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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4-02)


리브가의 집안에 청혼을 전한 종

창세기 24장 28-49절


김기석 목사는 자신의 저서에게 ‘인생은 살만한가?’에서 ‘종교한 사람들이 까맣게 잊고 살고 있는 하늘에 대해 말해주고 일상의 시간 속에 영원의 숨결을 불어넣는 데 그 본령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일의 성사 앞에서 ‘잊고 살던 하늘’에 대해 들려줍니다.

 

앞서 아브라함의 종 일행과 가축들의 물을 먹인 리브가는 재빨리 집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립니다. 손님의 신속한 환대를 위해 달린 그녀가 이제 신속한 소식 전달을 위해 달려갑니다. 그녀의 달려감은 손님을 빨리 집으로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도 그녀의 깊은 마음씨가 잘 드러납니다. 리브가에게서 귀빈 방문 소식을 들은 오빠 라반이 또한 달려 나옵니다. 그는 방문객 일행을 극진히 환대하나 그의 의중에는 순수하지 않은 것이 엿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을 토대하는 라반(28-33)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잊을 수 없습니다. 라반의 환대를 받은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의 정체와 여행목적을 설명합니다. 극진한 대접 앞에서도 자신의 신분과 임무를 잊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전한 후 결과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28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29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30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그 때에 그가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더라 31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32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의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33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28-33)  

리브가는 우물에서 집으로 즉시 달려가 귀빈 방문 소식을 알렸습니다. 여기서 리브가의 집이 그녀의 ‘어머니의 집’으로 표현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학자들은 이미 아버지 브두엘이 사망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29절에서 아브라함의 종을 마중 나온 사람이 브두엘이 아닌 그의 아들 라반인 것을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53절에서는 그 종이 가족에게 큰 선물을 줄 때 리브가와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 주었다고 언급하고 브두엘은 누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브두엘이 죽었다면 50절에서 ‘라반과 브두엘’이 등장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에 비평학자들은 50절의 브두엘은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든(Gordon)은 큰아들 라반이 실질적인 가장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 그들의 가족 상황이 아버지보다는 형제 중 한 명이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체제(fratriarchy, 형제 가장제)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자료들에는 족장이 생존해 있어도 그가 제 역할을 못할 경우(아마 그가 무능하거나 지나치게 연로하거나 병들었을 경우) 보통 장남이 가정을 대표했다는 증거가 보입니다.

리브가에게는 라반이라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라반은 리브가가 전한 소식을 듣고 즉시 우물로 ‘달려가’ 그들을 마중합니다. 리브가처럼 라반도 급히 달립니다. 그도 언뜻 그의 누이 리브가처럼 손님을 정중하게 환대하려고 서두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리브가의 귀금속에 대한 언급은 라반의 성품과 특징을 은연중 드러냅니다(30). 그렇지 않다면 리브가가 받은 귀한 선물이 그의 주목을 끌었다는 말을 저자가 굳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누이에게 비싼 순금과 은 장신구를 선물한 큰 부자가 자신의 집에 머물려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렌 것입니다. 그가 물질에 사로잡힌 탐욕적 인물임이 암시되며, 이러한 그의 인물됨은 나중에 야곱과의 충돌 과정에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30-32장). 결국 리브가는 환대를 위해 달려왔지만, 라반은 탐욕에 사로잡혀 달려왔습니다. 리브가의 고운 성품이 그의 오라비로 인해 더욱 두드러집니다. 라반은 우물가에 많은 낙타들과 함께 서 있는 방문단의 규모를 보고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30).

