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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9-02)


멸망한 소돔에 구원 받는 롯

창세기 19장 12-23절


구원은 수동태이자 동시에 능동태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 이끌린다는 점에서 수동태이지만, 과거의 나로부터 떠나서 그 손을 잡는다는 점에서 능동태입니다. 수동태가 능동태를 가능하게 합니다. 소돔에게 마지막 남은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봅시다.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되었습니다.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을 성 밖으로 끌어내려고 서두릅니다. 여기에는 롯과 아내, 두 딸뿐 아니라 그의 예비 사위들도 포함됩니다. 롯에게는 이미 출가한 다른 딸들도 있었을지 모르나 아들은 없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두 딸이 아버지를 통해 후대를 이어가려 한 사실에서도 드러납니다.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고 아내는 미련을 남기고 뒤를 바라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의 탈출을 재촉하는 천사들(12-14)

떠남만이 구원입니다. 소돔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심판을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구를 기억하시고 롯의 가족을 구원하기로 하십니다. 노아의 가족들처럼 롯과 그의 딸들과 사위들에게 성 밖으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방주는 들어가야 구원 얻었지만, 소돔은 나와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2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2-14)

여호와의 심판이 임박하자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들을 서둘러 피신시킵니다. 이미 그들의 죄는 유죄로 확정 판결이 되었고(18:20), 두 천사가 목격한 직접적인 증거와 더불어 원심이 확정됩니다. 율법에서 두 명의 증인의 증언은 유죄의 강력한 증거로 채택됩니다(민수기 35:30; 신명기 19:15).

그들은 롯에게 다른 가족이 또 있는지 묻습니다. 천사들은 여기에 ‘네 사위’를 포함시킵니다. 원래 딸들이 시집가면 다른 가족의 식구가 됩니다. 그러나 롯의 딸들은 현재 약혼녀 신분이기에 여전히 아버지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롯은 다른 가문 사람들인 사위들을 전혀 책임질 필요가 없었으나, 천사들은 혼약을 한 딸들을 위해 함께 탈출시키려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소돔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되어 자신들이 내려왔고, 이제 ‘우리가 멸하리라’ 라고 최종 선고를 내립니다(13). ‘우리가 멸하리라’라는 말은 여호와와 두 천사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있음을 보입니다. 천사들은 최종 결정권자인 것처럼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의 대행자인 천사는 여호와 자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많은 역본들이 ‘그 성의 주민들을 향한 부르짖음’으로 의역합니다. 이것은 그 부르짖음이 소돔과 고모라의 비명이 아니라 롯과 같은 나그네와 다른 지역 사람들의 탄원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주민이 심판을 당했으므로 그들의 탄원으로 보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 가운데 학대받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벨의 피의 울부짖음(차아크)이 하늘에 닿았습니다(창세기 4:10). 소돔은 권력자들이 민중을 수탈하고 학대하는 사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전체가 힘의 논리를 따라 생활했기에 책임을 면할 수 없었으며, 그들 모두가 깊숙한 부패와 타락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롯은 재빨리 나가서 예비 사위들에게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렸습니다(14). 그러나 두 사람은 롯의 말을 농담처럼 여겼습니다. 두 남자가 결국은 소돔 사람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롯의 집에 몰려든 폭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적어도 롯을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방관자였으며, 그런 점에서 공범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돔의 죄를 심각히 여기지 않았으며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위들이 롯의 말을 들을 리 만무합니다. 상황은 노아 홍수 때와 동일합니다. 노아는 사람들에게 임박한 홍수를 수 없이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정신 나간 헛소리로 간주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롯의 두 딸과 약혼 관계였지만, 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딸들을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약혼 관계에서는 법적으로 혼인의 유효성은 인정되어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없으나, 아직 여자는 아버지의 권리 하에 있었으며, 언제든 약혼이 취소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약혼녀를 쉽게 내보낸 사위들의 행동은 그들이 롯의 딸들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소돔 성을 탈출한 롯의 가족(15-17)

하나님의 이끌림이 구원입니다. 롯은 반신반의하며 여전히 소돔에 미련이 남아 ‘지체’지만, 천사들이 ‘재촉’하여 롯과 그 아내와 두 딸들을 성 밖으로 나오게 하십니다. 나태와 게으름과 안일한 삶을 떠나자고 두 손 잡아 이끄시는 자비와 용서의 손길을 붙잡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15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17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5-17)

