이에 응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얻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삭이 3중적으로 표현됩니다. 네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 이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아들인지를 잘 말해줍니다. 웬함은 ‘그에게 아브라함의 모든 희망이 놓여 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취하라’) 모리아 땅의 곧 지시할 산으로 가라 하십니다.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명령법 문장은 독특합니다. 구약에서 이곳과 12:1의 갈대아를 ‘떠나라’에서만 나타나는 명령법 문장인데, 둘 다 매우 힘든 포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두 명령의 순종에 복이 보장되며, 모리아 산에서의 순종은 더 큰 복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땅은 역대하 3:1에서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곳입니다. 성경에서 모리아라는 지명이 나오는 곳은 이 둘뿐입니다. 말하자면, 솔로몬 성전터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한 장소로 확인됩니다.

이삭은 지금 충분히 자랐습니다. 그가 ‘나아르’로 불리는데(5) 아마 십대 청소년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이스마엘을 잃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자 이삭마저 요구하시고 그것도 인신제사로 바치라 하십니다. 인신제사는 성경에서 금하고 있습니다(사사기 11:31-40; 열왕기하 3:27; 17:17). 구약 율법은 첫 아들을 하나님께 봉헌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그들 대신 성전에 봉헌되어 종신 직무를 감당합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난해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삭을 약속의 아들로 주셨는데, 그를 다시 제물로 바치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모순된 분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의 순종(3-14)

하나님께서는 준비 하십니다. 아들을 향해 칼을 듭니다. 이삭을 낳은 것이 인간의 가능성을 넘어섰다면, 이삭을 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급히 막으셨고 준비하신 양을 보이십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향해 칼을 들기 전에는 ‘여호와 이레’는 경험 할 수 없습니다.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3-14)

아브라함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동안의 여행은 아마도 어렵고 힘든 침묵의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의 거리는 대략 80km 정도였습니다.

(1) 이삭을 바치기 위해 떠나는 아브라함(3-8)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합니다. 짐을 나를 나귀와 두 명의 종, 그리고 번제용 장작도 미리 준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떠났습니다(3). 이미 그가 가야 할 목적지인 그 산을 정확히 적시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일째’에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에 도착했습니다. 성경에서 3일은 어떤 중요한 일을 위한 전형적인 준비 기간입니다(참조. 창세기 31:22; 42:18; 출애굽기 3:18; 15:22; 19:11,15,16; 민수기 10:33 등).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나귀와 함께 기다리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삭과 함께 가서 제사를 마친 뒤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종들과 나귀를 동반하지 않은 이유는 성소에 제사를 바치러 갈 때 헌제자만 들어가야 하는 관례 때문인 듯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내가’ 돌아온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실 것이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반영한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 표현이 지극히 단순하고 관례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물론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받을 때 바로 그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설명합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고 바쳤습니다(히브리서 11:17-19).

아브라함은 장비를 챙기고 번제용 장작은 아들 이삭이 지게 했습니다(6). 곧 있으면 장작에 눕게 될 처지에 놓인 이삭이 그 장작을 지고 갑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예수께서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장면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침묵하며 걸었을 것입니다. 스피셔(Speiser)는 ‘모든 문학을 통틀어 가장 비장하고 웅변적인 침묵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윽고 침묵이 깨지는 부자의 짧은 대화가 시작됩니다. 서로 ‘아버지’, 그리고 ‘아들아’라고 부르는 대화에서 부자간 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이삭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삭이 아무것도 모르고 질문을 하고 있다면, 그의 순진무구한 말은 독자들의 가슴을 더욱 사무치게 합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다면, 그가 묵묵히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그의 질문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지금 그의 순전한 모습은 홈 없는 제물 그대롭니다.

(2) 이삭을 바치려 하는 아브라함(9-14)

그들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은 뒤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9). 이것은 이삭이 저항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순순히 결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삭은 도수장에 끌려가는 흠 없는 어린 양입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제사를 감행하려 한 순간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급히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중단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을 칭찬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주변에서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를 발견하고, 아들을 대신해서 번제로 바칩니다(13). 그것은 여호와께서 미리 준비하신 제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일을 기념하여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칭합니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다’입니다. ‘모리아’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아마 ‘여호와 이레’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15-19)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독자를 향해 칼을 드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가 자식보다 자식을 주신 하나님을 더 신뢰함을 아셨습니다.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언약을 다시 확증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은 그가 바친 제물이 아니라 경외이고 신뢰였습니다. 자기만족의 믿음이 아닌 계산하지 않는 순종이었습니다.

15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15-19)

순종의 대가로 많은 복이 보장됩니다. 시련-순종-축복은 구약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반적인 도식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제 독자마저 아끼지 아니한 그에게 막대한 축복이 약속됩니다.

이 복은 앞서 약속된 복의 반복이지만, 여기서 더 큰 복으로 발전합니다.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다’라는 새로운 수식어와 더불어 후손의 약속이 더욱 강화됩니다. 또한 땅의 약속도 확증됩니다. 후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성의 점령을 의미하며, 이는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예고입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열국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최초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순종의 조건이 없는 일방적 약속이 주어졌습니다(창세기 12:1-2). 그러나 다시 맺은 아브라함 언약은 일방적인 편무 언약이 아니라 쌍무적 특징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에서 브엘세바로 복귀하여 거기 거주하였습니다 

 

나훔의 후손들(20-24)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아들을 버리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가 기대한 대로 숫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독자를 아끼지 않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다시 약속하십니다. 그 결과를 나훔의 후손들을 서술합니다.

20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22-24)

갑자기 나홀의 족보와 후손들이 열거됩니다. 아마 수년이 지난 후(‘이 일 후에’) 우연한 계기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땅의 친족 나홀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나홀과 결혼한 밀가(창세기 11:29)가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이삭의 출생 이전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나홀의 자녀는 본처인 밀가가 낳은 여덟 명, 후처(첩) 르우마가 낳은 네 명을 합하여 열두 명입니다.

흥미롭게도 야곱, 이스마엘 그리고 에서가 열두 명의 아들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특히 두드러진 인물은 브두엘과 그의 딸 리브가입니다. 브두엘이 마지막에 소개되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습니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이 족보의 등장은 리브가에 주의를 끌기 위함입니다.


언약 당사자 간의 신뢰 없이는 시험을 줄 수도, 치를 수도 없습니다. 시험은 결국 신뢰의 시험이고 관계의 시험입니다. 사도신경에서 ‘믿습니다’는 ‘심장을 바칩니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신 전부를 드리기 전에, 주님이 전부가 되시기 전에는 진짜 믿음일 수 없습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