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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4-01)


온 땅을 황폐케 할 하나님의 심판

이사야 24장 1-13절


 

이스라엘이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며 쾌락을 추구하면서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공평과 정의를 버려도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주의 백성에게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 온 땅이 여호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황폐시키시고 주민들을 흩으십니다. 그분의 심판으로 땅의 모든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혼돈과 무질서가 땅을 지배하게 됩니다. 본문은 여호와에 의한 땅의 심판에 집중하고, 그분께서 어떤 방식으로 심판하시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땅의 심판(1-3)

하나님의 심판에서 아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날에 종교도, 사회 경제적 신분에도 상관없이 모두 심판에 떨어질 것입니다. 죄로 물든 이 세상은 마치 태초의 ‘혼돈과 공허’의 상태로, 무질서의 상태로, 광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이 새 창조의 모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몇몇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1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 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2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 3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1-3)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온 땅은 완전히 황폐케 될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심판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날에 땅의 일부분이 아니라 ‘온 땅’이 심판으로 황폐케 되는 이유는 온 땅의 거민이 ‘율법’을 어기고 ‘더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땅을 파괴하시는 여호와(1)

 

온 땅이 여호와의 심판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1절의 현재분사가 뒤따르는 ‘보라 여호와께서’는 심판의 문맥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3:1; 8:7; 10:33; 19:1; 22:17; 24:1; 26:21), 그 확실성과 임박함을 강조합니다. 아직 현재에 속하지는 않지만, 여호와께서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 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십니다. 땅을 파괴하여 황무지로 만드실 뿐만 아니라, 키로 까불러 겨나 지푸라기를 바람에 날려버리듯이(41:16) 땅에 사는 자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리십니다. 상반절은 파괴의 심판을, 하반절은 흩어짐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심판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표현들이 우주적 심판에 전용됩니다. 땅의 심판에서 예외는 없습니다.

 

(2) 예외 없는 그분의 심판(2)

 

신분과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집니다(2). 첫 번째 대조는 종교적 신분과, 나머지 다섯 개의 대조는 사회적 신분과 관련됩니다. 물론 기존권위의 붕괴(3:1-5)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때는 종교적 특권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나 낮은 지위에 있는 자나, 가진 것이 많은 자나 가진 것이 없는 자나 모두 그분의 심판에 떨어집니다. 특이하게도 백성이 왕과 같은 통치자가 아니라 제사장에 비교돼 첫머리에 등장하고, 나머지는 모두사회 경제적 영역에 속한 계급에 관해 언급합니다.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인지 또는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3) 온통 파괴되는 땅(3)

 

3절 전반은 주제와 표현에서 1절 전반의 대체적 반복입니다. 단지 문장이 수동태로 기술되면서 파괴의 주체(행위자)보다 파괴되는 대상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온전히’로 옮긴 절대부정사가 첨가돼 파괴와 약탈이 전면적이고 철저하게 이뤄질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는 1-3절을 마감하는 언급으로, 땅을 황폐하게 하고 지면을 뒤집어엎는 심판 예언의 신적 기원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지금 예언자가 선포하는 온 세상의 심판은 여호와의 결정으로 때가 되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저주받은 땅(4-13)

하나님께서는 죄로 물든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뿐입니다. 이미 믿고 있는 성도라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며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의 땅에는 흉작이 찾아오고, 이에 사람을 사이에는 축제의 즐거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4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5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6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7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8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9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10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 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11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12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13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4-13)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사는 땅도 더러워졌고 쇠약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땅에 임하여 초목이 불타 버리고, 더는 소출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던 술과 음악과 잔치가 사라질 것입니다.

 

(1) 심판의 원인(4-6)

 

땅이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진 이유를 보여주기에 앞서 다시 한 번 땅의 멸망을 기술합니다. 땅은 말라 시들고 세계는 쇠하여 시들고, 땅의 백성 가운데 가장 높은 자(땅과 함께 하늘?)도 쇠합니다(4). ‘세계’은 ‘사람이 사는’, ‘개간된 땅’을 가리킵니다.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는 땅의 심판이 특히 땅의 멸망에 1차적 책임이 있는 통치자들에게 집중될 것을 보여 줍니다. 24장의 문맥에서는 여호와에 의해 징벌을 당하는 ‘땅의 왕들’(21)에 연결됩니다. ‘마르다(슬퍼하다)’, ‘시들다’, ‘쇠하다’는 가나안의 농부들에게 익숙한 가뭄을 표현하는 단어들입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포괄적으로 언급됩니다. 그 주민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려 땅이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5).

