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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9-03)


소돔 성을 탈출한 이후에 롯의 생활

창세기 19장 24-38절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말씀에 따라 세상은 창조되고 있고,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은 정보가 아니라 창조하는 힘이다. 창조주의 인격입니다. 소돔의 멸망,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일, 롯의 딸들의 행태를 말씀에 대한 태도와 연관하여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심판의 범위는 소돔과 고모라 정뿐이 아니었습니다(25). 롯이 탐내었던 주변의 넓은 목초지와 성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 땅에서 나는 모든 식물과 작물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소알도 주변 성들 중 하나였으니 롯의 간청으로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롯의 삶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24-26)

끝내 구원의 길을 외면한 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라함의 간곡한 중보기도에도 불구하고 재가 됩니다. 정욕이 춤추는 대로 살고 '힘'과 우격다짐이면 다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세상이 한순간에 재로 사라졌습니다. 재림의 날에 하나님을 조롱하는 세상은 모두 재로 변할 것입니다.

2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4-26)

카운트다운이 끝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심판의 버튼은 누르자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쏟아졌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두 천사와 함께 계시지 않은 것이 확인됩니다. 그분은 하늘로 돌아가서 심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분은 심판은 유황 성분으로 가득한 역청이 생산되던 지역의 지질학적 특징을 고려해볼 때, 지상이 대격변으로 인한 파국으로 이해됩니다. 대지진과 더불어 지하에 묻혀 있던 가스와 유황이 터져 나오면서 유황 성분의 역청과 뒤범벅이 되어 불이 붙은 채로 쏟아져 내렸을 것입니다. 동시에 유황이 불과 분리된 것으로 보아 불이 안 붙은 유황도 쏟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땅이 뒤집혔다는 것은 25,29절의 ‘엎으셨다’는 말에서도 암시됩니다. 원래 그 지역은 물댄 동산처럼 물이 많고 대형 목축업자 롯이 선택할 만큼 좋은 목초지였습니다. 따라서 ‘다 엎었다’는 말은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29). 그 좋았던 땅이 유황불 심판으로 뒤엎어졌으며, 그 이후 오늘날과 같은 황무지와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성들과 그 주변을 ‘다 엎으셨다’는 말에서 대홍수가 연상됩니다. 하늘의 물과 땅에서 나온 물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하늘의 불과 땅에서 나온 유황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26). 그녀는 소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소돔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이 아까웠기에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누가복음 9:62)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사람이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은 주변이 소금 덩어리로 가득 찬 사해(염해)의 지역적 특징을 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아마 대격변으로 지하의 유황과 가스가 분출될 때 소금 덩어리들도 솟구치면서 롯의 아내를 덮쳤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는 아브라함(27-29)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롯의 아내는 이 경기를 외면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의인 롯과 함께 살았지만 그녀는 남편의 하나님보다는 타락한 소돔의 문화에 더 사로잡혀 산 것입니다. 손에 쟁기를 쥐고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누가복음 9:62). 

27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27-29)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명망한 모든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곳은 여호와 일행이 소돔을 내려다본 장소이자 아브라함이 여호와에게 그 성을 위해 중재를 시도한 곳입니다. 이미 그 성의 심판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해가 뜨자마자 상황을 보기 위해 그 장소로 달려간 것입니다. 이미 심판이 실행되어 소돔과 고모라 및 그 주변의 땅들에서 연기가 옹기 가마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솟고 있었습니다(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롯을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롯을 구출해주셨다고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롯이 구원받은 이유는 다중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입어 강권적으로 붙들려 빠져나와 구출되었습니다. 동시에 여전히 부족하지만 의인으로 평가되었으며, 소돔을 떠나기로 믿음의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롯을 위한 아브라함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은 그분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결단으로 이루어집니다.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조상(30-38)

말씀하신 대로 소돔이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신 대로 이루지 못하실 리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의 멸망을 보면서 이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아들은 태어날 것이고, ‘후손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라’는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30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30-38)

이 결론 부분은 산에 있는 굴에서 롯의 두 딸이 행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롯은 산지로 도망하는 것을 두려워해서(19장) 소알 성으로 피신했습니다(22). 그러나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소알을 떠나 산지에 가서 거기에 있는 굴에 거했습니다(30).

