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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09-01)


타락한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

에스라 9장 1-8절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받은 은덕을 저버리는 것이며 감사를 모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반대로 은혜를 끼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악은 배신입니다.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께 은혜 대해 배은망덕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 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 본문은 에스라의 회고록의 종결 부분으로 공동체 내의 범죄(이방인들과의 통혼)를 다룹니다. 에스라가 경험한 잡혼의 문제는 포로 후기 이스라엘 공동체가 경험한 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합니다. 새롭게 시작한 귀환 공동체는 구별된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에스더 9-10장 개관

에스라서 9-10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그것을 살피고 본문 강해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에스라를 통한 공동체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개혁의 내용은 정체성 확립과 율법 중심의 삶입니다. 전체 단락은 문제의 시작(9:1-2)으로 시작해서 문제의 해결(10:7-44)로 끝났습니다. 스가냐의 고백과 결단(10:2-4)을 중심으로 교차대칭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A.타 민족과의 결혼 문제(9:1-2)

  B.에스라의 공개적 탄식(9:3-4)

    C.에스라의 기도(9:5-10:1)

      X.스가냐의 고백과 결단(10:2-4)

    C′.에스라의 권면(10:5)

  B′.에스라의 공개적 탄식(10:6)

A′.타민족과의 결혼 문제 해결(10:7-44)

 

잡혼의 문제는 포로 후기 이스라엘 공동체가 경험한 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합니다. 에스라는 이들의 행동을‘마알(לעמ)’의 범죄로 규정하는데, ‘마알’이라는 용어는 9-10장 전체 단락에서 다섯 번이나 등장합니다(9:2, 4;10:2,6,10). ‘마알’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행동 혹은 언약적인 범죄로, 이것은 에스라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잡혼 문제에 관한 방백들의 보고(1-2)

‘악어의 눈물’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속으로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 즉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도자부터 삶에 있어 본이 될 수 없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1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가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1-2)

 

공동체 내의 문제, 즉 이방인들과의 통혼의 주제를 다루는 9장은 ‘이 일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이 표현은 에스라서 내에서 새로운 단락을 알리는 표지 기능도 합니다. 이것은 9장의 이야기가 앞 장의 사건과 얼마간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전후 문맥을 고려해 볼 때(참조. 스 7:9; 10:9),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귀환 후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으로 보입니다.

에스라는 방백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과‘그 땅의 백성들’사이의 이방 여인들과 통혼에 관한 놀라운 보고를 듣습니다(la). 그리고 에스라를 더욱 안타깝게 한 사실은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해야할 지도자들이 이 일에 오히려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1절과 2절의 ‘그 땅들의 백성들’은 가나안 땅뿐만 아니라 이방 지역의 백성들까지 포함합니다. 방백들이 보고하는 ‘그 땅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들, 헷 사람들, 브리스 사람들, 여부스 사람들, 암몬 사람들, 모압 사람들, 애굽 사람들, 아모리 사람들 등입니다(1b).

그런데 문제는 이 족속들 가운데 상당수가 에스라 시대에 더 이상 그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이 가나안 족속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사건을 신명기 율법과 연관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방 사람과의 혼인을 금하는 것은 특히 신명기 율법에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신 7:1-5; 23:3-7). 신명기 율법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방 사람(특히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을 강하게 금지합니다.

에스라는 지금 귀환 공동체가 직면한 상황이 모세 시대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둔 상황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에스라가 공동체 내 이방인들과의 통혼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 역사의 아픔, 즉 이방인들과의 결혼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와 관계됩니다. 특히 1절에서 애굽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솔로몬의 잘못된 결혼 정책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왕상 11:1).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금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귀환민들의 정체성(‘거룩한 자손’)과 관련됩니다(2). 이것은 에스라와 방백들이 예루살렘 공동체를 회복된 이스라엘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출 19:6; 신 14:2,19). 거룩한 백성인 귀환 공동체가 부정한 이방 족속과의 통혼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할 때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깨어 근신하지 않으면 우는 사자처럼 교회를 삼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마귀의 궤계를 이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에스라의 반응과 기도(3-5)

