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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9-01)


소돔에 입성한 천사들

창세기 19장 1-11절


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냉대이며, 심판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박대입니다. 왜? 구원은 환대이며, 믿음도 환대이기 때문입니다. 극진한 대우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영접이며, 믿음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찬양을 통한 대접이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되어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했습니다. 그 자리에 여호와께서는 안 계셨습니다. 아브라함과의 흥정 이후 ‘가셨다’고 언급되어 있지만, 어디로 가셨는지는 본문이 침묵합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여호와가 심판을 행할 준비를 하고 계심을 암시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24). 롯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돌아온 후 소돔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다시 그곳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성문에 앉아 있다가 낯선 두 나그네를 발견하고 그들을 정중히 환대합니다.

 

두 천사를 극진히 덥대하는 롯(1-3)

‘날이 저물 때’ 두 천사는 소돔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날이 저물 듯 열적으로 어두운 그 성의 운명도 기울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18:1-8) 롯도 두 천사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극진히 대접합니다. 무법천지인 소돔에서 외인들이 밤에 거리에서 경야하지 않도록 간곡하게 만류합니다.

1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1-3)

아브라함을 방문한 하늘의 세 사자(18장) 가운데 둘이 소돔으로 향했고 ‘저녁 때’ 도착합니다. 두 천사는 저녁에 소돔에 도착했습니다. 본문은 오후의 만찬을 즐긴 여호와 일행이 해가 진 뒤 소돔에 도착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확인되지 않은 소돔의 실제 위치가 어디든 헤브론에서 거기까지는 하룻길이 넘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의 흐름이 서사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롯과 소돔 성의 운명입니다.

롯은 포로로 잡혔다가 아브라함에 의해 구출된 후 소돔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가 그 대가를 지불할 때가 임박했습니다. 롯은 그때 소돔 성의 성문에 앉아 있다가 낯선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막사 입구에서 쉬고 있다가 여호와 일행을 목격한 아브라함과 대조됩니다. 당시 성문은 성의 입구로서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성문에는 문만 있지 않고 다양한 시설물들이 있었습니다. 흔히 기념석이 놓였고 몇 개의 소규모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성문은 다양한 공적 활동이 이루어진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성의 대표자들인 원로들(장로들)이 거기에 모여 성의 제반 문제를 상의했고 공적인 집회가 열렸으며 재판이 개최되었습니다(신명기 21:18-23; 22:13-21; 룻기 4:1,11; 사무엘하 15:2). 롯이 저녁 즈음 성문에 있었다는 것은 그가 소돔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아마도 14년 전 그의 삼촌 아브라함의 활약으로 소돔이 구조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9절을 보면, 그는 여전히 이방인 신분으로 소돔 사람의 진정한 식구는 되지 못한 주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롯은 비록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계속 보여 앉지만, 도덕적,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그들과는 어울리지 못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 먼저 두 천사를 성문에서 보고 집으로 초청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분명 낯선 그들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밤중에 소돔 사람들이 모두 롯의 집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롯은 그들을 정중히 영접하면서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집으로 와서 발을 씻고 하룻밤을 지내고 갈 것을 제안합니다.

앞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에게 보였던 예법을 롯이 반복합니다. 나그네에 대한 이러한 극진한 대접은 낭시 교양과 덕목을 갖춘 사람들의 관행이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롯 역시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롯의 대접이 훨씬 간략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이것은 단지 아브라함 때에 상세히 묘사했기에 지루한 반복을 피하고 있을 뿐입니다. 롯의 예의 바른 태도는 그들을 겁탈하려 한 소돔 성 사람들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롯의 초청을 거절하면서 거리에서 밤을 지내겠다고 말합니다(2). 이는 당시 예법상 매우 무례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롯의 제안을 받지 않은 것은 자신들 때문에 롯이 곤경에 처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롯은 그들을 간청해서 집으로 들였습니다. 간청을 뜻하는 동사 ‘파차르’는 9절에서 폭도들이 롯의 집을 밀고 들어올 때도 사용됩니다. 이것은 롯이 뒤에서 그들을 떠밀어서 집에 들여보냈음을 암시합니다. 롯의 입장에서 나그네를 밖에서 재우는 행위는 비난받을 일이었기에 그들을 설득했을 수 있었습니다. 롯이 볼 때 소돔 성은 폭력의 도시였기에 그것을 허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아침 일찍’ 떠나라고 한 것을 보아 롯은 나그네들을 위험한 도시로부터 보호하려 했을 것입니다(참조. 사사기 19:18-20). 롯의 간청에 못 이긴 그들은 환대를 받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처럼 빠르고 정성스럽게 식탁을 준비하는데, 아브라함 때처럼 그것은 ‘연회’라 불릴 만큼 성대한 만찬이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의 집단적 범죄(4-8)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막론하고 사방에서 몰려와 두 천사를 에워싼 것을 보면 소돔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손님들을 보호하려고 이미 정혼한 두 딸을 성난 폭군들에게 내주겠다는 롯의 제안은, 롯 역시 얼마나 소돔의 가치관에 물들었는지 보여줍니다.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4-8)

