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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0-01)


아비멜렉 앞에서의 아브라함의 속임수

창세기 20장 1-18절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는 늘 미생입니다. 온전하지 못하고 미숙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의 복은 위태로워집니다.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전달될 하나님의 생명이 막힙니다. 아브라함의 미숙함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막힌 복을 다시 열어주시는가 보시길 바랍니다.

 

씨의 약속이 위기를 맞습니다. 애굽 바로에게 사라를 빼앗길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과 사라가 너무 연로해 지녀 출산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으로 위기를 넘겼는데, 오늘 또 다시 관련된 위기 상황이 닥쳤습니다.

 

사라의 두 번째 위기와 하나님의 개입(1-8)

애굽에서의 위기가 재현됩니다. 아브라함의 불신 때문입니다. 그는 여전히 미숙합니다. 하마터면 자신은 물론이고 아비멜렉을 범죄하게 할 뻔했습니다. 복의 근원이요 열국의 아비가 될 아브라함이 약속의 외인이던 아비멜렉에게서 추궁과 꾸중을 듣습니다. 그는 잠시 빛이 가려진 어둠이었습니다.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1-8)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를 따라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강조점은 순전함, 특히 사라의 순전함을 보전하는 데 놓여 있습니다. 약속의 성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결혼이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에 참여하는 것은 부패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합니다.

(1) 그랄 땅에서 닥친 사라의 두 번째 위기(1-2)

아브라함은 네게브로 이주합니다. ‘거기서’는 현재까지 아브라함이 거주해온 헤브론 지역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입니다. 가데스와 술 사이의 그랄 땅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사해 반도 북서쪽의 그랄 땅은 전통적으로 블레셋의 주요 거점 지역이었습니다(창세기 26:1). 아브라함은 그곳에서도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이며 다녔습니다. 아마 그랄을 점유하며 살던 거친 해양 세력이 두려워서였을 것입니다.

다시 아브라함의 믿음이 쇠락한 듯 보이며, 이로 인해 그는 다시 아내를 빼앗기는 비극을 당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후궁으로 삼고자 데려간 것입니다.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은 앞선 12:9-20과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이유로 두 이야기를 같은 전승의 상이한 자료로 간주하지만, 같은 죄를 반복하는 인간의 본성을 볼 때 이것은 별개의 사건이 분명하며, 두 사건의 세부적 내용과 특징도 전혀 다릅니다.

씨에 대한 약속이 깨질 위기가 다시 닥쳤습니다. 앞서 우리는 과연 사라가 90세가 된 나이에도 미모를 유지했을 지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이방 왕이 데려간 사라에 대해서는 미모가 뛰어났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마 아비멜렉은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그녀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라가 곧이어 21장에서 90세에 임신한 것으로 보아 늙은 사라의 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상당한 활력을 찾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녀의 임신이 기적적인 일임을 강조합니다. 그녀의 회춘 또한 이 관점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127세에 죽었습니다.

(2) 사라를 보호하시는 하나님(3-8)

‘그 밤에’는 분명 사라를 빼앗긴 당일 밤이 아닙니다. 아래서 설명하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밤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셨습니다. 그가 사라를 취한 이유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시고 사라가 남편이 있는 유부녀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은 사라를 가까이하지 않았다며 무고를 주장하면서 ‘주께서 의로운 백성을 멸하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백성’이란 표현은 멜기세덱이 이 문제가 자신 혼자만이 아닌 백성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이것은 왕의 지위는 백성의 대표로서 왕이 백성 전체와 동일시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왕과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레위기 4:3,14; 10장, 사무엘상 2:24). 율법에 의하면 유부녀와 통간한 자는 두 남녀 모두 사형에 처합니다(레위기 20:10; 신명기 22:22). 이집트와 우가릿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국가들의 율법도 간통죄에 대해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무고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고한 왕 자신과 백성을 멸망시킨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일이라고 항변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 부부의 거짓말을 지적합니다. 둘 다 거짓말로 자신을 속였기에 무고한 자신이 큰 죄를 지을 뻔했다고 주장합니다(5).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무고함을 아시고 그가 부지중에 범할 수 있는 죄를 꿈을 통해 막아주셨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6). 하나님께서는 꿈에서 아브라함에게로 사라를 돌려보내라고 명하시면서 그가 ‘선지자’이며, 그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만일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멜기세덱과 그 집안 사람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비멜렉은 모든 신하들을 불러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그것을 들은 신하들은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8). 아브라함이 선지자인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을 그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며(창세기 18:17),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사람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정황상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일과 하나님의 현몽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을 막아 그가 사라에게 접근할 수 없게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현몽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조치를 취했음을 의미합니다. 월키는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질병으로 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 앞서 파라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독종 피부 전염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창세기 12:17). 아비멜렉은 질병이 발생하여 사라와 잠자리를 가질 수 없었으며, 아비멜렉의 아내뿐 아니라 수하의 모든 여종들의 태를 닫아 출산을 막으셨습니다. 그 여종들은 그의 후궁들이 아닌 궁녀들입니다. 궁내의 모든 여자들이 임신을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을 추궁하는 아비멜렉(9-13)