밤이 지나 막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롯을 재촉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재앙에 휩쓸려 갈 것입니다. ‘여기 있는(원문 ‘발견된’) 네 아내와 두 딸을 끌어내라’고 말하는데, ‘발견된’(찾아낸)이라는 원문을 볼 때 롯에게는 시집간 다른 딸들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잠들기 전의 소동이 끝나고 새벽이 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의미합니다. 아직은 눈먼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을지도 모를 성읍에서 롯은 사위들을 설득하러 갔고 다른 식구를 찾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롯의 ‘지체’원인이었습니다. 롯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롯은 여전히 완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에게는 에덴처럼 보였던 소돔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으며, 그의 막대한 재산도 그를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은 롯과 그의 아내, 두 딸의 손을 잡고 탈출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무것도 들고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떠나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롯의 선택은 얼마나 허무합니까! 강한 물리력 행사를 의미하는 동사 ‘하자크’가 사용됩니다. 앞서 강제로 집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이제 천사들은 강제로 성 밖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이제 천사들은 강제로 성 밖으로 끌어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베푸신 은총과 자비였습니다(16).

그들은 롯과 그의 가족에게 급히 피신하여 ‘생명을 보존하라’고 말합니다. 뒤를 돌아보고 머뭇거려선 안 되며 산으로 도망하라고 경고합니다. 이렇듯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롯과 그의 가족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습니다(19).

롯이 구출된 이유는 의인을 보존해달라는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입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심판을 면할 롯의 구원은 자신의 의로움과 그의 최종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소알 성으로 피신한 롯의 가족(18-23)

불신이 죽음입니다. 롯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은 소돔의 멸망 소식을 ‘농담’(웃음)으로 여깁니다. 아들 주실 계획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음’으로 반응했듯이, 그들도 하나님의 계획은 우습게 여긴 채 물질적인 번영을 구가하는 소돔의 환락을 더 사랑하다가 결국 죄악 중에서 멸망하고 맙니다.

18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21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23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18-23)

이 절박한 순간에 롯은 다시 시간을 지체합니다. 롯은 여전히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이제 자신이 피할 장소를 두고 천사들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롯은 그들을 ‘내 주여’라고 부릅니다. 이 아도나이 (28)는 ‘존엄 (장엄) 복수’의 극존칭으로 하나님께 사용됩니다. 여호와는 지금 여기 계시지 않고 하늘에 복귀하시어 유황불을 내릴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롯은 천사를 하나님의 대행자로 깍듯이 예우하며 산이 아닌 인근 소알 성으로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는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산으로 가서 재앙을 만나 죽을까 염려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또다시 롯의 미숙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재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신입니다. 이미 천사들을 통한 그분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는데도 두려워합니다. 또한 그는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롯은 소알 성을 도피처로 허락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가 말한 구실과 명분 또한 그의 어리석은 판단력과 온전치 못한 영적 분별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삼촌 아브라함과 나눌 때 자신에게 먼저 주어진 선택권을 행사할 때도 물댄 동산처럼 보이는 소돔 지역을 선택했는데, 다시 한 번 자신이 보기에 안전한 소일 성을 피난처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실 현재 소일 정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뿐 아니라 인근 들판과 주거지들에도 심판의 불이 떨어진다고 예고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읍을 멸하지 않겠다’는 천사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애초에 소알 성도 심판의 대상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21). 롯의 명분은 ‘작은 성읍이 아닙니까?’라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작은 성읍에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작은 성읍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죄의 분량도 적어 심판이 면제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는 결코 인구수와 분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 도덕적 측면에서는 같은 지역에 위치한 소알도 소돔과 동일한 문화권의 한패거리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롯은 소알을 선택했지만, 나중에는 반대로 소알에서도 살기를 두려워하여 결국 산으로 거처를 옮깁니다(창세기 19:30). 천사들이 롯의 간청을 받아들여 소알 땅은 보존됩니다. 여기서 소수의 의인만으로 멸망을 피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의인들은 도피시키시지만, 때로 소수를 살리기 위해 성의 심판이 유예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점점 지체되는 상황에서 천사들은 롯에게 속히 소알로 도피하라고 명합니다. 롯과 가족들이 소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버튼을 누르지 못하십니다. 천사 중 한 명이 ‘내가 아무것도 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22).

그러나 24절은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을 내리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천사들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들의 말은 여호와의 말이고, 그들의 결정은 여호와의 결정입니다. 그들이 도피한 성의 원래 이름은 ‘멸망’, ‘삼킴’을 뜻하는 ‘벨라’였습니다. 처음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심판 이후에 그 마을은 ‘작다’는 뜻의 소알로 바뀌었습니다. 롯은 해가 돋을 즈음에 소알에 도착했습니다.


천사들은 뒤를 돌아보거나 소돔 근처들에 머물지 말고 아주 멀리 있는 산으로 안전하게 피하라고 명령했지만, 롯은 가까이 있는 작은 성 소알로 피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나의 성 소알은 절대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갈보리 산까지 올라가지 않고는 구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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