(1) 대를 잇기 위한 두 딸의 그릇된 시도(30-35)

소알로 피신한 롯은 그곳에서 살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많은 원인이 추론될 수 있습니다. 그는 빈털터리로 빠져나온 상황이며 가축도 모두 잃었습니다. 가난한 그가 일단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삼촌 아브라함이 롯과 그의 딸들을 위한 최소한의 뒷바라지를 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변 보호가 보장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소돔에서 그가 성문에 앉아 있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었어도 소돔의 폭도들에게 결국 ‘이 자가’라는 말을 듣고 봉변을 당했을 만큼 주변인 신분을 넘지 못했습니다. 소알에서도 그 상황은 달라겠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롯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이 그토록 가길 거부했던 산으로 올라가 동굴에서 거주합니다(30). 동굴에서의 삶은 그의 비참한 상황을 말해줍니다. 그는 가진 재산이 전혀 없기에 정상적인 거주지가 아닌 굴로 갔을 것입니다. 굴은 무덤으로 사용하거나(29:9), 아니면 도망자들이나 산적들이 기거하는 곳이었습니다(여호수아 10:16; 사무엘상 13:6;22:1).

이제 대를 이을 아들마저 없는 상황이니 그의 삶은 막을 내린 듯 보입니다. 더구나 이어지는 20장에서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아브라함이 새로운 거치를 떠나면서 롯과 완전히 결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롯은 독자적인 계보를 이루면서 독립된 두 민족의 지상이 됩니다. 롯의 족보와 후손들의 역사의 시발점이 현재의 사건입니다. 롯의 큰 딸은 작은 딸을 꼬드겨 자신들의 씨를 낳아 집안의 대를 이을 공모를 꾀합니다. 큰 딸은 롯도 이제 늙었고, 인생의 순리를 따라 배필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 세상(땅)의 도리’는 아마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필연적인 인생의 순리를 가리킬 것입니다(여호수아 23:14; 열왕기상 2:2). 순리에 따라 그들은 남자를 구해 결혼해야 하지만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미 두 말들은 소돔 성에서 남자들에게 버림을 받은 처지이며, 폭도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롯과 딸들의 입장에서 그 지역에는 더 이상 믿을 남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살아남은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도 빈털터리가 되어 동굴에 기거하는 가난한 롯의 딸들이자 이방 여자인 그녀들을 며느리로 삼으려 했을지 의문입니다. 결국 롯은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길 위기에 있습니다. 큰딸은 이러한 상황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밉니다. 아버지가 술(포도주)에 잔뜩 취하게 해서 동침한 뒤 후손을 이어 가자고 계획한 것입니다. 그녀들은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근친상간은 후대의 레위기에서 사형 및 끊어짐의 중벌과 더불어 금지됩니다(레위기 18, 20장). 거기에 가장 가까운 근친인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는 적시되어 있지 않으나, 너무 당연한 이유로 생략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당시 관례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든 이방 민족들에게든 용인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딸은 아버지가 만취하게 만들어서 이 일을 감행합니다. 그런 근친상간은 아버지가 용인할 수 없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문화권에서는 대를 잇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형사취수, 혹은 계대 결혼 제도가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이 여자의 품행을 벗어나면서까지 보아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이유는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를 잇기 위한 처절한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룻기 3:1-11).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딸과의 성적 결합은 허용될 수 없었으며, 그런 방식의 대 잇기는 상상 밖의 일입니다. 두 딸의 도덕관념은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에서 영향 받았을 수 있습니다.

또한 두 딸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오랜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이 이야기는 노아가 술 취한 이야기와 비교됩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했습니다. 두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범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의 미래가 결정되었습니다.

(2) 롯의 두 아들 작명(36-38)

두 딸은 각자 아들을 낳은 후 이름을 각각 ‘모압’과 ‘벤암미’로 지었습니다. ‘모압’의 이름 뜻은 ‘아버지로부터’이며, ‘벤암미’는 ‘내 백성의 아들’입니다. ‘모압’은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벤암미’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근친상간을 통해 그들의 후손이 된 모압과 암몬 족속은 자신들과 모든 후손의 어머니가 된 두 딸을 영웅으로 추앙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두 딸의 행위는 오히려 용기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을 오직 대를 잇기 위한 일념으로 감행한 영웅적 행위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저자 입장에서는 분명히 그들 뿌리의 부정적이고 파행적인 측면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딸들을 이용하려던 아비 롯(19:8)은 이제 자손 잇기를 위해 딸들에게 이용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풍요를 좇아 걸어온 롯의 인생은 아내와 딸에게, 사위에게, 소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소돔의 자녀로 키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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