하나님께서는 주신 복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처럼 다시 개입하십니다. 범죄를 막으십니다. 그래서 경건한 아비멜렉을 지키시고 사라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속한 ‘자손’의 약속(15장)도 지키십니다.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역할을 회복하십니다.

9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9-13)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잘못한 일이 있는지 추궁합니다(9). 그는 아브라함이 의도적으로 자신과 백성으로 하여금 ‘큰 죄’를 저지르게 할 뻔 했다고 의심합니다. 바로는 자신의 위안만 염려했지만, 아비멜렉은 백성까지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장하길, 아브라함은 자신이 험담하지 않은 일, 곧 간음죄를 저지르도록 몰아갔다는 것입니다.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10)고 따집니다. 원인을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여호와라는 분을 경외하고 그 부하들도 심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8).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을 오판했습니다. 그는 ‘여기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것을 염려했다고 변명합니다. 여기서 오히려 아비멜렉보다 아브라함이 더 부끄럽게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앞서 이집트 땅에서 이미 동일한 봉변을 당한 바 있었으면서도 어리석은 일을 반복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녀는 정말 나의 이복 누이다’라고 변명하는데 그의 말은 반은 사실이긴 하지만 아내라고 밝히지 않았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거짓말입니다(12). 훗날 레위기의 근친상간 금지 규례에서 누이는 물론 삼촌간의 결혼도 금지되며, 다만 사촌간의 결혼은 허용됩니다(레위기 18; 20장). 그러나 레위기 규례가 만들어지기 전의 족장 시대에는 그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기에 삼촌간의 결혼은 물론 심지어 반-누이(half sister)와의 결혼도 허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부다처제가 그랬던 것처럼 점진적인 계시의 발전 속에 하나님이 잠시 묵인하셨던 과도기적 관행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큰 선물(14-18)

아브라함은 회개 대신에 변명으로 일관한데 반해 아비멜렉은 아무 대꾸 없이 아브라함의 변명을 부끄럽게 만들 만큼 철저한 사후 처리를 합니다. 실수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위기를 가져온 이에게 거할 땅을 내주고, 실추된 사라의 명예까지 회복해줍니다.

14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14-18)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막대한 하사품을 주면서 사태를 수습합니다. 그는 양 떼와 소 떼, 그리고 여러 명이 남종과 여종을 선물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원하는 땅을 정해서 기거하도록(야샤브) 허락합니다. 이것은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닌 항구적 거주지로 아브라함이 원할 때까지 살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원하는 땅을 주는 아비멜렉의 호의는 아브라함을 내놓은 바로와 대조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롯에게 원하는 땅을 선택하라 한 호의와 비견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데, 이는 그가 가나안 땅의 궁극적 상속자가 될 것을 암시합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당한 수치에 대한 일종의 배상금으로 은 천 개(아마 은 천 세겔)를 별도로 줍니다. 1세겔은 보통 11.4g으로 추정되므로 현대의 도량형으로 따지면 약 11kg의 은입니다. 이것 역시 그가 별 책임이 없음에도 자진해서 아브라함에게 과도한 호의를 베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여전히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임이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애굽에서의 사건에 이어 이번에도 이방 왕들에게서 풍성한 선물을 받아 거부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요동치는 믿음과 상관없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로 아비멜렉 집의 모든 여자들의 닫혔던 태가 열려 출산을 시작했습니다(17).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25년 만에 자녀 출산을 앞두고도 시험에 자빠집니다. 성숙할 때 미숙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까지 복이 아니라 화를 줄 수 있습니다. 그를 보면서 신앙의 경주란 연륜, 직분, 경험에 상관없이 매 순간 그리고 끝까지 전력해야 넘어지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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