그날 밤 만찬을 마치고 잠들기 전 모든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에 몰려들었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모든 연령층(‘노소를 막론’)과 거주지 모든 곳에서(‘원근에서’) 모든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말합니다. 물론 문학적 과장일 것이나 모인 사람들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였다는 뜻이며, 사실상 거기에 오지 않은 소돔 사람들도 모두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여기엔 심지어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협상에서 하나님의 협상 거부가 옮았음을 증거합니다(창세기 18:16-33). 소돔 성 주민 모두가 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롯을 불러내 손님들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면서 그들을 강간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힙니다. 물론 소수가 난동을 벌였고 나머지는 구경꾼이었을 것입니다. 폭력과 겁탈의 현장을 구경하자고 아이돌과 늙은이까지 몰려들었습니다. 결국 그들도 모두 이 범죄의 가담자들일 뿐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그들 모두가 눈멀게 된 것을 볼 때 분명해집니다. 놀랍게도 동성 겁탈을 시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돔은 동성애 자체로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동성이든 이성이든 문란한 성적 이탈과 성폭력이 문제의 핵심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폭도들이 여자는 거절하고(롯의 두 딸) 남자만을 원했던 것을 볼 때 그들의 극단적인 성적 일탈을 본문은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신구약에서 일관되게 분명 극악한 죄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으며, 유다서는 소돔의 동성애를 근원적 죄로 지목하고 있습니다(레위기 18:22; 20:13; 로마서 1:26-27; 유다서 1:7). 그러나 이웃 나라들은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느슨했으며 문화권에 따라 쌍방이 합의할 경우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동성애 자체도 문제지만 집단 강간의 시도가 더욱 큰 문제였습니다(사사기 19장).

롯은 문 밖으로 나가 문을 굳게 닫은 뒤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그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롯은 그들의 행위를 ‘악’으로 규정합니다. 롯은 기본적으로 신앙에 입각하여 그들과 다른 도덕적 표준을 따라 생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롯의 제안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그는 아직 처녀인 두 딸을 내놓을 테니 나그네들을 건들지 말라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두 딸은 약혼을 한 상태였기에 롯에게는 두 사위가 있었습니다. 약혼도 당시에는 법적으로 결혼을 한 지위로 미리 인정받았습니다. 훗날 율법은 약혼한 여자를 겁탈하는 자는 투석형으로 죽이도록 명령합니다(신명기 22:23-27).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에도 약혼한 딸들을 겁탈당하도록 내놓는 행위는 극악한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롯은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 딸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두 딸과 손님 중 누가 더 가치 있습니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가족보다 우선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명예와 수치가 중요한 가치였던 고대 근동의 문화권에서는 가족을 우선시하고 귀한 손님을 희생시키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롯은 어차피 모두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적 선택을 했을 수 있습니다. 만일 자신을 내놓는다면, 남은 가족과 손님들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롯은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결국 롯이 소돔 성을 선택한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롯의 가정을 보호하는 두 천사(9-11)

짐승처럼 욕망에 이끌려 ‘힘’을 믿으며 사는 영적 소경들의 눈을 어둡게 하십니다. 그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그냥 두십니다. 눈이 어두워졌는데도 정욕을 끄지 못해 롯의 문을 찾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날이 될 때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가 행한 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9-11)

폭도들은 롯의 제안을 거절하였으며, 도리어 롯이 건방지다면서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 자가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에서 사용된 동사 ‘샤파트’는 ‘재판하다’라는 사법적인 의미 이상으로 정치적인 실력 행사를 의미합니다. 이들의 발언을 보면 롯이 소돔에서 나그네 신세에 그쳤고 주변인에 머물러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14년 전 롯의 삼촌 아브라함에게 입은 큰 은혜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폭도들이 문을 부수며 들어오려 하자 두 천사는 급히 롯을 집으로 끌어들인 후 문을 닫았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방주 문을 닫으셨듯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인 후 천사들이 롯의 집 문을 닫습니다. 천사들은 군중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눈먼 상태인 ‘산붸림’의 추정되는 어원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강렬한 빛에 눈이 부셔서 앞이 안 보이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무리는 대소를 막론하고’ 눈이 멀었으며 문을 찾기 위해 우왕좌왕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모두가 이 범죄에 가담한 공범임이 드러납니다.


롯은 재판하는 자리에 앉을 만큼 어엿한 소돔 시민이 되었지만, 소돔인들에게는 여전히 ‘잠시 우거하는’ 외인일 뿐이었습니다. 소돔은 롯을 냉대하였습니다. 약속의 사람 아브라함을 떠나 물질적인 풍요를 선택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과 세상의 인정을 모두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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