이스라엘을 고발할 때 사용하던 신학적 개념과 논리가 땅의 모든 주민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의 언약을 통해) 율법과 율례를 아는 것처럼 민족들도 율법과 율례를 알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행위에 책임적인 것처럼 민족들도 그분 앞에서 자기네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시내산의 계시는 이스라엘에 독점적으로 주어지지만, 땅의 주민들에게도 기본 질서에 대한 인식은 주어졌습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영원한 언약’으로는 노아의 언약(창 9:16)과 다윗 언약(삼하 23:5; 사 55:3)을 들 수 있습니다. 노아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처럼(창 17:7,13,19; 시 105:10) 여호와의 은총에 의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언약이기에 언약의 상대인 사람들에 의해 깨질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다’는 고발은 형식상 모순이 됩니다. ‘영원한 언약’이 법규의 준수를 포함하는 언약임을 전제합니다. 노아의 영원한 언약에 시내산의 조건적 언약이 결합된 모습입니다.

요약하자면, 이스라엘을 고발할 때 사용하던 ‘시내산 언약의 파기’가 민족들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민족들의 심판이 겉보기와는 달리 임의적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언약을 파기해서 징벌을 받듯이 민족들도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분명한 근거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6절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내산 언약의 파기가 땅을 더럽혀서 이스라엘에 저주를 가져온 것처럼(민 35:33; 시 106:38; 렘 11:3,8; 23:10; 슥 5:3; 단 9:11), 마찬가지로 민족들에 의한 영원한 언약의 파기로 땅이 저주에 넘겨집니다. 여호와께 순종을 거절한 이스라엘을 칼이 삼키는 것처럼(사 1:20) 저주가 땅을 집어삼킵니다. 삶의 공간인 땅이 저주를 받기에 생존이 불가능해집니다. 사람들은 자기네 악행으로 더럽혀진 땅에서 죗값을 받아야 합니다. 죄를 범한 땅의 주민들은 죄의 파멸적 세력에 사로잡혀 멸망에 떨어지고 극히 일부만 살아남습니다.

 

(2) 사라진 축제와 기쁨(7-9)

 

여호와의 심판이 초래하는 재앙을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합니다(6-9). 4절에 나온 동사 ‘슬퍼하다’(마르다)와 ‘쇠하다’를 다시 받아 포도농사의 흉작을 언급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지고 포도나무는 생명력을 잃고 다시는 포도를 맺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상실하고 모두 한숨만 짓습니다. 결실이 없기에 사람들이 손북과 수금을 치며 기뻐 흥겹게 떠들어대는 일이 없어집니다. 포도주가 끊기고 음악이 멎고 축제의 기쁨도 사라집니다. 삶의 즐거움을 상실한 자들에게 술은 쓰기만 합니다. 축제의 흥을 더해주던 술을 이제는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마십니다.

 

(3) 혼돈이 성읍(10-12)

 

심판과 관련해 새로운 모티브가 등장합니다. ‘혼돈의 성읍’(‘약탈당한 성읍’)은 파괴되고 집들은 모두 달혀 들어가는 자가 없습니다(10). 여호와의 심판으로 허물어지는 ‘혼돈의 성읍’이 어떤 성읍을 가리키는지는 달리 언급이 없기에 모호하게 남습니다. 25:2-3; 26:5; 27:10에도 여호와의 심판으로 파괴되는 성읍이 나오는데, 같은 성읍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 적대적인 땅의 세력이라는 점이고, 이런 배경에서 혼돈의 성읍으로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대제국의 수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토후’는 여호와의 창조 사역을 통해 정복된 원시의 혼돈으로(창 1:2;렘 4:23), ‘혼돈의 성읍’은 마치 태초의 혼돈이 밀려들어 온 그러한 성읍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으로 창조 세계(cosmos)가 다시 혼돈이 지배하는 무질서의 세계(chaos)로 되돌아갑니다.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는 성읍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혔음을 의미합니다.

11절은 주제와 표현에서 7-9절의 반복입니다. 포도주의 상실이 더 극적으로 표현됩니다. 거리에는 슬퍼하며 포도주를 찾아 외치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포도주의 떨어짐은 ‘모든 즐거움’과 ‘땅의 기쁨’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파괴된 성읍에는 비탄에 떨어진 자들의 울부짖음뿐, 즐거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허물어진 ‘혼돈의 성읍’에 남은 것은 허뿐입니다(12). ‘성문의 파괴’는 성문 주변에서 치열하게 공방전이 전개되기에 특별히 언급된 것 같습니다. 침략군의 공격으로 성문은 부서지고 허물어져 황량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에 자주 사용되는 추수의 표상(참조, 17:6)이 다시금 민족들에게 적용됩니다. 감람나무를 떨고 났을 대처걸, 포도 수확이 끝나고 일부 남은 것을 거두는 것처럼 극히 일부만 심판에서 살아남습니다(13; 6). 민족들 가운데 있을 여호와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질지를 보여줍니다(참조, 13:12).


공의를 거부하고 정의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법을 팽개치고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심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평을 버리면 하향평준화의 공평이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고 선물이니 주의 긍휼을 구하며 겸손히 공평의 삶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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