그가 급히 마중을 나간 이유는 그들이 그 마을을 떠날까 두려워서였을지 모릅니다. 그는 귀빈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라는 말은 의례적인 인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라반의 인사에 담긴 의도가 엿보입니다. 라반과 그의 가족들은 그 종의 정체를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앞서 그 종이 드린 감사의 기도는 그가 홀로 드린 기도였을 뿐이며, 리브가가 집으로 달려간 뒤에 한 기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라반은 그 방문객이 소유한 많은 물품을 보고 덕담을 건넸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종의 신분은 옷에서 금방 드러났을 것이니, 이미 라반과 리브가는 그가 누군가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유민이 아닌 종에게 이렇게 극진하고 신속한 환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방문객은 아브라함의 종일뿐이므로 라반의 ‘복을 받은 자여’라는 인사는 빗나간 인사입니다. 복은 그의 주인이 받았으며, 그 모든 물건은 주인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이 복을 받은 자라는 라반의 말도 결국 틀리진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던 대로 일이 순적하게 잘 풀리고 있으며, 원하는 최고의 신붓감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귀빈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미 그들이 묵을 공간과 낙타들이 쉴 공간까지 준비해놓았습니다. 라반은 그를 극진히 예우합니다. 낙타들에게서 짐을 내린 뒤 사료를 먹입니다. 배가 잔뜩 끓은 낙타들을 위해 아마 엄청난 짚과 사료가 소모되었을 것입니다. 종과 수행한 모든 사람들의 발 씻을 물을 내놓습니다(32). 라반은 여장을 풀고 몸을 씻은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달리 음식 준비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는 이유는, 이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라반의 음식 제공이 아브라함만큼이나 큰 연회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독자들에게 그의 시중이 여전히 순수한 환대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음식이 눈앞에 차려져 있지만 아브라함의 종은 먹는 것을 유보합니다(33). 갈증을 해소했던 그는 허기는 아직 채우지 못했습니다. 종일 여행 끝에 해 질 때 도착했으니 일행 모두는 대단히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음식에 손대지 않고 자신의 중대한 임무를 일단 마무리하려 합니다. 먼저 자신의 일을 그들에게 다 말하고 나서 음식을 먹겠다고 고집합니다. 라반은 그에게 마무리를 넘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간증(34-49)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만나기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일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결과라고 밝힙니다. 아브라함의 가산에 복을 주시고 사라의 태를 여시고 그 아들의 아내를 예비하시고 종의 길을 순전하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인고이 되어 만들어 가시는 이야기입니다.

34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35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36나의 주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37나의 주인이 나에게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너는 내 아들을 위하여 내가 사는 땅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고 38내 아버지의 집,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하시기로 39내가 내 주인에게 여쭈되 혹 여자가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어찌하리이까 한즉 40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41네가 내 족속에게 이를 때에는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만일 그들이 네게 주지 아니할지라도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하시기로 42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43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44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45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한즉 46그가 급히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리며 이르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낙타에게도 마시게 한지라 47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48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34-49) 

우리는 사명을 미루지 않고 신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직전 본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의 명을 받아 먼 나홀성까지 한걸음에 달려왔고, 도착한 그 날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리브가를 만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1) 아브라함이 하달한 지시(34-41)

아브라함의 종은 당장의 식사보다 더 중요한 일을 이야기함으로써 대화를 주도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합니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혀 자신이 아브라함의 종임을 알립니다. 여기서도 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데, 이것이 그를 조연에 머물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적 생략인지, 아니면 그의 겸양의 표현인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듣고 라반이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종이 이렇게 돈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닐 정도라면 그의 주인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거부이겠습니까! 그 중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말합니다. 서사의 대화는 간결하나 아마 그는 상당히 장황하게 자신의 종이 어떻게 큰 복을 받았는지 설명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목민에게 귀한 재산의 품목들이 나열됩니다. 소 떼와 양 떼는 고기와 우유의 공급원이고 은금은 현금과 같은 재산이며, 인력 자원인 남종과 여종, 현대의 승용차와 트럭과 같은 운송용 가축들입니다. 이어서 종은 말하고 싶은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에게 물질의 복을 풍성히 주신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라함의 노년에 아들을 보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자신의 주인이 그 아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아직 재산 상속을 하지 않았으며, 이삭에게 상속되기 직전이었습니다(창세기 25:5). 그러나 그 종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브두엘 가족들도 가장이 생존해 있는 가운데 아들에게 이미 유산을 넘겨줬다는 이야기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실질적으로 이미 노령의 아버지의 재산은 아들에게 넘어가 것이나 다름없음을 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간증은 앞선 장면을 반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종의 의도가 잘 전달되는 방식으로 재구성됩니다. 그는 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이곳에 보냈다고 설명합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부각시킨 종은, 이삭과 가나안 여자와의 결혼은 부가하므로 리브가의 자녀들이 이삭과 함께 그 모든 유산을 누리게 될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만일 신붓감인 처녀가 고향을 떠나 먼 가나안 땅으로 시집오기를 싫어한다면, 자신들이 빈손으로 돌아갈지언정 이삭이 이곳으로 올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다른 대안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면서 브두엘 가족의 선택과 결단을 압박합니다. 종은 아브라함이 보장한 ‘하나님의 천사’의 인도하심을 강조하여 이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2) 리브가를 만나게 된 사연(42-49)

그가 리브가를 만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을 설득합니다. 그는 그날 저녁 즈음에 있었던 리브가와의 신비하고 극적인 만남을 간증합니다. 자신의 기도가 어떻게 정확히 응답되었으며 자신이 리브가를 검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설명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브두엘 가족에게 빠른 결정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답변에 따라 그도 다음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처럼 하나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도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간증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에 참여하여 그 이야기를 살고 이야기가 되어가는 사람입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가 형성한 신앙입니까? 그 이야기가 요구하는 사명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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