성도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부끄러움을 비난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잘못을 자신의 잘못과 아픔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중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타인의 잘못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먼저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3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 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3-5)

 

세상이 완악해지고, 이기적이고, 믿음보다 욕심이 가득해지는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에스라의 안타까운 마음처럼 방백과 고관들처럼 자신의 편함과 안위, 탐욕만을 생각하며 나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⑴ 에스라의 반응(3-4)

 

이 보고를 들은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뜯는 반응을 보입니다(3). ‘옷을 찢는 행동’은 애통함의 표시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뜯는 것’은 극도의 진노를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 말미암아 한동안 기가 막혀 앉아 있게 된다(3b). 에스라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 선조들이 이방 사람(특히 가나안 백성)과 통혼하여 배교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고, 결국 그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 가셨던 역사적 사실 때문입니다(7). 어렵게 다시 돌아온 백성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전과 동일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그들에게 임할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라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사람들’입니다(4a).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사람들’은 포로기를 거치면서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참조. 10:3;사66:2, 5).

 

⑵ 에스라의 기도(5)

 

에스라는 저녁 제사드릴 때(오후3시)까지 옷을 찢은 상태로 앉아 있다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합니다(5).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과 간절함의 자세이고, ‘손을 드는 것’은 탄원과 중보의 자세입니다.

 

에스라의 기도 내용(6-7)

진리가 왜곡되고 믿음이 흔들리는 이 시대 가운데서도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는 순결한 신부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더욱 무너져가는 공동체와 나라 그리고 민족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6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7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6-7)

 

6절부터는 에스라의 기도 내용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따라야 할 기도의 전형인 에스라의 기도는 죄의 고백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성경의 다른 기도와 비교할 때, 에스라의 기도는 두 가지 면에서 독특한 면을 지닙니다. 첫째, 그의 기도는 내러티브(Narrative)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둘째,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백성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즉, 백성들이 듣고 회개하도록 하는 설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기도를‘설교-기도’(sermon-prayer)라고 부릅니다. 에스라는 이‘설교-기도’를 통해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합니다. 에스라는 먼저 백성들의 죄를 고백합니다(6-7).

여기에서 에스라는 반복적으로 ‘우리’ 혹은 ‘우리의 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우리’라는 표현에서 백성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지도자 에스라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온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실제로 이들의 잘못과 무관합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스스로를 공동체와 결속시키고 공동체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합니다. 이 모습은 광야 시대 모세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참조, 출 34장). 에스라는 기도 가운데 백성들의 죄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나열합니다(7:‘왕들의 손에 넘기며’,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함(8)

일상에서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베푸신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반복되는 일상적인 죄를 단호하게 끊어버립시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때에 그 은혜에 감사하며 과거의 죄악을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8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8)

 

죄의 고백에 이어 에스라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가운데 ‘얼마’를 남겨두어 생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얼마’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귀환민들에게 성전의 회복을 허락하시고 안정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하셨습니다(‘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그리고 그들의 눈을 밝게 하시고, 생기를 회복해 주셨습니다. ‘눈을 밝게 하셨다’는 것은 암흑과 같은 포로 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를 남겨두셔서 그들이 80년전 고레스 칙령으로 큰 꿈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차 귀환자들은 벅찬 감격과 새로운 다짐으로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이 점차 무뎌지고 주위 문화와 종교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제시된 문제는 단순히 결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관련된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에스라는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나 이방인과의 통혼에 대한 에스라의 격한 반응은 당시 공동체가 처했던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신앙 공동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우리고 있습니까?특히 지도자는 세속적인 문화나 가르침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의 수적 성장만 이루려는 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라의 기도는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합당하게 살고 싶어서 수고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성도들의 노력과, 특별히 간절한 기도와 은혜를 경험하는 말씀이 성도들을 지켜주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혼합된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또한, 과거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희망을 잃지 말라는 교훈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회개는 개인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데서 시작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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